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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225화 (225/242)

225화

날이 밝자 후작은 연합군의 수뇌부들을 모아 황도에서 온 소식을 간략히 전달했다.

뜻밖의 소식에 다들 숙연해졌다.

아무리 서로를 물어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는 해도, 아내를 잃은 사령관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입을 함부로 놀릴 어리석은 위인은 없었다.

머릿속으로야 다들 그녀의 죽음이 끼칠 영향력을 계산하느라 바쁘겠지만.

과연 후작 부인의 죽음이 사교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후작은 언제쯤 자식에게 작위를 물려줄 예정일지.

그런 것들을 가늠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조차도, 입으로는 형식상의 위로를 내뱉기 바빴다.

후작은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듣는 둥 마는 둥 넘기며 덧붙였다.

“필립이 말하길, 제국 내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구려.”

극을 보기 직전 이미 제국을 떠났던 필립은, 하룻밤 만에 제국을 뒤엎어 버린 ‘기괴한 재앙’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국은 이미 그 이전부터 계속된 후계 싸움으로 삐걱거리고 있었던 터였다.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귀족들은 점점 더 일신의 안위에 치중했으니.

“아무래도 필립이 돌아가는 길에 제국으로 직접 전령을 보내야겠소. 소식이 끊긴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동의합니다. 이대로 계속 지지부진한 대치를 이어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른 왕국에서도 소식이 없는 것 또한 마음에 걸리지요.”

다들 후작의 말에 앞다퉈 동의하고 나자, 침묵이 감돌았다.

비록 막사 안은 고요함으로 가득 찼지만 그 내막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가 제국으로 돌아가 폐하를 뵙고 말을 올릴 것인가?’

‘그것이 과연 득이 될까, 실이 될까?’

치열한 눈싸움이 이어졌다.

뚜렷한 성과나 공이 없으니, 어쩌면 연합군의 대표로 돌아갔다 황제의 진노를 사게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전공은 없어도 병력의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니 되레 황제 앞에서 눈도장을 찍을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눈짓을 주고받는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후작이 입을 열었다.

“내일 출발하기 전까지, 고민해 보고 결정 내리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계를 서던 보초병 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들어왔다.

“후, 후작 각하!”

양해의 말도 없이 대뜸, 회의에 난입한 이를 본 나이 지긋한 귀족 하나가 얼굴을 구겼다.

“이 무슨 무례인가!”

근엄한 꾸짖음에 평소라면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어야 할 보초병이 파리한 얼굴로 연신 말을 더듬었다.

“가, 강물에…… 강물에……!”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는 병사가 답답한 듯, 또 다른 지휘관이 짜증스레 쏘아붙였다.

“강물이 뭘 어쨌다는 게야? 제대로 말을 해야 알 것이 아닌가.”

“가, 강물에 시신이 떠내려옵니다.”

앉아 있던 에이든이 벌떡 일어나 막사를 박차고 나갔다.

후작은 비교적 차분한 기색으로 병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시신의 신상은 확인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울상이 된 병사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지휘관이 다그쳤다.

“고작해야 알지도 못하는 시신 한 구 떠내려온 것으로 여기 와 이 난리를 쳤단 말이냐? 이럴 시간에 차라리 명단에서 실종된 이를 찾든가, 시신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든가 해야 할 것이 아니야.”

전장에서 시신 한 구 떠내려온 것으로 그토록 유난이냐는 말에 병사가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 한 구가 아닙니다.”

“……?”

“강물이, 물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시신들이 떠내려옵니다. 퉁퉁 불어 오른 시신에서 풍기는 악취가 코를 찌릅니다.”

“……!”

차분히 듣고 있던 후작이 그제야 막사 밖으로 나섰다.

다들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서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은 시신들의 끔찍한 형태와 심한 악취에 구역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후작이 눈살을 찌푸리자, 곁에 있던 벤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당분간 식수를 아껴 쓰라 이르겠습니다.”

연합군에 합류한 이들만 해도 수만에 다다르는 상황에서, 강물을 뒤덮은 시신들은 단지 미관상의 문제만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었다.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해 대는 귀족들을 바라보던 후작은 성큼성큼 시신 가까이로 다가가, 옷차림을 확인했다.

날카로운 시선이 퉁퉁 불어 오른 시신에 가까스로 끼워져 있는 녹슨 팔찌를 확인했다.

“로헨 왕국의 것이로군.”

하얗게 질린 뷔야르 자작이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그 생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대정령사와 그의 제자들이 왕국을 모조리 점령했으며 로헨의 왕족들은 깡그리 씨가 말랐다는 그 주장이?”

같이 듣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온전하게 믿지는 않고 있었던 귀족들도 침음을 흘렸다.

“그,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대정령사가, 정령사가 아닌 죽음의 술사라 불리는 금술(禁術)을 쓰는 이교도란 말인가.

강물을 가득 메운 시신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듯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몸을 굽혀 시신을 들여다보던 후작이 담담한 얼굴로 눈을 감겨 주며 지시했다.

“왕녀와 그리엄 경을 부르게. 아무래도 물어볼 것들이 많을 듯싶군.”

*   *   *

우드는 아버지의 등장으로 들떠 밤새도록 여기에서 겪었던 일들을 늘어놓다 겨우 잠든 스탠을 안아 든 채, 착잡한 얼굴을 하며 소란스러운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강물에 떠내려온 시신들을 하나둘씩 건져 내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구역질 소리를 듣던 우드가 물었다.

“어젯밤 네가 그곳에서 날뛴 것과 관련 있는 일이냐?”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어린아이처럼 손장난을 치며 놀던 도로테아가 고개를 들었다.

새까만 두 눈이, 분주하게 시신을 수습하는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진작에 명을 다한 자들이었어. 껍데기만 남아 있었던 육신에 멋대로 혼을 집어넣어 움직이게 했을 뿐.”

“…….”

“그러게 어젯밤에 날 막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이미 저지른 죄들을 보건대, 살아 돌아간 그자가 앞으로 저지를 죄가 걱정되지 않아?”

별것 아니라는 어조에는 묘한 가시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어젯밤 그녀를 막지 않았더라면.

도로테아를 가만히 바라보던 우드가 나직이 대꾸했다.

“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다. 네 말대로 저자가 저지른 죄가 이토록 중하니, 개인적인 원한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저들 모두가 그를 붙잡아 단두대에 올려 적법하게 처형해야지.”

제법, 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상황을 앞에 두고도 엉뚱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는커녕 하고픈 말을 또박또박 뱉을 줄 알게 된 것을 보면.

“이제 어찌할 생각이냐?”

“제국으로 돌아가야지.”

“돌아간다고?”

하기야, 모습을 감춘 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슬슬 가족들도 걱정하고 있을 터.

“그럼 이제 도로테아로 돌아올 생각인가?”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냐.”

일이 끝나기는커녕 이제야 시작인데 벌써 돌아가기에는 이르지.

도로테아는 장난치듯 꺾은 하얀 들꽃을 우드의 귀에 꽂아 주며 다정히 말했다.

“조금만 더 아비 노릇을 하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지?”

도로테아는 그저 싱긋 웃을 뿐, 답은 주지 않은 채 되레 엉뚱한 말을 꺼냈다.

“자, 심부름값을 받았으니 일을 하러 가야지. 발레리와 함께 손님을 마중 나갔다 오렴. 나는 그사이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귀에 꽃을 꽂고 있던 우드가 멍하니 그녀를 보다, 가면을 쓰고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레리를 보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어젯밤,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던 소녀는 다시 제 감정과 속내를 의뭉스런 웃음 아래 꽁꽁 감춰 버린 것 같았다.

걱정이 되지 않을 리 없었지만, 그녀의 입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명시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게 되면 알게 되겠지.

다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도로테아가 스스로를 다치게 만드는 일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할 따름이었다.

*   *   *

우드를 심부름 보낸 도로테아는, 종종걸음으로 콜린이 있는 막사를 찾았다.

앓아누운 아버지 곁에서 정성스레 식은땀을 닦아 주던 필립이 고개를 들었다.

“사라.”

소녀의 이름을 부르자, 형을 걱정스레 내려다보던 에이든 또한 그녀를 보고 반색했다.

“아가, 왔느냐?”

“아저씨는 좀 어때요?”

사라의 모습을 한 도로테아의 말에 필립이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의원에 말에 따르자면 큰 충격을 받아 쓰러진 것 같대. 충분히 휴식을 취하다 보면 점차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어.”

조그마한 손이 뜨끈뜨끈한 이마를 짚었다.

강물에 떠내려온 시신들은 모두 ‘부정한 행위’에 쓰였던 오염된 육신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끔찍한 사취에, 지독한 탁기까지.

그 모든 것이 사신의 혼을 지닌 콜린에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꺼려지는 것일 테지.

도로테아는 육신을 보하는 힘을 슬쩍 밀어 넣어 주고서 손을 뗐다.

장하다는 듯 도로테아의 머리를 조심조심 쓰다듬어 준 에이든이 콜린을 향해 입을 뗐다.

“형님, 내가 오판했소.”

짐짓 목소리를 낮추고서 엄숙하게 말을 꺼내는 에이든의 모습에 콜린이 가늘게 눈을 떴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또 무슨 개소리로 복장을 터뜨리려는 것인지 알고자 하는 눈치였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의지를 가진다면, 이 세상에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으리라 믿었소.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오.”

에이든은 침울한 얼굴로 손을 뻗어, 파리한 형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홀쭉한 뺨을 쓸어 주었다.

“내가 틀렸소.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도 있는 거요.”

“……손 떼.”

“형님은 그냥 저택으로 돌아가야 할 듯하오. 조국은 어떻게든 내가 지켜 줄 터이니.”

나름대로 애틋한 정을 쏟아 내는 에이든과는 달리 콜린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축축한 숨이 그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이것 보려무나. 밤새도록 자고도, 또 잠을 자야만 할 정도로 약해빠진 체력을. 이건 훈련으로 도저히 극복되지 않는, 타고난 체질이라 할 수밖에.”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에 필립이 다정하게 답했다.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잘 모시고 돌아갈 테니까요.”

“그래, 너만 믿는다.”

필립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에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는 아직도 작업이 한창이니, 한몫 거들러 가는 모양이었다.

육중한 덩치의 에이든이 막사를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필립이 입을 열었다.

“테아.”

나직한 부름에 자는 척하고 있던 콜린이 눈을 떴다.

도로테아는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필립의 부름에 부정하는 대신 순순히 답했다.

“응.”

“오는 길에, 괴상한 일들을 많이 겪었어. 많은 사람들이 네가 올린 연극의 내용들을 읊고 있더라.”

“…….”

“마치 예언처럼.”

필립이 웃음기를 거둔 얼굴로 도로테아를 마주했다.

“아무리 마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시간이 느리다고는 하지만, 극이 올라갈 즈음 곧장 출발한 나와 극의 내용이 비슷한 속도로 퍼져 나갔다는 것은 누군가 의도했다는 뜻이겠지.”

“…….”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어. 죽음을 다루는 자들을. 그들이 저질렀다는 끔찍한 범죄들과, 더불어서 그 악랄한 면까지도.”

도로테아는 필립의 조곤조곤한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한 마디 뱉었다.

“딱히, 거짓된 부분은 없는걸.”

오히려 축소했으면 모를까.

클라이브의 모든 행보를 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던 탓이다.

반박하듯 건넨 말에 필립의 눈이 한층 가라앉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너도 알잖아.”

네가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조차도 그에게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설마 거짓이라 하더라도 도로테아가 원한다면 굳이 그것을 막을 까닭은 없었다.

“그렇지만 테아, 극의 내용을 보고 듣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구분하지 않아. 죽음을 다루는 술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나쁜 사람인지.”

이제까지는 잘 감춰 왔지만, 만약 ‘진짜’ 정령을 다루는 그리엄 앞에서 도로테아가 힘을 사용한다면…… 바로 들키게 될 것이다.

그녀 또한 망자들을 볼 수 있고, 그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널 걱정하셨어. 너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아낄 줄 모른다고 하셨지.”

콜린의 머리카락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도로테아가 조용히 손을 뺐다.

할머니.

그저 다른 이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렸다.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걱정했던 할머니는 죽음 그 이후에도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그러니 도로테아 또한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다.

그녀가 필립의 말을 나직하게 반박했다.

“틀렸어, 필립. 사람들은 구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줄 몰랐던 거야.”

그러니 배워야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나는 그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긴 마음을 짓밟지 않기로 했을 뿐이야.”

쉬쉬하거나 숨기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를 온전히 드러내어도 될 수 있게끔.

설령 누군가에게는 비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온전하게 그녀를 받아들여 주고 그것이 용인될 수 있도록.

새까만 두 눈을 마주한 필립이 다시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밖에서 손님을 마중 나갔던 우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새를 점령한 이들이 전령을 보냈습니다.”

기다렸던 이의 도착에 도로테아가 조용히 막사 밖으로 나섰다.

핼쑥한 얼굴의 남자가 품에서 붉은 인장으로 봉한 서신을 꺼내어 후작에게로 내밀었다.

후작이 그것을 전해 받기가 무섭게, 남자의 얼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으으으.”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천천히 녹아내린 시신을 보던 이들 모두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보란 듯 제 힘을 과시한 클라이브의 만행에 다들 분노보다는 겁을 집어먹은 기색이었다.

“맙소사.”

누군가의 탄식과 함께 서신을 확인한 후작이 차분한 목소리로 내용을 읊었다.

“요새를 돌려줄 테니, 휴전을 원한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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