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도로테아는 멀거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끔뻑이고 있는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드물게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로 그를 잡아끌었다.
“자, 여기 앉아 숨부터 좀 고르시는 것이 좋겠어요. 혹여 폐하의 건강에 무리가 가길 바라지는 않으니까요.”
그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그로 인해 곤란해지는 것은 도로테아, 본인이었으니.
푹신한 의자에 황제를 앉힌 도로테아는 그제야 몸을 돌려 버나드에게로 다가갔다.
“말이 잘, 나오지 않는군요.”
“쥐고 있던 미련을 내려놓으셨으니까요.”
육신과의 연결 고리가 서서히 옅어지는 것일 테지.
도로테아의 눈이 그를 훑었다.
굳이 따로 천도(薦度)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의 넋은 애초에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니.
유일하게 맺힌 것을 풀고 나자, 아주 자연스레 육신을 벗어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말이 있었던지 몇 번의 헛기침 끝에 충직한 시종장은 입을 열었다.
“황자 전하께서는 무던한 아이였습니다. 힘들어도 힘들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 그것이 서운하고 못내 걱정되긴 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원망 않고 홀로 삭혀 내셨으니까요.”
나직한 말에 도로테아가 흘끔 루크를 바라봤다.
황자는 버나드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무심한 눈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도로테아는 굳이 그에게 다가와 마지막 인사를 건네라, 잔소리하지 않았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 각자 다른 법이니까.
그녀의 양은, 조용히 보내 주길 선택한 모양이었다.
“오랜 세월 수고가 많으셨어요.”
“허허허…….”
“미련일랑 한 줌도 남기지 말고 떠나셔도 좋아요. 제가 있으니까요.”
버나드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시종장이, 황자의 ‘양육권’을 도로테아에게 맡기는 장면은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해 보였다.
이 무슨 고이 키우던 자식새끼 남의 집으로 보내는 듯한 대화란 말인가.
우드는 흐린 눈으로 대화를 못 들은 척 넘기며, 담담하게 서 있는 황자를 힐끔거렸다.
‘아니, 본인의 소유권이 저 손에 쥐여지고 있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가?’
무려 황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지금 당신, 말 몇 마디에 거래되고 있지 않나.
“이 상황에서 황자 전하의 의사는 전혀 상관없는 거냐……?”
보다 못해 건넨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하던 도로테아가 말했다.
“성년이 되었다 하여 모두가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잖니. 쟤는 오랜 세월을,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한 채 지내 왔어. 믿고 따르던 이를 잃고, 심지어 궁에 남아 보살펴 주던 이도 잃었는데. 그저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혼자 둬야 할까?”
뜻밖에도 상식적일 뿐 아니라 상대를 향한 배려가 넘쳐 나는 도로테아의 말에 우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도로테아는 짐짓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가뜩이나 막 영안이 트였잖니. 불안한 상태일 것이 뻔한데, 나라도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다른 이들은 온전히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울 텐데.”
“그건…….”
여전히 말 한마디 없는 루크를 흘끗 보고, 넋이 나가 있는 황제에게까지 시선을 준 우드는 미간을 좁혔다.
단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이 없는 ‘군주’는 앞으로도 그래야만 할 터였다.
선택의 순간마다 루크를 택하지 않아도, 황자는 어째서 나를 버리느냐 소리 내어 탓하는 일조차 하지 못할 테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이에게 맡겨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올곧은 기사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운 순간이었다.
“내 곁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이고 들리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흘려도 될 것들을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그 전까지만, 내 곁에서 ‘별거 아닌 일들’을 도와주며 지내면 되지.”
자연스레 소녀의 말에 수긍하고 있던 우드가 순간 눈을 끔뻑였다.
별거 아닌 일들?
“봉사하는 마음으로 거두어들일 수도 있지만, 교육상 그게 썩 좋은 일은 아니니까.”
“기다려라.”
잠깐, 이거 아무리 봐도 함정 같은데.
너 지금 이거 정말 황자를 생각해 꺼내는 말이 맞는 거냐?
우드의 머릿속에 이제껏 행해야 했던 ‘별거 아닌 심부름들’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곁에서 얼마나 알뜰살뜰 부려 먹혔는지도.
거의 넘어갈 뻔했던 우드가 다시 의구심 어린 시선을 주인에게로 던졌다.
“칫.”
나직이 혀를 찬 도로테아가 팔짱을 꼈다.
“뭐가 문제야? 이분도 내 듬직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에 미련을 버리고 가야 할 곳으로 갈 준비가 되셨다는데.”
“네 태도에 대체 어디가 듬직하고 책임감이 있지?”
“그럼 루크가 걱정되어 이미 숨이 끊어지고도 이곳에 남아야 했던 이분의 넋을, 또다시 잡아 두겠다는 거야? 죽어서도 본인의 의무에서 해방되지 말라고? 황궁에 고용된다는 건 그런 건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몰아붙이는 도로테아의 말에 우드가 쩔쩔매며 버나드를 바라봤다.
황녀의 모습을 한 시종장은, 세상을 달관한 듯한 미소를 띤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고단했던 삶을 마치고 가겠다는 분을, 붙들고 싶다면 그렇게 해.”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우드가 불리함을 깨닫고 입을 꾹 닫았다.
도로테아의 태도가 몹시 수상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제 막 떠날 준비를 마친 이를 도로 눌러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루크는 한 톨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버나드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윽고 눈을 감은 황녀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도로테아가 두 팔을 뻗어 힐데를 받아 내려던 찰나, 재빠르게 다가온 루크가 축 늘어진 그녀를 안아 들고 긴 스툴 위에 눕혔다.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하지 그랬어.”
“그럴 필요 없다. 해야 할 말이라면 이미 충분히 나눴으니까.”
담담하게 말한 루크가 힐데의 위로 조심스레 담요를 덮어 주었다.
줄곧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황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도대체 지금 내가 본 것이 무엇이더냐. 죽은 자가 어찌 성녀의 몸을 빌려 말을 하고, 너는 어찌 죽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어.”
버나드에게 들은 이야기를 채 정리하기도 전에 또다시 목격한 상식 밖의 일들이 그를 몹시 혼란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 보려던 황제는 생글거리는 도로테아와 마주하고 무언가 생각이 미친 듯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설마, 너도……?”
까르르 웃어 보인 소녀가 살랑살랑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명을 다하고 다른 이의 육신을 빌리는 것이냐 물으시는 거라면, 아니에요. 할 일이 있어 잠시 이 몸을 빌린 것뿐이랍니다.”
머리를 뒤로 넘긴 도로테아가 덧붙였다.
“쓸데없는 오해나 귀찮은 견제 따위를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완벽하게 다른 이의 모습을 하고, 죽은 이의 말을 듣고 볼 수 있는 것이?
“나는 너와 같은 재주를 부린 정령사를 듣지도, 본 적도 없거늘…….”
황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두 눈에는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향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죽음이라지만, 그 죽음의 이면을 보는 존재라니.
“도대체, 너는 누구지? 무엇이냐?”
도로테아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눈을 내리깔았다.
“글쎄요.”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 그녀가 물음을 던졌다.
“제 정체가 무엇이라 해야 옳을까요. 무엇으로 정해야 옳을까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능력에 따라? 제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의지에 따라? 제가 태어난 순간 받았던 이름과 신분에 따라?”
“…….”
“폐하는 제가 누구라 여기시지요?”
그것을 모르겠으니 네게 물은 것이 아니냐.
황제는 답을 하지 못한 채 연신 입을 벙긋거렸다.
“저는 ‘저’일 뿐이에요. 다른 육신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폐하께서는 ‘저’를 알아보셨잖아요.”
도로테아의 답에 황제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우드가 한숨을 삼키고는 다가와, 노쇠한 황제를 부축했다.
“폐하, 심정은 알겠으나, 부디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이 상황이 얼마나 황당하고 경악스러우시겠습니까만, 의식을 놓아 버리셔서는 안 됩니다.”
“경도 알고 있었나?”
제가 바로 저 아이의 첫 번째 피해자인 동시에 앞으로도 함께할 권속입니다만.
차마 그렇게 답하지 못한 우드는 많은 사연이 담긴 눈으로 황제를 마주했다.
마주한 눈동자에 담긴 은은한 서글픔에 황제가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는 것과 동시에 다급한 걸음으로 들어온 파비안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내 기절한 채 누워 있는 힐데를 발견한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황녀님께서는 괜찮으신 건가요? 설마 아직 그분께서……?”
“버나드를 말하는 거라면, 그는 이미 떠났어요.”
도로테아가 건넨 답에 파비안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네요. 적어도 몇 달간은 마음을 졸이며 지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 외로 빨리 미련을 버리셨군요. 폐하와 단둘이서 식사를 하고 싶다며 절 밖으로 내쫓을 때만 하더라도 큰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거든요.”
“영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나?”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파비안이 얼어붙었다.
기름칠을 잊은 경첩처럼,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린 그녀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황제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황제는 이 방 안에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고는 중얼거리듯 물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나만 빼고 모두가 이상한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는 꿈?
우드는 황제의 희끗희끗한 머리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다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도로테아는 의도 없이 무언가를 행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황제에게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분명…….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는 안 그래도 고단했을 황제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고단해질 것임을 확신했다.
가뜩이나 눈앞에서 아들을 강탈당했건만.
더 빼앗길 것이 남았다니 유감스러울 따름이었다.
* * *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차분해진 황제가 먼 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윌리엄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왜인지 그의 앞에 부복한 우드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진 않사오나 모르고 계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군. 하기야 모르는 것이 좋을 이야기지. 산 사람이 죽은 자들의 세계를 알아 무엇에 쓰겠느냐.”
씁쓸한 목소리에 우드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수그렸다.
특별히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테아.”
“네, 폐하.”
쪼르르 달려온 소녀의 얼굴이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지 황제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입을 열었다.
“할 일이 있어 몸을 빌렸다니. 정확히 네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냐.”
과연.
오랜 시간 군주의 자리를 지켜 온 세월이 있는 만큼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알아챈 듯했다.
“앞서 그리엄의 증언을 들으셨으니 아실 거예요. 누군가 신이 떠난 땅에서 신을 칭하며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을요.”
“…….”
“저는 신의 힘을 거두어, 마지막 남은 조각까지도 모두 이 땅에서 떠나보내려고요.”
“신의 힘을 거두겠다, 라…….”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신의 힘’이 무엇을 칭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돌려보내겠다는 건지 그 자세한 과정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황제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네가 지금 부리는 그 재주는, 사람들이 모르는 미지의 것이다. 너를 향했던 칭송과 기대와 희망은 모두 네가 정령사라 믿었기에 주어진 것들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보다도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게 되겠지. 너는…….”
도로테아는 싱긋 웃으며 황제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마무리 지었다.
“이단으로 규정되겠지요.”
손가락질의 끝에 단죄가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이제껏 수많은 이들이 처형당해 왔듯이.
사람들은 미지의 힘을 꺼림칙해하고, 두려워하고, 종내에는 혐오할 테니까.
“그래서 이 몸이 필요한 거예요.”
“…….”
“사람들이란 가진 편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니까요. 설마하니 어린아이가 성국의 사도를 개죽으로 만들었다거나, 별궁을 반파시켰다거나, 요새의 생존자들 사이로 숨어든 반역자를 처리해 버렸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잠깐.”
그게 네 짓이면…….
황제가 고개를 돌려 재빠르게 아들을 바라봤다.
그저 때맞춰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보셨다시피, 그 누구도 의심 없이 루크가 저지른 짓이라고 여겼으니까요.”
“…….”
하지도 않은 일로 아들을 궁에 연금시킨 황제의 마음에 실낱같은 금이 갔다.
본디 아무것도 없는 사이였다 공인받은 부자 관계였다지만, 이제는 정말 되돌릴 수 없음을 실감한 탓이었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떨떠름한 얼굴로 도로테아를 바라본 황제가 물었다.
“이 사실을 내게 와 고하는 연유는 무엇이냐? 이제껏 네가 한 일을 네 짓이라 알리지 않았듯, 나는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을 텐데.”
“폐하께서는 아셔야 하기 때문이에요.”
“…….”
“숨이 멎을 때까지 군주로서의 무게를 짊어지실 폐하께서는, 아셔야만 할 일이니까요.”
한숨을 삼킨 황제가 힐끔 도로테아를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나직이 내뱉었다.
“앞으로는 더한 일이 있을 테니, 각오해 두라는 뜻이로구나. 지금의 네 모습이면 너를 제약하고 있던 수많은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역시 영명한 군주다운 통찰력이세요.”
환하게 웃은 도로테아가 덧붙였다.
“걱정 마세요. 깽판을 쳐도, 그 누구도 제가 도로테아 하이클레어임을 모를 테니까요.”
소녀의 믿음직스러운 다짐에도 방 안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지 못했다.
모두가 초점 없는 눈을 한 채로 침묵했을 따름이다.
* * *
하루아침에 황제의 심장에 튼튼한 못을 박아 넣은 도로테아는 엉뚱한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갑자기 네가 죽도록 팬 사도는 왜 만나야겠다는 거냐?”
“대화를 나눌 이유가 생겼으니까.”
짤막한 말과 함께 프란체스코가 몸져누워 있는 방으로 향한 도로테아는, 흉흉한 얼굴로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성기사들을 향해 웃으며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무슨 일이지?”
무려 사도가 제국의 황자와 합을 겨루다 쓰러진 상황이었다.
아이의 순수한 웃음 따위에 화답할 만큼, 여유롭지 않은 성기사가 무뚝뚝한 얼굴로 물었다.
“성녀님께서 사도님을 뵙고 말씀을 전해 달라 하셔서요.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양아버지가 저지른 일이다 보니 못내 마음이 아프신 듯 꼭 상태를 살피고 오라 하셔서…….”
성녀를 언급하자 날카롭던 성기사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아마도 도로테아를 성녀와 종종 함께하는 또래 동무라 여긴 듯 눈빛에 친근감이 서렸다.
“들어가도 좋다. 성녀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사도님의 상황을 낱낱이 알려 드리도록.”
“감사합니다.”
생긋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서는 도로테아의 뒤를 따르던 우드는, 자신을 가로막는 검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성기사가 냉랭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당신은 안 되오. 사도님께서 부상 중인 상황에 무력을 가진 제국의 기사를 방에 들일 수는 없지 않소.”
“…….”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 당신네들은 가해자를 피해자와 대면하게 만들고 있소만.
“아마…… 후회하게 될 거요.”
나를 들여보내지 않은 것을.
우드의 담담한 말에 성기사가 코웃음 쳤다.
그리고 바로 그때, 도로테아는 내상을 입고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프란체스코의 뺨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그녀의 일격에 임시로 틀어막아 두었던 의식이 돌아왔는지, 창백한 얼굴의 프란체스코가 서서히 눈을 떴다.
도로테아는 누워 있는 사도 앞에 얼굴을 들이민 채 다정하게 물었다.
“잘 잤니?”
“…….”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피떡이 되도록 팬 가해자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 사도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