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술사 도로테아-229화 (229/242)

229화

스탠은 불안한 얼굴로 휑한 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사라, 어딜 가려고?”

“귀신이 나온다던 의료원.”

짤막한 답을 건넨 소년의 여동생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분명 처음 온 영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저렇게 거침없이 목적지로 향할 수가 있지.

스탠은 제 손을 쥐고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여동생의 손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우뚝 멈춰 선 소년을 돌아본 도로테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멈추면 곤란해, 오빠.”

지금쯤이면 그녀의 성가신 권속도 아이들의 부재를 알게 되었을 테고,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고 있을 터였다.

그들의 시야를 교란하고자 흔적을 남겨 두긴 했지만, 미적거리다가는 금세 따라잡힐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눈이 틔었을 때 어떻게든 틀어막아 두는 건데.’

허(虛)와 실(實)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지금 펼쳐 둔 조잡한 장난질 따위는 금세 파훼해 버릴 테니까.

물론 루크가 그것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지만, 콜린이 협조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내 권속들은 내게만 매정하단 말이지.’

타인에게는 쓸데없이 친절하고 다정하면서 말이야.

속으로 투덜대는 사이, 스탠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녀를 말렸다.

“위험하잖아.”

“그렇지 않아.”

도로테아는 불안해하는 제 오빠의 손을 꼭 잡은 채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을씨년스런 건물을 올려다봤다.

꼭대기 층 창 너머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부끼는 것이 보였다.

“걱정하지 마, 오빠. 여긴 오히려 그 어디보다 안전할 거야.”

“…….”

아마도 흉흉한 소문 탓인지 건물 주변을 서성이는 행인들조차 없었다.

낡아 삐걱거리는 문을 열자, 찬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과 달리 건물 안쪽에서는 훈훈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추위에 웅크려 있던 스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이곳저곳 금이 가고 이끼가 낀 외관과는 달리, 건물 내부는 비교적 깨끗하고 멀쩡해 보였다.

꼭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도로테아는 손가락으로 협탁 위를 스윽, 한 번 쓸어 보고는 묻어나는 먼지를 보고 싱긋 웃었다.

겁 없이 성큼성큼 건물 내부를 헤집고 다니는 동생의 뒤를 따르던 소년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기척에 숨을 들이켰다.

“사라, 아무래도 여기 누군가 있는 것 같아.”

“주인아저씨가 그랬잖아. 여긴 귀신의 집이라고.”

소녀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오빠의 손을 잡고 흔들며 즐거운 듯 덧붙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보고 가면 좋잖아?”

“귀, 귀신이라니. 그런 건…….”

소년이 우물거리며 동생의 말에 반박하려던 순간이었다.

위층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계단으로 무언가가 굴러 떨어졌다.

“헙.”

남매의 발치에 떨어진 물건은 벽에 걸려 있어야 할 초상화였다.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스탠과는 달리, 도로테아는 쭈그려 앉아 초상화를 응시했다.

아마도 치료원에 많은 금액을 기부한 귀족 중 한 사람이 아닐까.

허리를 꼿꼿이 편 채 고풍스런 옷을 입고 있는 귀부인의 두 눈에 새빨간 눈물 같은 액체가 흘러내린 자국이 보였다.

도로테아는 여인의 눈가에 번진 새빨간 자국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그러고는 이내 그 손가락을 제 입에 넣고 싱긋 웃었다.

“사라!”

“이것 봐, 오빠. 아까 마셨던 열매로 만든 차보다 훨씬 달아.”

“뭐?”

소녀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눈앞에 들이민 손가락에서는 달콤한 향이 풍겼다.

어깨를 으쓱한 도로테아가 덧붙였다.

“귀신이 단 걸 좋아하나 봐.”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스탠이 고개를 들어 위층을 확인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사, 사람?”

발소리와 형체로 보건대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로 보였다.

도로테아는 초상화를 발로 툭, 밀어내고는 천천히 위층으로 향했다.

“흡.”

여기저기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가.”

이곳은 화려한 극장도 아니었고 무대를 보러 와 줄 관객도 없었지만, 이들은 낡은 건물을 터 삼아 연극을 하고 있었다.

소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낡은 층계에서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났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익숙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도로테아의 말이 어둡고 적막한 건물을 감돌았다.

소녀는 즐거운 얼굴로 가장 가까이 있는 문부터 열기 시작했다.

“이런, 여기에는 없네.”

“저기, 사라.”

“그럼 다음 방!”

어딘가 발랄하기까지 한 소녀의 걸음을 뒤따르고 있던 스탠이 눈을 끔뻑였다.

멀리,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문틈으로 누군가의 딸꾹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히잉, 나 다리 아파.’

‘참아, 참아!’

‘쟨 대체 누구야!’

속삭이는 소리가 스탠의 귀에 들릴 정도라면 도로테아의 귀에 들리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굳이, 그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앞에 있는 문을 하나씩 하나씩 열고서 빈방임을 확인하고 있었다.

‘흐으윽.’

‘쟤 무서워.’

즐거운 흥얼거림이 이어질 때마다, 잔뜩 겁먹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스탠도 이제는 저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그리 위험하다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아이 참, 여기도 없네. 그럼 다음~.”

흥얼거리며 문을 활짝, 활짝 열면서 한 걸음씩 숨어 있는 이들에게로 다가가고 있는 그의 여동생 쪽이 조금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문이 열릴 때마다 들려오는 억누른 신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더욱.

“사라, 돌아가자.”

“아직 마지막 방이 남았는데?”

방긋 웃어 보인 도로테아가 마지막 방문을 활짝 열자, 텅 빈 방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방이 비어 있는 것을 본 스탠의 눈이 커졌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고개를 들자,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과 그 너머로 보이는 활짝 열린 창이 눈에 들어왔다.

“여, 여긴 3층인데…….”

스탠이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도로테아는 아무런 말없이 방으로 들어서서 텅 빈 방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오빠.”

“응?”

“방이, 좀 좁게 느껴지지 않아?”

아까 열어 봤던 다른 방들에 비해서.

도로테아의 말에 스탠이 고개를 갸웃하고서 빈방을 흘끔 둘러보았다.

“나는 잘 모르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성큼 방의 오른쪽 면으로 다가선 그녀가 가볍게 손으로 벽면을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 대신 가벼운 토통, 소리에 소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에이.”

더듬더듬 벽을 짚어 내려가던 그녀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손으로 잡아당기자, 숨겨져 있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와르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까- 꿍.”

도로테아의 나직한 말 한마디에 이제껏 숨을 참느라 눈이 벌게진 레번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를 향해 짓고 있는 다정한 미소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너, 너, 너는 누구…….”

“약속을 어기시면 곤란해요, 단장님.”

도로테아가 나직한 목소리로 레번을 질타하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녀는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로 오직 그와 그에게 명을 내렸던 인물만이 알 수 없는 ‘약속’을 들먹이며 덧붙였다.

“분명 약속하셨잖아요. 이곳에 와 남은 이야기를 마저 무대 위에 올리겠다고.”

새하얗게 질린 레번이 잠시 멈췄던 딸꾹질을 다시 시작했다.

한 걸음 뒤에 서서 상황을 관망하던 스탠은, 여동생의 말 몇 마디에 새하얗게 질려 바들바들 떠는 레번을 보고 어쩐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   *   *

도로테아의 몇 마디를 듣자마자 얼굴이 창백해진 레번은, 영문을 모르는 다른 단원들과 스탠을 옆방으로 쫓아냈다.

소녀는 어디서 찾아냈는지 모를 달콤한 시럽이 든 음료를 홀짝이고 있었다.

지친 얼굴을 쓸어내리며 그녀의 맞은편에 털썩 앉은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분이 보내서 온 거냐?”

“그렇다고 해 둘까요?”

어차피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들 믿지 못할 것이고,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빙긋 웃으며 부정하지 않는 도로테아의 모습에 레번이 착잡한 시선을 보냈다.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내려놓은 도로테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째서 약속을 어기신 거예요? 왜 여기서 엉뚱한 귀신 놀이를 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듣던 레번이 얼굴을 굳혔다.

“도대체 네 주인은…… 우리에게 무슨 짓을 시킨 거냐?”

처음에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언제나 그랬듯 도로테아가 준 각본을 무대 위에 올려 관객들을 사로잡으면 그뿐이었다.

그것이 극단의 일이니까.

“늘 그렇게 해 왔잖아요. 싫었다면 거부했어야죠. 이제 와서 새삼스레 달라질 게 뭐람?”

“적어도 이제까지는, 극의 내용이 현실이 되는 일은 없었어!”

흥분한 목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도로테아는 태연한 얼굴로 한때는 부랑아, 지금은 어엿한 극단의 단장이 된 이를 빤히 바라보다 그저 미소 지었다.

허구(虛構)라 믿었던 무대가 현실로 확장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의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끔찍하고 말도 안 된다고 믿었던 재앙이 제국 곳곳에서 일어났다가, 성녀의 기도와 함께 멈췄다. 몇몇 귀족들은 우리의 연극이 재앙을 불러일으켰다고까지 말하며 손가락질했어!”

“그러니 황도를 떠나 이곳으로 오라고 했잖아요. 위험을 피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었는데 단장님은 약속을 어기고 이곳에 숨어 버렸죠.”

“나, 나는…… 이런 것을 바라지는 않았어. 그저 평범한 연극을 하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아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

숨을 크게 들이마신 레번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 도로테아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연극이 재앙을 불러온 것이 아니에요. 예정되어 있던 재앙을, 미리 보여 줬을 뿐.”

“…….”

“그곳의 사람들은 너무 오랜 시간 평화에 젖어 있었어요. 또 고통받는 이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 웅크려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고.”

재앙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설령 그녀가 사신들을 부추기지 않았더라도, 클라이브가 목적을 이루는 순간 그보다도 더한 재앙이 이 세계의 사람들을 덮쳤을 테니까.

“도대체 뭘 하려는 거냐? 미리 보여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

잠시 아무 말 없이 열린 창문 너머를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불쑥 물었다.

“저 밖에 미친 여인이 떠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어요?”

“……그래, 본 적 있어.”

“그녀가 왜 정신을 놓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레번이 입을 꾹 다물자, 도로테아는 답을 기다리는 대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줄곧 견디고 참았어요. 영주가 제국의 법으로 정해진 것 이상의 세율을 부과했을 때에는 더 많은 일을 했고. 전쟁을 대비한다며 집집마다 저장해 두었던 곡물과, 금속으로 된 물건들을 수거해 갈 때도.”

아무리 부조리해도 그 여인은 부조리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단 한 번도 부조리를 거부하지 않은 탓에 애꿎은 자신의 아이만 굶어 죽었다는 거죠.”

목소리를 갖고도 옳지 않은 것을 탓할 수 없었기에, 죽어 가는 아이를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게 죄책감을 퍼부었고, 결국은…….

“그것이 빈민으로 태어난 이들의 운명인 것을.”

레번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또한 한때, 집조차 없이 거리를 떠돌며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고 누군가에게 구걸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하지 않았던가.

“단장님도 알고 있잖아요. 제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

“재앙에 가장 먼저 닿고, 가장 오래 시달리는 것 또한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층이라는 것 또한.”

입술을 꾹, 깨문 레번의 얼굴에 복잡한 빛이 서렸다.

“연극은 말이에요. 그저 구실에 불과해요.”

“구실이라고?”

“꾹꾹 눌러 왔던 속내를, 공포에 지배당해 스스로 채우고 있던 재갈을 풀고 진실을 말할 기회를 획득할 구실이죠. 앞으로 더는 후회하지 않게끔.”

“선동이라도 하라는 거냐? 저들이 들고일어난들, 귀족들의 힘 앞에서는 제대로 서 보지도 못한 채 무너져 내릴 텐데.”

“겁을 먹고 다시 물러설 수는 있겠죠. 눈앞의 두려움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만, 한 번 떼기 시작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들도 있을 테지.

단 한 번이라도 귀족들의 귀에 그 목소리가 닿는다면 다른 이들 또한 달라지리라.

“올 겨울은 유독 차갑고 서늘한 것 같아요.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죽어 갈 거예요.”

그렇다면 차라리 뜨겁게 들끓어 불타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채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녀가 나직이 덧붙였다.

“약속을 지키세요, 레번. 당신의 주인이 당신과의 약속을 지켜 새로운 삶을 주었듯이.”

레번은 홀린 듯 멍한 얼굴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   *   *

대화가 끝난 뒤 도로테아는 옆방의 문을 열고 얌전히 자신을 기다려 준 오빠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가자, 오빠.”

극단원들의 관심을 온몸으로 받느라 난감해하고 있던 스탠이 기다렸다는 듯 반짝 고개를 들었다.

소녀의 등장에 활발하게 물음을 쏟아 내던 단원들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피했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좁혀 오며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했다.

공들여 준비했던 기괴한 신음 소리도, 새빨간 열매 즙을 묻혀 두었던 초상화도, 펄럭이는 커튼이나 바닥을 삐걱거리는 소리들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즐겁게 웃으면서 다가오던 소녀에게서 느낀 공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안녕히 계세요.”

“가, 가려고?”

그나마 나이가 있는 축에 속하는 마리가 조심스레 묻자, 도로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쯤 아버지가 저흴 찾고 있을 거예요.”

도로테아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라는 단어에 스탠이 울상을 지었다.

여동생에게 휘둘려 여기까지 오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건만, 말도 하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으니 걱정하고 계실 텐데.

“얼른 가자, 사라.”

호기심 어린 눈길이 남매의 뒤로 이어졌지만, 도로테아는 손을 두어 번 흔들어 주고는 미련 없이 스탠의 뒤를 쫓아 건물을 빠져나왔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며 스탠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 사람,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야?”

“응.”

“그렇구나.”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지만 대화를 마치고 난 레번의 얼굴에 그늘이 졌던 것을 보면 분명 그리 가벼운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터.

“무슨 이야기였는지 물어봐도 돼?”

조심스러운 물음에 도로테아는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순순히 답해 주었다.

“원래 저 사람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야.”

“공연?”

“원래 황도에서만 공연하던 사람들인데 이번에 이곳까지 내려온 거거든.”

“그런데 왜 이런 곳에…….”

“겁이 나서 숨어 있었대.”

스탠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들은 그냥 연극을 하는 것뿐이었는데, 누군가는 그 연극을 보고 화를 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연극을 보고 찬양하기도 하고. 위험하다며 경계하는 사람도, 숭배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 어떤 분란의 원인도 되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 구나.”

“오빠.”

도로테아가 손을 맞잡고 걸어가다 멈춰 서서 그를 불렀다.

“응?”

“오늘 여기 와서 저 사람들을 만난 건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자.”

“…….”

생글거리며 대답을 기다리는 소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스탠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사라는…….’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고민에 잠긴 소년의 앞에 무언가가 불쑥 내밀어졌다.

“이, 이게 뭐야?”

찬란하게 빛나는 묵직한 금화가 든 주머니를 본 레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망토 아래로 주렁주렁 달린 주머니들의 양이 상당했다.

소녀는 상큼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냐.”

상영한 공연 탓에 해코지를 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숨어 있었다지만…… 이제껏 벌어들인 수입까지 아주 깔끔하게 쓸어서 챙겨 왔던데.

물론 겁이 났다는 레번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챙겨 온 것들로 보건대, 여차하면 약속이고 뭐고 단원들을 챙겨 다른 나라로 튈 생각도 했었을 것이다.

이제 그의 수중에는 땡전 한 푼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돈을 벌어야겠지.

‘사람 참 안 변해.’

저 멀리, 남매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우드가 보였다.

소녀는 굳은 얼굴을 하고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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