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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50/195)

50화

하녀장은 예정보다 일찍 귀환한 우리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어째서 이 시간에 그 모습으로…… 맙소사, 결국 일을 쳤군요!”

나에 대한 하녀장의 비루한 신뢰도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날 밤, 루가 에슐라 저택으로 돌아간 후.

나는 귀족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빠짐없이 하녀장에게 알렸다.

로즈벨 백작과의 만남, 예거시와 볼크윈과의 인연, 상류층 파벌, 검성과의 언쟁, 이리겔 저택 테러 사건, 라파엘로의 등장까지…….

진과의 결투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호하게 한두 가지 사실을 숨기려 들다가, 나중에 된통 들키면 한번 끊어진 신뢰를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지금 있는 신뢰도 썩 쓸모 있는 신뢰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단 한 가지.

‘검성이 의뢰인이란 사실은 아직 숨기는 게 낫겠지.’

특별히 숨기고 싶어서 숨기는 건 아니다. 단지 하녀장에게 내보일 증거가 부족했을 뿐.

이 부분은 살짝 흘리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데이지 양, 당신이 진 버클리그레이튼 같은 유명한 검사를 이겼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이렇게.”

주먹을 흔들자 하녀장은 조용해졌다. 어느 정도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요. 손짓 한 번으로 성인 남자도 날려 보내는 당신인데, 젊은 검사쯤이야.”

그거랑 그거랑은 다른데. 검을 배우지 않는 사람들은 힘이 다라고 생각하는구나. 내버려 두자.

“사건이 많았네요. 이리겔 별장에서 테러까지 일어났을 줄이야. 무사히 귀가해서 다행입니다, 데이지 양.”

끄덕.

“웨더우즈 자작님이 제나일 공작가를 방문하게 된 일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죠. 당신과 내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입을 맞춰야 할 것 같군요.”

“라파엘로, 아니, 제나일 공작과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어 보임.”

“제나일 공작은 누가 뭐라 해도 연합군의 제일가는 전쟁 영웅이에요. 지금은 심지어 귀족회의 수장 격이기까지 하죠. 감이 아주 날카로울 거예요. 우리 웨더우즈 가문에 의구심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예상외로 하녀장은 내 출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참견하기에는 코앞에 닥친 일의 무게가 엄중했으니까.

검성과 라파엘로를 만난 후. 나는 전에 없던 작은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다.

‘웨더우즈 가문이 과연 언제까지 주인의 부재를 숨길 수 있을까?’

공식적으로 웨더우즈 가문의 가주는 그레이 웨더우즈 자작이다.

하녀장조차 굳게 믿고 있던 이 존재는, 디안 케트의 눈알로 밝혀지면서 가상의 인물이었음이 판별 났다.

따라서 웨더우즈 가문은 사실상 주인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하녀장님.”

깊은 수심에 잠겨 있던 하녀장이 나를 바라봤다.

“말하세요.”

“우리 봉급은 누가 주는 거지?”

“봉급이요? 그야 우리 웨더우즈 가문에서 보내는 것이죠.”

“하지만 웨더우즈 자작은 없어. 주인이 없는데 어떻게 봉급이 나온다는 거야?”

하녀장은 허를 찔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건.”

나는 그런 그녀 앞에 맹세의 흔적을 스윽 내밀었다. 복잡한 눈으로 흔적을 바라보던 하녀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렇게 된 이상 마냥 숨길 수도 없겠죠. 음. 웨더우즈 가문에는 가문의 안위를 돌봐 주시는 어르신이 한 분 계십니다.”

“로즈벨 백작?”

“아니요. 어르신은 미드윈트리 서부에 위치한 웨스트윈트리에 거주하고 계셔요. 마침 한번 찾아뵐 때가 되었네요. 당신을 대신 보내면 되겠어요.”

웨스트윈트리?

나는 소리 없이 환호했다. 웨스트윈트리는 내가 미드윈트리에 정착한 원인 중 하나이지 않은가?

‘그곳 개인 전시관에 디안 케트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지?’

간 김에 훔쳐 와야지.

어차피 전시관에 있는 것도 훔쳤을 확률이 높으니까. 도둑놈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만큼 정의로운 일이 없다.

그렇게 <앞으로의 웨더우즈 가문을 위한 회담>을 짧게 끝내고, 각자의 침실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하녀장이 계단 위로 올라선 나를 불러 세웠다.

“……데이지 양.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올 게 왔군.

나는 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라.”

하녀장의 미간이 대번 구겨졌다.

“말해라? 말투가 그게 뭐죠? 아니, 그건 됐고. ……당신은 루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루 씨?”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루 씨에 대해 의구심을 생기더군요. 그의 마법 능력과 재력이 놀라운 수준이라는 건 알아요. 한데 설마 비행선까지 소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죠. 귀족회에서 보인 대범함도 내 상상 이상이라 많이 놀랐네요.”

“…….”

“그 같은 사람이 어째서 웨더우즈 가문의 고용인 노릇이나 하고 있는 걸까요?”

미안하지만 그 질문은 나도 백 번 정도 했다.

“데이지 양은 루 씨가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그가 어떠한 해를 끼치기 위해 저택에 잠입한 건 아닐까요?”

하녀장은 루의 배신을 논하는 것일까.

‘맹세의 각인을 나눴는데도 어지간히 걱정되나 보지.’

배신자는 보통 두 가지 얼굴을 지니기 마련이다.

숨길 수 없는 간절한 욕망을 지니거나.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데 급급하거나.

하지만 루는 둘 중 어느 인간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지대한 목적의식이나 욕망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디안 케트의 유물을 찾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에게 딱히 중요한 목표가 아닌 느낌이야.’

또한 루는 자신의 비밀을 숨기는 데 급급한 적도 없었다. 기실 나는 루의 이런 부분이 가장 의아했다.

‘자신의 신분과 목적이 궁금하면 꽃을 피워 보라 한 주제에.’

본인이 어떤 마법 능력을 지녔는지 거리낌 없이 보여 주는 건 물론, 비행선에서 자신을 따르던 이들의 태도도 서슴없이 내보이니.

사실상 말장난인 격이지 않은가?

“루 씨가 그랬는데. 자기 나이가 백 살이 넘는대.”

사실 150세도 넘지만, 루의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기 위해 50세 넘게 낮췄다.

하녀장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루 씨가 정말 그랬나요?”

“응. 그 정도 외에는 나도 루 씨에 대해 잘 몰라. 하지만 루 씨는 무엇이든, 나한테 거짓말한 적 없어.”

……있었나?

“나는 과거 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루 씨가 몇 번 도와줘서 비교적 쉽게 이겨 내기도 했고. 자아 성찰을 도와주기도 했고.”

……그런데 괴롭힌 적이 더 많지 않았나?

“하여간 루 씨는 수상할지언정, 위험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그 사람보다는 제나일 공작이나 검성이 더 위험해. 이건 확실해.”

내가 왜 그 미친놈 편을 들어 주고 있담. 괜히 힘이 쭈욱 빠졌다.

대뜸 나온 검성의 이름이 의아했는지, 하녀장이 내게 물었다.

“검성이라면 버클리그레이튼 공작을 말하는 건가요? 어째서죠?”

“그 사람, 디안 케트의 유물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아.”

“확실한가요?”

“아니. 감인데.”

그러니까 믿든 말든 하녀장의 자유다. 적어도 증거가 없는 지금 선에서는 그랬다.

가만히 서 있으면 더 깊게 캐물을 기세라, 나는 눈알이 빠지게 졸린 척 길게 하품하고 서둘러 침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눈을 감았다.

‘역시 집이 최고야. 집 밖은 위험해.’

비행선에서는 느낄 수 없던 달콤한 편안함이 나를 덮었다.

하지만 늘 그러했듯, 제대로 된 숙면에 들기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다음 날.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아기처럼 작고 아담한 ‘화분 루’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귀가 직후 내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로궤를 조사하는 일도, 집사 암살자를 만나는 일도, 매일 20분간 진행되는 하녀장의 교육에 참석하는 일도 아니었다.

바로 청소다.

청소와 빨래는 하녀의 의무이자 존재 의의.

그리고…… 내 직업!

“데이지 양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일거리가 많이 쌓였어요. 우리 다시 힘내 봅시다.”

“네.”

나는 오랜만에 노예처럼 일했다.

가문에 몇 점 남지 않은 그림의 먼지 털기. 액자 닦기. 다시 설치하기. 2층 계단 손잡이와 계단 먼지 털기. 청소 솔로 닦기. 사용하는 사람도 없는 침실(들)의 침구 빨래하기. 무한으로 털기. 창틀 먼지 청소. 창문 청소. 바닥 먼지 털기. 바닥 솔로 닦기. 기름칠하기…….

“미.”

친 집이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이 집의 노예 하녀임을 자각했다.

나는 루가 만들어 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자정쯤 펍으로 가 집사 암살자를 만나려다가.

그냥 잠들었다.

웨더우즈 저택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맞이하는 숙면이었다.

그다음 날.

오전 일과가 조금 이르게 끝난 후, 점심 식사가 시작되기 20분 전.

하녀장의 사회성과 공중 윤리 수업이 시작됐다.

사회성과 공중 윤리 수업이란, 심신일체 경지에 도달해 지각한 날 하녀장이 만든 교육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따위 지루하기만 한 인간 수업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재빨리 손을 들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로궤가 무엇이냐고요?”

“네.”

심각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던 하녀장이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늘의 수업은 상식 수업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설마 우리 데이지 양이 로궤도 모를 줄은 몰랐네요. 진작 병행할 걸 그랬어요.”

휴우. 하녀장이 내 상식 수준에 의문을 표하지 않아 다행이야.

내가 멍청한 게 당연하게 느껴지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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