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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195)

2화

그날 정오가 막 지난 낮 시각.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남작에게 폭행죄 및 협박죄로 고소당했다.

젠장. 아직 빨래도 다 못 거뒀는데!

“웨더우즈 가문에서 하녀로 일하는 데이지 양. 그리고 뒤에 계신 분은 이곳의 하녀장. 맞습니까?”

“맞는데.”

“저는 토마스 순경입니다. 두 분은 잠시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하녀장과 나는 각자 조사실로 불려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하녀장은 순경이 건넨 몇 가지 질문에만 답했고 나만 조사실로 불려 가야 했다.

도착한 조사실에는 순경이 아닌 다른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껏 무거운 분위기를 잡은 남자가 서류를 뒤적이다가 마침내 첫입을 뗐다.

“반갑습니다, 데이지 파거 양.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신분에서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불쾌하실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날카로운 시선에서부터 남자가 내 반응을 탐색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상관없다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가장 먼저, 당신은 언제 이 저택에 고용되었습니까?”

“열흘 전.”

“어떤 일을 하다가 이 도시로 올라오게 된 거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 질문은 귀찮다. 귀찮은 이유는 간단하다. 제대로 답하려면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니까.

나는 하녀, 데이지다. 하지만 하녀로서 일하기 전에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제왕의 검 안데르트.

10년간 이어진 마도 전쟁의 선봉장에 서서, 인류의 명운을 수호하던 난세의 영웅 중 한 명.

그게 바로 나였다.

* * *

열흘 전, 도시 내 인력 사무소.

“다음 면접자.”

조용히 손을 들자, 은테 안경을 쓴 깐깐한 인상의 여인이 나를 쳐다봤다.

“들어오세요.”

나는 그녀를 따라 집무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책상 앞에 단출하게 자리한 철제 의자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닫혔다.

눈앞에는 빠르게 서류를 뒤적거리는, 나를 안내한 비서보다 훨씬 더 깐깐한 인상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는 얼굴에서 끝도 없는 면접에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내 가슴에 꽂힌 순번을 내려다봤다.

‘면접 38번.’

충분히 지칠 만한 숫자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굉장한 미인이시군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날 꼼꼼하게 살핀 면접관이 첫입을 뗐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좋은 질문이다.

“데이지 파거.”

내 이름은 안데르트 파거.

이 이름을 숨기기 위해 누가 봐도 하녀처럼 느껴지는 가명을 선택했다.

장담하는데 이 세상에는 데이지라는 이름을 지닌 하녀가 1천 명이 넘을 것이다.

데이지는 나를 고약한 노동의 세계로 안내해 줄 훌륭한 가면이었다. 제아무리 고용인 면접에 달관한 면접관이라 하더라도, 익숙함엔 약한 법이니까.

“마도 전쟁의 영웅과 같은 성이시군요. 비록 지천에 널린 흔한 성이라고 해도요.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좋은 질문이다.

“남동생 한 명.”

내 남동생은 오래전 고향을 지키다가 전사했다.

그 애의 이름은 안데르트 파거.

나는 고대 마법으로 본래 여성의 몸을 남성의 육체로 바꾼 채, 수년을 동생의 이름으로 살아왔다.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은 버린 지 오래였다. 정말 오래되었다. 더는 그립지 않을 만큼.

“고향은요?”

이 역시 좋은 질문이다.

나와 남동생의 고향은 더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불운의 섬, 퀸이다.

제국 남부 군도 최남단의 퀸 섬은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불바다가 되었다. 제국에서 수차례 파병을 보냈으나 소용없었다.

주범은 불멸의 힘을 얻기 위해 수만의 인류를 학살한 대마법사, 메피스토였다.

그렇게 대마법사 메피스토는 한순간에 인류의 주적이 되었다.

이 악독한 살인마를 섬멸하기 위하여 제국을 주축으로 한 13개국이 뜻을 모아 결성한 조직체가 <마도 연합>이다.

10년에 걸친 전쟁의 승자는 마도 연합이었으나, 피해는 막심했다.

종전 4년. 이제 세상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생명이 싹틀 미래를 향해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래 봤자 불타 버린 내 고향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신장은 어떻게 되죠?”

“170.”

“여자치고는 꽤 크군요. 당신이 지원한 직업에서는 분명한 장점으로 발휘될 겁니다.”

좋은 칭찬이다.

“거의 다 왔군요. 질문이 몇 개 남지 않았어요. 하녀로 일한 전적이 없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했죠?”

이건 더 좋은 질문이고.

“백수.”

나는 마도 연합의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난세가 부른 영웅, 라파엘로와 함께 전장을 누볐다.

“네가 아닌 누구에게도 내 등을 맡기지 못해, 안데르트. 신뢰할 수 있는 이도 너뿐이지. 우습게 들리겠지만, 종종 내게 잃어버린 형제가 있다면 너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라파엘로는 마도 연합의 희망이자 인류의 구원이었다.

우리는 갖은 적을 물리치고 귀중한 아군들을 끌어모으며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마법사 메피스토의 근거지가 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 끝에서, 내게 주어진 최후의 운명은 죽음이었다.

“제기랄, 이 손 놓지 못해? 기다려! 당장 멈춰, 안데르트! 네가 죽을 수는 없다! 너를 이딴 식으로 죽게 놔두지 않아! 당장 돌아와, 안데르트 파거!”

그래, 나는 분명 죽었었다.

홀로 적진에 발을 디뎠으며, 내 나름대로 인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다시 살아난 걸까.’

무려 4년의 시간이 흘러서.

심지어 고대 마법으로 단련했던 남성의 육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나약한 여성의 육신만 남은 것이다.

“이 직종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요?”

아.

좋은 질문이다.

“돈.”

답은 돈이다.

영웅이고 귀족이고 소시민이고 뭐고, 사람 사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이는 대마법사 메피스토와의 결전이 끝나고 운 좋게 되살아난 내게도 적용되는 진리였다.

나는 돈이 필요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선 딱, 3년간 살아갈 돈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저택에서 일하고 싶으시죠?”

중요한 질문이다.

“둘이 일하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힘들고 고약한 저택.”

“어떤 고용주를 원하시나요?”

“고용인을 쥐어짜는 악독한 고용주.”

면접관은 미친X을 감상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은 여기서 끝이에요. 일주일 안으로 연락이 갈 테니 준비하고 계세요. 그리고 이 책 가져가세요.”

통과인가? 나는 집무실을 나가기 전, 면접관이 내민 작은 책 한 권을 받아 들었다.

『말을 곱게 하는 기술』

제목을 훑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를 바라보는 면접관의 눈은 굴러다니는 황금 돼지를 구경하는 눈이었다.

‘왜 하필 황금 돼지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하녀로 취직하게 된, 생의 두 번째 직장에서.

* * *

인력 사무소에서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나를 부른 면접관은 낯선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며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당신은 운이 아주 좋네요. 하루 만에 일자리를 찾는 경우는 드물어요. 당신이 일할 곳은 이 도시 번화가에 자리한 대저택이고, 저택의 주인은 웨더우즈 자작입니다. 웨더우즈 가문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유서 깊은 가문이죠. 이런 가문에서 일할 수 있는 건 어떤 면에서는 영광이나 다름없어요.”

고개를 끄덕이고 쪽지를 집자, 손가락 끝으로 종이를 꽉 부여잡은 면접관이 내게 말했다.

“당신에게 드릴 당부는 한 가지입니다. 최소 일주일은 버티고 그만둘 것. 너무 일찍 그만두면 우리 인력 사무소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거든요.”

재차 고개를 끄덕였지만 면접관은 쪽지를 놓지 않았다.

“어제 내가 준 책을 안 읽었나요? 하녀는 공손해야 합니다. 대답은 행동이 아닌 말로 하세요.”

나는 어젯밤 공원 벤치에서 잘 때 베개로 사용했던 책을 떠올렸다.

당연히 읽지 않았다.

“그래.”

“존댓말로요.”

“네.”

“조금 더 상냥하게 대답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를 덧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적어도 하녀로서는요. 다시 대답해 보세요.”

이 깐깐한 안경 면접관 같으니라고.

언짢았지만 순수한 조언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반발심에 5초간 입술을 꽈악 다물었다가 힘겹게 풀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길게 말하는 게 싫다. 이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줄어든 신장, 말랑해진 생김새, 부드러워진 살결 또한 익숙하지 않았다.

10년간 안데르트 파거로서, 마도 연합의 사령관으로서, 그리고 남성으로서 살아온 내게 여성의 육체는 마치 남의 것 같았다.

14년 전의 내가 여자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불편한 틀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추는 느낌이었다.

“잘하셨어요. 훨씬 나아졌네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내 육체와 내외할 수는 없는 법.

하녀로 취직한 김에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도 좋을 듯했다. 아주아주, 아주 천천히.

“가 보세요. 이곳, 미드윈트리가 당신의 새로운 고향이 되길 바랍니다.”

인력 사무소를 나온 나는 길거리 행상인들에게 물어물어 새 직장을 찾아갔다.

“아, 거기? 그 저택이라면 찾기 쉽지.”

내가 취직할 곳이 워낙 유명한 곳인지, 찾기에도 아주 쉬웠다.

정말 쉬웠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번화가 한가운데.

유령 저택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음침한 대저택의 풍모는,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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