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리웨인은 훌륭한 사냥꾼이었다.
그가 쏜 화살은 다섯 발 중 넷이 명중했으며, 예민한 촉으로 사냥감의 이동 루트를 정확히 파악했다.
30분 가까이 지났을 즈음에는 다섯에 가까운 사냥감으로 내 말의 엉덩이가 몹시 무거워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5위 내는 물론 1위도 노려 볼 수 있겠는데?’
때문에 나도 더 열심히 시중을 들었다.
“자, 리웨인 경. 쭈욱 들이켜. 그때그때 물을 마셔야 몸에 제대로 활력이 도는 거야.”
“이건 내가 정리할 테니 편히 쉬고 있어, 리웨인 경.”
“리웨인 경. 이제 보니 조금 성급한 느낌이 있네.”
“그러게 내가 이쪽은 아닐 것 같다고 말했잖아, 리웨인 경!”
“리웨인, 이 멍청한 녀석!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해!”
나의 열렬한 시중 덕분에 리웨인의 사냥 능률은 빠르게 올랐다.
물론 그의 안색은 능률과 반비례한 속도로 안 좋아지고 있었지만, 나랑 상관없는 일이었다. 너도 내 청혼받기는 싫을 거 아니야?
그렇게 사냥이 시작된 지 1시간 반이 조금 안 됐을 때.
딸랑.
어디선가 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오전 사냥 종료 10분 전을 알리는 소리였다.
마침 휴식을 취하고 있던 터라, 우리 조는 곧장 사냥 본부로 돌아갔다. 이어서 먼저 귀환해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귀족들을 지나쳐 점수가 게시된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거 좀 기대되는걸.’
못해도 2등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확인한 점수판은…….
『<1등> 2조 (사냥꾼 : 라파엘로 제나일, 보좌 : 게른 로즈벨) 140점
<2등> 3조 (사냥꾼 : 지하르크 버클리그레이튼, 보좌 : 케이트 에자넬) 120점
<3등> 4조 (사냥꾼 : 고트 로즈벨, 보좌 : 에밀리아 로즈벨) 105점
<4등> 1조 (사냥꾼 : 리웨인 웍호드, 보좌 : 데이지 웨더우즈) 100점
.
.
.』
처참했다.
말도 안 돼.
‘그렇게 열심히 사냥했는데도 고작 4등이라고?’
물론 44개의 조 중에서 4등을 달성한다는 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그러나 우리 조는 사냥 실력도, 성과도 압도적으로 월등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우승에 한없이 가까운 속도였다는 뜻이다.
‘게다가 검성의 조는 지나칠 때마다 여유롭게 쉬면서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2등? 우리보다 20점 넘게 땄어? 시시덕거리는 와중에 챙길 건 다 챙겼다고? 저런 괴물들을 다 봤나.
나는 한숨을 삼키며 리웨인을 돌아봤다.
“안타깝네, 리웨인 경. 우리 둘의 결혼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어.”
점수가 아쉬운 건지, 아니면 나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아쉬운 건지. 리웨인이 드물게 아쉬워 보이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너무 우울해하지 마. 나 이래 봬도 꽤 괜찮은 여자거든.”
“예…….”
어른스러운 듯해도 아직 어리구나.
나는 리웨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휴식 공간으로 이동했다. 조금 풀이 죽은 듯한 그의 입에 다과를 쑤셔 넣고선 궁금했던 사안을 물었다.
“그런데 이번 사냥, 명색이 사냥 대회면서 우승 상품은 없는 거야?”
리웨인은 맛대가리 없다는 표정으로 입 안의 비스킷을 꼭꼭 씹으며 대답했다.
“우승 상품은 관례상 사냥 대회 둘째 날에 공개됩니다. 첫날 사냥은 오락에 가깝기도 하고, 점수 분배 자체가 둘째 날 사냥에 몰려 있습니다.”
“오락인데 성적이 저렇다고?”
어처구니없다는 내 반응에, 리웨인이 처음으로 가벼운 웃음이랄 것을 흘렸다.
“그분들이야 원체 대단하시니까요.”
점수판을 다시 스윽 확인한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라파엘로 공작 각하께서는 오후 사냥 때 자작님을 지목하시겠군요.”
“아마 그렇겠지.”
“자작님은…… 공작 각하와 한 조로 움직이는 것을 꺼리시는 듯했습니다만. 제 추측이 맞는지요.”
“뭐, 따지자면 그래.”
“제 실력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휴식에는 1조가 1등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게 네 잘못이겠니. 인간 병기로 태어난 라파엘로와 검성 기타 등등의 잘못이지.
힘내자는 의미로 서로의 샴페인 잔을 맞댈 때였다.
“어이, 리웨인! 간만에 같이 사냥을 즐기겠는데? 보니까 4위나 되더…… 아! 안녕하십니까, 웨더우즈 자작님!”
웬 청년 한 명이 시끄럽게 다가오더니, 자신을 ‘게른 로즈벨’이라고 소개했다.
게른이라면 라파엘로와 한 조였던 보좌일 텐데.
‘그런 그가 리웨인을 찾아왔다는 건…….’
예상대로, 게른의 뒤를 소리 없이 따라온 하인이 있었다. 조용히 허리를 굽힌 하인은 내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라파엘로 제나일 공작 각하의 지목을 받으셨습니다. 오후 사냥 시간 동안 2조의 보좌로 활동하시면 됩니다.”
으음.
나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두 동갑내기를 바라봤다.
‘조금 편해진 것 같아서 무도회 파트너나 제안하려 했더니만.’
끼어들 틈이 없겠어.
조용히 일어서자 리웨인이 나를 바라봤다. 상황을 대충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가볍게 눈짓한 후 저 멀리 보이는 라파엘로 쪽으로 이동했다. 가벼이 술을 드는 그의 곁으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날 계속 무시할 줄 알았는데.’
라파엘로와의 관계는 만찬회 이후 살짝 어색해진 상태였다.
물론 이 어색함은 다분히 일방적이다. 그와 나 사이에 바뀐 점이라고는, 더 이상 라파엘로가 먼저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는 점뿐이었으니까.
그 딴에는 나를 챙긴다고 파트너로 지명했던 것인데 돌아온 건 같이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답이었으니…… 언짢아질 만도 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대충 설명하면 대충 납득하고 넘어가지 않았나?’
그건 친구 안데르트와 친구 라파엘로였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아쉬웠다.
나와 라파엘로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라파엘로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역시 천천히 물러섰다.
나와 그를 번갈아 살피다가 저들끼리 조용히 속삭이며 사라지는 모습이…… 뭐랄까…… 약간 내가 더러운 벌레가 된 기분이랄까…….
그래도 치정 소문이라는 건 들러붙는 사람이 없어서 좋구나.
눈이 마주친 라파엘로가 목례했다. 대놓고 무시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능한 아무렇지 않게 첫 운을 뗐다.
“그렇게 사냥감이란 사냥감을 죄다 쓸어 가 버리면, 내일 사냥은 어떻게 진행하라는 거야?”
산더미처럼 쌓인 사냥감을 턱짓하자 라파엘로는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는 낯으로 대답했다.
“쓸어 가든 말든 다음 사냥과는 관련 없습니다. 둘째 날은 적어도 생물을 사냥하지 않으니까요.”
“생물을 사냥하지 않는다고? 그럼 뭘 사냥해?”
쟁반 맞추기 같은 걸 하나.
“마귀.”
“……마귀?”
내가 아는 그 마귀?
순간, 각양각색의 상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설마 황실이 마귀를 양성하고 있는 건가? 고작 사냥제 따위를 위해서?
‘하지만 라파엘로는 분명 생물이 아니라고 표현했어.’
그 말인즉슨.
“환각 마법을 활용하는 건가?”
“예. 정신 마법 트랩과 유사한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환각. 그리고 마귀 사냥이라.
“괜찮아?”
빈 술잔을 하인에게 돌려준 라파엘로가 내 물음에 느리게 되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나라면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 것 같거든. 무려 10년 동안 제국을 불바다로 만든 놈들이기도 하고. 괜스레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르지 않을까 해서.”
나만 하더라도, 평화원에 발 한번 들였을 뿐인데 전쟁터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환각과 환청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나름 정신력이 나쁘지 않다 자부하던 나조차도 벽을 넘고 나서야 전쟁 후유증을 이겨 냈다.
벽을 넘지 못한 참전 군인들에게 환각을 통한 마귀 사냥은 지옥으로 떠밀리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다.
“누이께서는…… 정말 상냥하시군요.”
마주친 라파엘로의 시선은 그가 뱉은 말이 조롱처럼 느껴질 만큼 차가웠다.
“참전 군인 대개가 개조된 정신 트랩을 통해 후유증을 치료했습니다. 이후 문제라고 표현할 법한 사태는 발생한 적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는 내일 사용될 정신 트랩이 훈련용으로 제작된 트랩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아. 버클리그레이튼 가문에서 연구한 치료법 말하는 거, 맞지?”
“예.”
“……라파엘로는 검성을 믿어?”
라파엘로가 무슨 의미냐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둘 사이의 전우애를 의심하는 건 아니야. 황실에서 진행하는 소생 실험도 그렇고, 버클리그레이튼 가문도 필시…….”
“지하르크 공작님께서 언제나 대의를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지요. 그 부분은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습니다. 치료법으로 계교를 부릴 분은 아니십니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검이지. 황명을 거역하지는 못할 거야.”
“그걸 아시는 분이 지하르크 공작과 사적인 만남을 가집니까? 누이의 몸에 손이라도 대면 어쩌려고 그리 조심성이 없는 겁니까?”
“…….”
“누이의 의심은 틀리다 할 수 없습니다. 지하르크 공작은 가능한 한 멀리하십시오. 이리겔 회담 테러 용의자로도 의심되는 상대이니 공적인 자리에서만 담화를 나누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 발언에서는 나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귀족회 테러의 주도자가 검성일 수도 있다고?’
그런 의심을 하면서도, 라파엘로와 검성은 서로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건가?
한때는 서로가 서로를 굳게 신뢰했던 아군이었는데. 이제는 정적이 되어 당연하다는 듯이 경계한다. 그 변화를 목전에서 맞이한 탓인지, 가슴 안쪽이 살짝 무거워졌다.
나는 작게 어깨를 으쓱이며 “명심할게.”라고 대답했다.
라파엘로가 안장에 오르기 무섭게 오후 사냥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말 머리를 돌린 그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음. 나도.”
우리는 선두로 숲속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과거의 연을 한번 돌이켜 보게 돼서일까.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의문이 두루뭉술하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심문 이후 라파엘로와는 안데르트에 대해서 통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지.’
우리 사이를 잇는 유일한 연결점이 안데르트임을 상기하면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차마 꺼낼 수 없는 건가.’
하기야 나는 안데르트의 친누이이기까지 하니까.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겠다, 고백 각이나 재 볼까. 나는 자연스레 앞장서는 라파엘로의 뒤통수에다 대고 물었다.
“나타샤 황녀가 안데르트의 시신을 아직 찾는 중이라고 했지.”
“예.”
“만약 시신을 못 찾는 이유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