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55화
제19화. 신병위로휴가 (1)
시내에 내리자마자 신병 3인방은 우선 이른 점심 겸 술 한 잔 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아 해매기 시작했다.
모처럼 동기 세 명이 휴가를 맞춰서 나왔는데, 그냥 헤어지기 섭섭하지 않은가.
"어디가 좋으려나······."
김철이 말끝을 흐렸다.
그때, 백우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만 믿어라, 철아!"
"너, 여기 근처 잘 알아?"
말하는 폼이 적어도 이곳에 한 10년 이상은 거주한 현지인 같았다.
그러나 백우호의 대답은 김철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아니, 처음인데?"
오히려 실망만 가득했다.
"근데 널 뭘 보고 믿으라는 거야."
"내가 촉이 좋거든. 딱 보면 어디가 좋은 가게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촉! 어디 보자, 어디 보자······ 느껴진다, 느껴져! 오오, 그래! 바로 저기······."
백우호가 말을 하려고 하기 전이었다.
이강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칠미파전으로 가자. 저곳이 여기 맛집이야."
백우호와 다르게 이강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이강진이 말하니 신뢰도가 팍팍 느껴졌다.
"저기, 아는 가게야?"
김철의 물음에 이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예전에 이곳 근처로 놀러온 적이 있었거든. 여기 주변 가게 다 돌아봐도 저기보다 나은 집을 찾기가 어렵더라. 가격도 착한 편이고. 그리고 사장님도 친절해서 괜찮은 가게야. 사장님이 장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군인들 보면 굳이 서비스 더 달라고 안 해도 알아서 잘 챙겨주시고 그러더라."
"오, 좋은데? 그럼 저기로 가자!"
맛집이라는 거. 가게 사장님이 친절하다는 거.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딱 하나. 거짓말이 섞여 있었다.
바로 ‘놀러온 적이 있다.’라는 부분이다.
회귀 전에 외출, 외박, 휴가를 나올 때마다 저곳, 칠미파전을 들려봐서 저곳이 맛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나 이걸 다 말해줄 수 없었기에 이강진은 대충 말을 둘러댔다.
이강진의 말에 따라 칠미파전으로 향하는 이등병 3인방. 그때 김철이 백우호에게 물었다.
"네 촉도 저기서 느껴졌어?"
"응? 어, 어······ 딱 봐도 저기가 맛집처럼 보이더라고. 하, 하하하!"
이강진과 다르게 백우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티가 너무 확 나서 문제였다.
* * *
짠!
이게 몇 개월 만에 듣는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일까.
평소에 술을 거의 안 마시는 김철조차도 오늘은 동기들과 함께 잔을 기울였다.
파전에 김치찌개 등 맛있는 안주들이 즐비했지만, 가장 훌륭한 안주는 뭐니 뭐니 해도······.
"야, 라인혁 그 자식, 너무한 거 아니냐? 시발, 내 선임만 아니었으면 나한테 FIFA 탈탈 털렸을 텐데······ 그러고 나서 근무 때 뭐라고 하는지 아냐? 너와 나의 실력 차이가 마치 하늘과 땅 차이래나, 뭐래나! 아오!"
"그래도 1분대는 나은 거야. 행정분과는 정신병 걸린 선임놈들 투성이라고. 하도 간부가 닦달하고 잔소리해서 그런지 스트레스가 항상 머리끝까지 쌓여 있어서 후임들만 보면 그 스트레스 풀려고 어찌나 지랄을 하는지! 진짜 군생활, 더럽다! 더러워!"
신랄한 선임 뒷담화.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안주거리다.
김철, 백우호와 다르게 이강진은 주로 이들의 불만을 받아주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이강진은 딱히 불만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강진은 선임들에게 아직까지 갈굼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잘하니까.
눈치껏 알아서 행동을 잘하는데, 선임들이 이강진을 왜 미워하겠나.
심지어 간부들조차도 이강진을 챙겨주려고 난리였다.
특히 행보관이 이강진의 뒤를 많이 봐주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주식 때문이었다.
이강진이 슬쩍 흘려주는 정보 하나하나가 행보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말 그대로 돈 가져다주는 이등병이다. 그러니 안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이미지 관리를 잘한 덕분에, 그리고 자기 처신을 잘한 덕분에 이강진은 동기들에 비해 편안한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이강진의 계획대로였다.
"하, 나도 강진이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백우호가 한탄을 했다. 그러자 이강진이 작게 웃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너만의 장점이 있으니까 너무 그렇게 스스로를 비관하지 말고 그 장점을 극대화시킬 생각을 해. 그러면 너도 A급 소리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래야지, 그래야지······ 남은 군생활이 아직도 한참인데, 그 한참인 기간을 편하게 보내려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지, 뭐."
군대는 학교처럼 자퇴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은 강제로 머물고 있어야 하는 곳.
그런 곳이기에 각자 군대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이강진은 이미 모든 연구가 끝났다.
마음의 짐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휴가를 나와서일까.
‘오늘따라 술이 참 달게 느껴지네.’
맛있어도 너무 맛있다.
* * *
집으로 향하면서 이강진은 군용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군용 수첩 자체에 특별한 건 없었다. 이 안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 하나가 특별할 뿐.
한지윤의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가 수첩 안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시간 맞춰서 같이 식사 한 번 하자고 했던 한지윤.
그러나 이강진은 한지윤이 정말로 자신과 밥을 먹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예의상 한 것인지 아직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뭐······ 나중에 시간 날 때 한 번 슬쩍 문자나 보내봐야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어느새 이강진의 본가가 있는 청주까지 도착해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벗어난 뒤에 택시에 몸을 실은 이강진.
‘어디로 갈까요?’라는 택시기사의 말에 이강진은 당당하게 자신의 집 근처 초등학교를 말해줬다.
"봉영초등학교로 가주세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봉영초까지는 금방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뒤, 3분 정도 걸었을까.
20년 전, 자신이 머물렀던 집이 다시금 이강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귀했을 당시에는 입대 전날이라는 거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집 구경할 틈도 없었지.’
이제야 집 외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들의 두 배 이상의 신병위로휴가 기간을 확보한 이강진이기에 시간적 여유는 넘쳤다.
물론 그래봤자 10.11초처럼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새벽 이른 시간에 가게에 나가 저녁 9시쯤에 돌아온다.
‘지금쯤 가게에 계시겠네.’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이강진은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장 마감되기 전에 후딱 매도부터 하자.’
이강진이 여태 벌었던 모든 돈들을 이강진만이 아는 유망주에 다 몰아넣었다.
그의 예상대로 미리 넣어둔 종목들은 죄다 몇 배 이상 올라 있었다.
팔고, 팔고, 또 팔았다.
그 결과.
억 단위의 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고작 이런 푼돈 먹자고 회귀한 게 아니라고!’
지금 당장 쓸 돈으로 딱 2천만 원 정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시 주식에 올인하기로 했다.
장기투자로서 좋은 저평가 우량주부터 골랐다.
‘화영하고 우리언, 거승. 여기가 좋겠군.’
예전부터 이강진의 주 종목이었던 GF 텔레콤도 눈여겨볼 만하다.
확실하게 오를 것들부터 먼저 매수했다.
나머지는 지수 움직임과 거래량, 매매동향을 좀 보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선정해둔 종목들이 몇 개 더 있었지만, 이것들이 정말 이강진이 알고 있는 미래 지식대로 흘러갈지 어떨지 확인해본 다음에 결정하고 싶었다.
장 마감 시간과 함께 컴퓨터를 끈 이강진.
‘급한 건 다 끝냈으니까 일단 어머니부터 보고. 나머지는 차트 좀 보면서 시간 때우면 되겠어.’
친구도 딱히 없고. 그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2013년대 주식 동향을 좀 보고 싶어졌다.
‘어디 보자. 출금이 언제부터 가능하지?’
2천만 원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면회 때 말했던 것처럼 어머니에게 새 옷을 사드리는 것이다.
옷뿐만이 아니다. 신발, 백 등. 가난으로 인해 남들처럼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이강진이 직접 선물해주고 싶었다.
이강진의 얼굴에 미소가 새겨졌다.
‘처음에는 입대 전날로 회귀해서 눈앞에 깜깜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쁘진 않네.’
군대 두 번 갔다 오는 한이 있더라도 미래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런 상상을 예전에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때, 이강진은 확신했다.
재입대 하더라도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붙잡는 게 좋다고.
* * *
집을 나온 이강진은 작은 한식 식당 앞에 마주섰다.
바라 식당.
이곳이 그의 어머니가 일하는 가게다.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쉰 이강진.
왠지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떨릴 것도 없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중학생 때부터 자주 오고 갔던 익숙한 가게 아닌가.
그럼에도 뭐랄까.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20년 만에 와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럴 가능성이 가장 커 보였다.
쓴웃음을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가게 문을 열었다.
삐걱.
가게 자체가 워낙 낡았기에 문을 여는 데에도 약간 힘을 줘야만 했다.
문을 열자마자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 강진아!"
손걸레로 테이블 위를 닦던 이강진의 어머니가 가장 먼저 그를 맞이했다.
이강진은 어머니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저, 휴가 나왔어요."
"아이고, 우리 아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을 와락 끌어안아주는 어머니.
이 따스한 품. 얼마나 그리웠던가.
면회 때 봤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와서 어머니를 보니 느낌이 달랐다. 또 다시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다.
이강진은 애초에 눈물이 많은 남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이런 식으로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 앞에서 눈물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간신히 참아낸 이강진은 다른 화두를 꺼냈다.
"민수 아저씨는요?"
"주방에 계실 거야."
때마침 소란스러움을 알아차린 황민수가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가게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엇?! 강진이 아니냐!"
"아저씨, 저 왔어요."
화들짝 놀란 황민수가 허겁지겁 주방에서 튀어나왔다.
뒤늦게 고춧가루 양념 범벅이 된 고무장갑을 차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빠르게 벗어던졌다.
그러고서 이강진을 힘 있게 안아줬다.
어머니의 포옹과는 다른 투박한 포옹. 하지만 이 역시 따스한 느낌이 가득했다.
"짜식! 남자다워졌네! 자랑스럽다, 마!"
"하하하, 고맙습니다. 아저씨. 오늘 가게 문 몇 시에 닫으세요? 모처럼인데 다 같이 식사해요. 제가 크게 쏠게요."
"됐다. 군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 아저씨가 마침 기가 막힌 메뉴 하나 개발해냈는데, 맛 보여줄 겸해서 크게 한 상 차려줄게. 가게 문 일찍 닫을 거니까 오늘 여기서 우리들끼리 즐기자."
"그것도 좋죠."
안 그래도 황민수의 손맛이 그리워지던 찰나였다.
이강진의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음식 맛을 따지면 어머니보다 황민수가 한 수 위였다.
물론 이걸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맛은 밀릴지라도, 어머니의 손맛에는 아들을 생각하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으니까.
이강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