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3화
제8화.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2)
19사단 신병교육대 대대장, 황서박 중령은 아침부터 목이 타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원래 그는 평소에도 물을 이렇게 자주 마시는 타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유독 심한 갈증을 느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연대장님, 아직 안 오셨나?"
바로 오늘 오기로 한 연대장 때문이었다.
원래는 사단장이 오기로 했으나, 급한 일이 생긴 탓에 사단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옆 부대 연대장이 대신 훈련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래도 사단장이 오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참모진 중 하나가 바로 확인해보겠다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위병소 나가신지 20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5분 정도면 도착하시겠군······!"
신병교육대에서 연대까지 차로 대략 25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마지막으로 대대장은 종이컵에 담겨 있는 생수를 또 한 차례 비웠다.
잔을 내려놓자마자 상황실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지금 연대장님 막 신병교육대 위병소 통과하셨다고 합니다!"
"그, 그래?! 어서들 나가지!"
대대장은 참모진과 함께 우르르 몰려나갔다.
간부들은 이 순간만큼은 훈련병들 뺨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자랑했다.
일렬로 줄을 맞춰 섰다. 그 앞에 연대장이 타고 온 레토나가 정차했다.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대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충! 성!"
"충성. 오랜만이야, 황서박."
"중령 황서박!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대장님!"
연대장으로 취임한 이후로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연대장은 황서박 중령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말했다.
"내가 좀 더 자주 얼굴 비췄어야 했는데. 미안해."
"아닙니다! 전 너무 걱정 안 해주셔도 됩니다!"
"어허. 한때 나하고 같은 부대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던 후배인데. 내가 어찌 신경이 안 쓰이겠나.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올게."
"······."
‘안 오는 게 더 도움 된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마른 침과 함께 꿀꺽 삼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대대장은 조교들, 그리고 훈련병들을 총 동원해서 막사 내를 갈고 닦았다.
이름하야 ‘연대장님 오신단다, 청소하자!’ 작전.
연대장은 막사의 외관을 우선 살폈다.
"신막사라 그런지 아주 깔끔하구먼."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하긴. 자네는 깔끔한 성격이니까. 청소 상태는 굳이 안 봐도 되겠지. 그러고 보니 오늘이 현무중대가 각개전투 훈련 받는 날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신병교육대에 왔으니, 훈련병들이 지침대로 훈련을 잘 받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연대장의 임무다.
"그럼 훈련장에······ 잠깐만."
연대장은 말을 하던 도중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액정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보자마자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여보세요."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당신! 어제 나한테 낚시 간다고 했잖아. 근데 박 대위한테 연락해보니까 같이 낚시 안 갔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야! 어?!
"그러니까 박 대위하고 같이 안 가고 다른 후배들이랑 갔다 왔다고 아까 말했······."
-또또또! 이 양반은 입만 열면 그짓말이야! 집에 들어오기만 해! 아주 그냥 작살을 내버릴 테니까!
협박과 함께 그대로 전화가 끊어졌다.
연대장의 표정은 굳이 볼 필요도 없었다.
기분이 다운된 연대장.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
"······."
"······."
황서박 대대장과 참모진들은 연대장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연대장이 신병교육대를 방문했다는 것 때문에 죽을 맛인데,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혀서 기분까지 안 좋아지니······.
상황은 최악이었다.
참모진이 대대장을 바라봤다.
황서박 중령이 먼저 말을 꺼내야 할 분위기였다.
"여, 연대장님. 레토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각개전투 훈련장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아니, 차는 됐네."
"······?!"
예상치 못한 연대장의 발언에 황서박 중령의 머릿속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 그렇다면 어떻게 훈련장까지 가실 생각이신지······."
"걸어가도록 하지."
폭탄 발언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않은가. 뉴스 보니까 당분간 이 화창한 날씨가 계속 될 거라고 하더군. 꽃샘추위가 오기 전에 이 봄날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 않겠나?"
그 꽃샘추위가 부부싸움을 의미한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연대장님. 훈련장까지는 거리가 꽤 됩니다. 도보로 50분 정도 걸리는데······ 차라리 레토나를 타고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대대장."
나지막이 대대장을 부르는 연대장.
그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중령 황서박!"
"자네도 유부남이니까 잘 알게야. 살면서 ‘오늘은 집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싶다.’는 기분, 가져본 적 있지 않은가?"
"예, 있습니다!"
"지금 내 기분이 딱 그거네."
이 이상의 말은 무의미하다.
대대장은 그렇게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전에 대대장은 참모진에게 빠르게 신호를 보냈다.
"연대장님 훈련장까지 걸어가실 거라고 윤 대위한테 연락 넣어둬! 그리고······."
대대장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오늘 연대장님 기분 별로시라는 것도 꼭 전달해두고!"
"아, 알겠습니다!"
폭풍전야(暴風前夜)가 따로 없다.
* * *
연대장이 온다는 소식에 훈련병들은 각개전투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교장 청소부터 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훈련병들의 시선은 포복전투 훈련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돌밭을 포복으로 기어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훈련병들의 몸이 떨려왔다.
정리를 모두 마친 후에 교관이 직접 훈련병들에게 각개전투에 대한 교육을 펼쳤다.
"각개전투란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다는 가장 하에 펼치는 모의전투로서, 코스로는······."
이론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건 각개전투 훈련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거였다.
이론 교육을 빠르게 마친 뒤에 이들은 각개전투 교장으로 향했다.
최만보 조교가 훈련병들을 집중시켰다.
"지금부터 포복 자세를 교육하겠다. 숙달된 조교의 시범과 함께 구분동작으로 설명할 테니 잘 듣고 따라할 수 있도록 한다. 조교, 위치로."
"위치로!"
류승역 조교를 비롯해 일병 조교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빠르게 포복 자세를 취했다.
최만보 조교의 설명이 이어졌다.
"포복은 크게 3가지가 있다. 낮은 포복, 높은 포복, 그리고 응용 포복. 낮은 포복은 적 포탄, 혹은 총탄이 마구 날아드는 전장에서 사용하며, 포복 중 가장 낮은 자세라고 볼 수 있다.
높은 포복은 양 손을 이용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형태로, 낮은 포복에 비해 이동 속도가 빠르다. 마지막으로 응용 포복은 한 팔, 한 다리로만 이용해서 앞으로 전진하는 포복으로, 부상자 혹은 무언가를 옮길 때 사용하는 자세다."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훈련병들은 몇 시간 동안 이 세 가지를 계속해서 반복할 예정이다.
구분동작으로 보여주는 조교들. 그 모습에 백우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 만한 거 같은데?"
순간 이강진은 백우호가 정신이 나간 줄 알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직접 해보면 굉장히 어려워."
"그래?"
천하의 포복 훈련을 감히 얕보다니. 이강진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는 것과 하는 건 상당히 다르다.
조만간 이 훈련장은 훈련병들의 곡소리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이강진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 * *
포복 훈련이 시작됨과 동시에 훈련병들의 비명소리가 교장에 널리 울려 퍼졌다.
이강진의 예상대로였다.
바닥에 박힌 돌부리에 팔꿈치와 무릎이 부딪칠 때마다 훈련병들은 고통이 첨가된 신음을 흘렸다.
그냥 포복하는 것도 힘든데, 여기에 방탄모, 탄띠, 심지어 소총까지 들고 포복하려고 하니 죽을 맛이었다.
행동이 느려질수록 조교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가 총구를 바닥에 처박으랬어! 총 손등 위로 똑바로 안 들어?!"
"그렇게 느려 터져서 언제 훈련 끝마칠 생각이야! 빨리 안 움직여!"
"못하는 녀석은 될 때까지 계속 반복시킬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기어!"
날개하고 뿔만 안 달렸지, 악마가 따로 없었다.
조교들의 갈굼, 육체적인 고통. 여기서 오는 압력은 훈련병들의 멘탈을 짓뭉개버리기에 충분했다.
앞선 조가 훈련 받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백우호.
그는 이강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미안. 아까 했던 말 취소할게."
백우호의 사과에 이강진은 쓴웃음을 흘렸다.
* * *
드디어 이강진 조의 차례다.
차가운 돌바닥에 엎드리자마자 이강진은 깨달았다.
‘좆됐구나!’
재입대를 하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번 깨달은 거였지만, 오늘따라 유독 이 깨달음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삐이익!
조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훈련병들은 앞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첫 자세는 낮은 포복이었다.
양 팔을 앞으로 쭉 뻗은 뒤에 몸을 뒤에서 위로 밀듯이 올리면 된다.
이런 식으로 앞을 향해 천천히 전진한다.
팔을 뻗은 순간, 울퉁불퉁한 돌바닥의 감촉이 전신을 통해 전해졌다.
온 몸이 마치 감전된 것 마냥 찌릿찌릿하다.
‘씨발! 개 좆같은 군대! 내가 미쳤지, 미쳤어!’
어렵게 부여잡은 회귀의 기회가 알고 보니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을 거라고 누가 알았겠나!
하나 이 지옥이 평생 반복되는 건 아니다.
‘22개월만 참아보자!’
이미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거나 다를 바가 없으니, 그때까지 참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 생각을 하면서 이강진은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달려······ 가지 않고, 지금은 기어갔다.
경력 있는 신입답게 이강진이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했다.
"헉! 헉······!"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포복 자세는 체력 소모가 상당히 심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힘겹게 뒤를 돌아봤다.
아직 중간 위치도 넘지 못한 훈련병들이 태반이었다.
체력이 약한 김철이 꼴찌였다.
"124번 훈련병! 정신 안 차려?!"
"124번 훈련병이 목적지에 올 때까지 훈련 안 끝낼 테니까 농땡이 피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해낼 때까지.
이것이 군대가 강요하는 방식이다.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가서야 김철은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높은 포복 자세로 다시 여기까지 올라온다. 실시!"
"시, 실시!"
쉴 틈도 없이 다음 훈련이 시작되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훈련병들의 발걸음에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하나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게 시작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