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도로테아를 노려보던 코니움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 상황까지 와서 여유로운 척이라니. 과연 당신답다고 해야 할까.”
“여유로우니까요?”
코니움은 조그마한 어린 소녀가 고개를 기울이며 꺼낸 반문에 코웃음쳤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다 ‘신의 저주’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예전의 당신이었으면 모를까 지금의 그 몰골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요?”
“…….”
정확히는 저주가 아니라 신의 배려에 가깝긴 한데.
도로테아가 새삼스런 얼굴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하기야, 이렇게 어린 몸을 하고 있으니 저주로 여길 법도 한가.
여전히 보는 눈이 일차원적인 ‘외관’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상대의 기세는 전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아무튼 예상치 못한 재회가 묘한 기분을 자아내긴 했다.
“코니움.”
“당신이 선심이라도 쓰듯 날 돌려보낸 뒤, 내가 어떤 지옥 속에서 이를 갈아 왔는지 모르겠지. 내가 당신을 뛰어넘으려고 무슨 짓까지 했는지.”
선심을 썼다기보다는,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봐야 옳았다.
지금의 도로테아와는 달리 그때의 도로테아 하이클레어에게는 수많은 제약들과 고민들이 존재했으니까.
어리고 허약한 육신으로 살의 업(業)을 받는 것보다는 돌려보내는 것이 나을 성싶었을 뿐.
‘그나저나 지옥에서 구르다 왔는데 딱히 성장을 하진 못했나 봐.’
이런저런 편리한 잔재주들은 제법 배운 것 같지만, 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권속들의 수준 또한 고만고만했다.
거기다 외관만으로 도로테아의 경지를 판단하여 그녀 자신에게 닿지 못하리라 단언하기까지.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
코니움이 말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그녀의 성장세가 뚜렷하지 못하여 그저 버리는 패로 여겼기에 잔재주 몇 개를 던져 주고서 선심 쓰는 척했거나.
흘끗 주변을 둘러본 도로테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페른, 이었던가? 스승님은 잘 계시나요?”
“그렇게 떠봐도 소용없어요. 그분이 있건 없건 영애가 곤란한 상황이라는 건 변함이 없거든요.”
그냥 생각난 김에 물어봤을 뿐인데.
‘함께 오진 않은 모양이네.’
지나칠 정도로 담담한 기색을 보이는 도로테아를 보고 입술을 잘근, 깨물던 코니움은 그녀의 뒤에 있는 루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하니, 7황자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거라 여긴다면 오산이에요. 그의 무력이 얼마나 강하건 간에 ‘이쪽’ 영역은 영애와 나의 싸움이죠.”
“네. 뭐, 딱히.”
도로테아가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애초에 전력에 보탬이 되리라 여기고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본디 낼 수 있는 힘의 2할이라도 꺼낼 수 있으면 노력했구나, 라며 칭찬을 아낌없이 퍼부어야 할 만큼 상태가 엉망이니.
‘그냥 숲에 들어갈 핑계가 필요해서 데려온 것뿐인데.’
이 숲 안에서야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그녀가 처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숲 밖에 있는 것들은 성가시고 떽떽거리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도로테아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그녀가 괴이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나는 정말이지 당신이 싫어요.”
이를 악문 코니움에 말에 도로테아가 상념에서 깨어나 눈을 끔뻑이며 느릿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유감이네요. 그렇지만 저도 딱히 당신을 좋아하지 않으니, 우리 서로 비긴 걸로 하죠.”
도로테아는 어느새 몸부림을 멈추고 코니움 뒤에 얌전히 엎드려 있는 영수를 바라봤다.
짐작대로, 숲의 주인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본성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길들여져 온 것이 틀림없었다.
누가 그의 타락을 종용하고 성향을 개조해 두었건 간에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미 인간을 먹어 자신의 업(業)을 쌓은 영수는 이미 자격을 잃었다.
늠름하던 형태는 괴이해졌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내는 ‘이 세계의 법칙을 벗어난’ 존재가 된 지 오래였다.
태어난 땅과 하늘, 이 숲에서 거부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도로테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코니움이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내가 아주 정성 들여 길러 낸 아이가 마음에 드나 봐요?”
“그냥 생각했을 뿐이에요.”
상서로움을 품고 태어난 짐승은 원래라면 이 숲을 제 영역으로 삼아 모든 생물들을 보듬어 주고, 그들의 생을 수호했을 터지만, 명운이 변했다.
그것이 설령 자의가 아닌 타의라고 할지언정, 모든 인과는 저 타락한 마수가 되돌려 받게 될 터였다.
코니움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대해도 좋아요. 이 아이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알 수 없는 눈을 하고서 지그시 그녀를 보던 도로테아가 입을 열었다.
“지금쯤.”
“……?”
“적어도 숲 초입 부근까지는 도착했겠어요.”
비록 인간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기는 하나, 정령사의 엄호 아래 안내를 받아 쉬지 않고 움직였다면 아마도 지금쯤 충분히 멀어졌으리라.
이곳에서 무슨 요란한 일이 벌어진다고 한들 알 길이 없을 만큼은.
도로테아의 말을 들은 코니움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얼굴이 벌게졌다.
계속 자신의 말을 얌전히 들어 준 건, 그저 사람들이 최대한 멀어지길 기다렸을 뿐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너!”
눈을 들어 하늘 높이 올려다본 도로테아가 손을 뻗었다.
“주변을 보아하니 아마 금쇄진(金鎖陣)을 펼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자그마한 몸 안에 갈무리되어 있던 힘이, 어마어마한 기세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고맙기도 해라.”
이렇게 정성껏 밖과 안을 차단해 주니, 이 안에서 내가 얼마나 날뛰든 간에 눈치 볼 일 하나 없다는 것이.
도로테아가 눈이 접히도록 활짝 웃었다.
“안 그래도 꽤 기분이 더럽던 차였거든요.”
데인 하이클레어가 아무리 나잇값 못 하는 ‘철부지’라고는 하나, 군의 체계를 함부로 어기고 독단적인 행동을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도리어 뼛속까지 무인이자 군인인 그의 타고난 성정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곳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리라.
아마도 코니움의 ‘많은 준비’ 속에 그 또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진짜 메릴린이 걱정되어서일 수도 있고.
“뭐, 무, 무슨…….”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세에 짓눌린 코니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말도 안 돼!”
오래전, 도로테아 하이클레어를 처음 마주했던 날이 떠올랐다.
남빛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경의가 온몸을 휘감을 만큼 한눈에도 위협적이었던 소녀는, 다시 재회했을 때에는 놀랄 만큼 보잘것없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무언가 위험한 일을 치르다 대가를 받았겠거니 했다.
술법사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닌가.
큰 힘을 원할수록, 치러야 하는 대가는 더욱 고달픈 법이니 분명 도로테아 또한 실패를 겪은 것이라고.
고작 해 봐야 그런 인간이었을 뿐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고.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것이 비참할 만큼, 한 발자국 떼는 것조차 어려워 몸이 벌벌 떨렸다.
“더욱 괴물이 되었잖아……!”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도로테아는 담담한 얼굴로 코니움을 바라봤다.
“조금 실망했어요, 코니움. 당신이 좀 더 성장했으리라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저들에게도 코니움은 그리 ‘큰 쓸모’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금지된 술법을 통해 성장을 하려면 그만큼의 재료와 과정이 필요한 법.
투자를 받았더라면 고작해야 이 정도의 경지로 멈칫하고 있을 리 없을 텐데.
“스승에게서 버림받았군요.”
그녀를 이곳에 보낸 것도, 조잡한 이들을 갖다 붙여 얼기설기한 계획들을 지원한 것도.
짐작하건대 도로테아의 힘을 가늠해 보라며 정보 수집 차원 목적으로 보냈을 확률이 높았다.
살아 돌아오면 좋은 일이고, 죽는다 하더라도 그리 아깝지 않은.
‘이곳의 스승이라는 존재들은 어찌 이리도 무정하고 도리가 없을까.’
제 이상을 위해 자식처럼 기른 제자의 삶을 희생시키는 작자에, 소모품 취급하며 이곳에 던져 넣고 나 몰라라 하는 작자까지.
적어도 재신의 스승은, 떠날 때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는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이용하거나 희생시킨 적은 없었다.
담담하게 코니움을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마치 죽음을 선고하듯 느릿하고 조용한 손길에 코니움이 왈칵,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검붉은 핏덩어리를 뱉어 냈다.
숲에 가장 첫 번째로 행했던 술법이 해주(解呪)되었다.
이로서 초입에서 헤매던 이들은 출구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꺼어어-.”
제 주인의 고통에 감응한 마수가 몸부림쳤다.
해주된 술법의 반동을 온몸으로 받아 내느라 기괴할 정도로 비틀린 코니움이, 일그러진 시야 너머로 초연한 얼굴의 도로테아를 바라봤다.
떠나올 때 그녀를 다독이던 스승의 말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네가 정말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나 또한 그리 믿으마.”
도로테아는 ‘버림받았다.’고 했지.
사실 이쯤 되니 코니움 본인도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스승인 페른은 진정으로 제자가 도로테아를 상대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인지. 아니면 고작해야 상대의 경지를 가늠할 측정 도구로 적절한 존재였을 뿐인 건지.
“끄으윽.”
어느 쪽이 진실이건 간에, 그 순간 코니움은 살아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리라…… 아니, 이곳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자신을 예감했다.
입가에 흥건한 핏물을 닦아 낸 그녀가 핏발 선 눈으로, 허공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소녀를 노려보았다.
‘그래, 내가 약한 탓에 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제 쌍둥이 오빠를 제물 삼아 그 자리를 삼키고서 살아남았던 것처럼.
패배의 끝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코니움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서렸다.
그녀와 도로테아 사이에 가늠할 수 없을 만한 실력 차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한 가지 노려 볼 수 있는 틈이 있었다.
그녀의 스승님이 유일하게 그녀에게 가르쳐 준, ‘최후의 수’가 남아 있으므로.
봉했던 영수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지면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테아아-.”
쩍 벌린 목구멍 아래로 친애하는 사촌의 목소리를 듣게 된 도로테아의 눈이 커졌다.
바로 그 순간, 코니움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신이여, 이 모든 어둠으로 저자를 덮으소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포위하고 있던 생명들이 하나하나 꺼져 가기 시작했다.
가장 강력한 저주는, 누군가의 생명을 태워 그것을 대가로 만드는 죽음의 저주.
마지막으로 날아오른 마수가 허공에서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육신이 폭사하며 도로테아의 온몸을 피로 뒤덮었다.
타락한 짐승의 피로 완성된 ‘부정한 어둠’이 도로테아를 옭아매는 순간이었다.
* * *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굉음에 걸음을 옮기던 이들 중 몇몇이 움찔했다.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평범하게 여겨졌던 숲길에서는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불안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하는 이들은 모두, 의기양양하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숲을 빠져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제 어디쯤 온 겁니까?”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멀어지고 있는 건 확실하니 너무 염려할 필요 없어요.”
차분한 메릴린의 대꾸에 입술을 달싹이던 이가 재차 묻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끔찍한 목소리에 사로잡혀 제 몸을 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것 또한.
눈앞에서 사람이 먹혀 들어가는 장면이 뇌리에 박혀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라제프는 새삼스러운 기색으로 자신을 포함한 일행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메릴린의 등을 바라보았다.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숲을 가로지르는 그녀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었다.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이…….”
웅얼거리는 소리에 잠시 뒤를 보던 메릴린은 상태를 확인하고는 말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영애, 정말이지 발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럽니다.”
우는 소리에도 걸음이 늦춰지는 법은 없었다.
라제프는 말없이 귀를 기울여, 혹여 다시 그 소름 돋는 울음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지 확인했다.
괴물의 울음소리는커녕 희미한 물소리조차 사라졌으니 조금쯤은 늦추는 것이 낙오자를 줄이는 방법일 텐데.
‘지나치게 긴장한 것이 아닌가.’
좀 더 사정을 살피라, 조언을 하려 입을 연 순간이었다.
별안간 들려오는 끔찍한 굉음에 땅이 울렸다.
“무……!”
메릴린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검을 뽑아 든 채 소리를 높였다.
“밀집하여 방진을 형성하세요! 보폭을 줄이고 본인이 서 있는 방향을 확인합니다!”
지시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부스럭대던 수풀 너머로 비대한 크기의 짐승이 무엇인지 분간하기도 전에 이쪽을 향해 달려들자, 메릴린이 빠르게 파고들어 수직으로 베어 냈다.
짐승의 피가 얼굴에 튀고 나서야 라제프가 눈을 끔뻑였다.
‘반응 속도가…….’
크기가 제법 커다란 늑대였다.
날렵하고 빠른 데다, 잔뜩 흥분해 있었으니 상대하기가 여간이 아닐 텐데.
단숨에 가죽을 꿰뚫어 그 안의 여린 살까지 깊게 베어 낸 것을 본 이들이 넋을 잃었다.
“좀 전의 일로 놀란 짐승들과 자주 마주하게 될 것 같아요. 사납지 않은 동물도, 이와 같이 흥분된 상황에서는 맞닥뜨리면 위협이 되기 쉬우니 주의하세요.”
담담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짐승들의 헐떡이는 숨소리와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쏟아졌다.
누군가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을 본 라제프가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서 유려하게 상대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던 메릴린의 잔상이 남아 그를 자극했다.
찰나의 순간이라고는 하나, 이 호리호리한 영애에게 압도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패수가 제일 바깥, 병장기 병과가 그 안쪽. 궁병과 부상자들은 제일 안쪽에서 이동합니다.”
피가 흘러내리는 검을 가볍게 털어 낸 메릴린은 떨리는 손을 주먹을 꽉 쥐는 것으로 감추고 걸음을 옮겼다.
숲에서의 사냥이라면 이골이 났지만, 등 뒤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짊어진 실전은 처음이었다.
이를 악문 뒤로 깨깽, 하는 짐승의 고통스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라제프라 했던가.
검을 제법 쓸 줄 안다 싶더니 다행히 전력에 도움이 될 만큼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또 짐승들과 드잡이를 하며 이동하기를 한참.
“이, 이제 한계입니다.”
쉴 새 없이 걸음을 옮기던 메릴린이 우는 소리에 우뚝 멈춰 섰다.
“괜찮아요.”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녀가 느릿하게 옆으로 비켜서자, 아마도 숲의 출구로 보이는 밝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어떻게든 살아 빠져나온 모양이네요.”
담담한 말에 누군가가 울컥한 듯 주저앉았다.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일행을 감싸자 너도 나도 풀린 다리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메릴린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어두운 숲 안쪽을 응시했다.
좀 전의 굉음은 대체 뭐였을까.
알 수 없는 찜찜함이 그녀의 속을 불안하게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