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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232화 (231/242)

232화

윌리엄의 궁으로 향하는 도로테아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굳이 술법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지 않아도, 그녀는 궁의 모든 구역을 속속들이 알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곳을 드나든 것이 어디 한두 번일까.

어어, 하는 사이에 여동생의 손에 끌려들어 간 스탠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덤불에 가려진 담 구멍 앞에 섰다.

“사라?”

“몸을 숙여 봐, 오빠.”

여동생의 뜬금없는 권유에 스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좁은 구멍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 아버지가 여기서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셨어. 잘못하다가는 다들 곤란해진다고.”

“괜찮아. 이 궁의 주인은 좋은 사람이거든.”

담 너머에서 흘러든 달달하고 고소한 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담백한 음식과 차를 즐기는 윌리엄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냄새로 보건대, 역시 어린 성녀의 양육을 맡게 된 것은 윌리엄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온갖 병장기와 병서로 가득한 루크의 궁보다는 윌리엄의 궁이 양육에는 더 도움이 될 터이니.

‘이쯤 되면 폐하도 깨달으실 만하지.’

자식을 잘못 키우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자식들이 결과를 여실히 보여 주었으니, 나름대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늘그막에 얻은 손녀만큼은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몸을 낮춰 엉금엉금 기어, 좁은 개구멍을 통과한 도로테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오빠, 나는 이미 한 번 양보했어.”

“…….”

“이번에는 오빠가 져 줄 차례야.”

단호한 목소리에 머뭇거리던 스탠이 천천히 몸을 굽혔다.

이윽고 좁은 구멍으로 소년의 머리와 어깨가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다리까지 빠져나오고 나자 소녀는 환한 웃음으로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자고로 칭찬이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처음이 어려운 거지, 두 번 세 번째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잘 해낼 수 있을 터였다.

“수고했어. 이제 오빠는 큰 산을 넘은 거야.”

“황궁의 담을 넘은 거겠지…….”

힘없이 중얼거리는 스탠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도로테아는 다시 손을 잡고 이끌기 시작했다.

“생각해 봐. 우리조차도 사용해 주지 않는다면, 이곳에 있는 개구멍의 존재가 너무 무의미해지잖아. 그 어느 것이나 존재하는 의미는 있기 마련인 것을.”

“개구멍에게 존재의 의미가 어디 있어.”

“한낱 개구멍에게도 의미는 있어. 내가 방금 그것에게 의미를 부여했잖아. 이를테면 개구멍을 창조한 것은 내가 아니나, 그 개구멍을 쓸모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나인 셈이지.”

소녀의 종알거림을 반쯤 흘려들으며 끌려가던 스탠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려고?”

“문을 찾아야지.”

도로테아가 생긋 웃으며 그나마 상식적인 말을 덧붙였다.

“문을 열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   *   *

“오늘의 예법 시간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파비안의 담담한 목소리가 지루한 시간의 끝을 알리자 어린 성녀가 반짝 고개를 들었다.

마침 방으로 들어오던 궁중 시녀는 기대 가득한 눈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황녀 전하, 오늘 간식은 달콤한 사과 조림을 올린 벌꿀 타르트랍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성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성녀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파비안은 간식을 가져온 시녀가 테이블 위로 음식들을 올리는 것을 기다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많이 드시진 마세요. 사도께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시는 대로, 정원 산책이 예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게 할게요.”

천천히 나이프를 쥔 순간, 문 밖으로 나간 파비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간식이 지나치게 달고 기름진 것 같습니다. 요즘 전하의 소화 기능에 다소 무리가 가고 있다는 궁의의 소견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예, 영애.”

그러고 보니 윌리엄 삼촌도 단 것을 지나치게 입에 대지 말라 이르셨지.

시무룩해졌던 것도 잠시였다.

반으로 갈라진 타르트 사이로 달콤한 사과 조림과 시나몬, 꿀이 어우러져 흘러내리는 것을 본 순간 성녀는 홀린 듯 타르트 조각을 집어 들었다.

한 조각을 막 입으로 베어 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찌-.”

좁은 문틈으로 파밧 뛰어든 피피가 남아 있는 타르트를 보고 신난 기색으로 얼굴을 처박았다.

“앗.”

재빠르게 손을 뻗어 다람쥐를 들어 올렸을 때에는, 이미 그 조그마한 몸통 전체가 진득한 시럽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피피, 네가 타르트를 모두 망쳐 놨잖아.”

“찌- 찌-.”

혀를 내밀어 달달한 시럽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핥는 다람쥐의 얼굴에 만족스런 기색이 서렸다.

흘끗, 복도에서 시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파비안을 확인한 성녀가 조심스레 피피를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내게 전할 말이 있어? 혹시 미네의 소식을 가져온 거야?”

한동안 멀리 떠난다던 이후로 소식이 없어 걱정하던 차였다.

피피는 성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이내 진득한 몸이 불편했는지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몸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앗, 바닥에 구르면 안 돼.”

성녀가 당황해 몸을 일으켰지만, 다람쥐의 잽싼 몸놀림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진득한 시럽에 방 구석구석의 먼지까지 모조리 몸에 묻힌 다람쥐가 씨익 웃었다.

성녀는 말썽꾸러기처럼 방을 헤집고 다니는 피피의 행동에 울상을 지었다.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을 들켰다가는 곤란해질 텐데…….”

장난을 자주 치긴 했지만, 한 번도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적이 없었건만.

도무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다람쥐의 말썽에 어린 성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대화가 끝났는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마음이 급해진 성녀가 속삭였다.

“어서 숨…….”

말을 마치기도 전에 벌컥 열린 문으로 등장한 파비안은, 엉망이 된 방 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던 그녀의 눈에, 방 안의 온갖 먼지란 먼지는 다 뒤집어쓴 다람쥐가 눈에 들어왔다.

시꺼먼 회색빛에, 노란 눈을 반짝이는.

“쥐……?”

낯선 생명체를 마주한 파비안이 일순간 숨을 멈췄다.

동그래진 눈동자를 마주한 피피가 먼지 가득한 손으로, 침대 시트에 손도장을 찍었다.

적나라하게 남은 회색빛 자국에 성녀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딸꾹. 딸꾹.

이윽고 정신을 차린 파비안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쥐! 쥐야! 쥐를 잡아!”

늘 우아하고 단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방을 헤집고 다니는 더러운 쥐 앞에서 이성은 날아간 지 오래였으니까.

쥐가 출몰했다는 소식에 저마다 빗자루를 손에 쥔 하녀들이 방으로 들이닥쳤다.

“그, 안 돼요. 피피는……!”

성녀의 여린 목소리는 쥐를 향한 여인들의 집념에 채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을 농락하며 요리조리 도망치던 다람쥐는 이내 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달아났다.

“잡아! 얼르은!”

“죽여어어어!”

문을 지키던 기사들이 채 막을 틈도 없었다.

광기 어린 여인들의 질주와, 그 뒤를 필사적으로 쫓는 성녀를 본 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길고 긴 추격전은, 정원으로 향하는 문 앞까지 이어졌다.

좁은 문틈으로 쏙 빠져나간 다람쥐는 쏟아지는 빗자루 세례를 피해 수로로 뛰어들었다.

회색 쥐라고 여겼던 조그마한 생명체가 유유히 물살을 가를 때마다 지저분한 몸이 깔끔해지면서 점점 다람쥐로 변해 가자, 그 모습을 목격한 시녀들은 말없이 입을 벌렸다.

뒤늦게 달려온 성녀가 숨이 차 헉헉거리며 하녀들의 틈을 비집고 나와 피피의 안위를 확인했다.

“다행이다…….”

조그마한 중얼거림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정원 한구석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온 남매가 성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녀, 힐데는 눈을 끔뻑이며 자신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소녀와 울상을 짓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말쑥한 차림새로 보건대 귀한 가문의 자제들이 아닐까 싶었지만…….

‘접견 신청 없이는 나를 만나러 올 수 없을 텐데.’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샘솟았다.

성녀는 또래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지극히 드물었다. 출입을 허가받아 간간이 궁으로 찾아오는 미네를 제외하고는.

시커먼 속내를 숨기고서 손녀에게 접근하려는 날파리들을 황제가 철저하게 통제 중이기 때문이었다.

도로테아는 오랜만에 보게 된 성녀 앞에 척, 하고 섰다.

“안녕.”

“아, 안녕……?”

격식에 어긋나는 인사에 저도 모르게 답을 하고 만 힐데가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는 폐하의 초대를 받아 응접실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도중에 길을 잃었거든.”

“아…….”

“마침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아서, 와 봤어. 설마하니 또래 친구를 보게 될 줄 몰랐지 뭐야. 나는 사라야. 여긴 스탠. 우리 오빠.”

멍하니 힐데를 바라보고 있던 스탠은, 여동생이 옆구리를 찌르고 나서야 어물어물 입을 열었다.

“안녕.”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를 찾는 사람이 올 때까지 같이 있어 줄래? 길을 잃은 데다 아빠랑 떨어져 있는 상태라 몹시 불안해하고 있거든.”

“네가?”

불안하다고? 마치 본인의 집에 방문한 듯 여유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는데.

힐데의 의아한 물음에 도로테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우리 오빠가.”

졸지에 아빠를 잃고서 불안에 떠는 소년이 되어 버린 스탠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응? 그래도 될까?”

웃는 얼굴로 재차 묻는 도로테아의 말에 힐데가 머뭇거리던 그때였다.

“아니 될 말씀입니다.”

눈앞에서 쥐를 마주한 충격에 잠시 내려놓았던 정신을 도로 찾은 파비안이 천천히 걸어 나와 남매 앞에 섰다.

좀 전의 우악스런 비명 소리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매끄럽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파비안은 단호한 목소리로 궁을 찾은 미아들을 향해 축객령을 내렸다.

“황녀님께서는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있으십니다. 게다가 궁에 외부인을 들이는 일은, 2황자 전하의 허가 없이는 아니 될 일입니다.”

“그런가요?”

도로테아는 힐데와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마주한 파비안을 가만히 올려다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궁에 초대받은 귀빈이 길을 잃어 흘러든 것을 밖에 방치해 두었다가는 좋지 않은 말이 흘러나오지 않을까요?”

소녀의 말에 파비안이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사라, 라 했던가.

새까만 눈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이곳까지 왔다고 했지만, 분명 이곳에 성녀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찾아왔음을.

어린 나이답지 않게 느물거리는 태도가 어쩐지 불편했다.

마치 속에 능구렁이가 서넛은 도사리고 있는 듯한, 저 여유로운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파비안은 제 등 뒤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성녀를 보고 한숨을 삼켰다.

또래와 좀처럼 어울릴 기회가 없는 성녀로서는, 이 정체불명의 침입자들이 꽤 궁금한 모양이었다.

‘분명 노린 거야.’

아이들이 우연히 길을 잃어 궁으로 흘러든 시각이, 하필 사도가 기도를 올리러 부재중인 시간과 일치하다니.

그저 우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공교롭지 않은가.

“궁인을 불러 안내를 부탁하지요. 황녀 전하의 보호자께서는 외부인과의 접촉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로테아는 제법 그럴듯하게 황녀를 보호하고 있는 파비안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런가요?”

안절부절못하는 힐데를 흘끗, 바라본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아이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 황녀 전하의 공식적인 보호자께서는, 지금 자리를 비우셨다고 들었는데요.”

파비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하니 황녀 앞에서, 실종된 7황자를 대놓고 언급하는 이가 있을 줄이야.

“감히 지금 그 입에 누구를 올리는 겁니까. 지금 당장 궁을 떠나지 않으시면 폐하께 알리겠…….”

“어라, 그건 곤란한데.”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선 도로테아는 손을 뻗어 낙인이 있던 자리를 지그시 눌렀다.

소녀의 당돌한 행동에 당황했던 파비안은 이내 저릿하게 몸을 타고 흐르는 묘한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 제 몸을 있는 대로 흔들어 대는 듯한, 익숙하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감각이 일순간 몸을 지배했다.

가볍게 툭, 손을 뗀 도로테아는 공포에 질린 채 숨을 몰아쉬는 파비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 아…….”

고개를 아래로 굽힌 그녀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했다.

소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파비안을 향해 웃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저희 소개를 미처 하지 못했군요. 저와 오빠는 아버지와 함께 지금 막 연합군 사령부가 있는 변경 지역에서 돌아왔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지금 폐하를 뵙고 그간의 일들을 보고하고 계실 거예요.”

연합군 사령부라고?

파비안이 눈을 끔뻑였다.

분명 회군을 청하는 전령마저 소식이 끊겨, 상황을 모르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은 도로테아가 또박또박 양아버지의 이름을 일러 주었다.

“저희 아버지의 성함은 우드 데버. 하이클레어 후작 가문의 기사시고요.”

“……!”

우드, 데버?

굳어 있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기억 속 낯익은 이름의 정체를 깨달은 파비안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까치발을 든 도로테아가, 굳어 있는 파비안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래서, 영애께서는 지금 옥죄고 있던 것에서 해방되어 만족스러우실까요?”

“……!”

도로테아 하이클레어와 단둘이 나누었던 ‘그날의 대화’를 들먹인 소녀가 태연한 얼굴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멍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 파비안을 향해 애교 있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좀 전부터 흘러나오는 달콤한 냄새가 너무 좋아서 여기로 온 거예요. 주린 배를 안은 채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는 온정을 베풀어 주시는 것도, 신의 말씀을 따르는 황녀님의 의무가 아닐까요?”

늘 그렇듯, 청산유수처럼 쏟아지는 여동생의 궤변에 스탠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상대의 단호한 태도로 보건대, 무슨 말을 덧붙이든 허락이 떨어질 리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파비안은 그녀를 향해 눈을 찡긋, 해 보인 의뭉스런 소녀를 바라보다 홀린 듯 입을 열었다.

“귀빈용 객실을, 치워 놓으라 이르겠습니다.”

“……!”

뜻밖의 답에 놀란 성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빈실에 테이블을 세팅하고, 타르트를 다시 내어 오라 이르세요.”

다들 바뀐 태도에 적잖게 놀란 기색이었지만, 잘 훈련된 사용인들답게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테아는 어딘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스탠의 손을 잡고 흔들며 속삭였다.

“잘 됐다, 오빠. 이제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어.”

부디 기뻐해도 좋아.

*   *   *

황금빛 코팅을 입은 타르트는, 좀 전에 올라왔던 것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테이블 한가운데에 놓인 타르트의 영롱한 자태를 바라보며 다들 눈을 끔뻑였다.

순식간에 끌려와 갖게 된 티타임에 성녀도, 스탠도 당황해 굳은 기색이 역력했다.

오로지 도로테아만이, 파비안이 따라 주는 차를 음미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던가.

상점이 없는 곳에 있다 보니, 좀처럼 여유롭게 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차였다.

“솜씨가 훌륭하시네요.”

“과찬이십니다.”

도로테아가 흐뭇한 얼굴로 건넨 칭찬에 파비안이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찻잔을 쥔 손도, 차를 음미하는 순서도, 그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완벽했다.

“순한 찻잎을 썼군요? 역시 2황자 전하의 안목은 훌륭하다니까요.”

힐데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어느새 모임의 호스트 노릇을 하고 있는 소녀를 한 번,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소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파비안을 한 번 바라보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도무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파비안은 대체 왜 사라, 라는 소녀를 안으로 들인 걸까.

우드 경의 딸이라서?

그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우드 경에게 저렇게 큰 딸이 있을 리 없는데.’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힐데의 접시에 큼지막한 타르트 조각이 놓였다.

“자아, 그 나이에는 가리는 것 없이 맛있게 먹어야 크는 거예요.”

외관만 보자면 분명, 자기보다 서너 살은 어려 보이는 소녀는 마치 한참 어른이라도 되는 양 말을 건네고 있었다.

“오빠도 얼른 먹어. 아빠 몫은 남겨 둘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게 아니라…….”

무언가 말을 하려던 스탠이 싱글거리는 여동생을 보고 이내 포기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와중에도 도로테아는 달콤한 필링 부분을 먹고 남은 부분을 오빠의 그릇으로 옮기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스탠은 익숙한 듯 남은 조각을 먹어치웠다.

“생각해 보니, 황녀 전하께 궁에 초대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해야 하지 않을까?”

“아.”

그제야 황급히 고개를 든 스탠이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천만…… 에요.”

힐데가 눈치를 보며 화답했다.

소심한 성격의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으니, 대화에는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그런 두 사람 가운데에서 차를 홀짝이던 도로테아가 자리에서 우아하게 일어섰다.

“이, 이제 가는 거야?”

줄곧 어두웠던 스탠의 얼굴이 밝아졌다.

도로테아는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은 기색이 간절한 오빠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다.

“화장실에 다녀올게. 둘은 담소를 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

소녀가 떠난 테이블 위로 소리 없는 비명이 메아리쳤지만, 도로테아는 개의치 않고 익숙한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쪽은 화장실이 아니에요, 영애.”

뒤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에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몸을 돌리자,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파비안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테아는 반쯤 확신에 찬 상대의 눈을 마주한 채 웃었다.

“나도 알고 있답니다, 파비안.”

인적 없는 복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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