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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202화 (202/242)
  • 202화

    놀랍게도,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메릴린을 인정할 수 없다며 목청을 높여 떠들어 대던 귀족들 모두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이권 다툼에 매일 아옹다옹하며 승자 없는 다툼을 이어 나가는 도중이었다.

    ‘저 계집이 혹여 진짜로 공을 세우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는가.’

    ‘심지어 로헨의 잔당이 계집에게 붙었어. 그건 결국 로헨의 왕녀가 하이클레어 후작가에 신변을 맡기겠다는 뜻!’

    자칫 하다가는 이 험한 전장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초조하게 몰아세웠다.

    고작해야 어린 계집일 뿐이었다.

    건장한 사내와 달리 호리호리한 몸을 보고 있자면, 메릴린이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반박할 수 없을 만한 대단한 공을 세우기란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해내기라도 한다면?

    코웃음을 치려던 기사들도 지나치게 당당한 메릴린을 보고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저마다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던 그때, 누군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만일 영애가 공과를 통해 군사 지휘권을 가질 만한 자격을 인정받고 싶은 거라면, 당연하겠지만 올바른 자격을 갖추기 전까지 로헨의 기사들과 정령사는 영애를 도울 수 없소.”

    누군가 파고든 빈틈에 다른 이들도 질세라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요! 그들은 아직, 신원조차 불분명한 상태가 아닙니까. 폐하께서 보고를 받으시고 정식으로 저들을 ‘망명자들’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전투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하이클레어 후작 가문의 병력 또한 운용해서는 안 될 게요. 제국 제일의 검사를 데리고서 공을 세우는 것이야 누가 못 합니까. 지나가던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그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본인들은 여태껏 하지 못했나.

    도로테아는 막사 밖에 가만히 서서, 어린 영애 하나 잡겠다며 입을 놀리기 바쁜 각다귀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추태였다.

    그제야 에이든과 데인 같은 훌륭한 전력들이 왜 이곳에서 툴툴거리고만 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견제당한 거야.’

    본디라면 주변에서 왈왈대건 말건 간에 군을 이끌고 나가 주변을 정리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제국 황제에게 전권을 부여받은 건 그녀의 할아버지, 숀 하이클레어였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것은 연합군이지.’

    특히 발언권이 약한 약소국가들은 제국의 황제가 임명한 사령관의 지휘와 통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혹여라도 제국군을 대신해 전선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가뜩이나 없는 병력을 잃고 싶지 않다는 본인들의 입장이 있을 테니까.

    덕분에 한몫 제대로 챙겨 보고자 끼어든 버러지 같은 제국의 인간들까지 날뛰는 것이고.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죄다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건만.’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겠지.

    강경하게 저들을 진압했다가는, 제국이 독선적이고 광오한 태도를 가졌다고 떠들어 댈 테니까.

    괜스레 발끝으로 툭툭, 흙바닥을 두드리던 그녀 앞에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들자 머리 위에 곤히 잠든 다람쥐를 얹은, 가면을 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테아가 싱긋 웃었다.

    “언니가 아파서 회의에 불참했는데, 이곳에 계시면 다들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요?”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프리드가 나지막이 답했다.

    “괜찮습니다. 한동안 막사에 있을 테니 원한다면 주변을 둘러보고 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덧붙였다.

    “그리엄 발렌타인이 곁에 있을 겁니다.”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도로테아가 두 손을 모아 앞으로 쭉 뻗었다.

    프리드는 그녀의 뜬금없는 행동에도 궁금한 기색 없이 머리 위에서 잠든 다람쥐를 내려, 소녀의 손 위에 올려 주었다.

    팔자 좋게 잠이 든 다람쥐에게서 옅은 코골이가 흘러나왔다.

    천천히 몸을 굽힌 프리드가 손을 뻗어 흙으로 엉망이 된 도로테아의 신발 끝을 털어 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시는군요.”

    “제가 들어갈 수는 없죠. 할아버지는 이런 일에 엄한 분이시니. 그렇지만,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들을 수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녀의 말에 흙을 다 털어 내고도 가만히 몸을 굽히고 있던 프리드가 가면 너머로 도로테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말을 낮추어 주십시오.”

    “신경 쓰이는 건 알겠지만, 당분간은 주변의 이목에도 신경을 써야 해서요. 오빠야말로 제게 말을 좀 낮춰 주세요.”

    빙긋 웃으며 꺼낸 말에 프리드가 침묵했다.

    불리할 때면 입을 닫는 버릇은 변하질 않았다니까.

    싱글거리던 도로테아가 다시 막사 뒤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말의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막사들을 가로질러 달리는 말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푸르르르.

    이윽고 도로테아가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탈진한 듯 누워 버린 말 위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으, 으아아악!”

    “저게 뭐야!”

    “맙소사, 누군가 신관을!”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끔찍한 몰골의 사람이 숨을 헐떡인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병사들 사이로 재빠르게 다가선 프리드가 꺽꺽대며 꿈틀거리는 사람의 절단 부위에 천을 감쌌다.

    ‘이미 지나친 고통으로 인해 넋을 놓은 것 같은데.’

    곁에 있던 도로테아가 숨을 거두기 직전의 인간을 향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옅은 빛이 흘러들어가자, 일순간 꺽꺽대던 이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겨우 초점이 돌아온 병사는 필사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괴물. 괴물. 괴…….’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비켜!”

    그 순간, 벼락같은 말과 함께 도로테아를 뒤로 밀친 누군가가 꺽꺽대는 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프리드가 재빠르게 도로테아를 보호하듯 품에 안고 뒤로 물러섰다.

    “카메른……!”

    벌벌 떨리는 손으로 육신의 절반이 뜯겨져 나간 이를 어루만지던 남자가 비통한 목소리로 부르짖는 이름에 다들 숙연해졌다.

    도로테아는 프리드의 품에 안긴 채, 숨이 멎은 동료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남자를 훑었다.

    ‘제국인이 아니구나.’

    까무잡잡한 피부와 이국적인 외양, 독특한 복식을 보아하니 최근 연합군으로 합류한 부족 국가 소속의 인물인 듯했다.

    “라제프.”

    누군가 다가와 숨 멎은 이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를 달래려는 손길을 사납게 뿌리친 남자가 몸을 일으켜 으르렁댔다.

    “숲을 정찰하는 일은 분명 안전할 거라 하지 않았소!”

    뒤늦게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온 노후작이 참담한 사체를 보고 침음을 흘렸다.

    다들 겁을 집어먹은 듯 주춤거리는 태세였다.

    라제프라 불린 남자가 살기 어린 눈을 이글거리며 하이클레어 후작을 노려보았다.

    “안전한 일이라 하여 믿고서 보낸 이가 이리되어 돌아왔소! 제국의 더러운 것들이 하는 말을 믿은 결과가 결국 이것이로군!”

    앞뒤 가릴 것 없는 힐난을 듣고 있던 후작 옆에서 키엘이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찰이라는 것은 본디 ‘작전에 필요한 자료를 얻으려고 적의 정세나 지형을 살피는 일’이라고 배웠습니다만, 제 배움이 짧아 잘못 이해했나 봅니다. 세상에는 안전한 ‘정찰’도 있었군요.”

    “…….”

    “사령관께서 안전하다고 단언하셨기에 정찰대를 파견하는 데 찬성하셨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만, 그런 장담을 하셨다면 확실히 저희 측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곤조곤한 말이 이어질수록 라제프가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키엘이 틈을 주지 않고서 말을 이었다.

    “다만 제가 이곳에 합류하며 들은 이야기로는, 사령관께서 에이든 경께 정찰대를 맡기려 할 때 제일 극심하게 반대하신 분이 라제프 공이라 들었습니다만.”

    “그건…….”

    “심지어 요새 탈환 작전 때 평원을 가로지르다 병사 수백을 잃었을 적에도, 라제프 경 휘하의 제장 및 병사들은 참여하지 않았었다지요.”

    라제프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으나 대놓고 반박하진 않았다.

    명분에서 완전히 밀려 버렸다.

    자기 사람을 챙기느라 전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 그럼에도 공은 챙기느라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주변 정찰 작전에 꾸역꾸역 자기 사람을 밀어 넣은 일 등등.

    자기 보신에 급급했던 행보 속에서 뜻하지 않게 당한 참사의 책임마저 후작에게 돌리는 건 라제프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나저나 숲에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게요?”

    “이 시간이 되도록 이자 외에는 돌아온 이가 없구려.”

    “게다가 저 몰골은…….”

    사람의 육신을 저렇게 처참할 정도로 뜯어 갈 수 있는 생명체가 대체 무엇일까.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여러 맹수들을 대입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오십 이상이었단 말이오. 게다가 숲의 지형에 능한 사냥꾼들까지도 동원했는데.”

    “제아무리 대단한 맹수라도 무장한 인간 무리에 접근하는 일은 없습니다.”

    수군대는 이들의 말을 들으며 도로테아가 눈을 내리깔았다.

    다들 잘려 나간 육신에 너무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그의 입가에 맺힌 하얀 거품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 근육 아래 보이는 울혈과, 하얗게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발의 피부들.

    ‘짐승의 짓이 아닐지도.’

    분명, 이곳까지 숨이 붙은 채 돌아왔는데.

    어째서 익사체(溺死體: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시체)의 특성을 보이는 걸까.

    그녀가 골몰히 생각에 잠긴 사이, 마침 숲 어귀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다들 불안한 기색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때였다.

    머리가 아픈 듯 눈을 감은 후작의 뒤로 나타난 메릴린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펜서 백작님의 말대로, 이건 사령관께서 책임져야 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받아서 벌어진 결과 또한 아니고요.”

    “지금 죽은 이 앞에서 잘잘못을 가리자는……!”

    “그렇지만, 그토록 분에 못 이겨 저희 측을 힐난하시니 제가 숲으로 가 정찰대가 몰살된 까닭을 밝히겠습니다.”

    수군거리던 이들의 말소리가 뚝 끊겼다.

    어수선하던 분위기에 적막이 깔리고, 의연하게 고개를 든 채 라제프를 바라보는 메릴린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라제프라는 남자는 몰라도, 둘러싼 다른 이들의 머릿속에서 활발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총지휘 권한이 후작에게 있는 것을 유독 못마땅하게 여기던 블루밍 백작이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귀족 영애가 참으로 겁이 없군. 우리가 직접 요구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나서겠다니 말릴 까닭이야 없지 않겠소. 다만, 병력의 분산은 곤란하니 정찰대는 이전과 동일하게 50인 이하로 추리시게. 동행을 원하는 이들로 자원받으면 될 걸세.”

    바로 직전, 50명이나 되는 인원이 숲에 들어가 몰살당한 것을 보았음에도 같은 숫자를 요구하는 백작의 눈이 메릴린을 훑었다.

    네가 감히, 어찌하나 두고 보자 하는 얼굴이었다.

    우는 소리로 증원해 달라는 말을 듣고자 했을 테지만, 메릴린은 담담하게 요구를 수용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분한 메릴린의 답에 시신의 몰골을 본 신관이 구역질하는 소리가 겹쳐졌다.

    *   *   *

    라제프가 친우의 장례를 치르러 씁쓸한 얼굴로 자리를 떠나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이들도 빠르게 해산했다.

    도로테아는,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제게 다가오는 메릴린을 바라보았다.

    “숲에 가려고요?”

    “뭐, 어차피 뭐든 증명은 해야 하잖아요.”

    한숨을 쉰 메릴린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단단히 준비하긴 해야겠죠. 모르긴 몰라도 숲에 짐승이나 성가신 마물들이 꽤 많은 모양이니까요.”

    “짐승이나 마물이라…….”

    프리드의 품에 안긴 도로테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 메릴린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요?”

    “너무 지나치게 빨리 나섰어요, 메릴린. 적어도 숲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멧돼지 사냥이라면 저도 해 봤잖아요. 영애도 알다시피 스승님께서 곧잘 저를 헤이우드 숲에 유기하셔서…….”

    불안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메릴린의 대꾸에 도로테아가 숲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숲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로테아의 첫 마디에 메릴린이 무언가를 감지한 듯 손을 들었다.

    “잠깐만.”

    “죽은 자의 향이 나요.”

    “또?!”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구겨졌다.

    도로테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메릴린을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게 일부러 나서라며 종용하지도, 옆구리를 찌르지도 않았던 건데.

    호기롭게 먼저 나설 줄이야.

    최근 놀라울 정도로 용맹해진 메릴린의 간덩이를 우습게 본 결과였다.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숲에 있는 존재를 단번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꽤 상위의 존재라는 뜻이겠지.’

    한 명을 굳이 저 꼴로나마 살려 보낸 건 ‘일종의 경고’였다.

    숲으로 출입하지 말라는.

    그런 뜻을 전달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하니 이지적인 존재일 테고.

    차라리 마음 같아서는 기습의 위험이 있더라도 숲이 아니라 평원을 가로지르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미 말을 꺼낸 마당이니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때다 하고 달려들어 물어뜯을 승냥이들이 가득하니까.

    넋 나간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보던 메릴린이 별안간 충혈된 눈을 하고 도로테아를 바라봤다.

    성큼성큼, 프리드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메릴린이 그의 어깨를 쥐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그마한 소녀의 몸을 한 도로테아를 쥐고 흔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녀는 이를 악문 채, 프리드의 어깨를 있는 대로 흔들기 시작했다.

    “잘 들어요. 내가 훈련받은 건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상대를 향한 대처법이에요. 나는 말이죠. 사지 멀쩡하고 숨 붙어 있는 인간이나 짐승만 상대할 거예요. 그 외의 문제들은! 모두! 당신 몫이라고요.”

    “…….”

    “알아서 해결해요. 날 이 자리까지 끼워 넣어 놨으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라고요!”

    도로테아를 안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던 프리드가 조심스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기세에서 밀린 기사의 어깨를 놓아준 메릴린이 몸을 홱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도로테아는 안락한 기사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다 중얼거렸다.

    “뭐랄까. 요즘 지나치게 진취적이 된 것 같지 않아요?”

    한숨을 푹 쉰 소녀의 이마에 옅은 주름이 졌다.

    “어쩌다가 저렇게 사람이 무모해졌을까.”

    “…….”

    “이럴 줄 알았으면 숙부님께서 아무리 즐거워하셔도 적당히 말릴 걸 그랬어요.”

    종알종알 건네는 말에 침묵하던 기사는 가면 아래로 나직이 한마디를 뱉었다.

    “에이든 경에게 물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응?”

    과묵한 기사가 모처럼 길게 말을 꺼내자 도로테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에이든 경이 사고를 많이 치시는 편입니다만, 어쨌든 뒷감당은 본인이 하시는 편입니다. 지하 감옥에 갇히든, 후작님께 매를 맞든 간에.”

    가면 아래 시리듯 푸른 눈이 도로테아의 눈과 마주쳤다.

    “사고를 치고 뒷수습을 남에게 넘기는 건 다른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누가 일을 칠 때마다 우드와 합세해 뒤처리를 해 왔던 기사의 뼈 있는 한마디에 도로테아가 눈을 끔뻑였다.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안 좋은 영향을 받았네.”

    추호도 본인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도로테아를 보며 푸른 눈의 기사는 침묵했다.

    해묵은 불만을 터뜨리면 뭐하나.

    당사자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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