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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193화 (193/242)

193화

도로테아는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는 메릴린을 향해 화사하게 웃었다.

“네. 왜 그러세요, 언니?”

“왜 그러세요오~? 언니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말에 메릴린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가 제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아냐,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도로테아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보거나 말거나, 메릴린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며 막사 안을 빙빙 돌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어. 닮은 구석도 없는데.”

“언니?”

“제아무리 도로테아 하이클레어라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는 일이 있는 거지.”

“언니?”

“좀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꽃을 따다 주던 애라고. 저 애가 어딜 봐서 속이 시커멓다 못해 구리기까지 한 그 영애랑 똑같다는 거야?”

충혈된 눈으로 중얼거리는 메릴린을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팔짱을 꼈다.

속이 구리다니, 그건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내가 이제껏 얼마나 참된 마음으로 메릴린을 대해 왔는데.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죠, 메릴린.”

“으아아아!”

마치 못 들을 것이라도 들은 양 귀를 틀어막았던 메릴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울먹울먹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진짜예요?”

“나 많이 걱정했어요?”

어딘가 신이 난 듯 묻는 말에 메릴린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머리를 쥐어뜯고, 이건 아니라며 현실 도피를 하고는…… 겨우겨우 숨을 고른 그녀가 이윽고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도로테아를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행정관이라던 아버지는?”

“아니, 어쩌다 보니 카메르 요새에 잠깐 머물렀는데 거기가 생각보다 많이 썩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깔끔하게 갈아 치우고(?) 우드에게 뒷일을 맡겼거든요.”

“깔끔하게 갈아 치…….”

이거 또 거기서 뭔가 일을 저질렀구나.

도로테아가 치는 사고의 규모를 짐작한 메릴린이 홀로 남아 고군분투 중일 우드를 향해 명복을 빌어 주었다.

“스탠이라는 남자애는요? 오빠라면서요.”

“응, 오다 주웠어요.”

조용히 손을 뒷목에 가져다 댄 메릴린이 눈을 감았다.

어린아이를 거두는 일을 무슨 길거리에서 돌멩이 하나 주운 것인 양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저 애의 친부모님은 어쩌고? 납치해 온 건 아니죠?”

“메릴린은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길거리를 지나가가 마음이 내킨다는 이유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애를 주워 오는 건 범죄라고요!”

빽 소리를 지른 그녀가 곤히 잠들어 있는 7황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7황자님은 어떻게 한 거예요? 왜 저 꼴이 됐어요?”

“제가 그런 거 아닌데요.”

“헛소리 말아요. 당신이 아니면 누가 감히 7황자를 저런 거지발싸개 같은 몰골로 만들어 놔!?”

있는 힘껏 애를 써 길 잃은 양을 제자리로 데려온 도로테아가 입을 삐죽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릴린은 자신에게만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굴었다.

“내가 뭘 했으리라는 건 다 편견이에요.”

“이미 카메르 요새를 뒤엎고 왔다면서요!”

으음, 요즘 들어 말발이 늘었네.

쉽게 지지 않는 메릴린을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슬쩍 눈길을 피했다.

낯설지만, 친숙한 눈을 하고 있는 도로테아를 바라보던 메릴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건 꿈이야…….”

“아니, 현실이에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원망스럽게 던진 말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까치발을 들고 손을 높이 뻗어, 메릴린의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많이 무섭고 겁났을 텐데 용감하게도 발을 디뎠네요.”

“……영애를 찾으러 온 거 아니에요. 나도 뭔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온 거지.”

“알아요. 이러니 내가 메릴린을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설마, 본인이 직접 이곳으로 뛰어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생의 절반을 ‘훌륭한 귀족 영애’로서 살아온 메릴린이 아니던가.

와 달라는 부탁에 머뭇거린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법한 일이건만,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곳으로 오다니.

“당신은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니까.”

“이미 며칠 내내 농락당한 입장에서 듣기에 참 찜찜한 말이네요.”

메릴린이 불퉁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도로테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   *   *

날이 밝고, 막사를 치우던 병사 중 하나가 유독 눈 밑이 거뭇한 메릴린을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간밤에 잠자리가 많이 불편하셨습니까?”

아무리 본인이 병사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겠다고 자처했다지만, 그래도 배려를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 뵈도 황도에서 내려온 귀족 영애인데.

메릴린은 상대의 걱정에 애써 웃는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불편한 건 잠자리가 아니라…….”

“언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메릴린의 얼굴이 굳었다.

여느 때처럼 조르르 달려온 도로테아가 그녀의 품에 매달리려는 순간, 메릴린은 잽싸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거기서 말…… 하렴.”

옆에 있던 병사의 의아한 표정을 의식하며 꺼낸 말에 도로테아가 품에 한가득 꺾어 온 꽃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이거 언니한테 건네주려고요.”

“…….”

“예쁘잖아요.”

“고, 고마워.”

어제와는 딴판인 분위기에 주변인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제 저녁까지만 하더라도 메릴린은 아이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소녀를 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소녀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쩡, 하고 얼어붙는 것이 아닌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기신 건가?”

“아이를 그리 예뻐하시더니.”

수군거리는 이들도 도통 영문을 모르니 그저 힐끔힐끔 곁눈질로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의 오빠에게는 잘해 주시던데.”

“아까 보니 직접 책 하나를 갖다 주시면서 글을 가르치시더라고.”

도로테아의 마수에 걸린 스탠이 못내 안쓰러워 그러는 것임을 다들 알 리가 없었다.

스탠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메릴린이 준 책을 품에 소중히 받아 든 채 눈을 끔뻑일 따름이었다.

잠시 행군을 멈춰 점심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메릴린의 기행은 이어졌다.

“왜, 왜 그것밖에 안 먹어!?”

기겁하고 바라보는 소녀의 접시에는 정확히 ‘1인분’의 음식이 담겨 있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메릴린의 얼굴에, 스탠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라가 입이 좀 짧아서요. 이것보다 더 많이 주면 남길 거예요.”

“남긴다고? 남겨?”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얼굴을 하던 메릴린은 제 몫의 음식을 들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나 주어진 음식을 불평 하나 없이 복스럽게 먹던 귀족 영애의 모습에 위안을 얻었던 병사들은 어딘가 아쉬움을 느꼈다.

도로테아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눈을 끔뻑이는 스탠에게 말했다.

“괜찮아. 언니랑 얘기해 볼게.”

“누나, 괜찮을까? 어딘가 아파 보여.”

얼굴색이 노랗게 되었다 파랗게 되었다가를 반복하고 연신 횡설수설하는 메릴린의 모습은 그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도로테아는 생긋 웃으며 소년을 안심시켰다.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언니한테 힘내라고 말해 주고 올게.”

그렇게 말한 소녀는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이는 메릴린을 볼 수 있었다.

“메릴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메릴린의 목소리에는 그녀가 느끼는 절망감이 생생이 서려 있었다.

“나는, 나는 말이에요. 양 볼에 음식을 욱여넣어도 만족을 할 수가 없어요. 식사를 하고 나서 한두 시간이 지나면 속이 허해져 또 간식을 찾는다고요.”

“그야 그만큼 메릴린이 열심히 운동을 하기 때문이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속이 허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장정 대여섯 명의 식사로도 만족 못 하는 몸이 되어 버렸는데, 본인만 소식가로 전직하다니!”

비극적인 탄식에 도로테아는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요. 보급 물자라면 충분한 데다, 스펜서 백작님이라면 메릴린의 식사량이 많다고 해서 구박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게 문제예요?! 나는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와 버렸다고요. 틀려먹었어요!”

서럽게 울먹이는 메릴린을 다독여 주던 도로테아가 턱을 괸 채 물었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어요?”

그 물음에 시트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든 메릴린이 잠시 눈을 굴리다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손수건을 꺼내어 붉어진 눈가를 정리하고, 구겨진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숨을 고른 그녀가 바른 자세로 자리에 앉아 말했다.

“누가 그러겠대요?”

“…….”

“그렇게 갈 생각이면, 오지도 않았어요.”

새초롬하게 말하는 메릴린을 바라보던 도로테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귀엽다니까.

*   *   *

코제트는 의아한 얼굴로 모처럼 함께 나서는 부자(父子)를 보며 물었다.

“폐하께서 필립에게도 입궁을 명하셨나요?”

콜린이 답을 하기도 전에 필립이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의 물음에 답했다.

“아뇨, 저는 모처럼 2황자 전하를 뵙고 오려고요. 7황자 전하도 그렇고, 테아도 소식이 없으니 황궁에 홀로 남아 있는 2황자 전하께서도 마음이 좋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그도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그분도 참 정 붙이실 데가…….”

고개를 끄덕인 코제트가 재빨리 하녀를 불러 간식으로 먹으려고 만든 파이를 손에 쥐여 주었다.

따끈따끈한 파이를 받아 든 필립이 어머니를 향해 다정히 인사를 건네고 마차에 올라타자, 콜린이 무겁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전장에서 오는 소식은, 코제트에게는 함구하도록.”

“테아의 소식은 듣고 싶어 하시는 눈치인걸요.”

“무사하다는 사실 정도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굳이 더 마음 쓰게 할 필요 없다.”

“어머니께서 무료해하세요.”

“조만간.”

입을 뗐던 콜린이 드물게도 말을 잠시 멈추고 뜸을 들이다 다시 이어 나갔다.

“무료할 틈도 없이 마음을 쓰게 될 일이 있을 게다.”

연로한 후작 부인은, 뒤늦어서야 가까이하게 된 콜린 일가를 알게 모르게 챙겨 주었다.

시집온 직후 ‘소멸된 콜린’에게 막혀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차단당한 코제트에게, 하이클레어 가문의 사람들은 얼마 없는 가족이었다.

그중에서도 후작 부인은 어머니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설령 모두가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일일지라도, 누군가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콜린에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필립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위용 가득한 황궁이 멀리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윌리엄은 멀리서 파이가 든 바구니를 들고 다가오는 필립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도로테아가 황도에서 모습을 감춘 뒤로, 소년은 황궁에 출입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혹여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재빠르게 필립의 얼굴을 훑었다.

다행히도 그의 얼굴은 비교적 밝은 기색을 띠고 있었다.

“드문 일이군요. 그대가 제 궁에 오다니.”

“방문 선물입니다. 어머니께서 만드시는 파이는 입맛이 까다로운 후작 각하께서도 칭찬하셨을 만큼 맛있으니, 황자 전하께서도 만족하실 겁니다.”

“감사히 받겠다고 전해 주세요.”

시녀를 통해 파이를 받아 든 윌리엄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들어 미소 짓고 있는 필립을 향해 말했다.

“영식께서 괜찮으시다면, 파이에 곁들일 차를 한잔 추천드리고 싶습니다만.”

“그것 참 감사한 일이군요. 마침 어머니께 선물드릴 것을 고민 중이었는데, 황자님의 안목이라면 분명 믿을 만할 테니까요.”

필립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덥석 초대를 받아 들었다.

‘조만간 움직일 줄은 알았지만.’

윌리엄이 착잡한 얼굴로 응접실을 향해 걸으며 한숨을 삼켰다.

‘하이클레어 가문의 사람’이 황자궁을 방문했다, 라는 것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필립은 둔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이곳에 올 만한 이유가 생겼다는 거겠지.

‘아마도 황도가 아닌, 먼 곳에서.’

응접실로 들어온 윌리엄이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루크의 실종에 관한 소식이 있습니까?”

빙빙 둘러 대화를 피하리라 여겼던 윌리엄의 기습에 필립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늘 달관한 얼굴로, 뒤로 물러나 있기에 이번에도 그런 줄로만 알았건만.’

돌이켜 보면 모처럼 먼저 궁으로 오라 권한 것부터 2황자답지 않은 태도긴 했다.

빠르게 표정을 수습한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7황자 전하께서는 현재 테아와 함께 총사령부로 향하고 계십니다. 약간의 탈수 증상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부상은 없습니다.”

“그간의 사정도 파악됐나요?”

“7황자 전하의 실종은 변경백과 그 휘하의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에 중독된 채 갇혀 있었지만 다행히 제때 발견하여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몸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무엇 하나 감추는 것 없이, 솔직하게 꺼낸 답에 윌리엄의 얼굴에는 경악이 서렸다.

“변경백은 어찌 되었습니까?”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중병이었던지라 오래 살지 못했을 거라더군요. 아마 그 조급함이, 그로 하여금 무모한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7황자를 납치하여, 그의 신변을 확보한 채 도모할 수 있는 무모한 짓이라면…….

윌리엄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필립은 몇 가지의 단서만으로도 사실을 추리해 낸 윌리엄을 보며 도로테아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 2황자가 무탈하게 살아남은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의욕만 있었더라면, 독으로 망가진 몸도 치료할 만한 수완은 있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한참을 침묵하던 윌리엄이 겨우 입을 뗐다.

“테아가 곁에 있어 주니 안심입니다. 따르던 이의 배신이나 죽음 둘 다, 루크에게는 큰 충격일 테니까요.”

그 아이라면 필시 상심에 빠질 틈도 없게끔, 바쁘게 만들어 줄 테지.

윌리엄의 씁쓸한 말을 듣던 필립이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는 군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이 일들을 덮으실 겁니다.”

“그렇겠지요. 굳이 제국 내에 또 다른 혼란을 가져올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변경의 귀족들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또 다른 분열이 발생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변경백의 죽음 또한 당분간은 함구될 예정이겠고요.”

담담한 윌리엄의 표정을 살핀 필립이 덧붙였다.

“그렇지만 스펜서 백작은 이미 변경백의 사망 사실을 접한 상태고, 황도와는 멀리 떨어진 낙후된 지역의 귀족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습니다.”

“…….”

“황자님께서도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계실 테지요.”

알다마다.

출정에 앞서 그와 나눴던 짤막한 대화를 떠올린 윌리엄이 주먹을 쥐었다.

그는 자신의 야욕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테아가 전하라더군요. 이제 황자님께 주어진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눈앞에 놓인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부하거나.

이제까지는 ‘보류’해 왔던 선택의 기로를 명확히 할 차례가 되었다.

“저는, 그리 용감한 사람이 아닙니다.”

입술 새로 힘없이 흘러나온 말을 필립은 담담히 받아쳤다.

“원래 세상을 바로 보고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일 자체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 법이죠.”

그렇기에 대개의 사람들은 현실을 잊고자 쾌락에 빠지거나 엉뚱한 것에 집착하게 되지 않습니까.

“적어도 전하께서는 세상을 바로 보는 일은 하고 계십니다.”

마주할 용기를 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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