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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21/195)

21화

사람 셋과 알 하나가 옹기종기 모인 어두운 침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그만두세요!”

하녀장의 외침이 마치 비명처럼 들렸다.

일그러진 얼굴로 이마를 부여잡은 그녀는 짙은 후회가 이는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가 너무 섣불렀던 것 같습니다. 루 씨에게 함부로 이 방을 보여 주다니.”

그녀가 무어라 중얼거리든, 지탄받은 당사자인 루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눈치였다.

루는 단지 흥미로운 눈으로 웨더우즈 자작(알)의 표면을 살피기 바빴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사실이야?”

“물을 거면 주어 넣어서 물어보세요.”

못된 놈. 나는 하녀장의 눈치를 살피며 재차 물었다.

“이 알이 정말 <디안 케트의 다섯 가지 유산>이냐고 물었어.”

디안 케트의 다섯 가지 유산.

다섯 개를 모두 모으면 그 어떤 불치병도 완벽하게 치료한다는 전설의 마도구.

하녀장과 루가 맹세를 나눈 후. 셋이 함께 웨더우즈 자작의 침실로 올라온 것이 고작 5분 전의 일이었다.

수상하기로는 날고 기는 루도 주인님의 정체를 알고서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성큼성큼 침대로 다가갔다. 그러고서는 알의 표면을 자세히 살피며 한다는 소리가.

“하녀장. ‘이게’ 웨더우즈 자작이라고 했습니까?”

“그래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이 알은, 아니, 웨더우즈 자작님은 전 주인님이 제게 거듭 당부하며 양육을 맡긴…….”

“이건 생명이 아니에요. 고도로 정교한 마도구라면 모를까.”

“……뭐라고요?”

“특히 이 지극히 변태적인 취향의 외관.”

늘씬한 손가락으로 알의 표면을 스윽 훑은 루가 미약한 조소를 띠었다.

“아무리 봐도 디안 케트, 그 녀석이 만든 마도구 같은데.”

그에 기겁을 한 하녀장은 루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웠다.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한 태도였지만, 나는 하녀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지 못했다.

‘루는 뛰어난 마법사야.’

또한 나처럼 디안 케트의 유물을 찾는 자이기도 했다. 근거 없이 알의 정체를 매도할 이유가 없었다.

“……하아. 루 씨, 일단 사과하겠습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네요. 누구나 자작님의 정체에 의구심을 가질 법도 한데 말이죠.”

하녀장은 조금 차분해진 표정으로 입술을 뗐다.

“당신의 주장은 틀렸습니다. 저 알은 4년 동안 성장하고 있어요. 또 귀를 가져다 대면 맥박도 느껴지죠. 생명체가 맞습니다.”

“흠. 아무래도 하녀장님은 내 말을 못 믿는 것 같은데.”

음울한 눈매로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인 루가 돌연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럼, 뭐. 직접 확인시켜 드리지.”

콰직.

말릴 여유도 없었다. 루의 커다란 주먹이 진주처럼 매끄러운 알의 표면을 뚫고 꽂혔다.

‘이…….’

원래도 미쳤는데 오늘은 더 미친놈!

“안 돼!”

창백해진 낯의 하녀장이 부리나케 뛰어와 루의 가슴을 밀어 내려던 순간. 진줏빛 새하얀 알 표면에 갈색의 동공이 떠올랐다.

마치, 눈알처럼.

-피해 감지.

나는 똑똑히 보았다. 껍데기 안이 텅 비어있는 모습을.

-외피 복구.

이질적인 음성과 함께, 침대 위로 우수수 떨어졌던 껍데기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떠오른 껍데기들이 하나둘 본래의 자리로 찾아가자, 언제 구멍이 뚫렸었냐는 듯, 알 또한 본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갈색의 동공 또한 사라진 것은 물론이었다.

“이게 무슨…….”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녀장이 허망한 눈으로 뒷걸음질 쳤다.

“말, 말도 안 돼. 이 알이 정말 마도구라고? 그럼……. 나는? 나는 이제까지 무엇을 지키고 있었던 거지? 자작님은……. 자작님은 내게 대체 무엇을…….”

“그건 이제부터 알아봅시다.”

가벼운 답과 함께, 알 표면에 손을 얹은 루가 해석하기 힘든 주문을 길게 읊기 시작했다.

키이잉.

알이 공명했다. 이윽고 매끄러운 표면에서 청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처럼 부드럽게 일렁이던 빛 속에 영롱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하나둘 떠오르던 글자들은 순식간에 시야를 전부 채우고도 남을 만큼 불어났다.

그 경이로운 현상을 바라보던 하녀장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떨어졌다.

“정말, 마도구였구나.”

하녀장이 슬픔에 빠졌을 때 위로해 줄 사람은 하녀밖에 없다.

나는 하녀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의 비애를 달랬다.

“그냥 마도구도 아닌 고급 마도구.”

“…….”

“팔면 땡잡음.”

“……데이지 양은 사람 위로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네요.”

느리게 눈물을 닦아 낸 하녀장이 고개를 들어 허공의 글자들을 쳐다봤다. 공허했던 눈동자에 미약한 감탄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마법 해석본 아닌가요? 이렇게 상세한 해석본은 처음 보네요.”

“처음 볼 수밖에. 나 같은 불세출의 천재는 나밖에 없으니까.”

성의 없이 답한 루가 마법 해석본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아니, 요약했다.

“이 마도구의 용도는 방어용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광역 공격 마법이 심어져 있네요. 인공 자아에 각인된 목적은…….”

한 박자 쉬고, 묘한 어투의 뒷말이 덧붙여진다.

“웨더우즈 가문의 수호.”

“수호?”

“으음. 수호라는 단어만큼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그렇다는데, 하녀장.”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설마 오열하고 있나?’

걱정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괜한 걱정이었네.’

예상과 달리 하녀장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루의 마법 해석본을 올려다보는 시선은 자못 초롱초롱하기까지 했다.

방금 전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확실히 이렇게 길고 구구절절한 마법 해석본은 처음 봐.’

마법 해석본.

마법사가 자신의 직감과 통찰,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특정 마법의 설계도를 언어로서 펼치는 행위. 초보 마법사는 시도도 못 하는 고난도의 마법이다.

나 역시 마도 연합 소속 마법사를 통해 마법 해석본을 종종 봐 왔다. 하지만 대체로 흐릿한 낱말 몇 가지가 날아가거나, 짧은 문장 몇 줄이 떠오르는 게 전부였다.

‘이토록 체계적으로 펼쳐진 마법 해석본은 생전 처음이지.’

그 대단함이 확실하게 살갗으로 와닿는 이는 내가 아닌 하녀장일 테다. 그녀 역시 루처럼 마법사였으니까.

“맙소사. 설명 하나하나가 완벽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네요.”

커다랗게 뜨인 하녀장의 눈에는 어느새 존경심과 흥분이 샘솟고 있었다.

작게 떨리는 손끝이 허공에 새겨진 글자를 조심스럽게 훑었다.

루가 보인 경이로운 마법 때문인지, 그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던 하녀장의 기세도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부정과 분노를 넘어 어느 정도 타협에 이르렀나 보다.

‘진실을 인지했으니 이제 곧 우울증이 오려나.’

분노의 5단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4년간 헌신해 온 존재가 허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으니 후유증도 꽤 클 것이다.

어쩌면 삶의 의미를 잃고 잘못된 시도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루 씨,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죠? 누구 아래에서 마법을 배운 거예요? 그 나이에 이런 경지를 이룰 수 없을 텐데, 실제로는 몇 살인지 궁금하네요. 나는 해석 마법을 펼칠 때마다 눈앞이 새하얘지면서 정신을 잃거든요. 이건 단순히 연습 부족인 걸까요? 아니면…….”

아주 괜찮아 보이네. 전혀 걱정할 필요 없겠어.

그런데…….

“특히 이 지극히 변태적인 취향의 외관.”

“아무리 봐도 디안 케트, 그 녀석이 만든 마도구 같은데.”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화법이 있었는데 말이지.

“루.”

“루?”

“루 씨.”

그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디안 케트랑 아는 사이야?”

루는 팔짱을 낀 채 내 얼굴은 돌아보지도 않고 되물었다.

“궁금해?”

그 짧은 반문은 내게 새로운 확신을 심어 주었으니.

‘아는 사이가 맞구나.’

디안 케트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과 ‘아는’ 사이라는 건, 루의 나이가 최소 마흔 살은 넘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건 최소 나이일 뿐이고, 디안 케트가 100년을 넘게 살고 눈 감은 점을 상기하면…….

루는 몇 살쯤 되려나.

‘좀 또라이 같다 싶었는데.’

오래 산 마법사여서 그런 거였구나.

예로부터 나이 먹어서까지 마법을 공부하는 사람만큼 미친 사람이 없다고 했지. 이제 좀 납득이 가네.

이것으로 루의 정보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하나, 귀족이 아닌데 돈은 많다. 둘, 디안 케트와 아는 사이다.

“안 궁금해.”

“그래요? 아쉽네. 그러면 이제…….”

루가 허공에 손을 젓자, 방 안을 장식하던 마법 해석본이 물에 빠진 잉크처럼 흐트러졌다. 하녀장이 아쉬움 완연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고용주의 흥미로운 정체도 확인했으니. 우리는 이만 다음 계획으로 넘어갑시다.”

“다음 계획?”

“귀족회.”

그 말에 하녀장이 깊은 한숨과 함께 알을 쳐다봤다. 복잡 미묘한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확실히, 루 씨 정도의 마법 실력이라면…… 그 눈썰미 좋고 의심 많은 귀족들을 속이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어요.”

“당연한 말씀을.”

“현재 대외적으로 알려진 웨더우즈 자작은 전 주인님의 조카입니다. 정확히는 주인님의 두 살 어린 남동생의 외동아들이죠. 동생분이 일찍 결혼하셔서 아이도 일찍 보셨거든요. 일가족 모두 전사했지만…….”

조카는 살아남아 웨더우즈 가문을 이었다는 건가. 먼 방계도 아니니 정통성으로 뒷말이 돌 일도 없을 것이다.

“올해 딱 스물이 되니, 외부 활동을 시작하는 나이로도 적격이에요. 하지만 걱정이네요. 데이지 양을 혼자 보내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하녀나 시종으로 따라붙는 건 모양새가 안 좋고.”

그렇기야 하지.

자작이 여성이라면 화장이나 환복을 돕는 하녀를 대동해도 이상한 모습이 아니지만, 남성이면 곤란한 오해를 살 수 있었다.

특히나 미혼의 젊은 남성이면 애첩을 끼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지도 모르니까.

4년 만에 나타난 웨더우즈 가문의 후계자라면 필시 적잖은 눈길을 끌 것이다. 가능한 한 조용히 다녀오는 게 좋다.

“그럼 결혼을 시키죠. 옆에 부인을 붙여 두면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겁니다.”

통제? 내가 목줄 풀린 개냐?

퍽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지만, 하녀장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것도 좋지만…… 저는 저택을 비울 수 없는 입장이라.”

“상관없습니다. 하녀장님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으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역할을 한다는 거죠?”

루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눈으로 하녀장을 바라봤다.

‘잠깐.’

설마?

“그야, 제가요.”

설마가 또 사람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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