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 * *
첫 번째 질문. 디안 세레니예에게 어떤 독을 먹였는가?
“아, 아스트로사 3개 극독 중 하나다! 아야! 뭐? 마, 말을 높이라고? 지금 누구한테 명령, 악! ……3대 극독인 유리제비꽃입니다. 그, 그런데 진짜 그 독 먹은 거 맞아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날 수가 없는 독인데. 역시 안 먹은 거죠? 그렇죠?”
두 번째 질문. 디안 세레니예를 암살하려는 이유는?
“……복수. 세레니예 가문이 우리 마을을 불살랐으니까. 당신을 죽이고 이 집안의 일원 전부를 죽이는 게 내 목표였어!”
세 번째 질문. 정말 그것뿐?
“그것뿐이냐니? 죽은 가족과 친구에 대한 복수보다 더한 이유가 어딨다고요!”
나는 어린 하녀의 반응을 샅샅이 훑다가, 의자에 앉았다.
검은 머리, 검은 눈.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이 어린 하녀는 <자비로운 한 입> 같은 최후의 수단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 말은 전문적인 암살 집단에서 보낸 암살자가 아니라는 뜻이지.’
그렇다고 하녀 본인의 주장대로 개인의 복수라 여기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적잖았다.
구하기 힘든 아스트로사 3개 극독을 구했다는 점. 살생에 능숙하다는 점. 더해서 많고 많은 세레니예 가문의 일원 중, 굳이 디안을 먼저 처치하려 한 부분까지 상기하면 목적이 꽤 뻔했다.
“첨탑에 갇힌 그 괴물 때문이지?”
“……딸꾹. 네?”
“첨탑 괴물을 구하려고 온 거잖아.”
“……딸꾹. 아닌데? 요?”
얘 거짓말 못 하네. 넌 누가 봐도 암살자 재목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의외야. 몸 살라서 구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니. 루는 혼자 움직였던 게 아니라, 소속된 단체가 있었던 건가?’
그 말은, 디안의 신상이 또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너 말고 다른 놈들도 성안에 있어?”
“딸꾹, 내가 어떻게 알아! 요! 글쎄 나 혼자 복수하러 온 거라니까? 요!”
루와 연결되어 있을 유일한 끈. 그렇다면 나 또한 어쩔 수 없다.
“넌 당분간 내 방에서 살아.”
“뭐어? 차, 차라리 죽여!”
“미리 말해 두는데, 나는 첨탑 괴물을 어찌할 마음 없어.”
나는 놀란 얼굴을 한 하녀와 눈을 맞추며 뒷말을 이었다.
“디안의…… 아니, 내 신변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첨탑 괴물이 도망가든 말든 상관없다는 이야기야.”
꼬박꼬박 연고까지 발라 주고 있다는 말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아직 하녀의 신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래서야 오늘 루에게는 못 찾아가겠는걸.’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제 이 상황을…… 디안에게 잘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아주 자알.
* * *
디안이 아스트로사 3대 극독인 유리제비꽃의 치료 약을 만들기까지는 고작 이틀이 소요됐다.
극독이라는 흉악한 별칭답게, 제아무리 치료 약이 준비돼도 유리제비꽃 중독의 완치는 불가능하다. 애초 이 치료제 자체가 낮은 농도의 독을 섭취했을 경우를 대비해 개발된 약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디안의 몸은 치료제의 효과를 느리지만 확실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내 영혼이 디안의 영혼을 보호하고 있어서겠지.’
디안의 영혼은 나만큼이나 산산이 깨지지도 않았고, 내장을 제외한 육체도 멀쩡한 편이었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정작 디안은 암살자의 정체보다, 다른 사건에 더 큰 호응을 보였다.
『……정말 놀랐어요, 애쉬! 이 두 눈으로 로크(못생긴 놈의 이름인 듯했다)가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으니까요!
……사실 그날 쓰러지듯 잠에 들면서 큰 걱정을 했었어요. 나를 대신해서 애쉬가 그런, 로크의 채찍질을 당하면 많이 놀라기도 하고 또 아파할 테니까. 그래도 저는 몇 번 경험해 봐서 잘 버틸 수 있거든요.
애쉬, 당신은 원래 무인이었던 건가요?
어떻게 저의 나약한 몸으로 로크를 쓰러뜨린 거죠? 또 암살자라는 이 하녀는요? 어떻게 제압한 거예요? 나도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요…….』
“제인.”
간단한 저녁 식사를 내온 제인이 내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네?”
“어제오늘 말이야. 내 기분이 많이 좋아 보였어?”
“기분이요? 네, 제 눈에는 굉장히 즐거워 보이셨어요. 앗. 드디어 제게 즐거워지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려는 건가요? 이틀 내내 숨기셨잖아요!”
“음. 아니. 오늘도 비밀이야.”
“네에? 요즘 정말 짓궂어지신 것 같다니까.”
디안이 내 주먹질을 만족스러워해서 다행이었다.
당분간 그 못생긴 놈이 디안과 애쉬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손쓰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 시간 봐서 한 번 더 손봐 줘야지.
“아가씨가 근래 식사를 잘하셔서 마음이 많이 놓여요. 안색도 좋아지신 걸 봐선 몸이 잘 회복되고 있나 봐요. 역시 그 의사는 돌팔이였던 게 분명해요!”
제인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나간 후,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 나는 디안에게 아주 중요한 메모를 남길 예정이다.
『더는 시기를 미루기 힘들어요, 애쉬.
당신은 첨탑의 그 괴물을 살리고 싶은 건가요? 이제는 확실히 마음을 정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미래의 일을 그에게 알릴 것이다.
나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우리의 인연이 어떻게 맺어졌는지, 루를 구하려는 연유, 디안의 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피스토라는 인물에 대해서.
‘내가 언제까지 이 몸에 머물지 모르니까. 말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알리는 게 좋겠지.’
이 메모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디안에게 달린 일이다. 나는 그저…….
“으읍! 읍!”
그저…….
“읍! 읍읍!”
…….
“으으으으으으읍!”
“하아.”
몸을 일으켜 침대 밑을 확인했다. 어둠 속에서 버둥대는 몸을 끌어내 입을 막았던 천을 풀자, 하녀 암살자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세모눈을 했다.
“푸하! 이제 좀 살 것 같네. 에이씨, 하녀가 나가면 빨리빨리 풀어 주라고요!”
이 하녀 암살자는 당분간 내 침대 밑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 물론 일방적인 결정하에.
“네가 탈출하면 그 괴물 입 안에 아스트로사 3대 극독을 전부 털어 넣어 버릴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괴로운 방법으로 그를 괴롭힐 거라고. 알아들었어?”
루의 이름을 운운하자 하녀 암살자는 저항을 멈추었다.
게다가 이틀 전에 비해서는 태도가 많이 얌전해졌는데, 바로 디안의 선심 때문이었다.
‘쯧. 저를 죽이러 온 암살자의 상처에 약도 발라 주고 밥도 챙겨 주다니. 마음이 약해도 너무 약해.’
나는 첨탑으로 올라갈 준비를 시작하며 하녀 암살자에게 물었다.
“괴물이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했지?”
“뭐, 좋아하는 건 모르겠고 싫어하지 않는 건 확실해요. 나는 모르는 사람이지만요. 흥. ……그게 그 괴물에게 바를 약이죠?”
“응.”
“진짜 이상하다니까. 독은커녕 약이나 바르다니. 당신 정말 디안 세레니예 맞아요? 무위도 믿기지가 않던데. 설마 가짜 아니야?”
“아니야.”
하녀 암살자가 순순하게 구는 이유에는, 아마 디안뿐만 아니라 나의 태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루를 돕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니까.
초콜릿까지 확실히 챙긴 나는 몸을 꽁꽁 싸맨 후 다시 첨탑을 올랐다.
오늘의 감옥은 이틀 전보다 덜 추웠다.
“안녕.”
창살을 열고 들어서자, 탐색하는 시선이 느릿하게 내 얼굴에 따라붙었다. 이제까지보다 더 길고 진득이 달라붙는 느낌에 뺨을 매만졌지만 딱히 만져지는 건 없었다.
나름의 인사 방법인가 싶었으나 그럴 리는 죽어도 없을 것 같고. 미묘하게 신경 쓰이는 기분으로 루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응? 연고가 새것처럼 깨끗하네?’
착각이 아니라면 양도 조금 많아진 것 같다. 마치 처음 채워 넣었을 때처럼. 일단 소독제를 천에 떨어뜨려 루의 어깨부터 차근차근 닦아 나갔다.
‘……원래 이렇게 많이 아물어 있었나.’
이틀 동안 못 와서 내심 적잖이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한데 우려가 무색하게 루의 몸 상태는 나아지면 나아졌지 절대 나빠지지 않았다.
설마 디안이?
“너, 뭐냐?”
“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눈처럼 시린 금안이 불쑥 다가온 탓에 헛숨을 삼키며 물러서야 했다. 그에 루가 인상을 구기며 턱짓했다.
“이리 와. 이름이 뭐냐고.”
아, 이름? 나는 또. 천천히 무릎으로 거리를 좁힌 후 대답했다.
“디안 세레니…….”
“오라고 한 말 못 들었냐?”
“와, 왔잖아?”
“아까처럼 더 가까이 와. 얼굴 안 보여.”
내 얼굴은 왜? 괜히 불안해졌다.
‘남자인 게 들킨 건가?’
따지자면 들키든 말든 상관없기는 해도. 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보니 보란 듯이 들키는 것 역시 석연찮다.
다시 가까이 다가갔지만, 비스듬하게 고개를 숙인 채 그의 팔뚝 치료에 몰두하는 척했다. 이마 위로 루의 숨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름 다시 말해.”
“……디안 세레니예.”
“그 이름을 가진 녀석이 몇 명이나 되는 거지?”
루에게 어울리지 않는 바보 같은 질문이라 생각하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나 하나밖에 없어.”
그에 루는 터무니없는 소릴 듣는다는 얼굴로 조소했다.
“개소리. 어제는 한 명 더 있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