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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51화 (51/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51화

제17화. 첫 자대 훈련 (3)

전마등과 이강진이 빠르게 생활관 막사를 나섰다.

그때, 마침 치장 물자를 옮기고 있던 3분대 박이율 병장과 마주쳤다.

"뭐야. 너희, 벌써 준비 다 끝났냐?"

"어. 빠르지? 우리가 아마 중대 중에서 가장 빠를 걸?"

전마등의 말이 맞았다.

거의 전투준비태세 발령되자마자 튀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빨랐다.

"어라? 가만 있어보자. 후임근무자가 강진이네? 신병이잖아?"

"이병 이강진.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의 눈이 번뜩였다.

눈빛만 봐도 생기와 의욕이 가득 넘쳐흘렀다.

더 이상의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안 그래도 박이율도 정신이 없는데, 이들을 붙잡고 티타임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래. 고생해라."

"오냐, 너도 수고해."

"가보겠습니다, 충성!"

그렇게 이강진은 전마등과 함께 진지 점령을 위해서 빠르게 이동을 개시했다.

이들이 향할 곳은 1-3 진지다.

탄약고 초소보다 거리가 먼 진지였기에 출발도 일찍 해야 했다.

대대를 가로질러 산으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섰다.

빠르게 산길을 오르는 두 남자.

"이놈의 진지 가는 길은 병장이 되어서도 영 익숙해지지가 않네!"

이강진도 전마등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강진은 회귀 재입대다. 두 번째 삶에서도 진지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어디 보자, 호 위치가······."

"저기입니다, 전마등 병장님."

이강진이 먼저 손으로 진지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진지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오, 나이스."

지급받은 무전기, P96K를 든 전마등.

"여기는 정발산. 정발산이라 알리고 진지 점령했다는 통보. 기청포 수신 양호한지."

-기청포 수신 양호.

적군이 혹시나 무전 내용을 염탐할지도 모르기에 군부대에서는 이렇게 은어를 사용하곤 한다.

이 은어를 숙지해야 하는 것도 병사들의 몫이다.

진지 점령 통보를 마친 전마등은 이강진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근데 강진아. 여기에 진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냐?"

"저번 주에 진지 보수 작업하러 여기 왔었습니다. 근데······."

이강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망했습니다."

"응? 왜?"

"여기 옆쪽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강진은 진지의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순간. 전마등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런 씨발······!"

진지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 * *

군대에서, 특히 전방 쪽 지역에 근무하다보면 자주 만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사회에서 자주 접하기 힘든 동식물들이다.

이강진은 예전에 군대에 와서 동물원에서도 볼 수가 없는 두더지를 군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시체였지만.

그래도 본 게 어디란 말인가. 두더지라는 생물이 있다는 건 머릿속으로 알지만,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아마 굉장히 드물 것이다.

어디 두더지뿐이랴.

고라니, 독수리 등등. 별 희한한 녀석들을 다 보게 된다.

그중에 군인들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독보적인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멧돼지’다.

멧돼지. 몸집이 큰데다가 성격도 굉장히 포악한 녀석이기에 군인들이 간혹 산으로 작업을 나가거나 근무를 나갈 때에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실제로 멧돼지에게 습격을 당했던 병사들 몇몇이 의병제대를 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중에서 병장도 있다는 것이었다.

병장 만기 전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멧돼지 때문에 강제로 의병제대를 하게 되면 얼마나 억울할까.

멧돼지가 군인들을 괴롭히는 건 이런 패턴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기껏 작업해놓은 진지, 배수로, 철조망, 계단, 측각기 설치 장소 등을 다 헤집어놓고 간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런 썅······ 멧돼지 새끼가 또 난리를 피우고 갔네!"

전마등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중대 ATT 한다고 행보관이 중대원들에게 2주 동안 작업 지옥을 선사했다. 기껏 깔끔하게 단장을 시켜놨건만. 멧돼지 한 마리가 와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갔으니, 열이 안 받을 수가 있을까.

이강진도 한숨을 삼켰다. 그도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전마등 앞에선 그래도 말조심을 해야만 했다.

"이걸 어찌 한담······."

전마등은 고민이 깊어졌다.

대대장이 분명 이곳을 들릴 것이다. 저번 ATT 때에도 그랬고, 이전 국지도발 훈련 때에도 그랬으니까.

대대장이 무조건 들리는 진지 중 한 곳이 바로 이곳 1-3이다.

그때, 이강진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저희끼리 보수 작업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시간이 될까?"

"어차피 대대장님이 바로 올라오시진 않을 겁니다. 막사 들렸다가 오실 거니까 한······ 10시에서 10시 반쯤이면 이곳에 오시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그동안 흘러내린 흙만 빠르게 퍼내고, 벽에 큰 돌 몇 개 심어놓은 후에 다져놓으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러면 튼튼할 겁니다."

구체적인 대안을 들려주는 이강진이었다.

"그리고 저희에겐 이게 있지 않습니까."

때마침 작업 도구도 있었다.

군대에서 사용되는 만능 아이템!

바로 야전삽이다.

의욕 넘치는 이강진을 본 전마등은 피식 웃었다.

"오냐! 좋다, 한 번 해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일단 최대한 해보고, 안 되면 대대장에게 멧돼지 핑계를 대면 될 것이다.

군장을 내려놓은 뒤.

전마등은 이강진에게 방탄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방탄모 벗고 작업해라, 강진아. 그래야 작업하는 사람이 편하고 일하는 효율이 올라가지."

"그래도 됩니까?"

"원래는 당연히 안 되는 거지. 근데 어쩔 수가 없잖아. 그리고 군대에서 통용되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안 들키면 장땡’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요 녀석!"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대답하는 이강진의 모습에 전마등은 크게 웃었다.

이렇게 분대 최고선임과 말단이 펼치는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 거행되었다.

* * *

1중대 중대장, 윤형인은 거울 앞에 서서 수십 번 넘게 자신의 위장 상태를 확인했다.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해!"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족도를 드러냈다.

때마침 소대장, 성태원 소위가 허겁지겁 행정반으로 뛰어왔다.

"중대장님! 대대장님 오십니다!"

"그래?! 바로 나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황급히 K-1의 개머리판을 집어넣은 후에 등에 둘러매고서 사열대 앞으로 튀어나갔다.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대대장의 모습에 중대장과 소대장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들에 비해서 행보관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계급은 비록 중대장과 소대장 아래일지 모르지만, 행보관이 먹은 짬밥의 햇수는 중대장과 소대장의 머리 위······ 아니, 하늘 위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여유가 느껴지는 태도를 보였다.

"충! 성!"

중대장의 우렁찬 목소리. 대대장은 짧게 거수경례로 답했다.

"거두절미하고. 막사부터 확인해보지."

막사 내에 보급품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행정반에 들어선 대대장 일행.

"비문은?"

"전부 처리해뒀습니다."

"흠, 그래?"

대대장은 갑자기 자세를 낮췄다.

그의 노림수가 있었다.

바로 책상 밑이었다.

간혹, 아주 간혹 출력해놓은 서류가 책상 밑에 들어가 버리거나 해서 못 찾고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다. 이걸 훈련 당일 날까지 까먹을 때가 있었다. 실제로 본부중대가 이런 식으로 불과 2달 전에 대대장에게 탈탈 털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1중대에는 대대장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었다.

바로 행보관이다.

"책상 밑에도 싹 다 비워두게 했습니다. 허허허."

"음······."

대대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책상 밑까지 확인할 줄 미리 알았던 행보관. 그래서 그는 저번 주에 행정분과 인원들을 총 동원해서 행정반 대청소를 실시했다.

예상대로 책상 밑에 까먹고 있던 A4 복사본 용지 몇 장이 튀어나왔다. 만약 이걸 모른 채로 그냥 ATT를 받았더라면, 대대장에게 탈탈 털렸을지도 모른다.

"생활관으로 넘어가도록 할까."

"예!"

행정반은 무사통과.

중대장이 앞장서면서 대대장을 안내했다.

1생활관을 비롯한 모든 생활관을 전부 다 돌아본 대대장.

어떻게든 중대를 털어보려고 찔러보는 대대장의 창과 그것을 막기 위한 1중대의 방패가 격돌했다.

1차전 결과.

"생활관은 문제없군. 진지로 가보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방패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 겨우 1차전이 끝난 것에 불과하다.

아직 소화해야 할 대전이 많이 남았다.

* * *

대대장이 무조건 도는 순찰 지역. 정발산이라 불리는 1-3 진지.

대대장 일행은 점점 더워지는 날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산을 올랐다.

손으로 땀방울을 훔치는 중대장.

그가 이렇게 땀을 흘리는 이유는 더위 탓도 있지만, 동시에 언제 대대장이 트집거리 하나 잡아서 자신에게 쓴소리를 날릴지. 이에 대한 걱정 탓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후자 쪽이 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중대장은 소대장에게 몰래 물었다.

"정발산에 누구 있지?"

"마등이하고 강진이 있습니다."

"마등이는 그렇다 치고, 강진이라······."

하필이면 그곳에 신병이 투입되어 있을 줄이야!

손에 땀이 다 날 정도였다.

서서히 진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지 쪽에서 이강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산속 같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장소에선 야간 때처럼 경계를 하는 것이 좋다.

"등대!"

문어가 나왔으면 답어가 나와야 하는 게 정상.

그러나 대대장은 답어를 외치는 대신 다른 식으로 리액션을 펼쳤다.

"대대장이다."

하나 이강진의 태도는 완고했다.

"등대!"

"대대장이라니까."

"등대!"

아무리 자신이 대대장이라고 알려도 이강진은 계속해서 답어를 요구할 뿐이다.

왜냐하면 대대장이 자신의 모습을 경계 근무자들에게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대대장이야.’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틀림없이 일부러다.

그제야 대대장은 답어를 말했다.

"기러기. 하하, 녀석들. 안속아 넘어가는군. 중대장, 애들 교육을 아주 잘 시켰어."

"대위 윤형인! 감사합니다!"

중대장은 전마등과 이강진에게 대대장 몰래 몰래 엄지를 추켜올려줬다.

잘했다는 뜻이었다.

대대장이 오기 전까지 전마등, 이강진은 보수 작업을 모두 완료했다.

솔직히 전마등은 못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신병 데리고 둘이서 제한시간 내에 작업을 마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강진은 전마등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삽질을 보여줬다.

그 결과.

문제없이 완벽하게 진지 보수 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진지로 올라온 대대장은 전마등과 이강진의 모습을 보고 헛숨을 삼켰다.

"자네들, 위장이 보통이 아니군."

목뿐만 아니라 손등, 심지어, 귀 속까지 위장 크림을 발랐다.

중대장보다도 더 철두철미한 위장을 보여준 1분대 선후임 듀오.

두 사람의 모습에 대대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1중대 훈련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어! 하하하!"

대대장의 날카로운 창날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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