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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41화 (41/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41화

제14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3)

김명찬 병장의 한 마디에 최승헌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 감각을 느낀 건 비단 최승헌만이 아니었다.

전마등, 박이율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김명찬 병장의 맞후임이다. 김명찬 병장이 말년이 되기 전까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중대의 미친 개!

그가 미친 개 모드를 발동하는 순간, 1중대는 말 그대로 숨도 못 쉬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승헌아. 요즘 군대 많이 편해졌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우리 분대를 건드리고. 내가 아주 좆으로 보이지?"

"벼, 병장 최승헌! 아닙니다!"

"예전에 내가 한 마디 했다고 질질 짜던 승헌이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내가 요즘 많이 순해졌지? 그래도 같이 병장 달았다고 친한 형동생 사이처럼 지내게 해주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너하고 나는 전역할 때까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사인가 보다. 슬프네."

"죄송합니다! 김명찬 병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김명찬은 피식 웃었다.

"지가 잘못한 줄은 알고 있는가 보네."

최승헌에게 향하던 관심을 이번에는 박이율에게 던졌다.

"박이율."

"병장 박이율!"

"이번엔 3분대가 명백히 잘못했다. 경고카드 받아도 우리 분대 탓하지 마라.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박이율은 최승헌과 다르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남자다.

전마등이 최승헌의 죄를 고했을 때부터 ‘아, 이건 경고카드 감이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군대는 연대 책임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맞선임이 잘못을 했으니 자신도 맞후임으로서, 그리고 한 분대를 이끄는 분대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건 예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마등아. 3분대에게 경고카드 줘라."

"몇 장 줍니까?"

"10장."

두 자리 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도 많이 깎아준 거였다.

하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중으로 분대장들 소집해서 3분대한테 경고카드 몰아주게끔 할 테니까 3분대, 니들은 나 너무 원망하지 마라. 원망할 거면 최승헌을 원망해. 그리고 죄 달게 받는다고 생각하고 다음 달에 얌전히 분리수거장 맡아라."

"예, 알겠습니다."

바로 대답하는 박이율과 다르게 최승헌은 약간 뜸을 들였다.

김명찬이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승헌아. 어째 대답이 좀 느리다?"

"벼, 병장 최승헌! 죄송합니다!"

"그래, 그래. 병장 달았다고 나처럼 너무 나태해지지 말고. 그러다가 행보관님의 노예로 낙인찍히는 수가 있으니까."

김명찬은 최승헌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펑! 펑! 소리가 나게끔 강하게 토닥였다.

"우리, 서로 군생활 잘해보자?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군기잡힌 모습, 아주 보기가 좋네. 자, 그럼 가 봐."

최승헌과 박이율은 빠른 걸음으로 1생활관을 나섰다.

이들이 사라지자마자 전마등은 김명찬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고마워, 김뱀."

"음? 내가 뭘."

"위기 때 나서서 도와줘서. 솔직히 이런 거, 커버 안 쳐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일부러 김뱀한테 말 안 했던 건데······."

"야, 마등아."

김명찬은 도중에 전마등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내가 좆같은 병신이어도 선임 역할은 다 할 거다. 그러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네 맞선임······ 아니, 형한테 의지해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내 후임은 내가 직접 괴롭혀야지. 다른 분과 녀석이 내가 괴롭힐 녀석들 못살게 굴면 꼴 보기 싫단 말이야. 안 그래?"

"하, 하하하······."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김명찬은 여전히 미친 개였다.

* * *

김명찬이 말한 대로 1분대부터 시작해서 모든 분대장이 3분대에게 경고카드를 몰아줬다.

이 소식을 들은 이강진은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지.’

아무리 최승헌이 또라이 짓으로 유명하더라도 원조 또라이, 김명찬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로서 3분대는 다음 달, 분리수거장 청소가 확정되었다.

덕분에 3분대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물론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마인드인 박이율이 분대장을 쥐고 있긴 하지만, 그의 후임들은 사람인 이상 억울함을 안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미묘한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1분대원들은 그저 최대한 3분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지웅 일병이 이강진과 백우호에게 이 점을 단단하게 교육시켰다.

"당분간 3분대 쪽은 얼씬도 하지 마.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번 주 일요일에 행보관님이 너희 데리고 목욕탕 가신다고 하니까 그거 준비하고."

목욕탕이라는 말에 백우호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목욕탕이라면, 여기 대대 목욕탕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대대 목욕탕 말고. 대중목욕탕. 사회에 있을 때 몇 번 가봤을 거 아니야?"

"그, 그렇다면······!"

"그래."

황지웅이 슬쩍 미소 지었다.

"간만에 사회 공기 마시고 온다는 뜻이지."

"······!"

백우호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반면, 이강진의 반응은 침착했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서 그렇다.

‘밖에 나가서 뭐 먹었는지도 다 기억하고 있지.’

짜장면과 탕수육이었다.

신기하게도 행보관과 함께 나갔던 첫 외출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백우호는 벌써부터 설렘으로 가득 찬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황지웅은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기대되냐? 강진이는 무덤덤한데. 우호는 엄청 설레나 보네."

"이병 백우호! 예, 그렇습니다!"

"원래는 이런 거 예전에 하다가 나 때부터는 행보관님이 바쁘셔서 안 하기 시작했는데. 옆 부대에 이등병 탈영 사건 발생해서 다시 시작하기로 하신 거 같더라."

좋은 시기는 아니다.

이럴 때, 괜히 부대에서 사고 하나라도 터진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자세한 건 분과별 간담회 시간 때 알려줄게. 일단 식사집합부터 하러 가자."

"예, 알겠습니다."

황지웅 일병을 따라 1생활관을 나섰다.

그때였다.

"황지웅!"

한 남자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작대기 세 개. 딱 봐도 황지웅보다 선임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일병 황지웅! 휴가 복귀하신 겁니까?"

"어. 원래는 여섯 시 땡! 치면 복귀하려고 했는데······ 어휴. 중대장님이 요즘 부대 분위기 어수선하니까 적어도 5시 30분에 위병소 통과하라고 하도 닦달을 하셔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이것 때문에 저녁도 못 먹고 왔다. 짬밥 먹게 생겼어."

"같이 식사집합 하시지 말입니다?"

"그럴까? 근데 뒤에 둘은 누구냐?"

라인혁 상병의 물음에 이강진과 백우호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관등성명을 외쳤다.

"이병 이강진!"

"이병 백우호!"

황지웅이 둘을 대신해서 설명해줬다.

"며칠 전에 들어온 신병들입니다."

"오, 그래? 서일주, 이 짜식. 군번 풀렸네. 이병 주제에 벌써 후임을 두 명이나 받고."

"하하, 그렇지 말입니다. 그럼 저희 먼저 집합해 있겠습니다."

"그래. 이것만 두고 바로 나갈게."

식사 집합은 전 병력이 모두 모일 필요가 없었다. 먼저 모인 분과별로 집합해서 인원 보고만 하고 바로 식당으로 출발하면 된다.

사열대 앞으로 향하는 동안, 백우호가 황지웅에게 물었다.

"방금 만난 분은 어떤 분입니까?"

"라인혁 상병님? 우리 1분대 소속으로 안준렬 상병님이랑 동기셔. 너희 아버지 군번이지."

군대에선 딱 1년 차이가 나는 군번들을 서로 아버지, 아들 군번이라고 부른다.

이강진과 백우호의 아버지 군번이라는 뜻은 라인혁도 1월 군번이라는 의미가 된다.

"라인혁 상병님은 재미있으신 분이야. 안준렬 상병님이 FM 스타일이라면, 라인혁 상병님은 AM, 즉 프리스타일이지. 군기 빡세게 잡고 하는 그런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 너희도 오늘 김명찬 병장님하고 최승헌 병장님 봐서 알겠지만, 군대는 아무리 친한 선후임 관계라 하더라도 선임과 후임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안준렬과 라인혁.

전마등이 전역하게 되면, 두 사람이 1분대를 이끄는 주역이 된다.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강진.

‘그때가 1분대의 황금기였지.’

이번에도 그 황금기가 그대로 재연될지 어떨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 * *

라인혁의 복귀를 가장 크게 반긴 건 바로 김명찬이었다.

"인혁아!"

"충성! 김명찬 병장님, 소식 들었습니다. 요즘 행보관님한테 꽉 잡혀 사신다면서 말입니다?"

"말도 마라. 죽겠다, 죽겠어! 여기 봐라. 파스 붙인 거, 보이지? 여기는 피멍도 들었다고!"

엄청난 엄살이었다.

쓰디쓴 미소를 짓는 라인혁.

"그러니까 부대 분위기 안 좋을 때 신병놀이를 왜 하셨습니까.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분이······."

"너무 오랜만에 들어온 신병이라서 나도 모르게 해보고 싶었는 걸. 그나저나 그거, 사왔냐?"

"예, 물론입니다."

"역시 인혁이야!"

‘그거’라는 말에 백우호의 귀가 번뜩였다.

신병이라 그런지 모든 것에 관심이 가는 백우호였다.

선임들끼리 바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백우호가 이강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거’라는 게 뭘까?"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아마 ‘맥시멈’하고 ‘스파링’일 거야."

"그게 뭔데?"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순간 많은 고민에 휩싸인 이강진이었지만, 이내 간결하고 확실하게 이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야한 잡지."

"······!"

정확히 말하면 ‘야한 내용이 들어 있는 잡지’였다.

그렇다고 19금적 요소가 들어 있는 그런 선정적인 잡지는 아니었다. 노출도가 높은 의상, 그러니까 비키니라든지. 미니스커트라든지. 이런 의상을 입고 찍은 화보들이 아주 많이 실려 있는 그런 잡지라고 할 수 있었다.

희한하게 군대에 있을 때에는 없어서 못 보는 잡지이건만. 사회에 나가면 거들떠도 안 보는 잡지가 되어버린다.

이강진도 예전에는 재미있게 본 잡지라고 생각해서 몇 달 구독해서 보긴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냥 쌓아두기만 하다가 먼지만 자욱하게 쌓여서 결국 나중에는 종이박스와 함께 처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걸그룹도 있다.

사회에 있을 때에는 거들떠도 안 봤던 걸그룹. 그러나 군대에 있을 때에는 걸그룹 멤버 이름 외우기는 기본이오, 생일까지 챙기는 병사도 있었다.

그러나 전역하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자신이 걸그룹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따르고 신봉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여튼 군대가 참 사람을 많이 변하게 한단 말이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한창 잡지 이야기로 생활관이 들떠 있을 때였다.

"얘들아~!"

1생활관을 방문한 통신반장, 권주명 중사.

김명찬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충성. 신병들 있지?"

"이병 이강진!"

"이병 백우호!"

자신들을 찾는 간부의 목소리에 절로 반응했다.

통신반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통합 점호 때 신병들 장기자랑 시킬 거니까 미리 준비해둬. 신병들, 기대하고 있으마."

결국 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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