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비행선?”
남성이 놀란 눈으로 검성을 바라봤다. 그에 검성은 루에게 되물었다.
“미확인 비행 물체가 웨더우즈 부인 소유의 비행선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백색 몸체. 하부에는 하늘색의 띠가 칠해져 있고, 선미의 날개는 푸른색. 맞지?”
입을 벌린 남성이 놀란 눈으로 검성에게 말했다.
“마, 맞습니다. 각하, 미확인 비행 물체의 외관이 부인께서 설명하신 외관과 똑같습니다.”
남성 못지않게 놀란 나도 루를 쳐다봤다.
‘비행선도 가지고 있어? 대체 언제 부른 거야?’
수도 라갈에 요청한 지원병도 7시간은 족히 걸려서 도착한다는데. 얼마나 앞서 일찍 연락한 거지?
아니면 비행선이 아예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건가?
“……귀찮으시겠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당장 정박을 허가할 수 없습니다. 절차에 따라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루는 아주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장 열 개가 넘는 질문에 답하고 나서야 우리는 대피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웨더우즈 자작도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우리가 걱정됐는지, 예거시와 볼크윈이 부득불 따라붙었다.
고마운데 귀찮았다.
“이곳입니다.”
남성은 우리를 별장 뒤쪽, 한눈에 담기도 힘들 만큼 너른 초원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초대형 비행선 블랙라갈호와 라파엘로의 소유로 예상되는 새까만 비행선, 그리고 새하얀 비행선이 하나 정박해 있었다.
사실, 이 이후의 절차도 아주 귀찮았는데.
“웨더우즈 부인. 그러니까, 부인의 말씀은…… 현재 웨더우즈 자작님이 이리겔 별장 내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고, 웨더우즈 자작님을 모셔 오기 위해 비행선의 승무원들이 별장 내로 진입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죄송하지만, 신분이 제대로 보장된 사람만이…….”
이후 설득 과정은 설명하기도 귀찮으므로 생략한다.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안 루의 비행선에서 내린 승무원들이 별장에 들어가서 웬 짐짝을 하나 등에 이고 나왔다.
이불로 둘둘 말린 저 수상한 짐짝.
‘설마 저게 나야?’
뭐, 얼굴은 안 보이고 좋은데. 그래도 명색이 자작님인데 너무 막 대하잖아.
“데이지?”
루가 멍하니 선 내 손을 자기 쪽으로 잡아끌었다.
“끝났어.”
그와 동시에 비행선의 정제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초록색 풀잎과 흙이 먼지처럼 허공에 부상했다.
곁으로 다가온 검성이 루에게 인사했다.
“그럼, 웨더우즈 부인. 귀환 중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근시일 내 다시 뵙기를.”
그리고 내게도 인사하려 했으나, 루의 적절한 방해로 끊기고 말았다.
“가자꾸나, 우리 멍멍이.”
검성의 시야를 가린 채 내 손을 이끈 루가 비행선 입구까지 연결된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우리 뒤를 바짝 쫓아온 예거시와 볼크윈이 사다리 아래에서 목소리로 외쳤다.
“웨더우즈 부인! 그레이에게 예거시와 볼크윈이 크게 걱정한다고, 건강을 되찾으면 꼭 편지 한 통이라도 붙여 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신문사로 보내도 좋고, 파뉼라 저택으로 보내도 좋습니다!”
“제 안부도 전해 주세요!”
이건 조금 감동이네.
‘하지만 웨더우즈 자작이 저 친구들에게 연락할 날이 과연 올까.’
루와 내가 비행선에 올라타자, 비행선의 출입문이 완전히 닫혔다.
길고 길었던 귀족회 나들이가 드디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라고 생각했던 5분 전의 나 자신.
너무 순수했달까.
그렇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기도 한 법.
귀가하는 비행선에 오른 내 눈앞에는, 이전과 다른 새롭고 괴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
“- -- - - - - -!”
서른에 달하는 대인원이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바짝 낮추었다.
마치 왕을 영접하듯. 그들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서 동시에 입을 열고 또 동시에 입을 닫았다.
“- -- - —!”
단 한 명, 루를 위해서.
“- -- - - - - -!”
심지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를!
* * *
라갈의 지원병은 예정보다 조금 빠른 저녁 7시에 도착했다.
라파엘로는 황실의 문양이 새겨진 군용 비행선을 묵묵히 응시했다.
열이 넘는 테러범들이 사지를 구속당한 채 군인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라갈에 지원병을 요청한 직후, 그는 간단한 현장 조사에 임해야 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아직 테러범이 일으킨 정신 마법 트랩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 낭비였기 때문이다.
‘한 명당 최소 4개의 맹세의 각인이라…….’
이토록 철저하게 입막음당한 암살자들은 처음이었다.
모든 방면에서의 기밀 발설을 완벽하게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맹세의 각인.
14년 전만 해도, 맹세의 각인은 절대 지워 낼 수 없는 완전무결한 최상위 마법으로 취급받았다.
그 누구도 파훼법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터닝 포인트는 마도 전쟁이었다.
현세대 마법 이론은 마도 전쟁을 기점으로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고, 맹세의 각인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류는 결국 파훼법을 발견해 냈다.
다만 이 놀라운 성취는 세간에 발표되지 않았다.
군사 마법부 내부에서의 발견인 데다, 불안정성이 워낙 커 3년 가까이 철저하게 기밀로 치부됐다.
3년 동안 끝없이 보완하고 수정했지만, 맹세의 각인 파훼법은 한숨이 나올 만큼 난해하고 복잡했다.
맹세의 각인 단 한 개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마법력 전부를 고스란히 활용해야 했기에 인력을 차출하는 과정부터 심히 고역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번 암살자들은 무려 4개의 맹세의 각인을 새겼다.
파훼법으로 일일이 지우기에는 시간과 인력이 너무 많이 든다.
또 트랩을 설치한 과정이 몹시도 전문적이라, 맹세의 각인이 지니는 특성에 대해 무지하다 판단하기에도 어려웠다.
이는 즉.
‘군부에 각인 파훼법이 있다는 걸 아는 자가 테러를 주도했을 확률이 높다. 범인은 펜 로타 군부 기밀에 꽤 밝은 사람이야.’
그렇다면 범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테러범들을 끌고 가던 사관 중 한 명이 라파엘로에게 다가왔다.
“총사령관님. 테러범 이송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지원병으로 차출된 스무 명 역시 블랙라갈호에 배치 완료했으며, 승객 신원도 전원 확인했습니다. 총사령관님의 출발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하르크 공작 각하는?”
“예! 블랙라갈호에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라갈로 출발한다.”
“예!”
라파엘로는 부사관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선에 올랐다.
이 비행선의 캡틴은 그가 아니었기에, 라갈에 도착하기까지 쉴 수 있는 개인 선실로 안내받았다.
똑똑.
그가 선실에 도착하기 무섭게 드셰로가 문을 두드렸다.
“각하. 퀸 섬과 관련해 새로운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드셰로가 내민 것은 지원병과 함께 도착한 기밀 서신이었다.
라파엘로는 무뚝뚝한 눈으로 제 앞에 내밀어진 서신 봉투를 바라봤다.
“드셰로. 일전에 더는 내게 보고할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일단 봉투를 받았다.
이미 뜯긴 봉투를 여는 손이 느긋하다.
봉투가 열려 있다는 건 드셰로가 이미 확인했다는 뜻이고, 이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라파엘로의 당부를 기억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 저도 압니다. 하지만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는 드셰로의 눈빛은 단호했다.
“오늘 만난 웨더우즈 백작 부인의 하녀 말입니다. 혹시 어떤 이름이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는 수려한 미녀 뒤에 숨어 있던 앳된 낯의 여인을 떠올렸다.
“베르티 루샨.”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간결한 답에 드셰로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기억하시는군요. 각하께서도 아시겠지만, 퀸 섬의 난민들은 보호소에서 이뤄지는 직업 교육을 통해 하나둘 자립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자립했던 남성이 최근 난민 보호소를 방문했습니다만…….”
천천히 호흡을 고른 드셰로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그가 증언하기를, 베르티 루샨은 14년 전에 죽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생존자가 신분을 위조한 것 같습니다.”
신분 위조.
서류를 살피는 라파엘로의 머릿속에, 7시간 전 마주한 하녀의 신상이 재차 각인됐다.
얼마 전 퀸 섬에서 발견된 여자.
웨더우즈 자작 부인의 하녀.
본명은 베르티 루샨.
연두색 눈동자에 갈색 머리칼. 여자치고는 큰 키.
“증언을 확보한 이후, 베르티 루샨이 방문했던 미드윈트리의 인력 사무소를 조사했습니다. 베르티 루샨의 면접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름 데이지 파거, 고향은 남부 항구, 가족은 남동생 한 명.”
한데 그중에서…….
외형을 제외하고는 베르티 루샨의 인적 사항이 죄다 가짜였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