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6화 (6/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6화

제2화. 신병교육대, 입소! (1)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일 동안 장정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줬던 조교들은 나란히 서서 그들에게 거수경례를 보냈다.

건투를 빈다는 뜻일 터.

하지만 동시에 이런 뜻도 숨겨져 있을 것이다.

너희, 이제부터 좆됐어.

적어도 이강진은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신병교육대는 빡센 곳이다. 병장 만기 제대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강진조차도 신병교육대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훈련소를 거치지 않으면 이등병 계급장을 달 수가 없다.

"하아······."

새어나오는 한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반면, 이강진의 옆에 앉은 백우호는 표정이 굉장히 밝았다.

이강진은 백우호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이강진과 백우호는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이강진의 물음에 백우호는 바로 대답했다.

"재미있을 거 같아서."

"재미라고?"

순간 이강진은 생각했다.

이 녀석이 미쳤나.

"왜, 그거 있잖아. ‘멋있는 사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너도 봤지? 거기서 저저번 달이었나······ 훈련소 편이 나왔는데, 보니까 재미있던데? 그리고 의외로 할 만한 거 같기도 하고."

이게 예능 프로그램의 폐해다.

가볍게 보면서 웃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실제 군대와 동떨어지는 모습들이 자주 방영되곤 했다.

특히 백우호가 방금 언급한 ‘멋있는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은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예전에 이런 경우가 있었다. 멋있는 사나이를 보고서 ‘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쉬운 생각으로 자원입대를 한 여성이 본인이 알고 있던 군생활과 너무 다르다고 한탄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백우호도 그와 비슷했다.

이강진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흘리듯 말했다.

"머지않아 알게 될 거다."

"뭘?"

"티비 속 세상과 현실의 차이에 대해서."

굳이 이강진이 말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백우호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 * *

이들이 탄 버스는 점점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백우호가 살짝 겁에 질린 목소리를 냈다.

"우리, 훈련소 가고 있는 거 맞지?"

"어, 맞아."

아주 정확하게 가고 있다.

이강진은 군대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아직까지도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기 싫어도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간이었기에 머릿속에 강제로 각인이 되었다.

예전에 봤던 풍경들을 접하다보니 그 기억이 하나둘씩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지같은 기분이네.’

만렙을 달성했는데, 1레벨부터 다시 캐릭터를 키워야 하는 그런 기분이다.

지루하고, 그리고 짜증난다.

심지어 그게 군인 캐릭터라면?

짜증은 수십 배가 된다.

버스가 위병소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정예신병양성’이라는 여섯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비포장도로에 접어들자, 버스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정차한 곳은 바로 19사단 신병교육대 연병장.

문이 열림과 동시에 조교가 버스 안으로 들이닥쳤다.

"지금부터 딱 30초 준다. 30초 안에 전부 다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집합!"

"지, 집합!"

시작부터 스파르타다.

이강진은 속으로 ‘씨발!’을 연발하면서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둘씩 버스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장정들.

조교가 한 명씩 서 있는 곳 앞으로 가서 일렬로 나란히 줄을 서면 된다.

백우호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강진이 백우호의 뒷덜미를 잡았다.

"뭐야, 왜 그래?"

"너, 지금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조교한테 가려고 했지?"

"어. 가깝잖아?"

아무리 가까워도 똥은 피해야 한다.

이강진은 백우호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3번째 조교가 서 있는 곳이 목적지였다.

"저곳이 좋아."

"응? 왜? 그냥 줄 아무렇게나 서면 되는 거 아니야?"

아직 백우호는 조교들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줄 서는 대로 소대가 정해지는 거야. 그리고 저 조교들이 각 소대를 담당하게 될 테고."

백우호가 첫 번째로 선택했던 조교의 이름은 성문영 상병. 이강진과 백우호가 속한 156기들 사이에선 통칭 ‘도깨비 조교’라 불리는 존재다.

이강진은 회귀하기 이전에 방금 전의 백우호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성문영 상병 앞에 선 적이 있었다.

그대로 1소대 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이강진은 지옥을 맛 봤다.

‘저 조교 밑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해!’

이것이 이강진의 전략이었다.

다른 조교들에 비해 터치가 덜하고 그나마 인간미가 느껴지는 3소대 조교들이 나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에 불과했다.

3소대 조교들도 똑같이 엄하긴 엄하다. 하지만 성문영 상병에 비해선 훨씬 낫다.

한편. 아무것도 모른 채 성문영 상병 앞으로 줄을 서는 장정들.

‘고생해라, 불쌍한 전우들이여.’

이강진은 그들을 향해 남몰래 명복을 빌어주기로 했다.

* * *

156기 현무중대 3소대에 소속된 이강진과 백우호.

이들은 인솔자의 통솔에 따라 생활관이 아닌 강당으로 향했다.

신병교육대 입소식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군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바로 오와 열 맞추기다.

조교들은 장정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외쳤다.

"발밑에 있는 금색 선에 전투화 끝 가져다 대!"

"거기! 누가 움직이라고 했어!"

"어쭈? 정신 안 차리지? 단체로 얼차려 받아볼까!"

706 보충대 조교들보다 신병교육대 조교들이 훨씬 더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장정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조교들의 눈치를 살폈다.

입소식을 거행하기 위해선 대표로 입소 신고를 할 장정이 필요하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현무중대 소대장이 단상에 올라섰다.

"자신이 목소리가 크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할 자신 있다. 이런 훈련병 있으면 거수하도록."

"······."

"······."

"······."

이번에도 장정들은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오와 열 맞추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지경인데. 누가 미쳤다고 신고자 역할을 하겠나.

하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미친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 미친 사람의 정체는 놀랍게도······.

"제가 하겠습니다."

706 보충대의 에이스.

이강진이 출동했다.

* * *

중간만 가자.

이것이 원래 이강진의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 아니, 많이 달랐다.

신고자 역할을 한 훈련병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있다.

회귀하기 전에 이강진은 이 특권이 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전화 한 통화 하게 해주는 거였지.’

이강진의 목적은 이 특권을 따내는 것이다.

전화 한 번 하는 게 뭐 대수냐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훈련소에서의 전화 한 통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기 위해 앞으로 이곳 훈련병들은 대학 중간, 기말고사 시험 볼 때보다 더 미친 듯이 노력할 것이다.

이강진은 장정들 앞에 섰다.

신병교육대 대대장이 오기 전에 사전 연습을 거행했다.

"부대~ 차렷! 추우웅! 서어엉!"

이강진의 목소리가 강당 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누가 들으면 확성기로 말하는 줄로 착각할 정도로 매우 컸다.

기타 입소 신고와 선서문 낭독 등을 연습한 뒤.

간부들은 이강진에게 흡족한 미소를 보냈다.

"좋아. 대대장님 오셨을 때에도 그 목소리, 그대로 유지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드디어 훈련소 대대장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 훈련소의 보스(Boss)라 불리는 존재. 그러나 이강진과 그는 초면이 아니었다.

‘저 독기 가득한 표정, 여전하군.’

도깨비 조교들 위에 호랑이 교관들, 그리고 이들을 통제하는 남자가 바로 저 대대장이다.

간부가 마이크를 들고 식순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현무중대 156기 입소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 제창 등은 사실 어려울 거 없다. 목소리만 크게 내면 되니까.

문제는 지금부터다.

"부대~ 차렷!"

이강진의 호령에 따라 병력들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충! 성!"

그의 거수경례를 받아주는 대대장.

드디어 이강진의 전매특허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시전되었다.

"신고합니다! 이강진 외 257명은 2013년 1월 15일 19사단 신병교육대 현무중대 입소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 성!"

대대장은 이강진의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짙은 미소를 지었다.

선서문 낭독 때에도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잘 읊었다.

마지막으로 대대장의 훈시 타임.

그전에 대대장은 이강진을 가리켰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강진입니다!"

대답할 때에도 열중 쉬어 자세가 아니라 차렷 자세로 바꾼 후에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열중 쉬어 자세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대대장을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이강진이라. 중대장. 쟤는 끝나고 조교 통제 따라서 전화 한 통화 할 수 있도록 해줘."

역시 예상대로였다.

대대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이강진에게 전화 포상을 내렸다.

훈련병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대대장은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훈련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훈련병이 있다면 방금처럼 대대장이 직접 포상을 줄 테니 열심히 훈련받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훈련병들에게 동기부여를 줘서 이득이고, 이강진은 전화 포상을 따내서 이득이다.

이거야말로 윈윈(Win-win)이다.

* * *

공중전화박스로 이동한 이강진.

조교는 이강진에게 ‘5분 줄 테니 여유롭게 통화하고 나와라.’라는 말을 들려줬다.

컬렉트콜로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얼마 안 갔다.

-여보세요?

그리웠던 어머니의 목소리.

이강진은 무거운 입을 뗐다.

"엄마, 저예요."

-······아들?

"네, 맞아요. 엄마 아들, 이강진."

-어머머, 세상에······ 강진아······!

이강진의 어머니는 벌써부터 울먹이기 시작했다.

입대하면 전화 통화 한 번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 와중에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밥은 잘 먹고 다니고?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그리고 군대 갔다 오면 규칙적인 생활 하니까 더 건강해져서 나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도 그럴 테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보다 엄마. 중요한 일이 있는데, 지금 좀 확인해주시면 안 돼요?"

-중요한 일? 말해보렴.

굳이 나서서 전화 포상을 따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신문 있죠? 거기서 주훈제지하고 한두통운 주가지수······ 엄마, 주식 잘 모르시죠? 그냥 현재가만 확인해주세요. 어떻게 확인하냐 하면······."

군에 입대한 신분이어도 돈 버는 일은 포기할 수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