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마귀가 나올 것 같은 저택인데.’
심지어 벨도 고장 난 상태라 정문 철창을 흔들어 사람을 불러야 했다.
한 3분 정도 쉬지 않고 문을 흔들자, 현관에서 사람이 나왔다.
고용인 복장을 걸친 30대 중후반의 여인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정문을 열었다.
“하녀로 온 데이지 파거 양인가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저는 웨더우즈 저택의 하녀장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현관으로 안내하려던 하녀장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짐은 어디에 있나요?”
고개를 저으려던 나는 면접관의 충고를 떠올렸다.
“빈손.”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하녀장이 다시 몸을 돌렸다.
“본래 하녀는 정문과 현관문을 사용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 저택에서는 마음 편히 사용해도 됩니다.”
우리는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간 것처럼 황폐하게 메마른 소정원을 지나쳤다.
“이 저택의 주인은 웨더우즈 자작님, 한 분입니다. 고용인은 당신과 나, 사흘 후 도착할 요리사 겸 정원사까지 합쳐 도합 셋이지요. 당신의 일은 적절히 분배될 거예요. 청소, 빨래, 요리, 심부름, 정원 손질 가릴 것 없이 다요.”
우리는 메인 홀의 색 바랜 카펫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급여는 매달 1일에 지급되고 일과는 아침 6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에 끝납니다.”
우리는 2층의 먼지로 뿌연 창문을 바라보며 통로 맨 끝에 위치한 방에 도착했다.
하녀장이 문을 열자, 넓고 휑한 침실이 우리를 맞이했다.
“크죠? 하녀가 다락방도, 별관도, 지하실도 아닌 2층의 침실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웨더우즈 저택뿐일 거예요.”
이 방이 침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벽 쪽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랗고 낡은 침대의 존재 덕분이었다.
고급스럽지만 구식인 정제석 난로, 고급스럽지만 낡은 책상, 고급스럽지만 낡은 의자, 털면 먼지가 눈처럼 내릴 것 같은 암막 커튼, 고급스럽지만 녹슨 철제 상자, 그리고 욕실 입구로 보이는 문까지.
얼추 구색은 갖춘 방이다. 하녀장의 말대로 하녀가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근사했다.
“저택의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오가도 돼요. 명심해야 할 점은 단 하나.”
하녀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경고했다.
“주인님의 침실에 들어가지 말 것. 그리고 누군가 주인님의 행방을 묻는다면 외출했다고 알리세요. 지인, 친구, 먼 친척 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주인님은 몹시 바쁘신 분이라, 외부인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알아 두세요.”
끄덕.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대답하세요.”
“네.”
이 뒤에 뭐 덧붙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까먹었다.
“하아. 당신은…… 아니에요. 그럼 이제 짐 푸세요. 풀면 바로 일을 시작…… 아, 짐이 없다고 했나요? 그렇다면 10분 휴식 후 1층 현관으로 내려오면 됩니다. 이 일은 처음이라고 들어서, 당신이 입을 옷도 저기에 접어 두었어요. 앞으로 잘 지내 봐요.”
하녀장은 빠르게 제 할 말만 남기고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상황이었으나, 감상에 빠질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콜록!”
미친 먼지가 화려하게 내 몸을 감쌌지만, 일어설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얼마 만의 침대냐.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대마법사 메피스토와의 맞대결에서 정신을 잃은 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놀랍게도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잿더미 속에서 눈을 뜬 나의 모습은 더 이상 남동생, 안데르트의 외형이 아니었다.
강력한 고대 마법으로 유지되어 있던 남성의 육체가 본래 여인의 육체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걸까?’
의문은 길게 가지 않았다. 가슴 안쪽에서 강렬하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으니까.
“……난 분명히 죽었는데?”
그런데 되살아나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일단 내가 살았던 섬 마을로 내려갔다. 불에 까맣게 타, 어지러운 터만 남은 마을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의복의 형태를 갖춘 천 쪼가리를 몸에 걸치고 항구로 향했다.
다행히 해안에는 군사 초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올라오던 군인들이 나를 발견하고 초소로 데려갔다.
이후 내 신분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하던 군인은, 내가 입고 있던 원피스의 덜렁덜렁한 소매 쪽을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베르티? 아가씨 이름이 베르티입니까?”
베르티 루샨.
그건 소매 안쪽에 작게 새겨진 이름이면서,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의 이름이기도 했다.
‘이 옷이 베르티의 옷이었구나.’
나는 손끝으로 오래전 죽은 친구의 이름을 매만졌다.
베르티와 그 가족은 전시에 세상을 떠났다. 대마법사 메피스토의 공습 때문이었다. 그들의 시신을 모아, 내가 직접 땅에 묻었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무척 어려 보이는데 아가씨는 몇 살입니까? 이름이 베르티가 맞습니까?”
짧은 고민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의 조사는 빠른 속도로 마무리됐다. 베르티는 나의 오랜 고향 친구였다. 그녀의 집, 가족, 일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베르티’로의 신분 위조는 아주 손쉬웠다.
‘미안해, 베르티.’
아주 잠깐만 빌려 쓰고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게.
“걱정 마십시오, 베르티 양. 이제 세상은 안전합니다. 마도 연합이 메피스토를 물리치고 평화를 이루어 냈으니 말이지요! 무려 4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제국은 이제 평화로워요!”
나는 군인들에게서 지난 4년 동안 연합이 어찌 되었는지, 제국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전해 들었다.
그들은 내게 제국 남부 난민 보호소행을 권유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에서 신분을 들켜 라파엘로를 포함한 옛 동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즈음 나는 내 몸에 크나큰 결함이 생겼단 사실을 알아챈 후였다.
대마법사 메피스토의 영혼과 내 영혼이 크게 부딪치면서, 육신의 수명이 3년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런 몸으로 라파엘로와 재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안데르트가 아니었고 또 더는 안데르트로 살아갈 이유가 없는데.
라파엘로와 옛 동료들은 모두 안데르트의 인연이지 않은가?
‘망가진 여인의 몸으로 돌아가 봤자 동정과 연민만 살 뿐이지.’
나는 그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면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는 안데르트가 아닌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쪽이 최선으로 느껴졌다.
‘나로 살아가면서 망가진 육체를 고쳐 보자.’
불가능할지라도 시도는 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 제국의 많고 많은 도시 중 미드윈트리를 골랐다.
미드윈트리에 숨겨져 있다는 ‘그 물건’을 찾아낼 수 있다면…… 3년으로 한정된 수명이 더 길어질지도 모르니까.
이후 이곳으로 오기까지 한 달간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개고생한 순간뿐이라 회상하기를 포기했다.
하녀 의복으로 갈아입고 현관으로 내려가니 하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을 데려오기 위해 큰돈을 지출했어요. 적어도 일주일은 버텨 주었으면 싶네요. 그래야 당신도 일한 값을 받고 나갈 테니까.”
면접관이 나를 황금 돼지 보듯 본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그럼 시작할까요? 그간 밀린 일이 많습니다. 조금 힘들 거예요.”
그 순간부터 하녀장은 나를 노예처럼 굴렸다.
그리고 나는 정말 노예처럼 일했다.
아직 내다 팔지 않은 게 용한 메인 홀의 샹들리에를 내려서 먼지 털기. 닦기. 다시 설치하기. 계단 손잡이와 계단 먼지 털기. 청소 솔로 닦기. 대형 카펫 털기. 무한으로 털기. 창틀 먼지 청소. 창문 청소. 바닥 먼지 털기. 바닥 솔로 닦기. 기름칠하기…….
“미.”
친 집이다. 나는 이 집의 하녀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나는 노예 하녀인가?
“역시 둘이 하니까 속도가 빠르네요. 체력도 좋고, 머리 회전도 빠르고.”
진심 어린 감탄사였지만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하녀장은 앞으로 3년간 나를 먹이고 재우고 돈도 줄 사람이다. 때려서는 안 된다.
“벌써 하늘이 흐리네요. 해가 지기 전에 식재료를 구해 와야 할 것 같군요. 오늘 일은 내가 마무리하고 있을 테니 심부름을 다녀오세요.”
하녀장은 앞으로 3년간 나를 먹이고 재우고 돈도 줄 사람이다. 말대꾸해서는 안 된다.
“여기, 필요한 식재료와 경비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슬쩍할 생각은 말아야 할 거예요. 근처 시장에서 파는 식재료들 시세는 내가 다 꿰뚫고 있으니까. 상인들과 틀어져서 좋을 것 없으니 예의 바르게 행동하세요. 특히 말투.”
걱정되면 직접 사 오든가.
어떻게든 저택을 지키는 게 하녀장의 의무인가 보다.
몇 푼 되는 돈을 받아서 저택을 나올 때였다.
“어이쿠! 머리 조심하세요. 예쁜 얼굴이 긁히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아가씨.”
커다란 식탁이 내 얼굴 옆으로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뭔가 싶었더니, 웨더우즈 저택 맞은편 집으로 들어간 장정들이 크고 작은 가구들을 하나씩 빼내고 있었다.
‘이사 가네.’
주인이 바뀌는 걸까? 나 같아도 어두침침한 이웃을 앞집에 두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