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술사 도로테아-181화 (181/242)

181화

조르륵.

찻잔에 주홍빛 물이 천천히 채워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차를 따르고 있는 우드를 향해 불쑥 물었다.

“변경백은 어떤 인물이지?”

“그건 왜 묻나.”

“슬슬 궁금해져서. 곁에 두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흥미롭잖니.”

생존자들의 쉼터에서 봤던 노인은 속에 능구렁이가 들어앉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자들은 천성적으로 입 놀리는 재주가 뛰어나 주변을 쉽게 현혹시키지.

제타는 제법 영민하긴 하지만 신념이 곧은 인물이었다.

‘탈영병들을 빼돌리는 것은, 위험도가 너무 높아. 자칫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이 상황을 모르는 그레함이나 할린까지도 엮여들게 될 터.’

그러니 단지 연민만으로는 이런 위험한 일을 실행에 옮길 것 같지 않았다.

요새에 도착하기 전에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하는 것과, 이미 죄수로 잡혀 있는 이들을 빼돌리는 것은 사안이 다른 일이니까.

그럼에도 노인의 지시를 따라,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오로지 변경백을 향한 충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우드는……

처음 만났던 때, 날것에 가까웠던 그의 눈을 떠올린 도로테아가 침묵했다.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오로지 분노에 몸을 맡겨 검을 휘두르고 다니던 천둥벌거숭이 살귀.

‘날뛰던 짐승’이라고 표현한 제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허드슨을 살려 두고 전장에서 써먹는 패로 이용할 만큼 유연한 인물이라는 소리잖아.”

그자의 본성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목줄을 쥐고 있는 한 도움이 되는 쪽이 크다고 여긴 셈이다. 스스로에게 가진 강고한 확신과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지.

“인재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며, 상황을 좁게 바라보지 않고, 강고한 확신으로 아랫사람들을 배치하는…….”

제왕의 눈을 가진 이라.

도로테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타고난 군주로구나.”

“넌 그 입 때문에 언젠가 피를 볼 게다. 그런 말은 입에 올려서도, 생각해서도 안 돼.”

불경하기 짝이 없는 아이의 말에 우드가 한숨을 쉬었다.

“글쎄, 불경하기로는 라파예트인가 하는 그 노인이 더하지.”

도로테아가 호로록 차를 마시며 가볍게 말을 얹었다.

“너도 그 때문에 찜찜해하고 있는 거잖아?”

“…….”

그자의 과잉된 충성이, 위험하다고 여겼기에.

제 속내를 정확히 짚어 내는 그녀에게 우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백작이 있으면 변경백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이 요새의 총책임자가 되기는 어려울 거야. 이곳 봉토는 카메르 백작가의 선조에게 황실이 하사한 곳이고, 변경백은 패전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니.”

“…….”

“그러니 서자를 내세워서 백작을 고발하고 흔들어, 계승권을 얻어 내어 이곳 요새를 꿀꺽 삼키겠다는 계획을 짜고 있었던 거겠지.”

계승권자에게 ‘정당한 이유’로 작위를 건네받는다면, 그리고 황제의 윤허(允許)만 있다면 변경백은 다시 새로운 요새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노인은 실종된 변경백이 돌아오리라는 굳건한 믿음 아래, 이곳 요새를 주인에게 바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우드가 담담한 목소리로 인정했다.

“베크만 경께서도 종종 라파예트 경의 극단성을 염려하시긴 했다.”

아아,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머리가 좋은 데다 목표 지향적이기까지 하다니.

그러니 흥미롭다는 거다.

변경백 아래에 있는 자들은 뛰어나지만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가 나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자칫하면 불경하다고 욕을 들어먹을 수 있는 인물도, 살인을 즐기는 살귀도, 지나치게 신념만을 좇는 탓에 시야가 좁은 이들도.

어딘가 뛰어나지만, 삐끗하는 순간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진 자들이었다.

턱을 괴고 있던 도로테아가 불쑥 물었다.

“그래서, 변경백을 꽤 존경했나 봐? 그 사람이 네게 그렇게 소중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망설이고 있잖아.”

도로테아의 말에 뜨끔한 듯 우드가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이들은 카메르 백작을 아예 밀어내려는 목적 하나만으로 삐걱거리는 상황을 일부 방치했고, 갈등을 겪는 병사들을 알면서도 굳이 애써 중재하지 않았어.”

“어차피 영주의 태도를 보면 적극적으로 움직였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개판은 되진 않았을 거야.”

“…….”

“허드슨 블랑이 아무리 대단히 날뛰어도, 그저 일개 기사에 불과해. 제대로 간언하는 인물만 있었어도 영주가 이토록 허드슨을 중용하진 않았겠지.”

아무리 답이 없어 보였어도, 이 요새를 책임지는 인물은 카메르 백작이다. 처음부터 그의 곁에 머무르며 허드슨을 견제하고 조언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했더라면, 상황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았을 터.

변경 요새의 생존자들은, 이곳 영주가 그들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시는 일을 거부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섬길 주군을 앉히려 계획하고 있었다.

그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하급자가 상급자를 ‘선택하여 골라 앉히겠다.’니.

“망설이고 있는 네 태도만 봐도 변경백에게 가진 마음의 무게가 크다는 거겠지.”

그렇게 말한 도로테아가 입을 삐죽였다.

“아빠는 그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해? 이렇게 예쁜 딸을 두고?”

“우리 사이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냐.”

우드가 정색하자 어깨를 으쓱한 도로테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리 끙끙 앓아 가며 고민할 필요 없어. 협력할 필요 없으니까.”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우드가 의아하다는 듯 그녀와 눈을 맞췄다.

라파예트의 계획 자체는 과하긴 했지만 이곳의 영주가 보이는 행태 또한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요새의 책임자로서 적절하지 못한 그릇을 갖고 있었으니까.

가뜩이나 눈 높은 도로테아가 고작해야 현 카메르 백작을 기꺼워할 리 없는데, 그대로 두고 있다?

“애초에 이 계획은 반쪽짜리니까.”

“반쪽…… 이라고?”

도로테아의 입가에 한층 짙은 미소가 머물렀다.

“머리를 잘 굴렸어. 만일 처음부터 계획을 모두 다 터놓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협력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무리 이들이 충심에 눈이 멀었어도, 거기까지는 힘들었을 테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리고 반쪽짜리 계획에 보기 좋게 낚인 인물도 있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답답한 듯 눈썹을 치켜올리는 우드의 말에 도로테아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생각하기에 허드슨은 어떤 인간이야?”

“그건 이미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걸 왜 묻지?”

“너도 단 몇 번의 ‘우연한’ 만남과 상황을 통해 유추한 사실을 읽지 못할 만큼 머저리냐고 묻는 거야.”

“…….”

“그의 포악한 성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요즘 지나치게 얌전하다…… 라는 생각, 해 보지 않았니?”

그자는 타고나기를 사람을 해하고, 고통을 주며, 거기서 얻는 생생한 공포감에서 기쁨을 얻지.

그런 작자가 얌전히 영주 아래서 온순한 개 노릇을 한 지 벌써 수일째인데.

“짐승이 몸을 낮추고 숨을 죽이는 것은, 큰 먹이를 노릴 때밖에 없단다.”

“그자가 이미 알고 있다고?”

경악 어린 우드의 말에 도로테아는 아무 말 없이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허드슨은 허드슨대로, 자신이 꿰뚫어 본 ‘반쪽짜리 계획’을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 터. 저마다 서로를 이용하여 그들이 그리는 ‘이상향의 왕국’을 이 요새에 건설하려 한다면.

‘어마어마한 피바람이 불어닥칠 텐데.’

우리의 변경백께서는 아군의 피로 물든 땅을 제물 삼아, 과연 어디까지 갈 생각일까?

도로테아는 혼란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우드에게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홀로 남겨둔 채 유유히 방을 떠났다.

슬슬 스탠이 일어날 시간이었다.

*   *   *

경고를 해 두었으니 당분간 허드슨의 행적을 쫓느라 바쁘겠지.

필립에게 지급(至急)으로 연통을 넣으려는 것인지 서둘러 통신실로 향하는 우드를 흘끗, 살피던 도로테아가 스탠과 함께 정원으로 나왔다.

서늘한 날씨 탓일까, 앙상한 정원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애초에 성주라는 작자가 심미안이 없으니.’

관리를 도맡아야 할 안주인의 부재 또한, 이 정원이 버려진 원인 중 하나일 터.

앙상한 가지를 유심히 바라보는 도로테아의 모습에 스탠이 조심스레 위로를 건넸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꽃도 피지 않을까?”

“글세, 뿌리가 썩지 않았으면 그렇겠지.”

심드렁한 소녀의 말에 스탠의 시선이 단단하게 다져진 땅을 향했다.

“후작가의 정원은 계절마다 달라져.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계절마다 다른 색과 냄새를 풍기는 것들이 어우러져 가득 채우고, 충만한 생명력을 뽐낸단다.”

겨울에도 겨울의 색이 있는 법이다.

추위를 견디는 침엽목들의 푸른색과,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든 마른 가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싹눈의 옅은 초록빛.

“날씨가 추워서 정원이 황량한 것이 아니야.”

겨울에도 겨울 나름의 훌륭한 정취가 있는 법이다.

“이곳 정원이 살아 있지 못해서 그런 거지.”

소녀의 두리뭉실한 말에 스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도로테아는 별다른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 동생의 뒤를 따라 걷던 스탠이 불쑥 말했다.

“거리에서 여러 가지 씨를 팔던데 여기 심으면 좋겠다.”

홀로 나지막이 내뱉은 중얼거림이었지만, 도로테아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좋겠지. 남천(南天) 같은 것들은 겨울에도 잘 견딜 뿐 아니라 영역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거든.”

“남천이 뭐…….”

스탠의 물음이 다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히히힝, 하는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도로테아는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처음에는 점처럼 보이던 물체가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이내 시야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휘장을 두르고 멋들어진 안장을 갖춘 새하얀 승용마(乘用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용성에 중점을 둔 군마와는 달리 잘 관리되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말의 자태에 소년은 넋을 잃은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말 위에 올라탄 기수(騎手) 또한 스탠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여인?’

눌러쓴 모자 아래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푸른 눈이 말 아래 서 있는 소년의 존재를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천천히 고삐를 쥐지 않은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희고 고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길고 가느다란, 가죽으로 된 채찍이었다.

도로테아가 재빠르게 스탠의 팔을 잡아끌었다.

“……!”

말의 위용에 놀라 서 있던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휘익.

간발의 차로,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채찍이 허공을 때렸다.

“…….”

여인은 흘끗, 저를 응시하고 있는 도로테아를 보더니 이내 심드렁하니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히 두 아이를 지나쳤다.

놀라 얼어 있던 스탠이 눈을 깜빡이며 제게 일어날 뻔한 일을 곱씹었다.

“방금 그 사람, 그러니까 나한테…….”

“누굴까. 보아하니 분명 귀족 영애일 텐데.”

이곳 요새에 드나드는 귀족 영애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건만.

게다가 도로테아와 마주했던, 그 무감한 눈.

마치 두 아이를 제가 가는 길 위에 놓여 있는 돌멩이처럼 바라보던 눈과 함께 여인에게서는 아주 익숙한 냄새가 났다.

“사취(死臭)가 나는 귀족 영애라니.”

어쩐지 이곳 요새가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었다.

*   *   *

“자, 좀 더 마실래?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에는 따뜻한 차 만한 것이 없거든. 특히 그중에서도 재스민이 심신 안정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단다.”

“으, 응. 고마워, 사라.”

스탠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도로테아가 건네 주는 재스민차를 받아 들었다.

기대 없이 차를 홀짝인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맛있어……!”

첫 모금에서 느껴지는 옅은 단맛과 향긋한 차향, 그 뒤로 입안에 고루 퍼지는 구수한 맛이 부드럽게 맴돌다 사라졌다.

차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스탠의 감탄에 도로테아가 생긋 웃었다.

“들었죠? 맛있다네요.”

“그래, 맛있다니 다행이구나.”

복잡 미묘한 얼굴을 한 리안이 대꾸했다.

그는 뜬금없이 제 방문을 두드리고 멋대로 들어와 찻잎을 꺼내 본격적으로 우려 마시기까지 하는 불청객들을 기가 막힌 듯 바라보았다.

한술 더 떠, 소녀가 고사리손으로 우려낸 차는 그를 자극할 만큼 향이 그윽하고 진했다.

이 아이들과 그가 마주친 것은 고작해야 단 한 번.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신기한데, 자신의 거처를 찾아온 것으로도 모자라 아주 자연스레 들어와 한자리 차지하기까지.

“놀랐어요. 차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찻잎도 훌륭하지만, 보관 방법 또한 제대로 알고 계시네요.”

심지어 칭찬에 늘 인색한 스승보다도 더 너그럽게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다.

‘문제는 저 아이의 태도가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는 거겠지.’

스스로도 희한할 정도로.

묘한 눈으로 도로테아를 응시하다, 찻잔을 입가에 가져간 그가 멈칫했다.

혀끝에 닿는 차의 맛이 확실히 이전까지와는 달랐다.

덜 여물어 봉오리졌던 싹이 활짝 그 잎을 펴내듯, 맛이 개화했다고 해야 할까.

가만히 입안에 머금은 채 음미하던 리안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는 도로테아를 바라보았다.

종잡을 수가 없는 아이였다.

도대체, 우드 경은 이 아이를 어떤 환경에서 길러 냈길래.

“이곳에 오기 전에.”

리안이 차를 음미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소녀가 운을 뗐다.

“정원에서 승마 중인 예쁜 언니를 만났어요. 푸른 눈에 태양빛 머리카락을 가진 언니요.”

“승마라고?”

멈칫했던 리안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좁히더니 중얼거렸다.

“조세핀인가.”

“말이 참 예쁘던데, 언니는 아마도 고귀한 귀족 영애겠죠?”

“이곳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르투아 남작령이 있어. 영토 자체는 작지만, 그래 뵈도 제법 오래 작위를 이어 온 집안이라 우리 쪽과도 친분이 있지. 그녀와는, 북부 아카데미를 함께 다닌 동기이기도 하니까.”

“꽤 가까운 모양이에요. 성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것을 보면.”

“글쎄.”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이전까지는 형식적인 교류가 대부분이었어. 그녀가 방문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라.”

“최근이요? 이곳은 위험해졌잖아요.”

오죽하면 카메르 백작의 식솔들마저 함께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 황도에 따로 살고 있을까.

보통의 귀족 영애라면 오히려 발길을 끊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녀는…….”

리안이 답을 하길 꺼리는 듯하더니 이내 체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허드슨 경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래서 사취가 났던 건가.

허드슨에 비해서는 손톱의 때 수준이긴 했지만, 그녀의 몸에서도 분명 죽은 자의 향기가 났다.

그리고 스탠을 내려다보던 그 무감한 표정.

눈앞의 소년이, 마치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돌멩이라도 되는 양 망설임 없이 채찍을 휘두르던 손길.

그건 확실히 사람으로서의 본성에 무감한 자들이 보이는 행동이었다.

“흥미롭네요.”

몸을 뒤로 늘어뜨린 채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리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걸 묻고 싶어 여길 온 거니?”

“아, 그건 아니에요.”

도로테아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스탠을 향해 쿠키 접시를 밀어 주었다.

고운 색깔의 쿠키를 소년이 반으로 똑 가르던 때, 누군가 타이밍 좋게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누구지?”

의아한 얼굴로 문을 연 리안은 뜻밖의 인물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초대했어요.”

도로테아는 리안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손을 흔들며 ‘초대객’을 향해 인사했다.

“티 파티를 할까 해서요.”

“…….”

“제타는 이미 아는 사이일 테니 소개할 필요 없겠고, 여기 있는 할린과 그레함 두 분과도 아는 사이인가요?”

내 거처에서, 내 찻잎을 가지고, 내 테이블과 내 의자를 써서?

리안이 황망한 얼굴로,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관대하게 웃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급히 자리를 준비하느라, 인원수에 맞게 의자를 준비하지 못한 점은 양해를 구할게요.”

얘…… 진짜 뭐지.

초대를 받은 이도, 초대 장소의 주인도 몹시 혼란스러운 티 파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