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16화
제5화. 사격 훈련 (2)
PRI 훈련 뒤에는 또 다른 특별한 훈련이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두 명씩 짝을 짓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 쏴 자세를 하고 있으면, 다른 한 사람은 총구 위에 바둑알을 올려놓는다.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훈련병은 바둑알을 떨어뜨리지 않고 최대한 오래 버티면 되는 그런 훈련이다. 이것은 총구가 흔들리지 않게끔 자세를 잡는 훈련으로서······."
주저리주저리.
이 훈련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설명하는 조교였으나, 이강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냥 총구 위에 바둑알 올려놓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간단하다.
‘이게 PRI보다는 쉽지.’
PRI 훈련과 비빌 만한 것은 각개전투나 행군, 화생방 훈련 정도일 것이다.
이강진은 백우호와 한 팀이 되었다.
"누가 먼저 엎드릴래?"
백우호의 물음에 이강진은 바로 자세를 취했다.
"내가 먼저 할게."
"오케이."
엎드린 채 두 다리를 쫙 펼친 이강진. 그의 엎드려 쏴 자세는 조교들조차 감탄할 정도로 완벽했다.
훈련병치고는 각이 살아있는 저 자세!
주기표만 없었다면, 이강진이 조교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올린다?"
이강진은 백우호의 물음에 고개를 위아래로 살짝 끄덕였다.
다른 훈련병들은 바둑알을 올려놓자마자 툭, 툭, 떨어뜨렸다.
하나 이강진의 총구는 일체의 흔들림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아주 편하게 올라가 있는 바둑알. 그 모습을 보면서 백우호는 감탄을 뱉었다.
"누가 보면 바둑알에 접착제라도 발라놓은 줄 알겠다, 야. 왜 이렇게 잘해?"
"이 정도야 기본이지."
군생활을 할 때, 이강진은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거수경례의 왕을 비롯해 그에게 붙여진 또 하나의 별명.
스나이퍼 이강진.
그의 사격 실력은 신병교육대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심지어 전역하고 난 뒤에 받는 예비군 훈련에서도 이강진은 생전 처음 만져보는 총으로, 그것도 영점조차 안 맞춰져 있는 총으로 만발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사격 훈련에서 만발을 달성하면 30분 일찍 조기 퇴소를 시켜주곤 했다. 덕분에 이강진은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마다 조기 퇴소 혜택을 빠짐없이 누렸다.
신병교육대에서도 만발을 달성하면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강진이 노리는 게 바로 이것이다.
‘아직 내 사격 실력은 죽지 않았어!’
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 * *
실사격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영점 사격.
개인화기의 초점을 자신에게 알맞게 조정을 해둬야 원하는 곳을 노릴 수 있다.
처음으로 사격장이라는 곳에 오게 된 훈련병들의 표정은 놀라움, 그리고 두려움이 반씩 섞여 있었다.
바로 총성 때문이었다.
타아앙!!!
"······!"
총성이 울릴 때마다 훈련병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총 맞아? 소리가 뭐 이리 커! 대포 쏘는 거 아니지?"
"아니야."
총 쏘는 거 맞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총성은 상당히 컸다. 이강진도 처음에는 훈련병들과 같은 반응이었다.
하나 이제는 총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다른 훈련병들은 귀마개 없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강진은 귀마개를 착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래도 조교 말을 어길 순 없지.’
얌전히 귀마개를 착용하기로 했다. 괜히 벌점 받긴 싫으니까.
교관이 나서서 훈련병들에게 주의사항을 강조했다.
"총구 방향은 항상 위로! 좌경계총 하고 다닌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지 마라. 교관 말을 어기는 녀석은 즉시 군기교육대로 보낼 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에게 종이 표적지가 하나씩 분배되었다.
종이 표적지를 둘둘 말은 뒤에 전투복 상의 어깨 부분에 꽂아 넣었다.
앞 조의 사격이 모두 끝났다.
이다음, 드디어 이강진이 속해 있는 조가 투입될 차례다.
"들어가면서 자신의 사로를 크게 외친다! 실시!"
"1사로!"
"2사로!"
"3사로!"
이강진은 7사로에 배치되었다. 백우호는 바로 옆자리인 8사로였다.
7사로에는 이강진과 연이 있는 조교가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 보네, 이강진."
서기준 조교였다.
수류탄 훈련 때에도 서기준 조교가 배치되어 있는 호에서 훈련을 받았었다.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이번에도 잘해보자."
"예!"
이강진은 엎드려 쏴 자세를 취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한 뒤, 표적지의 위치를 대충 눈으로 가늠했다.
‘느낌이 좋아!’
한 방에 영점 사격을 통과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뒤에서 대기 중이던 중대장이 확성기를 들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타아앙!
첫 스타트는 이강진이 끊었다.
그는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빠른 속도로 3발을 표적지에 박아 넣었다.
화약 냄새가 이강진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 이강진은 총을 두고 뒤로 두세 걸음 물러섰다.
전 사로의 사격이 끝나자 붉은 깃발을 들고 있던 조교들이 깃발을 휘둘렀다.
"표적지 확인!"
훈련병들은 자신이 노렸던 표적지를 직접 확인했다.
이강진의 표적지를 본 서기준 조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생각만큼 못 쏴서?
아니다.
너무 잘 쏴서였다.
3발이 정확히 한 가운데를 관통했다.
교과서적인 탄착군이 형성되어 있었다.
"영점도 안 맞췄을 텐데······ 대단하네. 역시 강진이야."
"125번 훈련병 이강진! 감사합니다!"
영점 사격 때부터 이강진의 사격 실력은 두각을 드러냈다.
사격을 마치고 내려오던 도중에 백우호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하아······."
"왜 그러냐."
"너무 못 쏜 거 같아서."
"어떻게 쐈길래? 표적지 보여줘 봐."
엉망으로 쏘면 다시 영점 사격을 거쳐야 한다.
백우호의 표적지를 확인한 이강진은 작게 웃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응? 괜찮다고? 가운데에 하나도 안 들어갔는데?"
백우호가 쏜 3발은 오른쪽에 치우쳐져 있었다. 그러나 3발이 다 몰려 있는 탄착군을 형성했다.
"이건 그냥 크리크 수정만 하면 될 거야. 잘 쏜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정말? 휴! 살았다! 조교님한테 혼날 거 같아서 쫄아 있었는데."
백우호 정도면 잘 쏜 편이었다.
"강진아, 내 것도 좀 봐줘."
뒤를 따라오던 김철도 이강진에게 자신이 쏜 표적지를 보여주면서 감평을 부탁했다.
탄착군이 제각각이었다. 한 발은 오른쪽 위로, 또 한 발은 왼쪽 아래로, 다른 한 발은 가운데로.
"어때?"
기대감에 가득 부푼 김철이었으나.
이강진이 들려줄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넌 영점 사격 다시 해야겠다."
냉정한 평가가 떨어졌다.
* * *
다음 날 오전.
훈련병들은 이른 시간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오늘이 바로 실사격 훈련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사격장까지 걸어갈 테니까 수통에 물 꽉꽉 채워둬라. 도중에 목마르다고 징징거려봤자 물 안 주니까.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단독군장 차림으로 사격장까지 행군이다.
사격장이 수류탄 훈련 장소보다 멀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산행은 없다는 것이었다.
1시간가량을 걷다보니 어느새 사격장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20분간 휴식 겸 사격 훈련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들은 훈련병.
도중에 중대장이 훈련병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꺼냈다.
"20발 모두 적중시킨 훈련병은 대대장님께서 특별 지시로 전화 포상과 PX 포상을 준다고 하니, 다들 열심히 하도록!"
전화 포상만으로도 감지덕지한테 PX 포상까지 준다고 하니, 훈련병들의 눈빛에 의욕이 담겼다.
"1소대부터 사격 시작할 테니 앞에 2개조부터 먼저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훈련병들은 각 조교의 통제 하에 PRI 훈련 실시한다. 실시!"
"실시!"
실사격은 영점 사격과 다르게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100사로, 200사로, 250사로. 이렇게 세 개의 표적지가 따로 존재한다. 그중에서 위로 올라오는 표적지를 쏴서 맞추기만 하면 된다.
주어진 총알은 20발. 영점 사격 때에 비하면 7배가량 많은 셈이었다.
만발을 모두 맞추면 좋지만, 10발 이하로 맞춘 훈련병들은 실사격 훈련을 다시 해야 한다.
그것도 황금 같은 주말에!
남들은 막사에서 편히 쉴 때, 실사격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훈련병들은 단독군장 차림으로 다시 사격장까지 가서 사격 훈련을 받는 신세가 된다.
그것만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선 훈련병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실사격 훈련에 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 *
"조교! 다음 조 올려 보내!"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이강진이 속한 조의 차례가 도래했다.
조교의 지시에 따라 사격장 안전 수칙을 크게 복명복창한 훈련병들.
교관이 올라오라는 수신호를 보이고 나서야 훈련병들은 사격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잘해보자, 얘들아!"
"다들 합격해서 주말에 편히 쉬자고!"
전의를 다지는 훈련병들.
이강진은 영점 사격 때와 마찬가지로 7사로에 배치되었다.
"후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사격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호흡 조절이다.
"탄알집 인계!"
"노리쇠 전진!"
"조정간 단발!"
이강진은 시원시원하게 사격 준비를 마쳤다.
잠시 후.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실사격의 막이 올랐다.
사실 실사격에는 공식이 있다.
‘멀리 있는 표적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것, 그 다음은 중간 것. 이 순서대로 나오지!’
멀다, 가깝다, 중간. 이름하야 ‘멀가중 멀가중 멀중가중’ 작전이다.
일부 부대는 랜덤으로 올라오는 곳도 있다곤 했지만, 이강진이 속한 19사단 신병교육대는 이 멀가중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가장 먼저 올라온 곳은 멀리 있는 표적지, 250사로다.
‘250사로는 무조건 맞춰줘야지!’
타앙!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표적지가 뒤로 넘어갔다.
‘다음!’
100사로 표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가까운 표적지다.
이강진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이번에도 명중이다!
‘좋아! 흐름 탔어!’
마치 리듬 게임을 하듯이 이강진은 이 흐름에 몸을 맡겼다.
탕! 타앙! 탕!
타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전해지는 반동. 이 반동에 의해 총구가 어긋나지 않도록 이강진은 주의를 기울였다.
어느덧 20번째 표적지가 올라왔다.
탕!
짧고 간결한 총성.
이번에도 표적지는 이강진의 한 방에 녹다운되었다.
7사로 조교가 있는 힘껏 외쳤다.
"7사로 사격 끝!"
가장 먼저 사격을 끝낸 이강진은 천천히 일어서며 뒤로 물러섰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
방아쇠를 당기던 그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주먹을 힘껏 말아 쥔 이강진은 미소를 지었다.
‘만발이다!’
스나이퍼 이강진은 아직도 현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