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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183화 (183/242)

183화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세상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라 그런 걸까, 낮과는 사뭇 달라진 공기의 흐름에 필립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후에 우드 경께 기별이 왔어요. 긴급히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며 통신을 요청하셨더라고요.”

그의 앞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콜린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무감한 얼굴로 다시 눈을 서류에 고정했다.

그런 아버지를 본 필립이 피식, 웃었다.

아닌 척하더라도 귀를 열어 두고 있음을 알았다.

“아무래도 그곳 사정이 복잡한가 봐요. 무능한 영주 탓인지, 요새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한창인 터라.”

“…….”

“걱정스러운 마음에 좀 무리해서 여기저기 알아봤죠. 덕분에 꿍쳐 둔 비자금이 좀 날아갔지만, 그럭저럭 도움이 되었길 바라 봐야겠어요.”

“괜찮을 게다. 그리고 그 계집애에겐 필요하면 언제든 긁어 올 수 있는 것이 재화야. 신경 쓰지 마라.”

“아뇨, 아버지 비자금이요.”

“…….”

순간 펜을 쥐고 있던 콜린의 손이 멈칫했다.

고개를 들어 필립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는 꽤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좀 섭섭하긴 해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알아봐 줬건만, 우드 경 편에 인사 한마디를 안 해 주더라고요. 테아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콜린은 서류에 코를 박은 채, 섭섭한 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들의 답에 심드렁하니 답했다.

“원래 그런 아이다. 내 그러니 정 주지 말라지 않았느냐. 그 애는 보통의 인간들과 달라.”

“…….”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게다. 애초에 네가 볼 수 있는 세상이 그 애가 볼 수 있는 세상과 다르듯이, 서로 평행선을 걷듯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

그러니 예쁘고 참한 ‘평범한’ 인간을 만나 잘해 주면 될 것이 아닌가.

제 마음을 헤아려 주고, 받은 것에 보답할 줄 아는 인간을.

현실적인 콜린의 충고에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던 필립이 옅은 미소와 함께 나직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 애는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 줬는걸요.”

서류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던 콜린이 펜을 내려놓았다.

자신을 응시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필립이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를 제게 보내 줬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는 ‘인간’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러운 분이에요.”

저도 모르게 아들의 눈을 피해 시선을 내린 콜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남자의 서투름을 아는 필립은 굳이 더 말을 보태는 대신, 그가 내려놓은 펜을 정리하고 잉크통의 뚜껑을 닫았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코제트가 조심스레 얼굴을 들이밀었다.

“두 사람 모두 바쁜 건 알겠지만, 식사만큼은 걸러서는 안 돼요. 할 일이 있더라도 저녁 식사만큼은 같이하는 게 좋겠어요.”

나름대로 단호해 보이려는 듯 허리춤에 얹은 손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귀여운 몸짓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두 부자는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저택의 안주인이 건넨 제안에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어머니. 이제는 식사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내려갈게요. 오늘 저녁 메뉴는 뭘까요?”

코제트와 팔짱을 끼고서 살갑게 묻는 필립의 말에 그녀가 조곤조곤히 메뉴를 일러 주었다.

삶은 게의 살을 발라내어 내장 소스를 얹은 전채 요리에, 연한 소갈비 살을 마리네이드하여 만든 메인 메뉴 등등.

하나같이 가족들의 입맛에 맞게 신경 쓴 요리들로 가득했다.

사이좋은 모자(母子)의 뒤를 쫓던 콜린이 멈칫했다.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흐릿한 전음 때문이었다.

- 당장 이쪽으로 와 줘야 할 것 같아.

요구를 들은 콜린의 미간이 좁아졌다.

당장, 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을 보아하니 ‘육신’을 벗어 둔 채 오라는 뜻일 터.

명계의 주목을 받기 싫다며 콜린이 본신의 힘을 쓰지 않게끔 최대한 꺼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부름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앞서서 멀어져 가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던 콜린이 입을 열었다.

“기다려라.”

- 응?

“가족 식사 시간이다.”

무뚝뚝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녀의 밝은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키득거릴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 좋아.

그의 요구에 산뜻한 답이 내려졌다.

- 소중한 시간일랑 빼앗지 않을 테니, 가족들과 식사 맛있게 하고 오렴.

웃음기가 서린 목소리를 보아하니 앞으로 한동안은 놀림이 그치질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여보?”

성가시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던 콜린의 걸음이 빨라졌다.

멀리 식당에서 풍겨 오는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   *   *

등불 없이는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저녁이 찾아왔다.

잠에서 깬 얼굴에 귀찮음을 덕지덕지 붙이고도 용케 일어난 도로테아가 방을 나설 채비를 마치며 우드를 향해 당부했다.

“스탠과 함께 먼저 자도록 해. 나는 밤에 할 일이 있을 것 같거든.”

“나도 함께하겠다.”

소녀는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나만 갈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괜찮아. 잔소리할 것 같아서 함께할 존재를 불렀거든.”

“누구 말이냐?”

“콜린.”

답을 들은 우드의 눈이 대번 가늘어졌다.

그가 이 먼 곳까지 순식간에 날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가 과연 ‘도로테아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에 가진 미심쩍음이 더 큰 듯했다.

속내를 읽어 낸 도로테아가 키득거렸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 일부러 그를 부른 거니까. 그리고 지금의 사안만 보자면 너보다는 그가 훨씬 ‘호위’로서도 적합할 거야.”

“……만일의 경우라는 게 있지 않나. 나도 가는 것이 좋겠다.”

도로테아의 말을 충분히 이해한 듯 우드의 입매가 굳었다.

콜린이 더 적합할 만한 사안이라는 것은 분명 상식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존재들을 상대할 때에 쓰는 말이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매번 애써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긴 하지만, 종종 굳어 버리곤 하는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

하기야 산 자의 일이 아닌 사자의 일을 대체 어느 누가 알고 싶을까.

누군가의 죽음은 그 인간의 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한 인간의 생 전체를 들여다보게 되는 일도 허다했다.

대개의 죽음은 평온하고 즐겁게 다가오기보다는 안쓰럽고, 괴롭고, 안타깝기 마련이지.

“이번에는 정말로 나와 콜린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 그래.”

“…….”

“너는 여기까지만 보아도 충분하단다.”

이만해도 이미 반쯤 발을 들인 셈이었다.

더 이상 깊어지는 것은 산 자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도 있을 터.

죽은 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연민을 가지는 것도, 살아 있는 감각이 흐릿해지는 것도 무엇 하나 좋은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도로테아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가 제 고사리 같은 손을 우드의 뺨에 살짝 가져다 댔다.

“무슨 일 있으면 부를 테니 스탠 곁에 있어. 혹여 현세에서 일이 생기면 네가 지켜야 하는 건 나와 그 애니까.”

부를 때는 투덜투덜 순순히 그러겠노라, 답하는 일이 없더니.

막상 뒤로 가 있으라 배려해 주자 곁에 서겠다며 자처하는 것이 꽤 갸륵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우드가 ‘얌전히’ 방에 있어 줘야만 했다.

그래야 그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 한층 수월해지지.

그를 바라보는 도로테아의 입가에 웃음이 짙어졌다.

“정 불안하면 새벽녘 즈음 공동묘지로 오려무나.”

“공동묘지?”

“수백 기의 무덤이 있는 바로 그곳 말이야.”

“…….”

하나도 아니고 수백이라니.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우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런 권속을 향해 픽, 웃어 보인 도로테아가 슬쩍 발을 굴렸다.

푸른빛이 주위를 둘러싸는가 싶더니 이내 시원한 바람이 그녀를 공중에 띄웠다.

오랜만에 부름을 받은 정령은 신이 난 듯 빠르게 제 주인의 몸을 태우고는 성 위를 날아 단번에 목적지로 데려다주었다.

수백의 봉분과 십자가 앞에 선 도로테아가 천천히 얼굴에 웃음기를 지웠다.

‘관리인조차 없군.’

말이 공동묘지지, 시체를 묻어 두는 공터나 다름없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체 냄새를 맡으면 자연스레 모여들게 될 까마귀들조차 보이지 않다니.’

도로테아는 무덤가를 거닐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두 눈에 세세히 담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인 듯 곳곳에 보이는 무성한 풀과 다니는 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험한 길.

듬성하게 있는 관과 아무렇게나 두드려 놓은 봉분.

이름도 없는 무덤 위에는 흙조차 제대로 덮여 있는 것이 드물었고, 덮어 놓은 흙조차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죽은 자를 모욕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최상이었다.

혀를 쯧, 하고 찬 그녀가 나직하게 권속을 불렀다.

“나와.”

쏴아아-

서늘한 바람 소리와 함께 무성한 풀들 사이로 흐릿한 형체의 콜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육신을 벗어 두고 제 모습을 찾은 덕인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사신이 한 걸음 한 걸음 도로테아 곁으로 다가와 섰다.

“피피.”

옛 주인의 등장에 반가이 달려간 햄스터가 길쭉한 본신으로되돌아가 콜린의 손에 감겼다.

주변에 가득한 십자가들 아래 상태가 엉망인 봉분들을 살핀 사신이 입을 열었다.

- 텅 비었군.

“그렇지?”

-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토록 많은 육신들이 잠든 자리에, 그 어떤 미련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니.

설령 혼이 이승을 떠났어도 내려놓은 무거운 감정의 찌꺼기들은 주변에 쌓여 있기 마련이었다.

이곳에는 그조차도, 애초에 ‘에너지’라고 칭할 만한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꼭 이승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

가만히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손을 뻗었다.

우드를 데려오지 않길 잘했지.

제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에 이골이 나 있는 그라 하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질 사자모독(死者冒瀆)만큼은 태연할 수 없을 테니까.

“드러내.”

시신을 덮고 있던 얇은 흙더미가 정령의 힘에 천천히 쓸려 내려갔다.

그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몇백, 몇만 구의 앙상한 뼈를 향해 다가간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육신에 응당 남아 있어야 할 혼력조차 모두 사라졌어.”

남은 육신은 흙과 뒤섞여 또 다른 세상의 양분이 되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이치. 그 당연한 이치조차도 불가능하게끔, 껍데기만 남은 육신은 빈곤했다.

“곤란하구나. 읽어 낼 기억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육신들이라니.”

이름을 잊고, 그 삶도 있고.

이생에 왔다 갔던 흔적 모두가 이 육신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구나.

- 이건 사신의 짓이 아니로군. 누가 이 많은 자들의 혼백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게냐.

콜린이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목소리에 담긴 미미한 분노는, 아마도 한때 사신으로서의 본능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표정 없이 불가해한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로테아가 몸을 돌렸다.

“가자. 어찌된 일인지 물어봐야 할 사람이 있으니.”

권속의 힘을 빌어 빠르게 자리를 떠나는 그녀는 저조해진 기분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눈을 끔뻑였다.

옳지 않은 것. 도리에 어긋난 것.

인과의 법칙과 존재의 의미를 모두 기만한 광경들에게서 느껴지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 누굴 찾아가는 거냐?

“지금 이 상황에서 목숨이 가장 위태로운 자.”

간단히 답한 그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도로테아가 떠난 자리에서는 그 존재의 가치를 잃은 ‘인간의 육신이었던 그릇’들이 스르르, 가루가 되어 공중에 흩날렸다.

*   *   *

말없이 도로테아의 뒤를 쫓고 있던 콜린은 갑작스레 멈춰 선 그녀를 따라 앞을 바라봤다.

볼품없이 낡은 주점 안에서 몹시도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말없이 문을 노려보던 도로테아가 손을 뻗었다.

쾅!

정령의 강력한 힘에 산산조각 난 문 너머로 기괴한 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으으으-.”

겉보기만 하더라도 아주 멀쩡한 인간처럼 보이는 이들의 눈은 하나같이 허여멀건 흰자로 뒤덮여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들끓는 듯한 으르렁거림이 연신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짐승일까.

아니, 짐승조차도 아니었다.

위압적인 정령의 힘을 목격하고도 저들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으니까.

“너, 너는!”

건물 안에 있던 사내 하나가 도로테아를 알아보고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가 어떻게 이곳을…… 아니, 그보다 좀 전의 그 힘은…….”

“라파예트 경은요?”

자세한 설명 따윌 늘어놓을 만한 여유는 없었다.

도로테아의 물음에 흠칫했던 사내가 이내 입술을 질끈 물더니 답했다.

“저것들이 오기 전 뒷문으로 빠져나가셨다. 갑자기 리안이 불안하다며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거든. 그분이 떠난 직후 저것들이 밀어닥쳤지.”

조그마한 몸집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압도되었던 남자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제 앞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그새 하나같이 단번에 목이 꺾여 죽은 이들은, 놀랍게도 숨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온몸이 새까맣게 변색되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의 중얼거림을 듣던 도로테아가 성문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 영지에 숨어 있는 이들, 모두 모아요. 그리고 지금처럼 사람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마주치지 말고 피해요. 완벽하게 숨을 끊어 놓을 자신이 없다면, 스치는 것조차도 위험할 테니.”

간단히 조언을 남긴 그녀가 서둘러 발을 뗐다.

반투명한 형체로 곁에 있던 콜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봤다.

- 좀 전의 인간은…….

“창귀(倀鬼 : 귀에게 해를 입어 귀의 앞잡이가 되는 인간)야.”

- 창귀?

점점 사건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도로테아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졌다.

냉정하고 서늘한 빛이 어린 새까만 눈이 마치 검은 비늘처럼 요요히 빛났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들이 절묘하게 아귀가 들어맞았다.

거대한 인간의 무덤.

그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의 흔적들.

생기라고는, 혼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퍼석하게 말라 있던 볼품없는 터.

그 아래에 이미 껍데기뿐이었던 유골들.

성문에 가까워지자, 굳게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희끗한 백발의 노인이 보였다.

그 앞에 노인을 막아선 누군가의 모습이 유독 흐릿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선명해지기는커녕 지독한 사취와 함께 끔찍한 불쾌감과 거부감이 온몸을 감쌌다.

이윽고 라파예트 앞에 선 도로테아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흐리멍덩한 흰자위를 까뒤집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창귀’가 된 문지기들을 보았다.

그들 가운데에서 괴이한 웃음을 짓고 있는 허드슨 블랑 또한.

“너, 귀태(鬼胎)로구나.”

귀도, 인간도 아닌 것.

낮에는 인간의 탈을 쓰고, 밤에는 귀가 되어 사람을 잡아먹는 반쪽짜리 귀태.

인간과의 귀접을 통해 만년에 하나 태어난다는, ‘귀’의 자식.

눈을 마주하고도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던 것은……

그가 낮에는 완벽한 인간의 면을, 밤에는 귀가 되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을 꿰뚫어 본 도로테아의 말에 허드슨이 찢어질 듯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그와 동시에 도로테아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졌다.

모든 것들이 아귀에 맞는데, 단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었다.

이 요새를 집어 삼키려고 주변 영지들을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면서도, 굳이 의도대로 날뛰어 주는 까닭을 알 수 없어서.

자신이 있었던 거다.

이곳에 자신이 이끄는 ‘죽음의 군대’를 만들 자신이.

죽은 육신에 갇힌 혼이 시끄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도로테아의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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