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95)

1화

“허흠.”

나는 현관 앞을 쓸었다.

어슴푸레한 빛이 밝아 오는 이른 아침.

하녀인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일정은 현관 앞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일이었다.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셋밖에 되지 않아 언제나 빈틈없이 깔끔한 현관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쓸어야 한다.

그게 바로 하녀의 일이니까.

“허흠!”

먼지 청소 다음에 할 일은 계단 층층마다 아담하게 놓인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다.

기실 이런 건 정원사의 직무였지만 이 저택에서는 직종의 구분이 의미 없다.

웨더우즈 가문에서는 모두가 함께 청소하고, 모두가 함께 정원을 돌보며, 모두가 함께 요리한다.

이유는 주인의 지갑이 심각하게 쪼들리기 때문이다.

“허흐으음!”

나는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황량한 소정원 너머의 철제 정문을 쳐다봤다.

아까부터 웬 놈이 목이 터져라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놈의 부하로 보이는 남자들까지 합치면 숫자는 총 넷.

눈이 마주치자 아주 거만한 표정을 짓는데, 누가 봐도 내가 말을 걸어 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구태여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저택에서 나온 하녀장이 소정원을 가로질러 남자를 맞이했으니까.

“또 오셨나요?”

“어허, 또라니. 듣는 사람 무안하게.”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저저저번에도 말씀드렸듯 저택을 처분하는 일은 없습니다. 돌아가 주시지요.”

부동산 중개인이었나.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시장에서 저렴하게 구해 온 씨앗에 계속 물을 주었다.

이 씨앗에서 피어날 꽃의 이름은 모른다. 종류고 자시고 가장 싸고 양 많은 씨앗 봉투를 구입해 온 까닭이다.

“오늘은 그 건이 아니야. 반드시 새로운 웨더우즈 자작님을 꼭 뵈어야겠네. 저택 안으로 안내해 주게.”

“죄송합니다만, 주인님은 현재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그 말만 이번 달에 세 번을 들었어!”

“마찬가지로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많이 바쁘십니다.”

분통 터진다는 양 격양된 대답이 터졌다.

“바쁘기는! 이쯤 되니 걸고넘어지지 않을 수가 없겠군. 이 저택에 정말로 새로운 웨더우즈 자작님이 계신 게 맞나? 일주일이 넘도록 이 저택에서 걸어 나온 이라고는 고용인 셋이 전부였네. 모두가 주인 없는 유령 저택이라고 떠들고 있지! 저택의 시커먼 외관은 또 뭐고? 거리의 미관을 해치고 있지 않나?”

“그건 저희가 상관할 바 아닌…….”

“상관할 바 아니기는! 비키게!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고개를 들자, 남자는 하녀장의 어깨를 밀치고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황폐한 소정원을 쭈욱 둘러보고선 똥 씹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쯧. 손꼽히게 아름답던 저택을 이런 거지 같은 꼴로 버려두다니…… 이봐, 하녀!”

지금 나 부른 건가.

“뭘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봐? 당장 이리 안 와?”

부르기에 일단은 갔다. 남자는 오만한 얼굴로 팔짱 끼며 물었다.

“새로운 웨더우즈 자작이 이 저택을 비운 지 얼마나 됐지? 2년? 3년?”

나는 침실에 곱게 잠들어 있을 웨더우즈 자작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안 비웠는데.”

“뭐?”

“안 비웠다고.”

샐쭉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던 남자가 깊게 인내하는 낯으로 다시 물었다.

“말투가…… 아니지. 혹시 새로운 웨더우즈 자작의 건강이 많이 위독한가? 일주일에 한 번도 움직이기 힘들 만큼?”

열흘 내내 꼼짝도 않고 누워 있지만, 삶은 달걀처럼 반질반질한 웨더우즈 자작의 피부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건강한데.”

“허. 주둥이가 참 시건방지구나. 나를 모르느냐? 하긴 이딴 저택에 고용된 하녀가 뭘 알 리 없지. 나는 돌아가신 네 전 주인님의 절친한 친우였던 페데가일 남작이다.”

어쩌라는 거지.

아무래도 내가 깜짝 놀라 읍소하길 바랐던 것 같다. 실제 개미 눈곱만큼 놀랄 부분이 있기는 했다.

남작이라는 작자가 한 달에 세 번씩 찾아와 저택 처분을 요구했다는 점 말이다.

“……그는 죽기 전 내게 부탁을 하나 남겼는데, 새로운 웨더우즈 자작이 이 도시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 달란 유언이었지. 그러니 괜한 걱정 말고 솔직하게 털어놓게. 자작에게는 별일 없나? 내가 도와야 할 일이 정녕 없냐는 말일세. 응?”

“없는데.”

친절한 대답에 감격한 남작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 그렇군! 너의 그 경우 없는 언행으로 확신했다. 이곳에는 새로운 웨더우즈 자작이 없어! 하녀 둘을 고용해서 구색만 갖춘, 텅 빈 저택인 거지. 자작이 거주했다면 고작 하녀 따위가 그런 언사를 보일 수 없을 거다!”

나 또한 확신할 수 있었다. 이자는 웨더우즈 가문의 유산을 노리고 온 협잡꾼이다.

잔악하기 짝이 없는 놈. 벼룩의 등골을 빼먹어라. 은식기도 죄다 내다 판 집안에서 뭘 빼앗아 먹으려는 건지, 원.

쾅!

손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태도로 현관문을 연 남작이 나를 저택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에 놀란 하녀장이 긴장 어린 낯으로 쫓아 들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 없는 짓입니까, 남작님!”

남작은 하녀장의 외침에 코웃음 쳤다.

“너는 나가서 저택에 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너는 저택을 뒤져서 매질에 사용할 물건을 구해 오도록. 마침 잘됐군. 웨더우즈의 하녀장이 언제까지 입을 다물까 궁금하던 차였거든. 주제를 파악하게 해 줘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남작의 명령에 한 명은 현관문을 닫고 나가 문 앞에 대기했고, 한 명은 오른쪽 통로로 사라졌으며, 나머지 한 명은 하녀장과 내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저택 내부를 가만히 훑던 남작이 계단 위에 걸린 액자로 시선을 고정했다. 전 웨더우즈 자작의 초상화였다.

“그리운 얼굴이야. 내 친우가 저택이 이리도 망가진 걸 보면 얼마나 통탄하겠는가. 그나저나 그가 마도 전쟁에서 전사한 지 4년이 지났던가? 시간 참 빠르군.”

마도 전쟁.

이 전쟁이 무슨 전쟁인지 설명하려면 구구절절 길어지니 넘어가자. 대충 10년 가까이 지속된 끔찍한 전쟁이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남작이 탐욕스러운 눈으로 실내 전경을 구경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조국을 위해 몸 바친 그를 위해서라도, 내 꼭 새로운 웨더우즈 자작을 도와야겠어. 전사한 친우를 기리는 길은 그 길밖에 없지. 암, 그렇고말고.”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뜨거운 피가 전신으로 밀물처럼 퍼져 나가는 걸 느꼈다.

마도 전쟁에 대해 간단히 일축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수많은 희생까지 일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사한 자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지키다 떠난 이들이다. 그토록 숭고한 희생을 개인의 더러운 욕망을 위한 핑계로 이용하려 하다니.

10년의 참상을 두 눈으로 지켜봐 온 자로서 도저히 두고 넘길 수 없는 발언이었다.

사람에게는 도리라는 게 있고, 이 자식의 도리는 친우로서 그의 희생을 기리는 일이었다. 웨더우즈 자작의 재산을 탐내는 게 아니라.

하지만 남작의 행동은 친우의 희생을 기리는 태도와 멀었다. 그 말은 즉, 남작이 웨더우즈 자작의 친우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주인의 친우도 아닌 놈이 저택에 강제로 침입했으므로, 이놈은 도둑놈이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남작님, 가져왔습니다.”

“좋아, 튼튼해 보이는 게 마음에 쏙 드는구나.”

부하로부터 삽을 건네받은 남작이 내 앞으로 돌아왔다. 저 삽으로 나를 매질할 모양이다.

하녀장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십시오, 페데가일 남작님. 그 아이를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차라리 저를…….”

“오, 하녀장. 아랫것을 감싸는 마음이 참으로 기특해. 그러니 마지막 기회를 주지. 웨더우즈 자작의 행방을 말하게. 그러면 자네를 포함한 이 저택의 어떠한 고용인에게도 피해 주지 않으리라 약속하지. 진심이네.”

“기회는 남작님이 아니라 제가 드리는 겁니다. 부디 신체 보전을 위하여 평정심을…….”

“허, 아직 정신 못 차렸나? 셋을 셀 동안 입 열지 않으면 매질을 시작하겠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도 없을 거야. 이대로 이 계집을 끌고 가 동방의 노예로 팔아 버릴 테니까! 그럼, 하나.”

동방을 운운한 꼴을 봐선 노예 거래도 하나 보지?

도리도 못 지키는 도둑놈인데, 거기에 노예 거래까지 하는 쓰레기라고?

웨더우즈의 성실한 하녀로서 내가 보여야 할 자세는 명백했다.

하녀장이 긴장한 눈으로 나를 불렀다.

“데이지.”

참고로 데이지는 내 이름이다.

눈앞의 상황이 재밌다는 양, 씨익 웃은 남작이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둘.”

“일단 참으세요.”

나는 순종적인 하녀답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오른손을 휘둘렀다.

“세엣…… 컥!”

단정한 차림새의 하녀가 오른손을 가로로 그었을 뿐인데, 듬직한 풍채의 남작이 돌멩이처럼 날아가 벽에 박혔다.

일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남작의 부하들이 멍한 눈으로 쓰러진 남작을 쳐다보다가 그에게 달려갔다.

“남작님!”

하녀장은 엄한 눈으로 나를 불렀다.

“데이지!”

“네.”

“분명 참으라고 경고했습니다. 어째서 말을 듣지 않은 거죠? 당신이 힘을 쓰면 저 병든 너구리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충분히 알 텐데요?”

“참고 있어요.”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제 오른손은 못 참겠대요. 이것 보세요.”

나는 쓰러진 남작을 부축하려던 부하 둘의 뺨 역시 오른손으로 내리쳤다.

“컥.”

“헉.”

건장한 두 덩치가 남작 위에 드러누웠다. 그것참 사이좋은 주종 관계네.

“참 못 말리는 오른손이라니까요. 일이 끝나면 따끔하게 혼내 둘게요.”

하녀장이 재차 나를 노려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오른손은 종종 머리가 아닌 심장을 따를 때가 있었는데, 이때는 몸의 주인인 나도 의식적으로 조종하기 힘들고 어쩌고저쩌고.

“무슨…….”

겁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세 번째 부하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한 후, 하녀장에게 물었다.

“묻을까요?”

하녀장은 저택 보안 1등 공신인 나를 쏘아봤다.

“끔찍한 소리하지 마세요. ‘루’ 씨는 어디로 간 거죠?”

달갑지 않은 이름이 들리자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식재료 사러.”

“말 짧게 하지 말아요. 하아, 어쩔 수 없군요. 이 사람들은 저택 앞에…….”

“목을 잘라 매달아 놓을까요?”

“평범하게 앉혀 둘 겁니다. 평범하게요.”

“돌려보내면 뒤처리가 난감해져요.”

“목을 매달면 간단해지나요?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네요, 데이지 양. 이들이 옳지 못한 행동을 저지른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생……매장당할 만큼의 중죄를 지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돌려보내는 게 맞아요. 이쪽도 나름 정당방위였으니,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웨더우즈 가문을 믿으세요. 이곳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 줄 테니까.”

웨더우즈 자작의 실체를 아는 나로선 영 신뢰가 가지 않는 설득이었다.

하지만 하녀는 까라면 까야 하는 법.

하녀장의 요구에 따라, 나는 다 큰 성인 남성들을 공주님 안듯 들어서 저택 밖으로 옮겨야 했다.

마차가 다니는 포장도로에 일렬로 눕혀 놓고 말굽에 밟혀 죽기를 기원했다.

하녀의 다른 이름은 고난이라더니. 고난의 고난은 끝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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