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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9화 (19/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19화

제7화. 가스, 가스, 가스! (1)

행군이 생애 처음인 훈련병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지친 기색뿐이었다.

완전군장도 아닌 단독군장 차림으로 그저 몇 시간 걷는 것에 불과할 뿐인데도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머리 위에 쓰여진 방탄모와 어깨에 걸쳐 있는 개인화기가 훈련병들의 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3시간 정도 걸었을까.

"앉아서 10분간 휴식한다! 전체, 탈모!"

"탈모!"

훈련병들에게 달콤한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주간행군은 1시간 단위로 주기적인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번이 세 번째 휴식인 셈이었다.

몇몇 훈련병들은 참았던 소변을 보기 위해서 자리를 이동했다. 그동안 이강진은 전투화의 끈을 풀었다.

전투화 안에서 쏙! 하고 발을 빼냈다. 동시에 후끈한 열기와 케케묵은 냄새가 한 번에 몰려왔다.

아까부터 발바닥 쪽에서 계속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통증뿐이랴.

말캉한 감촉도 같이 느껴졌다.

이게 무엇을 가리키는지 안 봐도 뻔했다.

‘물집, 이 빌어먹을 녀석······ 오랜만이다.’

살면서 발바닥에 물집 잡혀본 적은 군대에서밖에 없었다.

행군의 상징, 물집을 보면서 이강진은 어두컴컴한 앞날을 예상했다.

‘막사 돌아가면 당분간 지옥을 맛보겠네.’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이 한동안 이강진을 괴롭힐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편안한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이강진보다 더 심한 물집 환자가 있었다.

바로 그의 전우조인 김철이었다.

행군이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전투화를 벗은 김철의 발바닥에는 이미 오백 원 동전 크기만 한 물집들이 여러 개 자리 잡고 있었다.

"으헉, 이게 뭐야?!"

자신의 발바닥으로 보고 기겁을 하는 김철.

이강진은 그런 김철을 보면서 혀를 찼다.

"쉬는 시간 때마다 발 꺼내서 주기적으로 말렸어야지."

"그, 그래?"

"마찰열 때문에 물집이 계속 생기는 거니까. 보니까 물집 잘 잡히는 타입인 거 같은데. 앞으로 행군 또 하게 되면 계속 발 말려둬. 그러다가 나중에 더 큰 물집 잡힌다."

"아······ 알았어."

김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군 이후 한 번도 전투화를 벗지 않은 사람은 김철만이 아니었다.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백우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김철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는 멀쩡한 거 같은데?"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가볍게 제자리 뛰기까지 선보일 정도였다.

그를 보면서 이강진은 혀를 찼다.

사실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백우호는 축복받은 발바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타고난 건 아니었다. 노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었다.

이강진은 예전에 백우호한테서 입대 전에 겪었던 속사정을 들었다.

한편, 드러나지 않은 일화를 모르는 김철은 백우호에게 어째서 그렇게 멀쩡할 수 있냐고 물었다.

"사실 내가 말이지. 음악 한답시고 돈 아끼려고 택시, 전철, 버스 안 타고 막 2시간, 3시간씩 걸어 다닌 적이 있었거든. 그 덕분에 걷는 건 자신 있어."

음악이 백우호에게 노래 실력을 키워준 게 아니라 행군 실력을 키워준 셈이었다.

거짓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백우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강진이 그 증인이다.

실제로 백우호는 훈련소를 비롯해서 자대, 그리고 병장 만기 제대까지. 수많은 행군을 치렀어도 단 한 번도 물집이 잡혀본 적이 없었다.

이강진이 거수경례의 왕, 스나이퍼라는 별명을 가졌다면, 백우호는 ‘행군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동기였다.

때마침 조교가 훈련병들을 닦달했다.

"다시 출발할 테니까 전체 기상한다! 기상!"

"기상!"

기운차게 목소리를 높이는 백우호.

행군왕의 전설적인 첫 페이지가 기록되는 순간이다.

* * *

이제 1시간가량만 행군하면 다시 막사로 복귀할 수 있다.

이런 희망찬 생각을 가지면서 훈련병들은 묵묵히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하나 도중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 펼쳐졌다.

툭, 툭.

볼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이강진은 손으로 자신의 볼에 묻은 무언가를 닦아냈다.

작은 물방울이었다.

‘설마······!’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어쩐지! 햇빛이 안 보인다 싶더니만!’

잠깐 정신출 놓고 계속 앞을 향해 걷다보니 하늘 상황이 어떻게 변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먹구름은 이내 훈련병들에게 시원한 빗줄기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하나 훈련병들 입장에선 선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왜냐하면······.

"비 오니까 다들 판쵸우의 꺼내서 입어라!"

"판쵸우의 꺼낸다, 실시!"

"실시!"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군용품.

판쵸우의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비 오는데 판쵸우의를 안 입을 순 없었다. 조교들이 후딱 안 입고 뭐하냐고 재촉하고 있으니 말이다.

‘에라이, 썅!’

입에서 튀어나올 뻔한 쌍욕을 억지로 삼킨 이강진은 그대로 손을 허리 쪽으로 뻗었다.

둘둘 말린 판쵸우의를 펼쳤다.

벌써부터 풍겨오는 눅눅한 냄새!

코가 아릴 정도였다.

다른 훈련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거 뭔 냄새야?"

"판쵸우의에서 나는 거 같은데?"

"콜록, 콜록!"

심지어 기침까지 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아직 판쵸우의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오늘처럼 비가 내렸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애 첫 행군에 더해서 첫 판쵸우의 체험까지!

‘지옥이 따로 없군!’

이강진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 *

갑작스런 기우 변화 탓에 주간행군에 약간의 차질이 빚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가 다 행군을 마쳤다.

이강진의 앞에서 절뚝절뚝 걸어가던 김철은 위병소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위병소가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줄은 몰랐어."

다른 훈련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그리웠던 자신의 고향, 그리웠던 자신의 집에 돌아온 그런 기분을 일순간 느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연병장에 모두 모인 훈련병들은 여전히 판쵸우의를 입은 상태였다.

아까보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중대장은 확성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고생했다! 저녁 식사 집합 전까지 자유시간 보장할 테니, 들어가서 샤워부터 먼저 하도록! 그리고 조교들은 환자 파악해서 중대장에게 보고해라. 알겠나!"

"예!"

"좋아! 그럼 해산!"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해산.

훈련병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르르 막사로 뛰어올라갔다.

* * *

이강진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다시 복귀했다.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고통 어린 신음을 토해냈다.

"아야야······ 씨발, 더럽게 아프네."

아픈 부분은 엉덩이가 아니었다.

바로 발바닥이었다.

왼쪽 발바닥, 그리고 오른쪽 발바닥에 사이좋게 커다란 물집이 하나씩 생겨 있었다.

때마침 서기준 조교가 들어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물집 환자 거수한다, 거수."

이강진과 김철이 나란히 손을 들었다. 반면, 백우호는 멀쩡했다.

훈련병 인원 중 3분의 1 정도가 물집 환자였다. 몇 시간 걸었다고 물집이 잡히진 않는다. 길들여지지 않은 낯선 전투화 때문에 물집이 잡히는 거였다.

익숙해지는 과정을 물집이라는 고통으로 승화시켜야 했다. 이것이 훈련병들에겐 통과 의례나 마찬가지였다.

서기준 조교는 다시 훈련병들에게 물었다.

"물집 환자, 누구라고 했지?"

"125번 훈련병, 이강진."

손을 든 이강진을 보면서 서기준 조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바닥 한 번 보여줘 봐라."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양 발을 들어 올려 서기준 조교에게 물집이 잘 보이게끔 했다. 물집의 크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서기준 조교는 헛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이강진이 행군에 물집이라니. 희한하군."

"저도 사람이지 말입니다."

"하하. 그렇긴 하지."

그 말에 서기준 조교는 작게 웃었다.

군생활을 잘해 보이는 건 재입대 경험 덕분이지, 몸이 철인 수준으로 튼튼한 편은 아니었다.

"물집 환자들은 의무실 가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강진은 다시 의무실까지 아픈 발걸음을 해야만 했다.

* * *

치료라고 해봤자 별 거 없다.

바늘로 물집을 터트리고, 소독하고. 그리고 밴드 몇 개 붙여주고 이게 다다.

군대에서 뭘 크게 바라면 안 된다. 그건 의료 쪽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 번 아픈 발바닥을 이끌고 겨우 생활관에 복귀한 이강진.

때마침 백우호가 이강진을 찾았다.

"강진아, 안 그래도 너한테 물어볼 거 있었는데. 잘 됐다."

"나, 오늘은 휴업할 테니까 상담 필요하면 다른 사람한테 해."

저녁 식사 집합 전까지는 작정하고 쉴 생각이었다.

그러나 백우호의 다음 이어지는 말이 이강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아까 조교님들이 지도실에 뭔가를 잔뜩 옮겨다 놨거든? 그게 뭔지 난 봐도 모르겠더라. 짙은 녹색에 사각형의 커다란 주머니들 같던데. 네가 한 번 확인해볼래?"

"······?!"

불현 듯 안 좋은 예감이 이강진의 뇌리를 스쳤다.

‘혹시?’

슬슬 ‘그것’의 차례가 올 때이긴 했다.

발바닥의 아픔도 잊은 채 이강진은 홀린 듯 지도실로 향했다.

덜컹!

문을 연 순간.

이강진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방독면 주머니······!’

순간 이강진은 직감했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화생방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훈련병들을 덮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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