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15화
제5화. 사격 훈련 (1)
이문청 중사는 자신의 동생으로부터 신웅제지가 떡상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바닥을 넘어서 지구의 맨틀까지 뚫어버릴 기세로 떡락하던 종목이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더니 파란 하늘을 벗어나 붉은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위로 치솟아 올랐다.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다.
여기에 커다란 도움을 준 이가 있었다.
바로 이강진이다.
존버 작전을 알려준 사람은 원래 이강진이었다.
이문청 중사는 행정반을 뛰쳐나가 3소대 2생활관으로 향했다. 마침 샤워하기 위해 준비하던 이강진의 모습이 보였다.
"고맙다, 강진아! 너 때문에 살았어!"
연신 이강진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이문청 중사. 훈련병들은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몰래 번갈아 봤다.
이강진 덕분에 어렵게 마련한 대학 등록금을 다시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탄약반장님. 제가 드렸던 말, 혹시 기억하십니까?"
"수요일부터 주가가 오를 거라는 말? 물론 기억하지!"
"그게 아닙니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매도 타이밍을 잡을 때다.
"금요일 장 마감하기 이전에 빠르게 파셔야 합니다. 괜히 또 오를 거라는 기대감 가지고 다음 주까지 존버하다간, 어렵게 되찾은 등록금 원금도 회수 못하게 될 겁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강진이 막차 시간표를 알려줬을 때, 주저하지 말고 그 차에 올라타야 한다.
욕심은 절대 금물. 이문청 중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았다. 동생한테 맡기면 불안하니까 내가 직접 할게."
이번 기회 아니면 답도 없다.
더 이상 이강진이 손을 댈 수가 없다. 욕심을 더 부리다가 패가망신 당할지. 아니면 무사히 등록금을 건져올지.
오롯이 이문청 중사의 몫이다.
* * *
수류탄 훈련이 끝났다고 모든 훈련소 일정이 전부 다 끝난 건 아니다.
훈련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 오늘도 어김없이 연병장에 집합하는 훈련병들.
그러나 오늘의 집합은 조금 특별했다.
평소에 집합할 때에는 단독군장 차림으로 집합을 하곤 했지만, 이번엔 개인화기까지 챙기고 집합을 해야만 했다.
총의 존재가 훈련병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백우호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거, 진짜로 나가는 거야?"
백우호가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물었다.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본 이강진이 쓴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나가는 거 맞아. 그리고 넌 여기에 조교가 없는 걸 천만 다행으로 여겨라."
"왜?"
"군대에선 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거든. 들키면 무조건 벌점이야."
군대는 개인화기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민감하게 군다.
특히 사격장에 갔을 때가 그 정점을 찍는다.
조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무중대 3소대에 소속되어 있는 이등병 조교, 류승역이 훈련병들에게 외쳤다.
"지금부터 너희에게 PRI를 교육하겠다. 뭐라고?"
"PRI!"
낯선 영어 단어의 등장에 훈련병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나 이강진은 달랐다.
‘좆됐구나!’
PRI. Preliminary Rifle Instruction의 약자로, 사격술 예비훈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군인들은 PRI를 다른 뜻으로 해석하곤 한다.
피(P)나고, 알(R)베기고, 이(I) 갈리는 훈련. 이것이 바로 PRI다.
‘이걸 또 하게 될 줄이야!’
행복 회로를 돌리고 싶어도 PRI 훈련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이강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진 것을 확인한 백우호는 조교에게 들키지 않게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아까부터 얼굴색이 왜 그래? 몸이라도 안 좋은 거야?"
"아니, 지금은 멀쩡해. 조금 있으면 아니게 되겠지만."
암울한 PRI 훈련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희망은 있었다.
흰 글씨로 ‘교관’이라 적혀 있는 방탄모를 쓰고 등장한 남자.
이강진이 아주 잘 아는 인물이었다.
‘이문청 중사가 PRI 교관 맡았구나!’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두 남자는 눈이 마주쳤다.
슬며시 미소 짓는 이문청 중사.
이강진의 뜻이 통했으리라!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 * *
이문청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조교들을 소집했다.
"조교들, 집합!"
"집합!"
조교들을 모은 이문청 중사는 그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오늘 날씨도 쌀쌀하고 그러니까 애들 너무 무리시키지 말고 적당히 훈련시켜.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류승역 조교는 생각이 달랐다.
오늘 PRI 훈련에 투입되기 전에 그의 사수 선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훈련병들이 너 이등병이라고 얕볼 수 있어. 그러니까 오늘 PRI 훈련 때 애들 기 확실하게 잡아둬라. 그래야 나중에 훈련병들이 네 통제에 잘 따를 테니까.’
신병교육대를 퇴소하기만 하면 달 수 있는 이등병 마크. 사실 류승역과 156기 현무중대 훈련병들은 입대 시기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훈련병들이 자신을 이등병이라고 얕잡아볼 수 있다는 걱정이 문득 들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기선제압을 해둬야겠어!’
이등병과 훈련병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4차원이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류승역은 몸소 알려줄 생각이었다.
* * *
류승역 조교가 이강진과 훈련병이 있는 쪽으로 복귀했다.
"현 시간부로 PRI 훈련 실시할 테니 다들 방탄모 착용하고 기상하도록. 기상!"
"기상!"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류승역 조교는 PRI 훈련이 어떤 것인지 빠르게 설명에 임했다.
"전진무의탁 자세에서 엎드려 쏴, 무릎 쏴, 앉아 쏴 자세 등을 소화하면 된다. 조교가 ‘100사로 밧!’이라고 외치면 무릎 쏴 자세를, 그 이외에 나머지 200사로, 250사로는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면 된다. 그럼 지금부터 본 조교가 직접 사격 자세를 보여주도록 하겠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기억해두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전진무의탁은 사격 동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펼치는 준비 동작으로, 한쪽 다리를 뒤로 뻗고 다른 한 쪽 다리를 굽힌 채 상체를 숙이고 총을 든 자세를 가리키는 단어다.
이 자세를 시작으로 엎드려 쏴, 무릎 쏴, 앉아 쏴 자세를 보여주는 류승역 조교.
이등병이라서 그런 걸까. 동작 하나하나가 빠릿하고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백우호가 이강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보기에는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직접 해보면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미 이강진은 PRI에서 지옥 문턱까지 갔다 왔던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훈련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지.’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시범이 끝난 뒤, 류승역 조교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지금부터 PRI 훈련에 들어간다. 준비!"
훈련병들은 류승역 조교가 처음에 보여준 전진무의탁 자세를 취했다.
다들 처음 하는 거여서 그런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오른 다리 뒤로 쫙 안 빼나! 그리고 거기! 124번! 누가 총구 땅바닥에 닿게 하라고 했어!"
"죄, 죄송합니다!"
류승역 조교에게 딱 걸린 김철은 곧장 울상이 되었다.
"100사로 밧!"
무릎 쏴 자세를 취하는 훈련병들.
"똑바로 안 하나! 다시 전진무의탁 자세로 돌아온다. 실시!"
"실시!"
처음은 쉽다.
하지만 3kg쯤 되는 쇳덩이를 들고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누웠다가 일어섰다가를 수십 차례 반복한다고 생각을 해보라.
누구든 지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엎드려 쏴 자세에서 전진무의탁 자세로 돌아올 때. 이때가 훈련병들에게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
훈련병들은 이제야 PRI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 * *
"10분간 휴식한다. 탈모!"
"탈모!"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훈련병들.
이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굵은 땀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겨울에도 이 정도인데, 여름에 PRI 훈련을 받았더라면 벌써 몇 명은 이 자리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PRI 훈련은 이강진도 버거워하는 훈련이었다.
문제는 아직 2시간가량 더 PRI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강진은 구원의 손길이 닿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10분이 지나자마자 류승역은 칼 같이 이들을 닦달했다.
"PRI 훈련 다시 반복할 테니 다들 방탄모 쓰고 일어서!"
훈련병들은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그 와중에 류승역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등병 조교가 얼마나 무서운지 내가 오늘 확실하게 교육시켜주지!’
아직 류승역에게는 2시간이라는 여분이 남아 있었다. 그 안에 류승역은 훈련병들에게 최악의 PRI 훈련을 시킬 생각이었다.
하나 그 계획은 금세 무산되었다.
"류승역."
"이병 류승역!"
이문청 중사가 3소대 2생활관 멤버들이 훈련을 받는 장소를 찾았다.
"애들 너무 굴리는 거 아니야? 내가 아까 말했지? 오늘은 설렁설렁하게 하자고."
"죄송합니다!"
"됐어. 사과할 필요는 없고······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까 너는 1중대 쪽으로 가 봐. 조교 숫자가 부족하다고 1명만 지원 보내달라고 하더라."
그러면 이문청이 직접 1소대로 가면 해결되는 일 아닐까.
순간 류승역은 이것을 입에 담을 뻔 하다가 금세 삼켰다.
이등병으로서 간부의 말에 토를 단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
류승역 조교는 군말 않고 1소대 쪽으로 향했다.
"하여튼 저 녀석. 의욕 넘치는 건 좋은데 ‘적당히’라는 걸 모른다니까. 쯧쯧."
고개를 가로저은 이문청 중사는 전진무의탁 자세를 취하고 있는 훈련병들을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는 훈련병들 모두가 아닌 이강진, 단 한 명에게 향하고 있었다.
"250사로 밧!"
훈련병들은 빠른 동작으로 엎드려 쏴 자세를 취했다.
조교가 아닌 교관이 직접 이들을 통제하기로 했다. 훈련병들은 속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이문청 중사는 엎드려 쏴 자세를 한 번 시키고 그 이후에 다른 동작을 요구하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훈련병들은 계속 바닥에 배를 맞대고 엎드린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얘들아. 편하냐?"
"아, 아닙니다!"
교관의 물음에 훈련병들은 당황하며 답했다.
"왜. 니들 쉬라고 일부러 엎드려 쏴 자세 계속 시키고 있는 건데. 그래도 무릎 쏴보다 엎드려 쏴 자세가 더 편하잖아. 안 그래?"
훈련병들은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하기도 좀 그랬다.
방탄모를 고쳐 쓴 이문청 중사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있을 때 편히 쉬어둬. 그렇다고 졸지는 말고. 조는 녀석들 있으면 바로 PRI 훈련 다시 시작할 테니까.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만히 있기도 심심하니까 내가 너희들이 궁금해 하는 ‘군생활 잘하는 방법’ 몇 가지를 알려주마. 우선 말이지, 자대에 가면······."
일부러 훈련병들이 쉴 수 있게끔 시간을 끌어주는 이문청 중사.
이것은 이강진을 향한 그의 작은 보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