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195)

60화

‘방은 다섯 개. 밖에서 창문을 확인했을 때 불이 켜져 있던 방은 뒤에서 네 번째, 세 번째 방.’

암살자가 가장 먼저 들어간 방은 통상 집주인이 침실로 사용하는 위치의 방이었다.

끼이익. 문은 아주 조용하게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방은 다른 방에 비해 가구가 많았다.

노인 취향이 분명한 화려하기 짝이 없는 붉은 꽃무늬 캐노피가 자리한 것으로 봐선, 아주 잘 찾아온 듯했다.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가간 암살자는 측면에 커튼처럼 내려온 캐노피를 단번에 거두었다.

촤락!

그 순간. 섬광처럼 튀어나온 물체가 그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커헉!”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이다.

암살자는 다급히 뒤구르기 하며 벽 쪽으로 물러섰다.

‘뭐지? 검? 아니면 총?’

가슴 부근을 더듬었다.

통증은 존재하는데 진득한 피가 느껴지지 않는다. 믿기지 않는다. 분명 심장을 난도질하듯 사나운 타격이었건만!

스릉.

마른침을 삼킨 암살자가 품에서 칼을 빼 들었다. 짧지만 날카로운 이 칼은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기에 최적이다.

‘……없다.’

하지만 정작 그를 공격한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리 여긴 순간 등 뒤에서 낯선 숨소리가 들려온다. 암살자는 본능적으로 등을 돌렸다.

어둠 속 흐릿한 인기척을 앞에 두고 두 팔을 든 채 얼굴을 가렸다. 그래야만 상대의…….

“헉.”

상대의 공격을 전혀 막을 수 없었다.

“컥!”

그는 얻어터졌다.

“으윽.”

계속 얻어터졌다.

“큭…….”

계속.

“…….”

영원히.

“아, 안 돼! 그만!”

그 순간, 암살자의 얼굴을 집요하게 노리던 주먹이 꾹 끊겼다.

시야가 노랗다는 게 이럴 때를 가리키는 걸까?

홧홧한 통증 속에서 고개를 들자,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선 몹시 이질적인 여인이 보였다.

달빛을 역광으로 선 여인의 얼굴은 하얬다.

형형하게 빛나는 연둣빛 눈동자는 그가 숱하게 보아 온 그 어떤 무인의 눈보다 차가웠다.

암살자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강자다.’

나는 이 여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깨달음과 동시에, 암살자는 입 안에 숨겨 둔 <자비로운 한 입>을…….

“이거 찾아?”

암살자는 여자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낀 작은 알약을 바라봤다. <자비로운 한 입>이었다.

‘내 잇몸 안에 박혀 있어야 할 알약이 왜 저기에……?’

상황 판단은 빨랐다.

암살자는 황급히 소매를 뒤졌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항상 예비 <자비로운 한 입>을…….

“미안한데 두 개야.”

없다.

‘어라.’

고개를 들었다.

여인의 손가락 사이에 걸쳐져 있던 알약이 두 개로 늘어나 있었다.

하하. 살갗에 소름이 일 정도로 건조하고 살벌한 웃음을 터트린 여자가 오른손도 들어 올렸다.

“사실은 네 개지롱.”

<자비로운 한 입>이 네 개.

그 말은…….

“영차.”

침대 뒤편으로 걸어간 여인이 바닥에 쓰러진 무언가를 짐짝처럼 들고선 암살자 앞에 떨구었다.

“꾸엑!”

흉하기 짝이 없는 비명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함께 말리콥스 조 납치 임무를 수행하던 또 다른 암살자였다.

‘대체 언제?’

좌절감이 덮쳤다.

이토록 선명한 절망감을 과거 언제 느껴 봤지?

암살자는 이제껏 많은 미친 살인마들을 상대해 왔다고 자부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상대의 행동과 언사는, 확신컨대 보통 미친 상태가 아니었다.

보통 힘을 과시하려는 자들은 한껏 여유로운 체하거나 정반대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적의 기세를 찍어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에게선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 같았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아주 평범하고 가냘픈 여인.

여자는 그랬다. 그래서 더 미쳐 보였다.

‘특히 저 눈!’

저 또라이 같은 눈을 보라.

뛰어난 암살자인 자신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눈이다. 원래 저렇게 멍한 눈이 더 위험한 법이었다.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탁, 탁. 가볍게 손을 턴 여인이 나무 의자를 끌고 와 그들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주 놀라운 이름을 입에 달았다.

“의외의 행보네. <클론>이 이곳까지 손을 뻗을 줄은 몰랐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암살자는 힐긋 동료를 바라봤다.

열심히 고개를 내젓는 걸 봐선 이 녀석이 분 게 아닌 듯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안 물어봐?”

그리 물은 여자가 암살자의 멱살을 쥐었다.

“안 물어봐?”

저 순수한 의문을 담고 있는 눈동자. 암살자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큭. 어, 어떻게, 알았지?”

“내가 바로 미드윈트리의 제일가는 <클론> 사냥꾼이거든.”

‘……미드윈트리?’

순간, 암살자의 머릿속으로 요주 인물의 인상착의가 스쳐 지나갔다.

옅은 연두색 눈동자에 갈색 머리. 희지만 작고 동그란 얼굴형. 멍한 인상. 아!

“데이지 파거!”

그 여자가 이 자리에 있다니. 웨더우즈 저택을 감시하던 길드 상부로부터 어떤 알림도 받지 못했는데?

데이지 파거는 놀란 얼굴을 한 그를 묘한 얼굴로 쳐다봤다.

‘날 이제야 알아봤어?’ 하며 의문을 품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곧 이해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날 노리고 숨어든 게 아니구나. 그럼…… 이 저택의 주인을 노린 건가? 말리콥스 할아버지?”

“…….”

“말리콥스 할아버지 맞아?”

“…….”

“너 좀 근성 있다.”

난 근성 있는 애들 좋더라.

그 중얼거림이 들린 직후, 눈앞이 번뜩였다.

생에 맛본 적 없는 고통이 암살자의 몸을 관통한 것이다.

이후 그들은 또 죽도록 처맞았다.

“억울해하지 마. 나는 재미로 널 때리는 게 아니야. 평화를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거지. 그래서 네 목적은?”

암살자는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말리콥스 조 납치입니다…….”

“안 들리는데.”

“말리콥스 조 납치입니다!”

“지도는?”

“……예?”

“지도는 안 찾느냐고.”

“저희는…… 납치 임무만 전달받아서…….”

“지도는 빼고, 납치라.”

가만히 듣고 있던 데이지 파거가 짧은 탄성과 함께 암살자를 돌아봤다.

“아, 맞아. 너희 웨더우즈 말살 임무 받았다며?”

오른쪽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동료가 곧바로 외쳤다.

“저는 들은 바 없습니다!”

“…….”

“왼쪽의 너는 있나 보네.”

동료가 아니라 적이었군.

암살자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는 이 미친 여자에게서 밀가루 반죽처럼 처맞던 2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자 절로 혀가 움직였다.

“하, 한때 잠깐 언급됐을 뿐입니다. 말살 임무는 감시 임무로 조정되었습니다.”

“감시? 웨더우즈 저택을 감시하고 있다는 건가? 내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잖아.”

“저희도! 그래서! 데이지 님을 뵙고!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데이지 파거의 눈이 다시 고심에 빠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루 씨. 감시하던 애들은 혹시 루 씨가 처리한 거야?”

아무도 없는 공간에 말을 걸다니.

안 그래도 무서웠던 여자가 더 무서워지려는 순간. 귓구멍이 간지러울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침대 앞에 아주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남자는 신장이 아주 컸다. 머리가 너무 높은 위치에 달려 있어서인지, 얼굴은 까만 그늘에 가려져 턱 아래만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나이트가운을 걸친 남자가 느긋하게 뒷말을 이었다.

“잔디를 망가뜨리기에.”

수염 하나 없이 말끔한 턱을 쓸던 그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흐음. <클론>이라고 했나? 다른 녀석도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

“그건 못 들었어. 바로 자결하던걸. 요즘 인간들은 너무 빡빡하게 산다니까. 누구는 차마 못 죽여서 남의 집에 집 지키는 개로 밀어 넣는데. 그렇지?”

“자결 못 하게 막았어야지. 루 씨는 그런 것도 못 해?”

“못 해. 늙으면 순간 판단력과 행동에 제한이 많아지거든.”

이후 침실을 고요해졌다.

데이지 파거가 허공을 노려보며 “라파엘로…….” 하고 속삭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녀는 암살자 앞에 섰다.

“일단.”

암살자의 눈과 데이지 파거의 연두색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자고 있어.”

세상이 검게 물들면서, 암살자의 정신이 끊겼다.

* * *

나는 정신 잃은 암살자들을 침대 다리에 앉혀 놓고 꽁꽁 묶었다.

그리고 레냐를 데려와, 오늘 일어난 일을 자초지종 설명했다.

“아, 암살자들이 주인님을 노렸단 말인가요?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짐작 가는 부분 없어?”

“짐작…… 짐작 가는 부분은…….”

순간, 울상이 된 레냐가 반쯤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어쩌죠?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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