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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200화 (200/242)

200화

잠시 자리를 비웠던 메릴린이 가면을 쓴 발레리와 프리드를 포함한 수백의 장정들을 데리고 나타나자, 당연하게도 지원 부대 전원이 술렁거렸다.

메릴린은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고는 얼이 빠져 있는 부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7황자 전하께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격한 운동을 한 탓에 쓰러지셨습니다. 전하를 뉘일 빈 막사가 있을까요?”

이미 루크가 깨어나 한바탕 깽판을 쳤으니, 7황자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그토록 흉흉한 기색을 내뿜으며 뛰쳐나간 7황자가 초록색 모포에 곱게 싸여, 가면을 쓴 청년의 품에 안겨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탓에 다들 얼이 빠졌을 뿐.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그를 안내했다.

“이, 이쪽으로.”

자신보다 체격이 큰 7황자를 번쩍 안아 들고 있는 프리드의 뒤로 스탠이 쪼르르 따라 들어갔다.

소년은 ‘자신이 맡은 임무’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이건 또.”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얼빠진 이들을 가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로군.”

키엘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날카롭게 도로테아를 응시했다.

처음 7황자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댈 때만 하더라도, 도로테아가 막아 줄 것을 상정하고서 움직인 것이니 그리 불쾌해하진 않았다.

오히려 빚을 지울 수 있어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키엘은, 명백히 골이 나 있었다.

그리고 도로테아만큼이나 그 사실을 빠르게 파악한 메릴린이 숨을 고르고는 자그마한 소녀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우선 각 지휘관들을 모아 주세요.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지휘관을 모으라?”

부드러운 웃음은 여전했지만 골이 날 대로 난 키엘이 메릴린에게서 눈을 떼고, 이번에는 가면을 쓴 여인을 바라보았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다고 한들, 사람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가 모두 감춰질 리는 없었다.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고혹적인 분위기에 흘끗거리는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를 찾은 손님치고는 지나치게 과하군. 무장한 병사들을 이곳까지 끌어오는 것은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닌 듯합니다만?”

“키엘 경, 안 그래도 이야기를 좀…….”

움찔한 메릴린이 입을 연 순간이었다.

뒤에 가만히 서 있던 발레리가 앞으로 걸어 나와 자연스레 두 팔을 들어 ‘로헨식 인사’를 건넸다.

로헨 사람이 보았더라도 깜빡 속을 만큼 완벽한 동작이었다.

“로헨 왕가의 마지막 자손, 헤일런 로헤나움이라 합니다.”

그녀가 입을 뗀 순간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가면을 쓴 발레리에게로 쏠렸다.

누군가는 당황한 듯 입을 벌린 채, 또 누군가는 그녀의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 얼굴을 찡그리고 바라보던 중이었다.

그리고 얼굴에 그린 듯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던 키엘 스펜서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발레리를 바라보다 짧게 한 마디 했다.

“헤일런 로헤나움이라.”

“왕가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이들을 버리고 이곳 제국으로 망명했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제게는 살아남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국왕 폐하와 형제자매, 그리고 백성들을 뒤로한 채 이곳까지 왔습니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말에 술렁이는 이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제야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던 키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표했다.

“귀한 손님이셨군요. 그토록 중대한 사안을 들고 오실 줄이야.”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우연히 메릴린 영애를 만나, 염치없게도 그녀의 호의에 기대고자 과한 부탁을 드린 것은 제 쪽이니 부디 영애를 탓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부드럽게 말한 키엘이 메릴린을 향해 다시 시선을 건넸다.

애써 의연하려는 듯 얼굴을 굳히고 있던 메릴린이 그의 시선에 눈을 깜빡였다.

“그저, 메릴린 영애의 대담함에 놀랐을 뿐입니다. 실종되었다고 여겼던 분이 망명하신 왕녀와 왕국의 생존자들을 데려오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손을 든 그가 뒤에 시립 중이던 인물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들에게 머무를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내주게. 병사들을 다독이고, 이 상황이 새어 나가지 않게끔 조치를 취하도록.”

발레리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표하자, 답례를 한 키엘이 다시 도로테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합군이 모여 있는 총사령부에 이 상황을 알리는 전서구를 날리겠습니다. 답을 받는 대로 다시 행군을 진행할 예정이니 우선 쉬고 계시는 것이 좋겠지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줄곧 도로테아를 바라보던 키엘은 두 손을 뻗어 소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키, 키엘 경?”

당황한 듯 메릴린이 손을 뻗은 순간 도로테아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생긋 웃었다.

“자, 우리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

성큼성큼 아이를 품에 안고 마차로 들어간 키엘이 문을 닫았다.

“…….”

남은 이들 모두 조용해졌다.

아니, 이 상황에서 아이는 왜? 실종된 것 같다고 보고를 드릴 때만 해도 그리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더니. 그토록 귀하게 여기셨던 건가?

어리둥절한 이들 사이로 메릴린이 불안한 눈을 한 채 마차를 바라봤다.

줄곧 입을 다문 채 발레리의 곁에 있던 그리엄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스펜서 백작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신 건 아닌지요.”

“…….”

“타국의 왕족이 신분을 밝힌 상황인데 어린아이부터 챙기다니…….”

감정이 드러난 어조는 아니었지만 그 속에 서려 있는 불만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엄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발레리가 나지막이 답했다.

“천만에. 그는 그 누구보다 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여유를 부리며 재는 대신, 곧장 가장 ‘중요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로 생각한 것일 테지.

*   *   *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키엘이 도로테아를 조심스레 품에서 내려놓았다.

“……너를.”

눈을 가늘게 뜬 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으로 너를 엎어 놓고 회초리를 들고 싶은 기분이로군.”

“그건 조금 곤란하겠는데요.”

맞는 취미는 없는데.

도로테아는 드물게도 ‘진짜 감정’을 내어 보이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발레리의 정체가 들킬 거라는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격한 반응에 놀라고 있는 와중이었다.

“발레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알고 계셨잖아요.”

“발레리 제르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옆에 있는 것이 문제지. 여태껏 내가 아무것도 몰랐기에 너를 봐주었다고 생각했더냐?”

도로테아가 고개를 들었다.

키엘은 얼굴에 늘 그림자처럼 붙이고 다니던 웃음기를 싹 걷어 낸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네가 말했었지. 내가 유독 예민하고 사람들을 잘 본다고 말이야.”

“…….”

“나는 오래전, 진짜 ‘정령사’를 보았다.”

도로테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순간, 마차 한구석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숨기고 있던 그림자가 저도 모르게 기척을 드러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아하니 적잖이 놀란 건 저쪽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키엘이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들과 손을 잡았으리라 생각했느냐? 나는 언제나 계산이 확실하게 선 일에만 손을 뻗는 사람이란다. 아무리 욕심이 커도, 되지 않을 일에 발을 들이지는 않아.”

지그시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도로테아는,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진실’을 발견하고 입을 살짝 벌렸다.

어째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까.

영혼을 메마른 사막처럼 쩍쩍 갈라지게 한 원인은 다름 아닌 그의 내부에 존재했음을.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손을 뻗자, 키엘은 그 조그마한 손에 제 오른쪽 눈을 내주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그의 ‘눈’이 그녀의 육신에 충만한 혼력을 갈구하는 것이 느껴졌다.

소녀의 머리 위로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자들이 내게 건넨 것은 정령사의 눈이었다. 나는 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지.”

눈꺼풀을 매만지는 손끝을 거쳐 희미한 기운이 키엘에게로 흘러들었다.

표정을 지운 도로테아가 속삭이듯 자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군요. 제가 정령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

차분하게 답한 키엘이 흘끗, 창밖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네가 황궁에 박아 놓은 성녀만으로도 골치 아프건만, 발레리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어찌 될지 생각은 해 봤나? 총사령부지만, 실질적으로는 연합군 사령부다.”

성국은 물론이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국가와 이종족까지 모여들고 있는 추세였다.

단 몇 년 만에 현자의 탑을 중심으로 견고한 힘을 갖추고 있던 로헨이 망가졌다.

그 사실만으로도 위협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이토록 수월하게 연합군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이클레어 후작께서는 아직 그들을 휘어잡지 못하셨어. 다들 이권을 놓지 않으려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기 바쁜 와중에, 네가 저들을 안고 합류하겠다고?”

이 상황에서조차 인간들은 욕심과 만용을 내려놓지 못했다.

어지러운 연합군의 상황은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바.

아마 발레리, 왕녀의 존재는 크나큰 파문을 몰고 오겠지.

‘살아남은 왕녀’로서 뱉을 증언과, 그녀가 데리고 있는 정령사가 그들 앞에 보여 줄 진실의 파편까지.

“결국, 네 목을 조이는 꼴이 될 게다.”

가만히 침묵하던 도로테아가 싱긋 웃었다.

“그리 두지 않으실 테니까요.”

“내가?”

“그리 되지도 않을 거고요.”

도로테아가 차분한 눈으로 키엘을 바라봤다.

늘 그렇지만 이 야심가는 놀랄 정도로 제게 호의를 보여 주고 있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도로테아에게 스스로의 목을 조이는 짓이라 말하지만…… 그건 ‘눈’을 가진 그 또한 마찬가지 아니던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것에 분노했어야 할 그는, 오히려 도로테아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었다.

“안락한 집 안에 숨어, 밖에서 벌어지는 참상 따위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는 듯이 살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저는 은인과는 달리 제국의 수많은 귀족들을 혐오하거나 분노하지도, 집어삼킬 욕심을 갖고 있지도 않으니까요.”

“…….”

“그렇지만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지녀야 하는 무게가 있는 법이죠. 세계를 지탱하는 질서가 망가져 가는 것을 방관한다면, 결국은 언젠가 그 결과가 제게로 돌아올 테니까.”

그녀의 운명이 지나치게 고되고 힘들다고, 신에게 분노해 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대로 이 육신을 갖고 도망가서 편히 살아도 상관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이 그녀의 동의 없이 육신을 앗아 갈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것은 자신의 몸이니까.

“어쩔 수 없죠. 나는 도로테아로 살기로 했는데.”

그 이름을 부여받고 손녀가, 딸이, 사촌이,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도로테아는 물끄러미 자기를 바라보던 키엘이 어느새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다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 화내지 않으시네요.”

“무엇을?”

“저들 세력을 은인이 꿀꺽할 줄 알았거든요. 이대로 메릴린이 저들을 이끌고 연합군에 합류해 할아버지께 인계하면, 은인께서는 ‘귀한 분’을 호송해서 남에게 주는 꼴인데.”

사실 그가 분노한다면, 그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로테아의 말을 들은 키엘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번졌다.

“누가 그러더냐? 호송해서 남 좋은 일만 시킬 거라고?”

“…….”

화사한 미소를 단 키엘의 말에 도로테아가 눈을 끔뻑였다.

“걱정 말거라. ‘너의 메릴린’이라면 나 또한 세상에서 다시없을 만큼 귀한 존재로 여겨 줄 터이니.”

아름답지만 흉폭한 영혼을 가진 남자의 선언에 도로테아가 흘끗, 막사 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벌써부터 메릴린의 질린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큰일이네.”

하필이면 제일 심술궂은 사람에게 걸려서.

발레리에게 최선을 다해 상대해 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나.

*   *   *

안드레아 신관은 몹시 찜찜한 얼굴로 7황자가 누워 있는 막사를 살폈다.

실종되었다던 7황자가 이곳 후방 부대에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어째서 그 사실을 모두에게 숨기고 감춰 왔단 말인가.

“우연히 가던 길에 억류되어 있던 황자 전하를 구출했지만, 전하께서는 몸이 편치 않으신 상황을 되도록이면 숨겨야 한다 하셨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병사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내게 치료를 받지 않은 거요?”

“말씀드렸잖습니까. 그 누구에게도, 상태를, 그리고 황자 전하가 이곳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고.”

“감히, 신전을 믿지 못한다 말하는 거요?”

“그럴 리가요.”

유들유들한 스펜서 백작은 끝까지 사실을 얼버무렸다.

겨우 깨어났던 7황자가, 다시 기절한 채 돌아왔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로헨 왕국이라니.

이미 그곳은 교황 살해를 기도했던 끔찍한 자들에게 점령당한 상황이 아니던가.

‘저들이 진짜 생존자인지, 혹은 연합군에 파고들려는 간자(間者)인지 어찌 알고!’

아니, 애초에 스펜서 백작부터가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신관인 자신에게 7황자의 상태를 숨긴 것부터 시작해서 저 수상한 자들을 ‘확인’ 한 번 거치지 않고 받아들이다니?

심지어 가면을 쓰고서 ‘왕녀’를 자처하는 여인을 믿는단 말인가?

‘교황 성하께서만 멀쩡하셨어도……!’

분명 성국을 무시하고 신전을 배척하는 태도가 틀림없었다.

안드레아는 저들이 숨기려는 것을 알아내고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7황자의 막사 안으로 숨어들었다.

7황자는 마치 잠에 든 듯 평온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안드레아는 떨리는 손으로 전장의 신이라던 남자의 이마를 매만졌다.

“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회복을.”

그의 몸 상태는 한눈에 봐도 그리 좋지 못했다.

안색만 보아도 겉으로 보이는 외상 이외에 내상이 문제인 것이 틀림없었다.

습격 사건 이후, 성국에서는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불러들였다.

빗장을 닫고서 그들의 영토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은 타국의 상당한 비난을 받았지만, 그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위 신관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그 무도한 자들이 교황 암살에 거의 성공할 뻔했던 것은 물론, 그를 지키던 사도들의 목숨까지 앗아 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로서는 완전한 회복까지는 불가능해.’

이를 악문 안드레아가 최선을 다해 신성력을 들이부었다.

그 순간이었다.

기척도 없이 눈을 뜬 7황자가, 이마에 대고 있던 손을 잡아챘다.

“화, 황자 전하!”

“누구지?”

단번에 몸을 일으킨 루크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있던 신관을 패대기쳤다.

쿠웅!

“크헉! 쿨럭. 화, 황자 전하! 저, 저는 황궁 소속 신관입니다! 적이 아닙니다, 전하! 몇 번 뵌 적도 있습니다!!”

다급한 말에 멈칫한 루크를 본 안드레아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7황자의 광폭함은 이미 들은 바가 많았다. 어떻게든 빠르게 상황을 알려 자신이 아군임을 인지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전하께서는 지금 키엘 스펜서 백작에게 억류되어 계십니다.”

“…….”

“제가, 황궁에 연락할 수 있습니다. 무도하게도 감히 황자 전하를 능멸한 저들을 처단할 수 있게끔 이 상황을 알려 주시면…….”

그 순간이었다.

지나친 소란을 눈치챈 누군가가 막사로 들어섰다.

“어머, 깨어나셨네요?”

부드럽고 여유로운 목소리에 루크의 사나운 눈이 가면을 쓴 여인에게로 향했다.

발레리가 싱긋 웃으며 안드레아 신관을 스윽, 바라보다 다시 루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메릴린 레어에게 목 뒤를 맞아 그대로 기절해서 프리드의 품에 곱게 안겨 돌아왔다는 사실을, 황궁에 있는 황제와 형제들에게 모두 알리겠냐는 물음에 루크가 살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조용히 주먹을 들었다.

이윽고 막사 안에서 실신한 누군가가 실려 나왔지만, 깊은 밤인 데다 감히 황자가 머무는 막사를 얼쩡거릴 만큼 간 큰 이들은 없었으므로 목격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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