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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7화 (37/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7화

제13화. 노란 견장 (1)

저녁 통합 점호 끝난 후에 병력들은 각 생활관으로 흩어졌다.

생활관에 돌아오자마자 김명찬 병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바로 침낭으로 직행했다.

이강진과 백우호는 전마등 병장의 침상을 기준으로 각각 왼쪽, 오른쪽 침상을 사용하게 되었다.

신병이 있으면 분대장, 혹은 최고선임자 자리의 바로 옆으로 지정된다. 이강진은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자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뭐, 불평불만을 내뱉을 수도 없는 신분이기도 하고.’

이제 막 자대로 전입한 신병이 ‘자리가 마음에 안 듭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어디 있을까. 만약 그럴 용기가 있다면, 그 신병은 취침 대신 체력단련의 시간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전마등 병장은 현재 당직으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이강진의 옆자리는 공석이 되어버렸다.

취침을 위해 자리에 누웠다.

눕자마자 생활관 위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방송 소리가 새어나왔다.

잠시 후.

대중가요가 생활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너를 너무 믿었어~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았지만 내 모든 걸 다 주고 말았어~갑작스럽게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에 백우호는 흠칫 놀랐다.

옆에 누워 있던 황지웅 일병이 백우호와 이강진에게 설명을 해줬다.

"우리 부대는 자기 전에 이렇게 대중가요 몇 곡 틀어주거든. 2~3곡 정도 나올 거야. 그러니까 너무 놀라지 마."

"예, 아, 알겠습니다."

백우호는 몰랐겠지만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마침 그가 좋아하던 대중가요, ‘이별의 공식’이 흘러나왔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도중에 서일주 이병이 말했다.

"취침소등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김명찬 병장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 정말 수고 많았지. 정말로······ 어휴······."

김명찬 병장에게는 아마 오늘 하루가 지옥과도 같은 하루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강진은 달랐다.

김명찬 병장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일 수 있었으니, 오늘 하루는 아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꿀잠을 만들어주는 또 한 가지 요소가 있다.

‘근무가 없지.’

이강진과 백우호, 그리고 다른 생활관에서 잠을 취하고 있을 김철까지.

이 세 명은 약 2주간 모든 근무에서 제외된다.

신병의 특권이다.

야간근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다.

뒤집어 쓴 침낭을 끌어올려 몸을 덮은 이강진.

똑바로 누우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원래는 낯선 천장이여야 했다. 하나 이강진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천장이었다.

‘거의 2년 가까이 지겹도록 봤던 천장인데. 이런 식으로 또 보게 되는구나.’

김명찬 병장과는 다른 의미의 한숨이 이강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 * *

새벽 6시.

빠빠빠빠빰!

기상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계속 누워 있고 싶어도 어마어마한 볼륨으로 울어대는 기상나팔 소리에 병사들은 어쩔 수 없이 상반신을 일으켜야만 했다.

바짝 긴장하고 자서 그런지 백우호는 기상송을 듣자마자 바로 벌떡 일어났다.

이강진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선임들보단 일찍 일어났다.

후임된 자로서 몸에 들여야 할 습관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빠릿함이다.

늦장을 부리면 안 된다. 무엇을 하든 간에 빨리빨리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임들에게 욕먹기 십상이다.

안준렬 상병이 행동이 느릿느릿한 후임을 굉장히 싫어한다. FM상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안준렬 상병. 그는 중대 내에서 군기반장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 안준렬 상병한테 잔소리 엄청 들었었지.’

그때를 떠올리면서 이강진은 빠르게 자신의 침상을 정리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아침 점호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아직 백우호는 침상 정리와 씨름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군.’

이강진이 나서기로 했다.

모포를 보기 좋게 접으려면 두 사람이 협력해서 하는 게 좋다.

이강진은 백우호가 들고 있는 모포의 반대편 끝 쪽을 잡아줬다.

"고마워, 강진아."

"천만에."

동기 좋다는 게 무엇인가.

이럴 때 서로 돕고 돕는 것이다.

예전에 이강진은 백우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군생활이 힘들 때, 백우호는 늘 이강진에게 힘이 되어줬다.

이제는 그 은혜를 하나둘씩 갚아나갈 차례다.

* * *

전마등 병장이 외쳤다.

"점호 5분 전!"

전마등의 말을 큰 목소리로 복명복창하는 병사들.

안준렬 상병이 말했다.

"우리도 슬슬 가자. 김명찬 병장님. 점호 참석하십니까?"

"당연히 해야지. 누구 영창 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냐."

당직사관이 다른 사람도 아닌 행보관이다. 안 그래도 어제 일 때문에 행보관에게 제대로 찍혔는데. 귀찮다고 아침 점호까지 안 받아봐라. 김명찬은 바로 영창행이다.

1075대대 1중대의 아침 점호는 사열대 앞에서 진행된다.

옹기총기모인 병사들.

1분대 가장 앞쪽에는 안준렬 상병이, 그 뒤에는 신병인 이강진과 백우호가 섰다.

맨 뒷줄은 말년병장의 차지였다.

전마등 병장이 나와 1분대부터 인원현황 보고를 요구했다.

"1분대 보고."

"보고!"

안준렬 상병은 빠르게 보고를 이어갔다.

"1분대 총원 10명. 열외 2명. 열외 내용 휴가 둘. 나머진 이상 없습니다."

"김뱀 나왔지?"

"예. 뒤에 있습니다."

김명찬 병장이 늘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김명찬 병장의 모습에 전마등 병장은 피식 웃었다.

역시 말년병장을 잡는 데에는 행보관만한 천적이 없다.

모든 분과의 인원현황 파악을 끝낸 전마등 병장.

"행보관님 불러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예!"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보관이 사열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밤에 환자 거수한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김명찬 병장이 손을 들었다.

행보관은 헛웃음을 흘렸다.

"김명찬. 어디가 아프냐."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지병인 목감기가······ 콜록콜록!"

"목감기? 그건 아침 구보 한 번 뛰고 나면 다 나을 거다."

"목감기에는 휴식이 특효약이지 않습니까?"

"군대에선 아침 구보가 특효약이라는 걸 몰랐냐. 특히 꾀병에는 더욱 특효약이지."

"······."

씨알도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명찬 병장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행보관은 어제 전입 온 신병 셋을 불렀다.

"신병들은 간밤에 아픈 곳 없나."

"이병 이강진! 괜찮습니다!"

"이병 백우호! 아픈 곳 없습니다!"

"이병 김철! 저도 멀쩡합니다!"

간부들은 신병 관리에 특히나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환자 파악을 끝낸 행보관은 절차대로 아침 점호를 진행했다.

긴장감 속에서 점호를 진행했던 신병교육대와 달리 자대 아침 점호는 확실히 여유가 느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국군도수체조까지 마친 뒤.

행보관은 김명찬을 불렀다.

"명찬아."

"병장 김명찬."

"아침 구보 시킬 테니까 네가 인솔해서 갔다 와라."

그 말인즉슨.

김명찬도 아침 구보에 참가하라는 뜻이었다.

행보관의 말은 곧 법이다. 김명찬은 속으로 쌍욕을 삼키면서 상의를 탈의했다.

1075대대 1중대의 아침구보 코스는 대대 한 바퀴를 쭉 둘러보는 것으로 끝이었다.

다 돌고 나면 대략 5분 정도가 소요된다.

자대에서 경험해보는 첫 구보여서 그런 걸까.

백우호와 김철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강진은 그래도 이들보단 나았다.

‘훈련소에서 나름 체력 단련을 해둬서 다행이야.’

게다가 익숙한 코스여서 그런지 능숙했다. 오히려 훈련소 구보 코스보다 쉽게 느껴졌다.

20여년이 지났어도 몸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강진은 이것을 아침 구보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 * *

자대에서의 첫 아침 점호를 끝내고 막사로 돌아온 1분대.

황지웅 일병은 침상에 축 늘어진 김명찬 병장에게 물었다.

"아침식사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늘 메뉴 뭐냐?"

"군데리아입니다."

"안 먹어. 우유나 가져다 줘."

군데리아를 거르다니! 백우호는 충격에 휩싸였다.

신병교육대에 있을 때에는 없어서 못 먹었던 게 바로 군데리아다.

그러나 말년병장쯤 되면 지겨워서 안 먹게 된다.

물론 모든 말년병장들이 군데리아를 거르는 건 아니다. 말년이어도 아직도 군데리아가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강진도 거의 그런 케이스였다.

다만, 그놈의 배탈 현상이 좀 신경 쓰일 뿐.

세면세족을 마친 병사들에게 새로운 소식이 방송을 통해 하달되었다.

-식사 집합 5분전.

"식사 집합 5분전!"

안준렬 상병과 황지웅 일병은 먼저 사열대로 향했다.

서일주 이병은 아직 화장실에 있었다.

서일주가 오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었다.

이강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간만에 한 번 해볼까?’

상병 계급을 달고 나서부터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그것!

이강진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침상을 정리했다.

모포와 침낭, 베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신발 정리까지 모두 마무리를 지었다.

끝으로 그는 수저통을 챙겼다.

‘이게 없으면 밥을 못 먹지.’

수저통에 1분대 인원들이 사용하는 숟가락, 젓가락이 들어 있었다.

때마침 서일주 이병이 화장실 휴지를 들고 생활관에 복귀했다.

이미 다 정리되어 있는 침상과 신발들을 보면서 그는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거, 누가 정리한 거야?"

"제가 했습니다."

전투화, 활동화, 슬리퍼 순으로 정확히 정리해뒀다. 뿐만 아니라 침상 정리도 완벽했다. 서일주가 정리하던 것보다 훨씬 깔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일주의 정리정돈 경력과 이강진의 정리정돈 경력은 애초에 비교가 안 된다. 베테랑인 이강진이 훨씬 잘하는 게 당연했다.

서일주 이병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강진을 바라봤다.

"이야! 완전 A급인데?"

"감사합니다!"

이런 건 이강진 입장에서 아주 당연한 것들이었다.

* * *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오전 집합 전까지 병사들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서일주 이병은 이강진과 백우호를 데리고 다니면서 할 일을 교육시켰다.

"우리 분대가 이번에 분리수거장 청소에 걸렸거든. 개인정비 시간 끝나고 점호 전까지 가지는 청소시간에 한 번, 그리고 똥휴지 버리면서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씩 분리수거장 정리하면 돼. 화장실 휴지통 비우는 것도 분과별로 나누는데, 우리는 1사로 화장실이야. 기억해둬."

"예, 알겠습니다."

1분대는 운이 없었다.

분리수거장은 병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청소구역이다.

청소구역은 한 달에 한 번씩 새롭게 정해진다.

정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칭찬카드, 경고카드라는 시스템이 있다.

각 분과에서 우수한, 혹은 모범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에는 칭찬카드를 받는다. 반대의 경우에는 경고카드를 받는다.

한 달을 기준으로 칭찬카드를 가장 많이 받은 분과에게 청소구역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저번 달에는 1분대가 꼴찌였다.

하나 이제부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강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또 하드캐리를 해야겠군!’

일단 1차 목표는 분리수거장 신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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