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56화
제19화. 신병위로휴가 (2)
식당에서 가지는 조촐한 파티.
그러나 정성만은 VVIP들이 모이는 파티 못지않게 풍성했다.
특히 황민수가 새로 도전하게 되었다는 가지해물탕이 이강진의 미각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떠냐, 강진아. 맛있지?"
"네! 이거 대박인데요?"
해물탕의 얼큰한 국물이 정교하게 칼집을 낸 가지에 잘 스며들었다. 가지 하나를 입 안에 털어 넣을 때마다 입안에 해물탕의 풍미가 가득 전해졌다.
황민수는 이강진의 칭찬에 멋쩍은 듯 웃었다.
"네 엄마가 많이 도와줬어. 맛도 많이 봐 주시고."
이강진의 어머니가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가지 말고 다른 재료들을 실험삼아 넣었었는데, 그건 맛이 너무 없었더라고요."
"하하, 그랬었죠. 저도 맛보고 나서 ‘웩!’ 했으니까요."
황민수는 일부러 과장되게 리액션을 취했다. 그런 황민수를 볼 때마다 이강진의 어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강진은 그런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결혼한 이후부터 줄곧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그의 어머니.
하나 이제는 이강진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정도로 많이 밝아졌다.
* * *
이강진의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황민수와 둘이서 술잔을 기울였다.
시원한 소주의 맛과 해물탕의 얼큰한 국물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크······ 좋다!"
"한 잔 더 받으세요, 아저씨."
"고맙구나. 그런데 네가 술을 이리도 잘 먹었던가?"
정신 차리고 보니까 벌써 빈 소주병만 6병이 쌓여 있었다.
이강진의 어머니는 술을 거의 하지 못한다. 마셔도 한두 잔이 전부다.
그 말인즉슨.
나머지는 황민수와 이강진이 다 마셨다는 소리다.
둘이서 마신 소주병 양치고는 적은 편은 아니었다.
"원래 어른들 앞에선 잘 안 마셔요. 괜히 달렸다가 술 취해서 밉상 보일만 한 행동이라도 저지르면 큰일이잖아요."
"하긴, 그렇지. 항상 그렇지만 술 조심해야 해. ‘술이 원수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잘 기억해둘게요."
"그래. 그보다 네 엄마 없어서 하는 말인데······."
황민수가 목소리 크기를 줄였다. 그러자 이강진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저희 엄마에 대해서 궁금하세요? 알려드릴까요?"
"어흠! 그것도 물론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거 물어보려는 게 아니고. 다른 것 때문이야."
"어떤 건데요?"
"주식 말이다, 주식."
이강진이 부대에 있을 때, 황민수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가게 한 달 매출보다 주식으로 번 돈이 더 많았다고.
이게 다 이강진이 흘려준 정보 덕분이었다.
"이전에는 그냥 소소하게 취미로만 했었는데. 너 보니까 본격적으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어떠냐?"
"아저씨."
그는 황민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주식에 걸어야 할 건 돈이지, 인생이 아니에요. 아저씨는 요리하는 모습이 어울려요. 인생 다 포기하고 모니터 앞에서 장 마감 시간 때까지 줄담배 피우면서 시간을 축내는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전 보고 싶지 않아요. 저희 어머니도 같은 생각일 거예요."
의외였다.
이강진이 주식으로 돈을 많이 만지고 있다는 사실은 황민수도 잘 안다. 그래서 황민수에게 주식 한 번 본격적으로 같이 해보자고 말해올 줄 알았건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주식은 항상 여윳돈으로 하세요. 가게 접으면서까지 주식에 올인할 필요는 없어요. 여윳돈만 가지고 하기에도 충분해요. 정보는 제가 줄게요."
"그······ 래?"
"네. 그 정도만 해도 돈 많이 벌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주는 정보는 특급 정보니까요."
이강진은 주식으로 흥했지만, 주식으로 망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강진이 아는 미래의 주식 흐름이 회귀 이후의 삶에도 그대로 재연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해보면서 투자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황민수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험난한 절벽을 기어올라 정상으로 향해 나아가는 건 이강진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황민수에게 여윳돈으로만 주식을 하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는 주식 말고도 시프코인이라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황민수가 주식으로 모아둔 돈만 가지고 시프코인 장에 뛰어들어도 엄청난 거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강진은 그보다 수십······ 아니, 수백, 수천 배 이상의 돈을 만지겠지만 말이다.
황민수는 이강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 강진이, 어른 다 됐네. 그래, 네 말이 맞다. 눈앞의 유혹에 빠졌다가 인생 망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
황민수는 이강진의 말을 귀담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강진은 황민수가 참 좋았다.
"강진아. 하지만 그 말은 너한테도 해당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너도 너무 주식놀음에 빠지지 말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깔끔하게 접고 이 아저씨한테 와라. 같이 가게나 꾸려보자."
"하하하! 네, 알았어요."
지난 삶에선 인생이 종쳐도 어디로 도피할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다르다.
안 돼도 이강진을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이강진을 반갑게 맞이해줄 사람들이 있다.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 * *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이강진.
"강진아. 먼저 씻으렴."
"아니에요. 저, 할 일이 있으니까 엄마부터 먼저 씻어요."
"할 일? 이 늦은 시간에?"
저녁 9시 10분. 이제 와서 밖에 나가기에는 늦은 시간이긴 했다.
게다가 만날 친구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부대에 확인 전화해야 해요."
"아, 그렇구나. 그럼 엄마부터 먼저 씻을게."
"네."
방으로 들어간 이강진은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부대 전화번호가 몇 번인지 군용 수첩을 통해 확인했다.
"어디 보자······."
번호대로 누른 뒤.
신호음이 가는 걸 기다렸다.
잠시 후.
-통신보안 상병 여운철입니다.
행정병인 여운철이 전화를 먼저 받았다.
"충성. 이병 이강진입니다."
-오, 강진이! 휴가는 잘 보내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전마등 병장님, 지금 근무자 인솔 끝내고 막 복귀하셨으니까. 전화 바꿔줄게.
"알겠습니다."
부대 확인 전화는 부대에 전화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간부나 혹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분과의 분대장, 최고선임이나 아니면 분과 중 한 명에게 꼭 목소리를 들려줘야 한다.
때마침 전마등이 당직근무를 서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대화 내용이 들렸다.
-전마등 병장님. 강진이 전화 왔습니다.
-강진이한테?
-예, 그렇습니다. 전화 받으시겠습니까?
-당연히 받아야지. 어디, 우리 막내 목소리 한 번 들어볼까?
전마등은 이강진을 굉장히 아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마등의 말년휴가를 풍요롭게 꾸며준 병사가 바로 이강진이니까.
-어흠! 통신보안.
"충성! 이병 이강진입니다."
-그래, 그래. 강진아. 잘 지내고 있지?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고 일으킨 건 없고?
"네."
-하긴. 우리 강진이가 나가서 문제 일으킬 만한 타입은 아니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불안감을 느낀 이강진이 먼저 물었다.
"부대에 무슨 일 있습니까?"
-우리 부대는 아니고. 아까 연락 왔는데, 어떤 일병이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음주운전으로 걸려서 지금 그쪽 부대, 탈탈 털리고 있는 중이래. 아마 이르면 오늘 저녁 뉴스에 나올 거야.
"······."
이강진은 튀어나올 뻔한 한숨을 삼켰다.
휴가 나간 일병이 사고를 쳐서 처벌을 받는다. 여기까진 상관이 없다.
문제는 동시기에 같이 휴가를 나온 이강진이나 백우호 같은 병사들에게도 빡세게 제한이 생긴다는 거였다.
-부대 전화, 원래 하루에 한 통화만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근데 사건 터져서 이제부터 점심에 2번, 저녁에 1번. 이런 식으로 3번씩 연락하라고 하더라.
"그렇습니까?"
-어. 귀찮더라도 내일부터 3번씩 전화하고. 위쪽에서 온지침사항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사실 하루에 한 번 하는 것도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그걸 하루에 세 번이나 해야 하다니.
‘그러고 보니 과거에 첫 휴가 나왔을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신병위로휴가를 나가서 전화 하루에 세 번 했던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리고 술자리 나갈 때에는 항상 조심하고. 알겠지?
-그래. 그럼 휴가 잘 보내고. 푹 쉬다가 와라.
"감사합니다. 충성!"
전화를 끊은 이강진.
때마침 티비에서 방금 전에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일병 음주운전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저녁 7시 반. 군 복무 중인 김모 일병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불시 음주 단속에 걸렸다는 소식입니다. 경찰은······.
"하여튼 조심 좀 하지. 쯧쯧쯧."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군용 수첩을 다시 접고 책상 위에 올려놓으려고 하려던 때였다.
툭.
작은 쪽지 하나가 떨어졌다.
"이게 뭐지?"
쪽지를 펼치는 순간.
낯익은 전화번호가 보였다.
"아, 이거······!"
이제야 무슨 번호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한지윤의 전화번호였다.
휴가 나왔으니, 날짜 맞춰서 보자고 했던 그녀의 제안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냥 립서비스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이강진은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강진이 특별히 잘생긴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키가 훤칠한 것도 아니고. 모델처럼 비율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집안이 잘 사는 쪽은 더더욱 아니었다.
한지윤이 이강진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연락처를 남긴 건 아닐 터.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는 건 상대방 입장에서나 이강진 입장에서나 서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일단 문자를 남겨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이강진입니다······."
입으로 자신이 써내려가는 문자 내용을 읊으면서 하나둘씩 글자를 적었다.
100자가 안 되는 문자 내용을 완성하는데 20분이 넘게 소비되었다.
정녕 이대로 보내도 될까?
너무 무성의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아직도 고민 중인 이강진에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안 씻고 뭐해?"
"자, 잠시만요!"
결국 어렵사리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데에 성공했다.
‘아 씨! 어떻게든 되겠지!’
주식 투자보다 한지윤에게 문자 보내기가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 * *
이른 아침에 눈을 뜬 이강진은 식당으로 향하는 어머니를 먼저 배웅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 그리고 내일 시간 내주세요."
"내일? 왜?"
"저번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엄마 옷 사드리겠다고."
"얘는······ 엄마는 괜찮아. 돈 있으면 너 쓰렴."
이강진의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이강진은 집요했다.
"저, 돈 많아요. 그러니까 내일 시간 비워요. 아셨죠?"
"어휴, 그래. 알았어."
어머니를 배웅한 뒤.
짧게 아침 식사를 마친 이강진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장이 열리는 시간까지 앞으로 10분 남았다.
"어디, 돈 좀 벌어볼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군인 이강진이 아닌 투자가 이강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