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5화
제9화. 야외 숙영 (1)
연대장의 갑작스런 상황조치 훈련 제안에 대대장, 중대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당황스러운 자들이 있었다.
바로 몸소 뛰어야 하는 훈련병들이었다.
"상황조치 훈련?"
"뭔데, 그게!"
"아, 씨발,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론상으론 배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된 훈련을 해본 기억은 없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연대장이 100퍼센트 만족할 만한 대답을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패닉 상태에 빠져드는 훈련병들.
그러나 이강진은 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기회가 왔구나!’
연대장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연대장이 대대장, 중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강진은 작은 목소리로 훈련병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얘들아."
이후에 그는 딱 한 마디로 훈련병들의 신뢰를 얻었다.
"나만 믿어라."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할 것만 같은 멋진 대사가 흘러나왔다.
훈련병들은 지금 이 순간, 이강진이 그 어떤 연예인보다도 멋져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연대장이 훈련병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몇 가지 상황을 내려주겠다. 거기에 따라 얼마만큼 잘 대처할 수 있는지 내가 직접 평가하겠다. 물론 이 연대장을 만족시킨다면, 대대장에게 말해서 그만한 포상을 내려주도록 하마."
포상이 걸려 있다는 말에 훈련병들의 의욕이 다시금 샘솟았다.
연대장은 손을 뻗었다.
"적의 핵폭탄이 낙하했다. 핵폭발 지점은 지금 내가 가리킨 곳이다. 자, 어떻게 할 거지?"
핵폭발 발생 시 상황조치 요령.
이강진이 지난 군생활을 하는 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것이다.
어디 군생활뿐이랴. 전역하고 동원훈련을 받을 때에도 교육 받았다.
잊을 만하면 듣고. 또 잊을 만하면 또 듣고.
하도 지겹도록 교육 받아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강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분대! 전방에 핵폭발이 감지되었다! 분대장을 보고 따라하도록!"
이강진이 취한 행동은 간단했다.
연대장이 가상으로 설정한 핵폭발 지점의 반대 방향으로 배를 땅에 닿지 않게 하고 엎드렸다. 그런 뒤, 입을 벌리면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처음에는 이강진이 무엇을 하는 건지 훈련병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강진이 방금 했던 말이 있었다.
그 말인즉슨.
‘강진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사전에 이강진이 훈련병들에게 한 말이 있었다.
나만 믿어라.
그 말이 훈련병들을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강진이 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최만보 조교는 두 눈을 크게 꿈뻑였다.
핵폭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려준 적은 있긴 했었다.
하지만 보통은 연대장이 갑자기 찾아와서 ‘너희들, 이거 한 번 해봐라,’라고 지시하면, 당황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나머지 어버버거리기 일쑤였다.
적어도 자신이 봐 왔던 훈련병들은 그랬었다.
그러나 이강진은 달랐다.
상황을 듣자마자 바로 어떻게 행동에 임해야 할지 알아차리고 몸소 시범을 보였다.
만약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이강진은 자신의 분대원들 모두의 목숨을 살린 거나 다를 바 없었다.
놀란 건 연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오호. 저 녀석, 제법인데?’
원래는 핵폭발 상황만 부여하고 끝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더 테스트를 하고 싶어졌다.
"좋다. 그렇다면 하나 더."
이런 원 플러스 원은 필요 없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연대장의 행보를 막을 순 없었다.
용기 있고 없고의 이전에 짬이 있고 없고의 문제였다.
군대는 계급, 그리고 짬이 전부다.
연대장은 이강진 분대에게 두 번째 상황조치 훈련을 명령했다.
"상공에 적 전투기가 머리 위를 활공하고 있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할 거지?"
물론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훈련소에서 배운 정답은 화망, 즉 대공사격이다.
K-2 총구를 적 전투기 예상 경로에 향하게 하고 사격을 가한다. 실탄은 없기에 입으로 ‘탕탕탕’ 소리를 내면서 진짜로 발포를 하는 것처럼 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강진은 다른 선택을 했다.
"적 전투기가 활공하고 있다! 분대는 들키지 않도록 은폐엄폐 한다!"
대공사격보다 은폐엄폐를 택했다.
이강진이 FM이 아닌 다른 대답을 고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대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훈련소에서는 발포하라고 가르쳤을 텐데?"
"125번 훈련병, 이강진! 예!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자네는 분대원들에게 다른 명령을 내린 거지?"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보병 1개 대대가 아무리 K-2 소총으로 대공사격을 한다고 해봤자 적 전투기를 격추시키기는 커녕 흠집을 내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 분대원들의 위치만 적에게 알리는 꼴이 됩니다. 그러면 저의 대공사격 명령으로 인해 제 분대원이 오히려 폭격을 맞고 사망할 가능성만 커집니다. 승산도 없는 공격을 할 바에야 차라리 저는 제 분대원들을 안전하게 살리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교범과는 다른 대답.
하지만.
연대장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과연······!"
분대장이라면 승리도 좋지만, 분대원들을 목숨 또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부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서 보내겠다! 분대원들을 생각하는 이강진 분대장의 이런 마음가짐은 연대장에게 감동이라는 걸 선사했다.
훈련병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거기까지 닿는 훈련병은 거의 없었다.
아니, 이강진이 유일할 것이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나?"
"125번 훈련병, 이강진!"
"이강진, 이강진이라······."
연대장은 대대장, 중대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훈련병들 교육을 아주 잘 시켰군. 훌륭해."
"가, 감사합니다!"
이강진의 활약이 두 사람, 아니 현무중대 전체를 구했다.
* * *
연대장이 떠나자마자 대대장은 중대장을 불렀다.
"나중에 그 125번 훈련병한테 포상 두둑하게 챙겨줘. 연대장님이 직접 챙겨주라고 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한때는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이강진이 한 번에 타파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집합한 훈련병들.
중대장은 훈련병들을 불렀다.
"다들 주목!"
"주목!"
훈련병들은 중대장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연대장님께서 우리 현무중대가 훈련을 아주 잘 받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다들, 박수!"
누구를 위한 박수인지 모르겠지만, 훈련병들은 일단 중대장이 하라는 대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강진."
"125번 훈련병, 이강진!"
"자네한테는 연대장님의 특별 지시에 의해서 조만간 큰 포상이 부여될 예정이니 그리 알고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큰 포상’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이강진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용이 어찌 되었든 간에 나쁜 건 결코 아닐 것이다.
이강진의 경험상, ‘포상’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 중 나쁜 경우는 없었으니까.
훈련병들은 이강진을 향해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또 다시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이강진.
여태껏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시선을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도 군대에서!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생기네.’
이강진은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 * *
각개전투 훈련이 끝난 뒤에 저녁 식사까지 모두 마쳤다.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야외 숙영 준비다.
"애기들! 주목해봐라."
"주목!"
행정보급관이 훈련병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지금부터 A형 텐트 치는 법을 알려주겠다. 잘 보고 머릿속에 기억해둬라. 한 번 알려주고 다시는 안 알려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A형 텐트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이강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각개전투도 각개전투지만, 야외 숙영도 정말 싫어하는 훈련 중 하나였다.
추운 곳에서 자기만 하면 되는 것을 왜 싫다고 하는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나 자기 위한 과정이 문제다.
A형 텐트 하나를 설치하기 위해 메마른 바닥에 망치질을 해야 하고, 비 올지도 모르니 배수로 작업도 해야 하고. 판쵸우의도 덮어야 하고, 기둥도 세워야 하고. 끈도 꽉 조여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심지어 텐트가 편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괜찮을 사이즈에 장정 3명이, 그것도 그들이 가지고 온 군장과 함께 낑겨서 하룻밤을 자야 한다.
이러니 잠이 올까.
피로를 풀기 위해 자는 잠이 오히려 피로를 더 쌓이게 만든다. 이게 야외 숙영의 무서운 점이다.
A형 텐트 치는 방법 자체에 난이도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훈련병들은 시간이 배로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강진이 속한 전우조는 달랐다.
"우호야. 거기 줄 당겨봐라."
"이렇게?"
"옳지, 조금만 더. 그리고 철아, 너도 있는 힘껏 꽉 당겨 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 마. 안 무너져."
이강진의 진두지휘 아래에 빠르게 A형 텐트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조보다도 월등히 빠른 속도였다.
지금 이강진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빨리 끝내고 빨리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