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7화
제2화. 신병교육대, 입소! (2)
이강진과 함께 공중전화 박스로 온 조교, 서기준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쫙 폈다.
통화는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서기준 병장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전화를 시작한 기준은 오전 11시 반.
5분 동안 통화할 수 있게끔 해줬으니, 11시 35분에는 전화를 강제로 끊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전화박스 안의 상황을 보니,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았다.
이강진은 그의 어머니에게 한창 주식에 관련된 기본 정보 같은 것들을 아주 빠르고 간결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하나 서기준 병장의 눈에는 그저 어머니의 목소리가 궁금해서 다급하게 통화를 주고받는 효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나 부모님한테 할 이야기가 많은가.’
서기준 병장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예전에는 이강진처럼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전화 한 통화에 목을 맨 적이 있었다. 부모님의 따스한 말 한 마디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훈련소 생활. 가족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힘든 군생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어줬다.
시간은 어느 새 35분이 넘었다.
현재 시각, 11시 37분.
‘2분이면 많이 봐줬다.’
공중전화 박의 문을 툭툭 두드렸다.
"시간 지났다. 슬슬 끊어라."
"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강진.
서기준 병장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면서 토닥여줬다.
"부모님하고 사이가 아주 돈독한가 보네."
"그게······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주식 관련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을 많이 한 것뿐이다. 하나 서기준 병장은 이강진이 부모님을 너무 그리워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통화를 이어간 줄 알았다.
크나큰 착각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
이강진은 그냥 얻어걸린 효자가 되기로 했다.
* * *
막사로 돌아온 이강진의 머릿속은 여전히 주식, 그리고 시프 코인 생각으로 가득했다.
특히 주식.
‘제이퍼블도 사둘 걸 그랬나.’
입대 하루 전날에 회귀를 한 탓에 이강진은 사실 정신이 없었다. 자금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제이퍼블 주도 매수를 했을 텐데.
‘신병 위로휴가 나갈 때즈음에는 다 팔고 정치 테마주에 올인 해야겠어.’
그때 즈음이면 딱 오를 때다.
‘미래에 주가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으니까 좋긴 하네.’
이강진은 오를 주, 내릴 주를 구분해서 사두기만 하면 된다. 마치 치트키를 쓰고 게임을 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길 무렵.
백우호가 이강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뭔 생각이 그리 많아? 아까 부모님하고 통화한 것 때문에 그래?"
"뭐······ 그렇지."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펑펑 울기라도 했냐?"
"그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냉철하게 통화했다. 연락을 받은 그의 어머니가 역으로 당황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때마침 3소대 조교 중 한 명인 최만보 상병이 이강진과 백우호가 머물기로 되어 있는 2생활관을 찾았다.
"전체 주목한다, 주목!"
"주목!"
훈련병들은 하던 것을 중단하고 최만보 상병의 말에 복명복창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너희에게 주기표 다는 방법을 알려줄 거다. 다들 전투복 상의 꺼낸다. 실시!"
"실시!"
최만보 상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는 훈련병의 전투복 상의를 들어올렸다.
"본 조교가 너희들에게 흰색 주기표를 나눠줄 거다. 이 주기표를 상의 오른쪽 주머니 위에 단다. 선에 맞춰서 똑바로 바느질해서 달도록.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에게 부여된 번호는 보충대에서 부여받았던 번호와 같은 125번이었다.
똑같은 번호를 받게 될 줄 몰랐다. 원래 회귀하기 전에 받았던 이강진의 번호는 53번이었다.
‘내가 소대를 다른 곳으로 바꿔서 그런가 보네.’
이강진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를 바꾼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바느질 세트를 꺼낸 뒤에 흰색 실로 빠르게 주기표를 다는 이강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군대에 있을 때 이강진은 다양한 기술들을 배웠었다. 재봉병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는 이강진이 직접 재봉틀도 다뤘던 적이 있었다.
‘군대가 참······ 많은 것들을 알려주긴 해.’
물론 사회에 나와서까지 쓸 수 있는 지식, 기술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5분대기조 상황조치 요령 같은 걸 사회에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으랴. 군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나 알아두면 된다.
능숙한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이강진과 다르게 백우호는 아직도 주기표와 씨름 중이었다.
백우호는 예전부터 손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백우호가 휴가를 나갈 때, 이강진은 그의 전투복을 직접 다림질 해준 적이 몇 번 있었다.
"우호야."
이강진은 그를 조용히 불렀다.
"내가 하는 거 잘 보고 따라만 해라."
손재주가 없는 백우호가 봐도 충분히 따라할 수 있도록 이강진은 최대한 천천히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 땡큐. 고마워. 역시 너랑 붙어 다니기로 한 게 다행이야."
백우호는 이강진과 나란히 126번 번호를 부여받았다. 즉, 전우조다.
전우조는 자신의 앞 번호, 그리고 뒷 번호. 마지막으로 본인까지 포함해서 총 3명으로 구성된다.
뒷 번호는 백우호.
그리고 앞 번호는······.
‘김철이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뿔테 안경을 쓴 124번 훈련병, 김철. 이강진은 그를 처음 본다.
애초에 소대가 달랐으니까. 처음 보는 게 당연했다.
이강진이 먼저 말을 붙여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같은 전우조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아······ 네. 자, 잘 지내봐요."
약간 숫기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강진의 물음에 김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22살이요."
"그럼 저희랑 동갑이네요. 친구니까 서로 편하게 말 놓을까요?"
김철은 이강진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백우호도 김철에게 잘 지내보자고 악수를 건넸다. 그때, 김철은 백우호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방송 쪽에서 일하지 않아?"
"나?"
"응. 티비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잠깐만. 프로그램 이름이 안 떠오르네······."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는 김철이었지만,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이강진이 먼저 대답했다.
"‘쇼미더스킬’이라는 프로그램일 거야."
"아, 맞아! 그거!"
쇼미더스킬. 래퍼 데뷔를 꿈꾸는 사람들이 나와서 서로 실력을 겨루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사실 백우호는 래퍼가 꿈이다. 그는 쇼미더스킬 2, 그리고 쇼미더스킬 4에 나와서 아주 잠깐 티비에 얼굴을 비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광탈이었다. 카메라에 얼굴이 두 번 비춰진 것이 전부였다.
"야, 강진아. 넌 알면서 왜 아는 척 안 했어?"
김철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강진이 자신의 방송 출연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심오한 의미는 없었다.
"그냥."
자대에서 같이 생활하는 동안 백우호는 자신이 쇼미더스킬에 출연했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랑을 해댔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모른 척을 해왔던 것이다.
백우호의 경력에 못지않게 김철도 특이한 이력을 자랑했다.
"난 웹툰 작가 지망생이야."
"그림 잘 그리겠네?"
"잘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잘 그리겠지."
순간 이강진은 생각했다.
‘이 녀석. 자대 가면 고생 좀 하겠네.’
미술병은 무조건 확정이다.
김철은 이번엔 이강진에게 물었다.
"너는? 뭐 하던 거 없어? 아니면 뭐가 될 거라든지."
백우호는 래퍼. 김철은 웹툰 작가.
그렇다면 이강진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이강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조만간 알게 될 거야."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투자가가 될 것이다.
* * *
훈련병들은 조교의 통제에 따라 막사 아래로 내려왔다.
"자, 주목!"
"주목!"
조교는 훈련병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빠르게 설명했다.
"지금부터 신병교육대 홈페이지에 올라갈 사진을 찍을 거다. 훈련병들의 부모님, 가족, 친구, 그리고 애인이 여러분들이 군생활 잘 보내고 있나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니까 최대한 밝게, 환하게 웃으면서 찍도록 한다. 울상 짓고 찍으면 보는 사람도 걱정이 들 테니까. 다들, 조교 말이해했나."
"예!"
"좋아. 그럼 앞 열부터 조교 따라서 이동한다. 실시!"
"실시!"
증명사진을 찍는 것처럼 한 명씩 나와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나중에 단체 사진 몇 장 찍으면 된다. 이것이 다다.
순식간에 김철의 차례가 도래했다.
어색하게 짝이 없는 웃음. 사진사 뒤에서 조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웃으라고 했잖아! 이 보이게끔 활짝! 군인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아,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속으로 웃었다.
‘군인이 행복하긴 개뿔.’
거의 ‘오빠 믿지?’와 동급 수준의 거짓말이다.
* * *
사진 촬영을 마친 후에 훈련병들에게 새로운 장비가 부여되었다.
방탄모와 탄띠, 수통, 그리고······.
‘판쵸우의! 씨발!’
보기만 해도 욕이 나오는 물건이었다.
이강진은 돌돌 말려 있는 판쵸우의를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분명 비에 젖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것인데, 희한하게 벗고 나면 방수 효과가 있긴 한 걸까 싶은 결과가 나온다.
한편, 판쵸우의라는 걸 처음 보는 백우호와 김철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게 뭐야?"
"비닐 같은 건가?"
"비닐은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이거, 생각보다 무게가 좀 있네."
"그러게."
두 사람과 다르게 이강진은 판쵸우의를 만지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특유의 눅눅한 냄새!
‘설마 그 냄새를 다시 맡게 될 줄이야!’
포기하면 편하다. 한숨을 깊게 내쉰 후에 이강진은 빠르게 탄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교가 들어와서 설명하기도 전에 이강진은 탄띠에 수통, 판쵸우의 등을 결합해서 단독군장을 완성시켰다.
여기에 방탄모 끈 조절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완성된 단독군장을 바라보면서 이강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단독군장.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네.’
이강진은 처음으로 탈영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