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1화
제7화. 가스, 가스, 가스! (3)
작전 회의가 끝났을 때, 타이밍 좋게 하성익 중사가 화생방 훈련장에서 나와 다시 우리들 앞에 섰다.
방독면 마스크를 벗은 그는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다들 각오는 되어 있겠지?"
"예!"
"지금 이 목소리 크기, 나중에 화생방 훈련장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 유지하기 바란다. 그리고 화생방 훈련을 잘 받은 조는 내가 특별히 단체 상점을 줄 예정이니 최대한 열심히 훈련에 임하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단체 상점이라는 말에 이강진이 속한 조원들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강진이 했던 말대로였다.
불과 몇 분 전. 이강진은 조만간 하성익 중사가 단체 상점을 걸고 화생방 훈련을 진행할 거라고 조원들에게 말을 했었다.
이강진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하성익 중사가 다시 화생방 훈련장 안으로 들어간 뒤.
이강진은 조원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내가 했던 말, 잘 기억해둬. 그러면 단체 상점은 우리 차지니까."
"응!"
"너만 믿는다, 강진아!"
화생방 훈련을 앞둔 이들 사이로 전우애가 샘솟기 시작했다.
* * *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난생 처음 맡아보는 CS 연기에 온전히 멘탈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화생방 훈련이 시작된 지 40분째.
벌써 수십 명이 넘는 훈련병들이 이곳, 화생방 훈련장에서 눈물과 콧물의 흔적을 바닥에 뿌려댔다.
"어쭈? 이것들 봐라! 누가 대열 이탈하라고 했나! 옆 전우하고 어깨동무 안 하나!"
훈련병들은 하성익 중사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콜록, 콜록!"
"사, 살려주······ 우웩!"
"나,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 죽을 거 같다고요!"
기침과 살려달라는 애원은 기본이오, 군대에서 금지되어 있는 ‘요’자체도 사용하는 훈련병들.
심지어 어느 훈련병은 나가는 문을 몸으로 들이받으면서 억지로 열려는 시도도 하고 있었다.
하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미 화생방 조교 둘이 바깥쪽 문에 달라붙어서 문이 열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련병들은 화생방 훈련을 받을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숨을 푹 쉰 하성익 중사는 조교에게 손짓했다.
"내보내."
"예, 알겠습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훈련병들은 부리나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조교들의 외침이 쏟아졌다.
"얼굴 건드리지 마!"
"양 팔 벌리고 아래까지 천천히 뛰어온다! 실시!"
아래로 내려온 훈련병들은 얼굴에 묻은 연기를 차가운 물로 씻어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훈련병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아직 화생방 훈련을 치루지 않은 훈련병들의 한숨소리는 더욱 깊어졌다.
이 다음.
"7조, 입장!"
"입장!"
드디어 이강진이 속한 조의 차례가 도래했다.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로 화생방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는 훈련병들.
이들의 얼굴에 긴장 빛이 역력했다.
이강진은 훈련병들과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훈련장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이 했던 말들을 머릿속에 계속 떠올리라는 신호였다.
쿵!
문이 닫힘과 동시에 바로 훈련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팔 벌려 뛰기 10회 실시한다. 몇 회?"
"10회!"
"시작!"
팔 벌려 뛰기 자체는 어려운 동작이 아니다.
하나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에선 작은 동작이라도 금방 숨이 차오르게 마련이다.
추가로 팔 벌려 뛰기를 20회 더 실시한 훈련병들. 도합 30회를 마친 훈련병들에게 하성익 중사가 드디어 사형 선고를 내렸다.
"전원, 마스크 벗는다. 실시!"
"시, 실시!"
올 게 왔다!
원래는 정화통만 교체하면 되는 거였으나, 최근에 훈련 강도가 너무 약하다는 사단장의 쓴 소리가 있었다. 이 때문에 156기 이후부터는 방독면 마스크까지 벗고 화생방 훈련을 치러야 했다.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이건 이강진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 좋은 상황에서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게 고작이었다.
화생방 훈련장에 들어오기 전에 이강진은 훈련병들에게 지시한 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
방독면 마스크 벗는 타이밍을 서로 맞출 것.
먼저 방독면 마스크를 해제한 훈련병이 있다면, 그 훈련병은 가장 먼저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한 명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 시작하면 다른 훈련병들도 우후죽순처럼 무너진다.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하성익 중사는 끝까지 훈련병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CS 연기에 괴로워하다가 끝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연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사실 두 번째가 핵심이다.
연기를 들이마시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자기는 연기 안마시겠다고 숨을 참았다간, 나중에 오히려 연기를 한 번에 들이 마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게임 오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연기를 들이켜면서 익숙해지도록 노력한다.
"콜록, 콜록!"
"웩······!"
드디어 시작된 화생방의 고통.
마치 수백 개의 바늘로 코끝과 눈가 주변을 마구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을 여는 순간, 이 바늘들은 이번엔 입 안과 목구멍을 노렸다.
따갑다. 맵다. 그리고 아프다!
훈련병들은 점점 고통의 늪으로 끌려들어갔다.
그래도 다른 조에 비해서 이들은 상태가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강진의 리더십이 빛났다.
"정신 차리자, 애들아! 대열 갖추고! 힘들면 옆 사람 의지해! 악으로 깡으로 버티자! 악!"
"아아악!"
유격 훈련장에서 사용하던 악 구호까지 꺼내면서 전우들을 독려하는 이강진.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성이라든지 이런 건 사실 필요가 없어진다.
오로지 오기로 버텨야 한다.
그의 혼이 실린 외침 덕분에 훈련병들은 다시 멘탈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이강진은 화생방 훈련만 벌써 여러 차례다. 경험자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 빌어먹을 연기도 몇 번 맡다보니 익숙해지긴 하는 구나!’
고통스러운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러나 화생방 훈련이 다 끝난 건 아니다.
아직 큰 게 남았다.
"지금부터 군가를 실시한다. 군가는 최후의 5분.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이 난관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
가장 먼저 이강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숨 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군가를 부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오지 않으려는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당겼다.
"승리의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라!"
이강진의 선창을 시작으로 백우호, 김철, 그리고 같은 조원들도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노래라기보다는 고함에 가까웠다. 그래도 군대는 목소리만 크면 된다. 이 부분에서 이강진 조는 다른 조에 비해선 월등히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이강진이 중심을 잡아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하성익 중사는 이들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교, 문 열어줘라."
"예, 알겠습니다."
문이 열리는 와중에도 이강진 조는 대열을 갖춘 채 질서정연하게 퇴장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하성익 중사는 몰래 감탄을 삼켰다.
‘이강진 저 녀석, 조교 시켜도 되겠는데?’
볼수록 탐이 나는 인재다.
* * *
지옥 같은 화생방 훈련이 마침내 끝났다.
하성익 중사는 훈련병들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우수 조를 직접 발표했다.
"3소대 7조. 축하한다."
이강진이 속한 조였다.
훈련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강진이야!"
"고맙다, 강진아!"
"훈련소 퇴소하면 연락해! 내가 거하게 쏠게!"
이들에겐 이강진이 거의 영웅이나 마찬가지였다.
해피엔딩으로 화생방 훈련은 종료되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다.
‘아직 더 큰 훈련들이 남아 있어.’
이제 겨우 절반 좀 넘었다.
아직 많은 훈련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부터 군생활 다 끝난 것 마냥 마음을 놓기에는 너무 이르다.
* * *
저녁 점호가 시작되기 전까지 생활관 내에는 하루 종일 화생방 이야기뿐이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낯선 경험. 훈련병들은 자신들만의 무용담을 털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회 나가면 한동안 군대 이야기 계속 할 텐데. 벌써부터 입이 트였네.’
그래도 이들의 고생을 제대로 알아줄 이들은 같은 전우들뿐이다.
‘어차피 점호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그때까지 이강진은 훈련병들에게 원 없이 수다 떨 시간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기준 조교가 3소대 2생활관을 찾았다.
"전제 주목한다, 주목!"
"주목!"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다포를 날리던 훈련병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침묵을 유지했다.
점호 시간도 아닌데. 조교의 등장이 생각보다 빨랐다.
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부터 인터넷 편지를 전달하겠다. 호명하는 훈련병은 앞으로 나와서 받아갈 수 있도록 한다."
신병교육대는 외부와의 연락이 통제된 곳이다.
하나 요즘은 인터넷으로 아들의, 혹은 친구나 연인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인터넷 편지가 바로 그것.
인터넷에 접수된 편지들을 출력해 가져온 서기준 조교는 차례차례 훈련병들을 호명했다.
"126번."
"126번 훈련병, 백우호!"
호명된 백우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이례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여줬다.
서기준 조교는 그런 백우호를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평소에도 그렇게 좀 움직여 봐라."
"하하, 네! 알겠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돌아온 백우호를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김철.
"누구한테서 온 거야?"
"우리 크루한테서."
"크루?"
"힙합 하는 친구들끼리 만든 팀 있어. 나 군대 가면 편지 보내준다고 하더니만······ 짜식들, 역시 의리가 있어!"
스웩이 넘치는 문장들을 보면서 백우호는 헤헤 웃었다.
부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만 보던 김철도 후에 이름이 불렸다. 부모님한테서 온 편지였다.
이강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편지를 뚫어져라 읽는 그들을 바라봤다.
작은 편지 하나가 이 힘들고 거친 군생활을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이강진은 애초에 편지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전혀 몰랐으니까.
하지만.
"125번."
"······?"
일순간 이강진은 귀를 의심했다.
"저 말씀이십니까?"
"125번이 너 말고 또 있진 않잖아. 그렇지?"
"······."
이강진은 훈련소에 있을 때, 단 한 번도 편지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가난 속에서 워낙 바쁘게 살아오다보니 애인은커녕 제대로 사귄 친구조차 없었다.
하물며 어머니는 컴퓨터와 거리가 먼 사람인데.
‘누가 보냈을까.’
편지 내용을 바로 확인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읽고 나서야 이강진은 어머니가 어떻게 하다가 인터넷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민수 아저씨가 도와줬구나.’ 이강진이 황민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줬던 게 설마 인터넷 편지라는 결과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군대에서 받은 값진 첫 편지.
"······."
이강진은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