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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219화 (219/242)

219화

숨겨 두었던 자신의 귀중품들을 찾으러 왔던 백작은 벌벌 떨며 사실을 고하는 창고지기를 보고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뭣이? 없어? 하나도?”

“예, 예.”

“그게 무슨 소리냐. 분명 어느 한구석에 잘 숨겨 두질 않았더냐!”

귀한 물건이라, 가문에서 공수해 오면서도 들키지 않게끔 창고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더랬다.

이곳은 전장이니 되도록 근면성실한 자세로 임하라는 후작의 말에 딱히 찬성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늉은 보여야 했다.

괜한 꼬투리를 잡혀 목에 힘을 주어야 할 때 트집을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 하여, 이제껏 그가 즐겨 오던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금욕적인 인간으로 살 생각은 없었다. 후작조차도 그것까지는 강요하지 않을 터.

그러니 몰래 숨겨 두고서 알음알음 즐기는 약간의 술과 시가(잎담배),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급 식재료들은 눈감아 주고 있었던 것일 텐데.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황자 전하이십니다.”

뺨을 부르르 떨며 분노하던 블루웰 백작은 창고지기의 말에 멈칫했다.

그러고는 연신 고개를 숙이는 상대를 찬찬히 살폈다.

황자의 변덕에 밤새도록 시달리느라 잠을 자지 못해 충혈된 눈동자와 턱까지 내려온 눈 밑 그늘, 푸석푸석한 얼굴을 보아하니 거짓이 아니었다.

“그, 그분이 무엇 때문에 그런…….”

황자는 술을 즐기지도, 연초를 피우지도, 고급 식재료를 즐기는 미식가도 아니었다.

물건의 주인을 찾아 군기를 잡는 명목으로 사용할 사람이라면 모를까.

“간밤에 찾아오셔서, 남김없이 쓸어 가셨습니다.”

“…….”

황망한 얼굴을 하고서, 빈손으로 터덜터덜 창고를 벗어나던 백작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북쪽에서만 간혹 잡힌다는 눈처럼 하얀 설호의 모피로 만든 담요를 덮어쓴 어린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장정들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나눠 주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이런 것이 어디서 나서?”

“이곳에서는 접하기도 힘든 산양 젖이 아니냐! 달콤한 것을 보아하니 꿀을 탔구나!”

기사들의 재촉에 못 이겨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방호벽을 쌓던 이들의 얼굴이 풀어진 것이 보였다.

소녀의 손에 들린 고급스런 양모 주머니를 바라보던 백작이 눈을 부릅뜨고 콧김을 뿜어 가며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진통 효과가 있는 시가를 부상자들의 막사에 모두 나누어 주고 돌아온 도로테아는, 루크가 털어 온 산양 젖과 꿀을 잔뜩 지쳐 있는 장정들에게 나눠 주고 있던 참이었다.

거친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멀리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퉁퉁한 중년 남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회의 첫날부터 화려한 꿩 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왔던 작자였다.

메릴린을 향해 온갖 트집을 잡아 대면서도, 스스로는 무엇 하나 나서지 않던 게으른 인간의 표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럴 때는 빠르군.’

씩씩대며 그녀의 손에 쥐어진 물건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는 꼬락서니로 보건대, 십중팔구 이 사치스러운 것들 모두가 그의 것이었겠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본 도로테아가 싱긋 웃었다.

“좀 드릴까요?”

들기도 무거울 만큼, 주머니 가득 들어 있던 산양 젖도 이제는 찌꺼기나 다름없는 침전물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그것도 핥아먹으면 꽤 고소할 터였다.

“도대체 누가 네게 그걸 멋대로 나누어 주라 하더냐!”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에도 소녀는 태연한 얼굴로 그의 속을 긁어 댈 만한 말을 골라 꺼냈다.

“산양 젖은 본디 산양이 낳아야 할 새끼의 것이잖아요. 그런 소중한 젖을 인간이 가져왔으니 가장 필요한 분들께 나누어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돼지의 여물로 주는 것보다는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일한 인간들의 몫으로 나누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 아닌가.

“이익, 당장 그 몸에 두른 담요를 내어 놓지 못할까!”

우악스런 손이 소녀의 몸에 닿기 직전, 누군가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끌어냈다.

비틀거리며 밀려난 백작이 사나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다 굳었다.

“화, 황자 전하……!”

“저 담요가, 경의 것인가?”

“그, 어, 예……?”

“경의 것이냐고 물었다. 무역이 제한된 북쪽에서 흘러들어왔을, 황실에 바쳐지는 공물보다도 상급의 모피 말일세. 폐하께서도 덮어 보지 못한 새하얀 털이 몹시도 인상적이라 나도 모르게 창고에서 꺼내왔거든.”

“…….”

“마침 주인을 찾고 있던 차인데, 경의 것이라면 꽤 반가울 것 같네.”

나직한 목소리에 담긴 살기가 하는 말은 명확했다.

황제조차도 함부로 구할 수 없는 사치품을 전장까지 바리바리 품고 가져온 것이 바로 네가 맞느냐는 물음.

백작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아니라고 부정하면 별장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들여 공수한 값비싼 모피를 빼앗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맞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즉시 타국과의 불법 무역 및 내통, 필요 이상의 사치로 군의 기강을 해이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을 들어 처벌받게 될 터.

침을 꿀꺽 삼킨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워낙 희귀한 물건이라 저도 궁금하여 물었을 뿐입니다.”

“그렇군.”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비척대며,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백작을 빤히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혀를 찼다.

“왜 쓸데없이 사람을 괴롭혀 내쫓고 그러니.”

“…….”

“남의 물건을 약탈하는 것은 군법으로 엄히 금지된 일인데. 황자가 되어서 모범은 보이지 못할망정.”

“네가 뒤집어쓴 그 물건도 남의 물건이다만.”

“빼앗은 건 내가 아닌걸.”

어깨를 으쓱하는 도로테아의 말뜻이야 명확했다.

물건을 강탈하여 건넨 것은 루크였으니, 죄 또한 온전히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

평소보다도 더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는 주장이었으나, 루크는 굳이 반박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고 어디론가 향하는 소녀의 뒤를 따랐다.

큰 부상을 입고 꽤 오랫동안 두문불출하며 요양하던 황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허리춤에 겨우 올까 말까 한 여자아이를 쫓아다니는 광경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상당한 오해와 착잡함을 불러일으켰으나 당사자는 딱히 개의치 않는 듯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병영을 누비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졸졸 쫓는 황자.

눈앞에서 펼쳐지는 괴상한 풍경에서 다들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   *   *

막사 안으로 들어가 먹음직스러운 사과 하나를 꺼내 온 도로테아는,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크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오늘따라 무척 한가한가 보구나. 눈을 떴으니 할 일이 쌓이고 넘칠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일이라면 능력이 차고 넘치는 어느 분께서 해 주고 계신 터라.”

나직한 답에 도로테아의 얼굴에 서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게 능력이 좋은 사람이 영향력까지 높이게끔 해도 괜찮겠어?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

“적어도 그 모피를 여기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작자보다는 나을 테니까. 최소한 말아먹지는 않을 테지.”

“그리고 넌 나를 이렇게 졸졸 쫓아다니고?”

“…….”

뻔한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택한 루크를 힐끗 돌아본 도로테아가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사과를 높이 던졌다 쥐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별안간 누군가를 향해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반반한 낯짝을 치켜들고 썩은 미소를 흘리며 다가오던 기사가 루크의 존재에 멈칫했다.

칫, 하고 혀를 찬 도로테아가 그에게로 달려가 까치발을 하고서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나 굳었던 기사의 얼굴이 한순간에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둘 사이에 몇 번의 은밀한 대화가 오고간 뒤,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조심스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쥐여 주었다.

무엇을 받은 것인지 몰라도 도로테아는 활짝 웃는 얼굴로 젊은 기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잘 해 보라고 격려하는 몸짓이었다.

“…….”

루크는 기사와 헤어져 다시 어디론가 향하는 도로테아의 뒤로 다시금 조용히 따라붙었다.

그녀는 그 뒤로도 몹시 시답잖은 일들을 이어 나갔다.

별안간 제 다람쥐를 시켜 이 근방의 쥐라는 쥐는 모조리 곡물 창고로 모아, 오래되어 냄새가 나고 눅눅해진 곡물들을 골라 먹이지를 않나.

그 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한참을 빙빙 돌며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동선을 이어 나가던 소녀가 지친 듯 우뚝 섰다.

도로테아는 성가실 정도로 졸졸 쫓는 황자를 향해 샐쭉한 얼굴로 물었다.

“언제까지 쫓아오려고?”

“네가 무슨 꿍꿍인지 알게 될 때까지.”

“꿍꿍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짐승 같은 눈이 그녀를 훑었다.

도로테아는 보이지 않는 속내까지 꿰뚫어 볼 듯한 강렬한 눈을 피하는 대신, 마주한 채 활짝 웃어 주었다.

자고로 웃는 자에게는 침을 뱉지 못한다는 말처럼, 혹여 황자도 웃는 얼굴에다 대놓고 구박을 하지는 못할지도 모르지 않나.

“실로 꿍꿍이로 가득 찬 음흉한 얼굴이군.”

꽤 인색한 평에 도로테아는 과장되게 토라진 흉내를 내며 돌아섰다.

역시 순순히 떨어질 생각은 없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만큼 영민하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일을 벌일 작정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눈치챈 모양이었다.

짐승이라 그런가, 감이 참 좋단 말이지.

‘자, 그럼.’

철거머리처럼 달라붙는 황자를 어떻게 떼어 놓는다?

골몰히 생각하던 도로테아가 다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깊은 밤, 모두가 잠들 시각 일어난 도로테아가 막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옆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루크는, 인기척이 느껴지기가 무섭게 번뜩 눈을 떴다.

몰래 나가려다 들킨 상황임에도 소녀는 웃으며 태연히 인사를 건넸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는데. 좀 더 자지 그러니.”

“어딜 가는 거지?”

“약속이 있어서.”

“무슨 약속.”

“아까 봤잖아. 이 금붙이의 주인과 만나기로 했어.”

도로테아가 품에서 금단추를 꺼내어 흔들었다.

담담한 루크의 표정으로 보건대 이 물건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녀가 걸음을 옮기기가 무섭게 바짝 따라붙는 것으로, 물건의 주인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도로테아는 짤막한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숲을 가로질렀다.

이윽고 루크에게도, 그녀에게도 익숙한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의 낮은 기온에 흐르는 계곡물의 찬 기운이 더해져 유독 주변의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누군가가 부스럭거리며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

이 밤중에, 몹시도 외양에 신경을 쓴 듯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기사였다.

그제야 은밀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을 떠올린 루크가 낯익은 남자를 훑었다.

살짝 들뜬 얼굴의 기사는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의아한 기색으로 도로테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녀가 나와 만나고 싶어 한다지 않았니?”

그렇기에 이 어두운 밤, 두려운 기분마저 꾹꾹 눌러 가며 이 숲 깊숙이까지 들어오지 않았던가.

남자의 말에 도로테아가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왔지요.”

남녀가 단둘이 만나는데, 어째서 소녀의 존재가 필요하단 말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남자가 조심스레 추측했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 부끄러움이 많아 홀로 나오기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지.

‘의외로군.’

맨손으로 곰도 때려잡는다던 여자가 이런 일에 부끄럼이라니.

하기야 그녀 또한 귀족 영애가 아니던가.

얼마나 큰 공을 세우고, 그 어떤 활약을 보였건 간에 언젠가는 어느 가문의 안주인이 되어 부군을 내조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남자의 얼굴에 서서히 만족스런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어디에 있지?”

“이리로.”

소녀가 손을 까딱여 남자를 물가로 안내했다.

맑은 물 위로, 선연히 내리비치는 달빛에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말쑥한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의 눈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 뒤에서 천천히 얼굴을 드러낸, 핏기 하나 없는 여인의 얼굴.

“제가 만나게 해 드린다고 했잖아요.”

그녀가 당신을 몹시도 보고 싶어 했어요.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숨도 쉬지 못한 채 꺽꺽거리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남자의 눈이 서서히 충혈되기 시작했다.

실핏줄이 터져 새빨갛게 변한 흰자위에 그의 멀끔했던 얼굴이 기괴해져 갔다.

뻣뻣하게 굳은 채로 천천히 계곡물 안으로 고개를 숙이는 남자는 누가 보아도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첨벙,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계곡물 안에 온전하게 담겼다.

도로테아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어, 팔짱을 낀 채 한쪽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루크와 눈을 마주쳤다.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는, 마치 내가 이렇게 못된 짓을 해도 나서지 않을 거야? 하고 묻는 듯했다.

“이자는 반반한 얼굴과 제법 괜찮은 재력으로 꽤 많은 여인들의 환심을 샀어. 이곳저곳 염문을 뿌리고 다니긴 했지만 처세술이 훌륭하여 그간 사교계에 오르내리지는 않았지.”

문제가 될 만한 이들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았고, 서로 적당히 즐기는 선에서 마무리될 정도로 합의를 보곤 했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인가. 가볍기만 한 관계들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 거야. 좀 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싶었나 봐.”

즐기기만 하는 것은 실속이 없었다.

남자는 자신을 찬양하고 떠받들어 주며, 동시에 제게 온 마음을 줄 만한 여자를 원했다.

물론 뒤탈이 없어야 할 테지만.

“그러니 어쩌겠어. 거짓된 미래를 약속한 남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배신당하더라도 아무런 항의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여자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거야.”

사람의 진심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버리면 그뿐.

그 순간의 쾌락에 취해 진심 한 점 없는 거짓을 늘어놓다, 그 탓에 상대가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후에 몸을 빼면 그만.

도로테아는 마치 동화를 들려주듯, 온화한 목소리로 남자와 죽어서도 그를 만나고자 했던 여인의 사연을 읊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루크의 눈에 자신이 비쳤다.

마음이 가장 애틋해지는 순간, 영문도 모르고 버림받은 여인이 얻게 되는 것은 비난이었다.

비난의 화살은 신분이 높고 재력 있는 남자가 아닌, 허울뿐인 말을 진심으로 착각할 정도로 순수했던 여인에게로 집중되었다.

반지르르한 외모와 값비싼 물건들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속물적인 성정을 가졌기에 그리된 거라고.

“정말 속는 사람이 나쁜 걸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는지, 계곡 물에 얼굴을 묻은 남자가 필사적으로 팔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도로테아의 말에 가만히 남자를 지켜보던 루크가 입을 열었다.

“너는 사과와 금붙이를 받는 대신 ‘여인’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거래를 했지.”

“…….”

“그렇다면 저 여인과는 무엇을 거래했나?”

자신을 버린 남자로 하여금 그녀의 존재를 볼 수 있게끔 해 주는 대가로.

루크의 물음에 도로테아가 활짝 웃었다.

“역시 너는 감이 좋아.”

줄곧 계곡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물에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실핏줄이 터진 눈을 하고서 그가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한 맺힌 원귀의 절규에 모여든 잡귀들이 꾸역꾸역, 루크의 눈과 귀를 가리기 시작했다.

“너를 내게서 떼어 놓는 것이, 바로 우리의 거래 조건이었단다.”

도로테아가 친절하게 답했다.

물론 황자는 들을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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