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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5화 (35/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5화

제12화. 또 왔다 (3)

행보관과 면담을 위해 행보관실을 찾게 된 이강진.

책상 하나에 테이블 하나, 그리고 의자 둘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공간이다.

"앉아라."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행보관은 이강진을 처음 이곳 행보관실로 불렀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수도 없이 이곳을 방문했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행보관실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결산 회의 때 가장 많이 이곳을 찾았다.

‘말년 때까지 분대장 수첩 들고 결산 회의에 참가했었지.’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이강진이었다.

행보관은 이강진의 신상명세를 쭉 훑었다.

"건강에는 문제없고?"

"네."

"여자 친구는?"

면담 때 항상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여자 친구 유무다.

여자 친구가 있고 없고에 따라 간부가 병사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가 결정된다.

잘 사귀고 있으면 문제없다. 하지만 헤어졌을 때가 문제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관심병사로 등극하게 된 병사도 있었다. 이강진은 그런 케이스를 알고 있었다.

"없습니다. 일하느라 바빠서 여자 친구 사귈 시간도 없었습니다."

"일? ······그러고 보니 알바를 엄청 많이 했군. 경력만 하더라도 한 페이지가 넘어가겠는데?"

"예, 그렇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했었나."

이강진은 신병교육대에서 써먹었던 트릭을 재활용하기로 했다.

"거기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금융권에서 자주 일하곤 했었습니다."

"금융권?"

"예. 정직원은 아니었기에 일부러 거기에 적진 않았습니다."

금융권이라는 말에 행보관이 관심을 보였다.

그가 왜 이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강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주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1중대 행보관은 주식에 적지 않은 돈을 넣어뒀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신문의 주식정보 파트를 뚫어져라 정독하던 행보관의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행보관의 주 종목도 알고 있다.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행보관이 자신의 주 종목을 언급하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것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저 입대하기 전에 신형전자가 굉장히 핫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신형전자, 신형전자라······."

행보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강진의 말대로 상당히 핫했던 종목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2,610 이하까지 떨어졌을 겁니다."

"음? 그걸 네가 어찌 아냐?"

"전화 포상 받은 걸로 주식을 어느 정도 아는 분한테 신형전자 주가 관련 정보를 계속 접했습니다. 특허권 어쩌고저쩌고 하는 영양가 없는 기사를 계속 내보낼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그때부터 ‘아, 조만간 이거 떨어지겠네.’ 하는 감이 왔습니다."

주식은 정보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단력. 이것도 중요하다.

행보관은 주식을 시작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감을 잡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에게는 소위 말해서 ‘주식 스승’이 필요하다.

행보관의 눈이 번뜩였다.

"주식이 특기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걸로 돈도 좀 만져봤습니다."

"허허. 군대가 별난 사람들 천지라고는 하지만, 이 나이에 주식 좀 할 줄 아는 놈이 우리 부대로 들어올 줄은 몰랐군."

펜으로 이강진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는 행보관.

그게 무슨 뜻인지 이강진은 얼추 알 것 같았다.

‘지켜보겠다는 뜻이겠지.’

오히려 바라던 바다.

* * *

이강진을 시작으로 백우호, 그리고 김철까지.

세 명의 면담이 모두 끝났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당직."

"병장 전마등."

"각 분대 인원현황 정리해서 한 장 뽑아줘라. 그거 보고 얘네들 어느 쪽으로 보낼지 결정하게."

순간 전마등 병장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저희 1분대가 지금 인원이 제일 없지 말입니다."

"뭐? 1분대?"

"예, 그렇습니다!"

행보관은 전마등 병장에게 눈을 흘겼다. 전마등 병장은 여기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이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때, 지원군이 등장했다.

행정병인 정일문 일병이었다.

"전마등 병장 말이 맞습니다, 행보관님. 1분대가 인원이 제일 없습니다."

"흠, 그냐?"

"예. 그리고 저희도 행정병 한 명 더 필요하다고 예전부터 말씀드렸습니다만······."

전마등 병장이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저번에 결산 회의 때, 행보관님이 나중에 신병 들어오면 행정분과에 한 명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딱 봐도 전마등 병장과 정일문 일병, 두 사람이 서로 결탁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행보관은 그게 약간 괘씸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 사람 말은 사실이었다.

1분대가 가장 인원이 없기도 하고. 그리고 행정병을 한 명으로 추가 모집한다는 발언도 행보관이 직접 한 적이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마등."

"병장 전마등!"

"1분대에 여기 강진이하고 우호, 이 두 명 데려가라. 그리고 철이는 행정 쪽으로 빼고. 얘가 딱 봐도 행정병스럽게 생겼잖아."

"예, 맞습니다!"

누가 되었든 상관없다. 전마등 병장은 1분대가 두 명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세 명의 분대가 정해졌다.

이강진은 회귀하기 전에도 1분대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백우호와 함께 1분대로 배치되었다.

‘철이가 1중대 행정병으로 간 건 예상 외였지만.’

이건 자신이 아는 미래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도 뭐, 자신의 동기 중에 행정병이 있으면 나중에 분명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다.

전마등 병장은 이강진과 백우호를 데리고 1생활관으로 향하려고 했다.

행보관의 말이 잠시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난 화장실 창문틀 보수작업 하고 있을 테니까 누가 나 부르거든 화장실로 와라. 그리고 김명찬, 그 녀석 찾으면 당장 화장실로 튀어오라고 하고. 명찬이 녀석하고 같이 창문틀 작업하려고 했건만.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그새 튀어버렸더라."

"하하하, 원래 김명찬 병장이 뺀돌이지 않습니까."

김명찬 병장은 꼬장으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강진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불현 듯 스치는 안 좋은 기억.

‘김명찬이 신병놀이 하지 않았던가?’

그것 때문에 이강진이 초반에 곤혹을 치렀던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

‘에이. 설마 또 하겠어?’

그땐 그때고.

이번 미래는 그래도 얌전히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봤다.

그러나.

1 생활관의 문을 열었을 때, 이강진의 기대감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충성!"

1분대 막내인 서일주의 야상을 입고 전마등 병장에게 각 잡힌 거수경례를 하는 김명찬 병장.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

* * *

이강진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건 전마등 병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김뱀. 왜······."

"이병! 서! 일! 주!"

"······."

전마등 병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김명찬은 신병놀이 때문에 이등병처럼 연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분명 신병놀이 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1중대 사고뭉치, 김명찬 병장에겐 전마등 병장의 충고도 통하지 않았다.

‘선임만 아니었으면 콱······!’

비록 2주 뒤에 전역한다곤 하지만, 그래도 선임은 선임이다. 서로 말 놓고 지낸다 하더라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군대다.

김명찬은 전마등에게 빨리 자신의 신병놀이에 말을 맞춰달라고 눈빛을 보냈다.

어쩔 수 없이 전마등 병장은 일단 그의 요구에 부응하기로 했다.

‘나중에 내가 몰래 알려주든가 해야겠군.’

이제 막 들어온 신병들에게 괜히 고통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또 이 지랄이네, 김명찬.’

이강진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정반에서 금세 당직을 찾는 간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마등 병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재촉하면서 행정반으로 향했다.

그전에.

"김뱀······ 이 아니라. 서일주."

"이병! 서일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간접적인 경고였다.

전마등 병장이 사라진 뒤. 서일주······ 아니, 김명찬은 씨익 웃으면서 이강진과 백우호에게 접근했다.

"반갑다, 동기들아."

"이병 백우호!"

"이병 이강진."

두 사람의 군기 잡힌 외침에 김명찬은 손사래를 쳤다.

"왜 그래. 우리, 동기라니까? 우리 부대가 원래 한 달 단위로 동기 끊거든. 나는 3주 전에 여기 입대했어. 그러니까 동기 맞아. 편하게 있어, 편하게."

백우호는 눈치를 봤다. 김명찬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틀린 말이라는 사실을.

그래도 일단은 모르는 척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래? 반가워. 잘 부탁해."

이강진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속아 넘어갔다는 쾌감 때문일까. 김명찬의 입 꼬리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그의 미소를 본 순간, 이강진은 속으로 웃었다.

‘얼씨구, 속아주니까 좋댄다.’

백우호와도 인사를 마친 김명찬.

그는 슬슬 작전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봤던 마등이······ 가 아니라. 전마등 병장 말이야. 완전 또라이 같이 생기지 않았냐?"

떠보기식 질문이다.

백우호가 먼저 반응을 보이려고 했다.

그전에 이강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괜히 꼬투리 잡힐 만한 발언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었다.

"후임들 잘 챙겨주실 거 같은 착한 분처럼 보였는데."

"아니야, 아니야! 겉보기에만 그렇지, 속은 아주 지랄 맞은 사람이라니까? 솔직히 말해도 돼. 우리, 동기잖아. 그렇지?"

계속해서 유도심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강진이 어디 보통내기랴. 그는 선임에 대해서 좋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김명찬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게 아닌데?’ 하는 반응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흐름이 나오지 않으니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다.

김명찬과는 반대로 이강진은 그가 딱 원하는 흐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체크메이트를 외칠 타이밍이다.

대화가 잠시 끊겼을 때.

"우호야."

"응? 왜?"

"화장실 가고 싶지 않아?"

백우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화장실이라면 1생활관에 오기 전에 한 번 들리고 왔다.

심지어 이강진과 같이 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지 않냐고 물으니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말하기 전에 이강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주야. 아까 전마등 병장님이 우리끼리 화장실 가지 말라고 하셨거든. 너하고 같이 가야 할 거 같은데. 어때?"

이제 막 전입한 신병은 혼자서 멋대로 화장실조차 갈 수 없다.

누군가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화장실? 좋지. 가자."

김명찬은 아무런 의심 없이 동행을 자처했다.

까짓것 화장실 같이 가는 건데. 별 일이야 있을까.

그러나 김명찬은 이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너도 어디 한 번 당해봐라, 김명찬!’

이강진이 파놓은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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