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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195)

12화

첫 암살자를 맞이한 뒤 며칠 만에 방문한 기척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행동 양식도 이전과 조금 달랐는데, 위협 따위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의뢰를 받은 듯했다.

“컥.”

아마 진짜 암살 정도 되려나.

단검의 날카로운 날이 내 목을 겨누고 날아왔다. 나는 정신을 잃은 채 발치에 쓰러진 첫 번째 암살자를 지르밟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휙.

얇은 단검이 그 순간을 노리고 날아왔다.

손을 뻗어 검의 날을 그대로 쥐고 두 번째 암살자에게로 돌진했다. 손잡이 부분이 왼쪽 눈 안쪽을 파고들자 숙련된 암살자의 입에서 고통 어린 숨이 터져 나왔다.

“헉.”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려 했는데, 상대가 둘이다 보니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두 번째 암살자가 호흡을 정돈했다.

“너는 정체가 뭐…….”

“쉿.”

일단 머리를 쳐서 기절시켰다.

예상은 했지만 귀찮게 됐네. 한 명을 보냈을 때 연락이 끊겨서 두 명을 보낸 건가?

‘이걸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효율적이라고 해야 할지.’

두 방문자의 입과 소매에서 이제는 친근하게까지 느껴지는 자결 알약을 꺼냈다. 이것으로 <자비로운 한 입>은 총 여섯 개가 되는 건가?

마침 상인 연합회 간부의 머릿수와 똑같았다. 역시 티끌 모아 태산이라니까. 집사 암살자에게 잘 전달해 둬야지.

“……이놈들은.”

어쩌지.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이 두 암살자를 집사 암살자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가장 나은 수였다.

‘다음에 찾아올 암살자들은 어쩌나.’

계속 집사 암살자에게 보내서 처리할 수는 없을 텐데.

일단 창문을 열고 두 짐짝을 떨어뜨리고, 나 역시 땅을 밟았다. 하늘에서는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문득 현관 계단에 올려 둔 화분이 생각났다.

생각과 달리 며칠 동안 싹이 나지 않아서 은근히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비가 내리면 떡잎도 틀까 싶어 조금 기대심이 들었다.

이제 담장 두 개만 넘어가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데이지 양?”

헉.

몸을 돌리자마자 뒷문 앞에 선 하녀장과 눈이 마주쳤다.

담배꽁초를 깡통 안쪽에 고이 구겨 넣은 그녀가 동그래진 눈으로 널브러진 짐짝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누구인가요?”

이건 너무 대놓고 들켰다. 피할 길이 없잖아!

“처, 첩자.”

“혼자서 처리한 건가요?”

그 질문에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듯 턱을 수차례 두드리던 하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은 언제쯤 일어나는 거죠?”

“한…… 서너 시간 후에…….”

“그렇군요. 나를 따라오세요.”

나는 얌전히 하녀장의 뒤를 따라서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망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잘리는 건가?’

이제야 하녀 일에 조금 익숙해졌는데? 여길 나가면 어디로 가라고?

그런데 내가 왜 잘려야 하는 거지. 잘못한 것도 없잖아. 좀 센 게 죄인가.

“데이지 양.”

“네.”

“내게 있어 데이지 양은 꽤 의미 있는 사람이에요.”

눈동자만 도르륵 굴려 하녀장을 바라봤다.

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선 하녀장의 뒤통수는 낮에 만날 때와 다름없이 차분하고 깔끔했다.

“일주일 이상 웨더우즈 저택에서 버틴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거든요. 한데 오늘 일로 당신이 처음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아.

‘역시 하녀장은 이 저택의 하녀들이 겪은 위협을 모르고 있었나.’

그러려니 넘기기에는 어쩐지 의아한 일이다.

암살자를 보내온 의뢰인 입장에서는 하녀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공략 대상 아니었을까?

암살자는 왜 하녀장을 위협하지 않았을까?

하녀장의 걸음이 멈춘 곳은 2층의 어느 침실 앞이었다.

나는 이 문이 낯설다. 다름 아닌 웨더우즈 자작의 침실이었기 때문이다.

“주인님을 뵙겠습니까, 데이지 양?”

이렇게 갑자기?

놀라서 고개를 홱 돌리자 하녀장이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 물론 선택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주인님을 뵈어도 되고, 안 뵈어도 됩니…….”

“본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실한 하녀의 눈으로 하녀장을 바라봤다.

웨더우즈 자작을 만난다. 웨더우즈 가문과 더 긴밀해진다.

웨더우즈 가문 종신 하녀로 임명된다. 종신이라서 잘리지 않는다!

첩자를 두드려 패도 잘리지 않는다!

“무조건 본다.”

이건 하늘이, 아니, 하녀장이 내게 준 기회였다.

그리고 나는 3년 동안 배곯지 않고 침대에서 곱게 잘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칠 생각이 없었다.

“공손하게 대답하세요.”

“무조건 보겠습니다.”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죠. 당신이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어요. 주인님을 뵙는 데는 특정 조건이 따릅니다. 내게 ‘주인님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해요.”

맹세라니. 사전적으로 ‘일정한 약속이나 목표를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함’의 의미를 지닌 그 맹세?

미약하게 침전된 시선이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녀장은 특유의 조곤조곤하면서 차분한 음성으로 내게 속삭였다.

“여기서 말하는 맹세는 서로의 영혼을 걸고 약속하는…… 마법의 일환입니다. 구두나 서면으로 기록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영혼에 기록하는 거예요. 별것 아니게 들려도 어길 시에는 큰 페널티가 따르죠.”

영혼에 각인되는 맹세의 페널티라면 한 가지밖에 없다.

“죽음.”

“그래요.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어요. 꺼림칙한 조건이죠?”

“그럼 맹세는 누가?”

“내가 직접 당신에게 걸 겁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아주 꺼림칙하다.

웨더우즈 자작을 만나는 조건 말고, 하녀장 본인이.

‘맹세를 걸 줄 안다고?’

마법이라는 건 일종의 스포츠다.

노력과 끈기로 오를 수 있는 벽은 엄연한 한계가 존재하며, 어느 경지에 이르고부터는 타고난 재능과 기지로 승부해야 하는 스포츠.

한데 마법은 스포츠 중에서도 재능을 가진 이가 극히 드문 스포츠였다.

애당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체질 자체가 흔치 않아서, 평균 수준에만 머물러도 대를 거쳐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자리하는 마법 치료 병원, 마도구 공방이 이들의 평생직장이나 다름없었다.

맹세 자체는 난이도가 낮은 하급 마법에 속한다.

하지만 하급 마법이든 뭐든, 마법사는 마법사다.

모든 마법사는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특별 가산점이 붙는다. 벌레 수준으로 무능력해도 국고로 밥벌이하며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마법사가 고작 하녀일 따위를 하고 있다니. 그래서 암살자에게 당하지 않았던 건가? 덫을 놨던 거야.’

암살자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가문.

디안 케트의 유산과 이어져 있는 가문.

마법사가 하녀장으로 고용된 가문.

웨더우즈…… 확실히 수상한 곳이다.

“팔 내미세요.”

요구에 따라 소매를 걷고 얌전히 팔을 내밀었다.

내 팔뚝 안쪽에는 총 두 개의 줄이 그어져 있었다. 모두 안데르트로 살아가던 시절에 새긴 맹세의 흔적이었다.

“…설마 이게 다 맹세인가요?”

맹세란 육체가 아닌 영혼에 각인되는 것.

그러니 남성의 몸에서 여성의 몸으로 돌아왔다 한들, ‘나’라는 존재에 각인된 맹세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맹세의 흔적은 어떠한 변신 마법을 사용해도 지울 수 없으며, 오로지 가리기만 가능하다. 가장 쉬운 마법이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과 진배없었다.

“데이지 양. 당신은 대체 뭘 하던 사람이죠?”

……군인?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리자 하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윽고 그녀가 내민 팔에는 맹세의 흔적이 단 한 줄 남아 있었다.

마주 본 두 팔이 하나처럼 맞닿는다. 영험한 기운이 우리 둘 사이를 감돌았다.

하녀장이 내게 속삭였다.

“당신에게 맹세를 요청합니다. 조건은 <웨더우즈 가문에 관한 비설을 발설하지 말 것>. 동의합니까?”

“동의.”

기다란 붉은 선이 허공에 그어졌다.

불꽃처럼 거세게 일렁이던 선은 곧 우리의 팔 위로 서서히 떨어졌다.

살결에 닿는 감촉이 타오를 기세로 뜨겁다.

피부를 인정사정없이 태우고 내려앉은 선은 곧 문신처럼 새겨져 영혼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할 때마다 느끼지만 불쾌한 감각이었다.

“후우.”

하녀장이 긴 한숨을 내리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실의 문이 열렸다.

침실은 어두웠다. 촘촘하게 뒤덮인 암막으로 인해 먹구름 뒤에 가려진 달빛조차 단 한 줌도 입실을 허락받지 못했다.

침대 옆에 놓인 등불을 켠 하녀장이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와서 예를 차리세요, 데이지 양.”

어째서 이 방은 이토록 어둡고 조용할까?

어째서 이 방은 사람 사는 방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어째서 이 방에는 하녀장과 나 외의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까.

어째서 웨더우즈 자작은 이 늦은 시각에 하녀들이 찾아와도 그 이유를 묻지 않을까.

수많은 의문을 삼킨 채 마주한, 침대 위의 웨더우즈 자작은.

“이분이 바로 우리 웨더우즈 가문의 수장이자 주인이신.”

웨더우즈 자작은, 그러니까…….

“그레이 웨더우즈 자작님이십니다.”

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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