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스탠, 이리 와 볼래?”
“네?”
다정한 목소리로 스탠을 부른 메릴린이 그의 손에 새콤달콤한 나무 열매를 건넸다.
“근처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발견했어. 물어보니 식용 가능한 열매라더라.”
“고맙습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소년을 보던 메릴린이 흘끗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동생 주지 말고, 너 많이 먹으렴.”
“…….”
“그 애는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재빠르게 장작을 모으는 이들에게로 향하는 메릴린의 뒷모습을 보던 스탠이 제 손바닥 가득 놓인 열매를 바라보았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달콤한 향이 입맛을 자극했다.
‘사라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분명 그렇게 다정했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몹시 소원해졌다.
특히 메릴린이 일방적으로 사라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어쩌다 마주쳐도,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라와는 다르게 메릴린은 어정쩡한 얼굴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누나는 분명 사라를 좋아했는데.’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어른들을 곧잘 돕는 성실하고 훌륭한 아이라고 칭찬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입에서 사라를 칭찬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사라는…… 정말 좋은 애인데.’
스탠은 울적한 얼굴로 손바닥에 가득 담긴 나무 열매들을 내려다보았다.
“뭐 해?”
그때였다.
불쑥 고개를 들이민 여동생의 등장에 당황한 소년은 저도 모르게 지니고 있던 열매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진 열매에 소년이 울상을 지었다.
눈을 끔뻑이며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열매를 주워 호호 불기 시작했다.
“괜찮아. 바닥에 떨어진 것뿐이야.”
소매로 열매를 깨끗하게 닦아서 다시 쥐여 주는 여동생의 친절한 모습을 본 스탠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메릴린 누나랑 싸운 거야?”
“아니?”
“그치만 누나가 자꾸 널…….”
차마 피해 다닌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여동생은 명백하게 메릴린을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그런 그의 심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 거 아니야. 언니랑은 그냥 조금…… 시간이 필요하달까?”
“시간이 필요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스탠에게 도로테아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상대에게서 몰랐던 면을 발견하게 되면, 원래 초반에는 다들 어색해하는 법이거든.”
“그런 거야?”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 사이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메릴린도 계속해서 그녀를 피해 다닐 수 없다는 것쯤은 알 테고, 루크가 깨어날 때쯤 되면 알아서 도로테아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었던 것이 언젠데, 여전히 루크를 무서워한단 말이지.’
도로테아의 말을 곰곰이 곱씹던 스탠은 나무 열매를 고이 손에 쥔 채 어디론가 달려갔다.
* * *
메릴린은 눈앞의 남자를 향해 띠꺼운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 주변에 나무 열매를 좀 채집해 와 주셨으면 한다고 부탁드렸습니다만.”
“무슨 열매 채집이에요. 그런 걸 해서 뭐하게.”
기겁한 메릴린이 손을 들어 옆에서 생글거리는 소녀를 가리켰다.
“그것도 얘랑 단둘이 다녀오라니, 무슨 소리예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던 키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 영애께서는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합니다.’라고 하셨잖습니까.”
“열매 채집이 무슨 도움이 되냐고요!”
어이가 없어 따지고 드는 메릴린에게 키엘이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행군 내내 일방적으로 아이를 피하는 영애의 태도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친구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뿐만이겠습니까. 다른 이들도 훈훈하게 바라보던 두 사람 사이가 나빠진 것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무슨!”
“군의 사기가 떨어지게 되면 책임져야 하는 입장인 저로서는, 몹시 곤란한 일이지요.”
“대체 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메릴린은 저 멀리 나무 뒤에 숨어 몰래 바라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숨어 버리는 소년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키엘의 손에 낯익은 붉은 열매들이 보였다.
“저로서도, 딱히 타인의 인간관계에까지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뇌물을 받아 버려서요.”
순수한 동심을 들이밀며 꺼내는 말에 메릴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달싹여 속삭이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제가 앞으로는 피해 다니지 않을게요.”
“음.”
“사이좋게 지낼게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신이 대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한단 말인가.
그녀가 이렇게까지 양보했음에도, 키엘은 여전히 얼굴에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메릴린 영애께서 그렇게까지 제 말을 잘 이해해 주셨다니 감사한 일이로군요.”
“네, 뭐.”
울적하게 답을 건넨 순간이었다.
키엘이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니 사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증명을 할 겸, 두 분이서 나무 열매를 채집해 오십시오.”
메릴린이 최후의 저항을 더했다.
“둘이서만 갔다가 위험하면 어떻게 하라고요. 우리 둘만 가기에는 숲이 너무 깊잖아요. 맹수가 나올 수도 있어요.”
키엘은 그런 메릴린의 앞에서 두 주먹을 가만히 쥐어 보였다.
“그럴 때야말로 기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환상적인 박투술, 기대해 보겠습니다.”
“…….”
뒤이어 그는 눈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모두 다하고 있는 메릴린의 두 손에 커다란 바구니를 쥐여 주었다.
“가득, 채워 오세요. 전 특히나 야생 베리류를 좋아합니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사라지는 메릴린과, 그런 그녀를 다독이는 도로테아의 뒷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던 키엘이 숨어 있다 나온 스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둘의 사이도 좋아지겠죠?”
“글쎄, 내가 보기엔 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적은 없는걸.”
아이의 입에 달콤한 열매를 넣어 준 키엘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다툼도 많이 일어나는 법이란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만큼, 서운한 점들이 많아지니까.
* * *
도로테아는 제게서 등을 돌린 채 열매 수확에 열중하고 있는 메릴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서울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서 단 하나의 열매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를 사귄 것도 처음이고, 그런 친구와 다툰 것 또한 처음이다.
애초에 사촌들은 얼마나 휘둘리든 간에 늘 동생에게 져 줬고, 어른들 또한 그녀를 ‘영민한 아이’ 취급해 왔으니.
루크는 예외였다.
성질 더러운 가축은 화해를 할 것이 아니라, 길을 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뿐이니까.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화를 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펄쩍펄쩍 뛰면서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누그러져서 별말 없이 넘어가곤 했는데.
눈을 끔뻑이던 도로테아가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잘못했어요.”
용서를 비는 말을 처음으로 입 밖에 냈지만, 메릴린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그냥 오랜만에 만났고 하니까 좀 들떠서 장난을 친 거였는데.”
어색하게 뗀 두 번째 변명에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는 메릴린에게서 답이 돌아왔다.
“몇 분, 몇 시간 내로 끝나야 장난인 거죠. 며칠 내내 그렇게 사람을 우롱하는 건 장난이 아니라 농락이고!”
말을 하면서 분노가 커진 것인지, 씨근덕거리던 그녀가 홱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손에 쥐고 있던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람이 말이에요. 그렇게 말도 없이 황도를 빠져나갔으면 소식이라도 전해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어디로 갔을지는 너무 뻔하고, 그쪽에서는 계속 좋지 않은 전황들만 들려오고!”
머리를 쓸어 올린 메릴린이 기가 막히다는 듯 도로테아를 노려봤다.
“걱정해서 이곳까지 내려온 사람을 두고, 어떻게 그런 장난을 치느냐고요!”
눈을 끔뻑끔뻑하던 도로테아가 조심스럽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게요. 정말이에요.”
샐쭉한 눈을 한 메릴린을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메릴린은, 제가 왜 이런 모습인지는 묻지 않아요?”
“그걸 물어본들 제가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이제까지도 이해 안 되는 일들을 겪으며 잘만 지내 왔네요.”
“저는 조금 겁났는데요.”
몹시 도로테아답지 않은 말에 처음으로 메릴린이 멈칫했다.
눈을 끔뻑이는 도로테아의 얼굴을 훑자, 놀랍게도 좀 전의 말이 거짓으로 비치지는 않았다.
“뭐가 겁이 났다는 거예요?”
명재신의 모습을 하고서 당신과 내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우드나 콜린은 애초에 그녀의 ‘권속’이었다.
혼의 맹약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인 이들과는 다르게,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믿음, 사랑, 신뢰 따위와.
그런 감정들은 아주 굳고 단단한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쉽게 녹아 사라지고 허무하게 흩어진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니까.”
과거의 명재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태어난 순간 부모에게 버림받고, 죽을 때까지 이용당하다 끝끝내 마지막 남은 혈육에게서도 희망을 찾지 못해 스스로 숨을 거둘 때까지.
늘 혼자였다.
도로테아의 몸으로 흘러든 것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우연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도로테아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몇 년…… 재신이라는 이름이 기억 멀리, 아득해지게 된 지금에 와서 다시 명재신의 몸이라니.
“낯선 몸에 있다는 이유로, 당신이 나를 도로테아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요?”
본래의 육신을 찾았으니,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온전한 자신’인 셈이다.
그럼 도로테아의 육신에 들어 있는 재신은?
그건 평생, 도로테아의 거죽을 쓴 재신일까?
그녀는 끝끝내 도로테아가 될 수는 없는 걸까?
가만히 듣고 있던 메릴린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뭐 잘못 먹었어요?”
사람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진지하게 말을 꺼내서 긴장시키더니, 기껏 하는 말이 ‘자신이 낯선 모습을 하고 있어 도로테아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았다’고?
“솔직히 말해서요. 처음 만난 순간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턱을 괸 메릴린이 심드렁하니 말을 이어 나갔다.
“나 사실 아이들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스탠이 더 순수하고 착하지만 난 사라를 더 귀여워했잖아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묘한 친근감이 생기기 때문이었어요.”
“…….”
“어쩌면 다른 모습 안에 있는 당신을 알아본 것일 수도 있죠.”
한숨을 삼킨 메릴린이 말없이 눈을 끔뻑이는 도로테아를 바라보았다.
저 뻔뻔하고 넉살 좋은, 그리고 쓸데없이 사람을 농락하기 바쁜 악마 같은 도로테아 하이클레어를 상대할 누군가가 나타나 주길 바랐지만…….
막상 정말로 묘하게 기가 죽은 기색을 보이고 있으니, 영 꼴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스펜서 백작님은, 영애가 누군지 곧바로 알아봤잖아요. 그래서 7황자의 목숨을 노리는 척 떠본 거죠.”
“…….”
“영애는 영애예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번 사람을 갖고 놀아서 분통이 터지게 만들긴 하지만…….”
도로테아와 눈을 마주친 메릴린이 마지못한 얼굴로 툭 뱉었다.
“싫은 사람을 찾으러 여기까지 오겠어요?”
제 스스로도 말하고 쑥스러웠던지, 다시 등을 돌려 나무 열매 쪽으로 손을 뻗으며 구시렁거렸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그냥 말하라고요. 그랬으면 차라리 재회가 감격스럽기라도 했죠. 기껏 여기까지 와서 만났는데…….”
“메릴린.”
메릴린은 제 말을 도중에 끊어 버린 도로테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그녀들이 왔던 곳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오고 있는데요.”
“누가요?”
“글쎄요, 아군은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에 메릴린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남자가 풀숲을 헤치고 나타났다.
몸에 거적때기 비슷한 것을 두른 남자는 메릴린과 도로테아를 보고 히죽 웃었다.
“뭐야, 여자가 둘이나 있잖아? 이게 웬 횡재야. 한쪽은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꽤 귀염 상인 것이 크면 한인물 하겠는데?”
두 손을 비비며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의 등 뒤에는 묵직한 도끼가 매여 있었다.
메릴린의 눈이 급하게 남자를 훑었다.
몸 전체가 탄탄하게 근육이 잡혀 있고, 도끼를 지니고 있다라.
전문적으로 훈련을 한 몸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전을 겪으면서 다져진 육체에 더 가까웠다.
그렇지만 용병이었다면 ‘몸’이 자산인 만큼 지금 두르고 있는 거적때기보다는 더 나은 차림을 하고 있었겠지.
결정적으로 남자의 신발은 장거리를 다니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산적이네요.”
차분한 말에 남자가 으잉, 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예쁜 아가씨 간이 제법이네. 그걸 알면서도 울기는커녕 도망가려는 발버둥 한 번 치지 않고.”
“내가 도망을 왜 가요? 울기는 왜 울어. 울면 해결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붙이는 메릴린의 말에 남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거야…… 그렇긴 하지만.”
계집애들이라는 게 원래 이런 깊은 숲에서 험상궂은 남자를 만나면 발발 떨어야 하지 않나?
게다가 메릴린의 차림새나 외모로 보았을 때, 분명 귀하게 자란 상류층 아가씨였다.
뜻밖의 반격에 잠시 주춤했던 남자가 다시 두 눈에 힘을 부릅 주었다.
“둘 다 얌전히 따라오는 것이 좋을 거다. 피를 보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필요하다면 굳이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
흘끗 남자를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리리를 불러내려는 순간, 메릴린이 재빨리 그녀를 불러 세웠다.
“뭘 하려고요?”
“그야…….”
“정령을 쓰는 것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영애의 정령은 가뜩이나 기준치를 벗어났잖아요.”
물줄기를 뿜어내서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도 아니고, 업어치기 후 목을 조르는 정령이라니.
“그렇게 개싸움하는 정령은 영애의 정령밖에 없다고요.”
“실례예요. 리리도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아무튼, 영애가 여기 있는 걸 들키면 안 된다고요.”
메릴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곤란한 일이었다.
정령의 힘을 쓰지 말라니.
인간을 상대로 혼력을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건 말 그대로 산 자의 ‘혼백’에 영향을 끼치는 힘이건만.
고개를 갸웃거리던 도로테아가 메릴린을 향해 고개를 기울여 속삭였다.
“그럼, 메릴린이 나설래요?”
그런가. 드디어 자신의 힘을 쓸 때가 온 건가.
멀뚱멀뚱 속삭이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산적은 별안간 결연해지는 귀족 영애의 얼굴에 눈썹을 들어올렸다.
도로테아가 생긋 웃으며 제안했다.
“기왕이면 되도록 손을 쓰지 않고 저자를 제압하는 게 좋겠어요. 산적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산채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손을 쓰지 않고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메릴린에게 도로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날 치기, 할 수 있죠?”
“네.”
“옆에 있는 나무를 향해 있는 힘껏 내질러 줄래요?”
이해할 수 없는 주문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도 메릴린은 손을 옆으로 세워,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나무를 향해 내질렀다.
그 순간, 모습을 감추고 있던 리리가 나무를 향해 있는 힘껏 발을 내질렀다.
커다란 덩치의 고목이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
“…….”
메릴린과 산적 두 사람의 얼굴은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으리만큼 창백하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