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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177화 (177/242)

177화

도로테아와 스탠이 안내받은 방은 대단히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연이은 패전과 황자 및 변경백의 실종으로 요새가 뒤숭숭한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백작이 타인의 눈을 신경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드의 존재가 못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통행증을 내준 황실의 체면을 생각한 셈이니.

“사라, 이것 봐! 벽난로야!”

태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방’에 머물게 된 스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들부들한 이불을 만지작거리며 그 위를 뒹굴던 소년은, 몸을 한껏 낮춰 근사한 벽난로를 살피다가 이윽고 푹신한 가죽 소파에 뒹굴며 즐거워했다.

도로테아는 그런 스탠을 바라보다 창가로 향했다.

흙이 고르게 다져진 훈련장에 나와 있는 두 무리의 병사들이 보였다.

‘곧 요새에 투입될 보병들인가.’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로테아의 옆으로 스탠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저기 사람들.”

그녀의 시선을 쫓아 훈련장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짐짓 심각한 얼굴로 두 무리로 나뉜 훈련장의 보병들을 관찰하던 스탠이 입을 열었다.

“저쪽에 있는 사람들, 어딘가 겁먹은 것 같지 않아?”

소년은 두 무리로 나뉜 보병들 가운데 기세가 움츠러든 쪽을 정확히 가리켰다.

스탠의 말처럼 상황은 일방적이었다.

시비를 걸며 괴롭히는 측과 그것을 받아치며 견디어 내지만 녹록치 않은 측.

당하는 측에서 애써 응대하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 남은 자존심을 박박 긁어 고개를 빳빳이 드는 것이 고작으로 보였다.

기세에서부터 억눌려 있으니 상대가 될 리가.

‘이곳 요새의 주둔병과 함락된 요새에서 흘러 들어온 패잔병들인가.’

대치하고 있는 두 무리를 보던 도로테아가 어딘가 풀 죽은 소년을 힐끗 바라보았다.

“저들 때문에 그래? 싸움을 멈추고 싶어서?”

“다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몰라. 다들 검을 쥐고 있는걸.”

왜 다들 괜스레 화를 내는 걸까.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소년의 말에 도로테아가 알 수 없는 얼굴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다 같은 편이잖아.”

그러니까 머저리 같은 것들이지.

패잔병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적군에게 맞서 싸울 전력이다.

이곳 요새 안에서 쓸데없는 텃세로 저들의 기를 죽여 봤자, 후에 공성전에서 쓰일 전력을 약화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는 법.

저 머저리들의 상관인 이곳 영주가 얼마나 무능력한 인물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잘 들으렴, 테아. 전장에서 요새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기지다. 본대가 안정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물자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부상병들을 관리하고, 또 후퇴한 이들의 마지막 항전지이기도 하지.”

자연스레 어린 시절, 어린 손주를 무릎에 앉힌 후작이 일러 준 이런저런 말들이 떠올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기가 앞으로 살 삶과는 크게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줄 알았건만.

‘이리 도움이 될 줄이야.’

대단위 전투에 앞서 요새를 정비하고, 병사들을 관리 통솔하는 법, 군자금과 물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에 맞는 인재를 발탁하는 법까지.

후작의 교양 교육은 무척이나 광범위했지만 보는 눈을 길러 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진다 싶을 때면, 굳은 얼굴의 펠릭스가 어김없이 찾아와 제 아버지를 타박하곤 했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대체 무엇을 가르치시는 겁니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뿐이다. 알아 두어 나쁠 것이 없지 않느냐.”

“만일의 경우라니요. 설사 전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테아와 같은 귀족 영애가 전장에 나가 검을 들거나 병사들을 통솔할 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기본만 가르치는 게다. 기본만.”

딴청을 피우는 후작을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보긴 했지만, 펠릭스 또한 하이클레어 후작가의 적장자로서 ‘교양’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좀 전의 그 말씀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정한 기능을 극대화시킨 요새는,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뚜렷해지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요새를 특수화시켜 항전지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의 기능을 정비해 두는 것입니다. 그 어느 성이라도 요새화할 수 있게끔…….”

“서류에 잉크만 바르다 보니 입만 살았구나. 지형에 따라, 요새가 갖는 특성을 개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모든 성을 재정비하다니. 그런 일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있느냐?!”

그렇게 시작된 의견 교환은 대개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지고, 치열하게 병법(兵法)을 논하는 둘 사이에서 도로테아는 테이블 위 다과를 야금야금 먹으며 한 귀로 말을 흘리곤 했다.

“또 어린 아가씨를 두고서 엉뚱한 말씀을 나누고 계셔요?”

이들의 다툼 소리에 달려온 시녀장이 재빠르게 후작 부인에게 귀띔하고, 불편한 몸으로 내려온 후작 부인이 철없는 부자(父子)를 향해 잔소리를 퍼붓고…….

기억들을 더듬는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서리자, 스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라?”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든 도로테아가 말을 이었다.

“뭐, 이대로라면 분명 큰 문제가 생기겠지. 보아하니 갈등이 수면 위로 차오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겠어.”

도로테아는 턱을 괸 채 창가를 내려다보며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더니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아마도 성주뿐만 아니라 밑의 지휘관들까지도 수준 이하인 모양이지.”

앞으로의 일이야 뻔했다.

성주는 제 무능은 생각지도 않고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할 것이다.

“어느 불쌍한 호구가 일을 죄다 뒤집어쓴 채 빈손으로 쫓겨날지 궁금해지네.”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우드가 방으로 들어섰다.

스탠은 피로가 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겉옷을 벗는 우드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멈칫한 우드가 무뚝뚝한 답과 함께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투박한 손길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물었다.

“백작과의 만남은 어땠어요?”

흘끗 스탠을 바라보던 우드가 말을 아낀 채 털썩 앉아 겉옷을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라면 뻔했다.

한눈에 보아도, 영 아닌 인물이었다는 거겠지.

“내게 직책을 하나 맡으라더군.”

앉아 있는 우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던 도로테아가 멈칫하고 고개를 들었다.

직책이라.

입성했다는 사실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 당연할 상황에서, 되레 직책을 내렸다고?

가만히 우드를 들여다보던 도로테아가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병사들의 훈련을 도맡았어요?”

표정 없이 건넨 건조한 물음에 우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에-.”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스탠이 대단하다, 중얼거리는 사이 도로테아는 창 너머로 들려오는 오합지졸의 기합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막 입성하여 아직 이곳 성내의 배치조차도 모르는 이에게 첨예한 갈등 중인 병사들을 훈련시키라고 명한다라…….

‘그래, 내가 그리 말했었지.’

조만간 요새에서 터질 문제를 죄 뒤집어쓸 불쌍한 호구가 대체 누구일지 궁금하다고 말이야.

흘끗, 우드를 바라본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호구 같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인간에게까지 그렇게 취급당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대체 얼마나 얕보이고 다녔길래 한낱 요새의 성주 따위가 내 권속을 제물로 사용할 생각을 할까.

“괜…… 찮은 거냐?”

무표정하게 손끝을 만지작거리는 도로테아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우드의 조심스런 물음에 도로테아가 활짝 웃었다.

“그럼. 더할 나위 없이 기쁜걸요, 아빠. 좋은 자리를 얻으셨네요.”

환하게 웃으며 부정하는 소녀의 답에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불안해진 우드가 지난 기억을 되새겼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녀가 제게 저토록 활짝 웃었을 때는…….

‘4황자비를 기절시켜 데려왔을 때였던 것 같은데.’

우드 데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   *

이른 아침, 훈련장으로 향하기 위해 채비 중인 우드의 얼굴은 유독 어두웠다.

“아빠, 오늘도 힘내세요.”

“아, 아빠 힘내세요!”

도로테아의 애교 섞인 인사에 곁에 선 스탠이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따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의 응원을 받았으니 내키지 않아도 웃으며 나서야 할 터인 가장의 얼굴이 거무죽죽했다.

결국 엊저녁에는 아무런 귀띔도 하지 않은 채 침묵하더니, ‘아빠’를 볼 때마다 생글거리는 도로테아 탓에 그의 심란함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말을 하면 좋을 것을.’

힘내라는 소리만 엊저녁부터 스무 번은 넘게 들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는 다섯 번을 넘게 목격했으며…….

“다녀와요, 아빠.”

저놈의 아빠 소리는 수십 번이 넘어가도록 그치질 않았다.

“차라리 무엇이 문제인지 말을 해라. 그리 사람을 피 말리지 말고.”

“그냥 맡은 바에 최선을 하면 족해. 뭉그적뭉그적, 하는 듯 마는 듯 말고. 당신이 늘 그래 왔듯이 맡은 일에는 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지.”

그 말과 함께 의뭉스레 ‘귀여운 딸’ 노릇을 자처하는 주인의 태도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저토록 이 아이의 심기를 거슬렀단 말인가.

한숨을 삼킨 우드가 무거운 걸음을 옮기기 전, 씨알도 먹히지 않을 당부를 건넸다.

“얌전히 있어라. 곧 돌아오마.”

“네~.”

당부를 건네는 우드의 시선이 스탠에게 고정되었다.

도로테아에게 굳이 말을 건네어 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나마 순순히 말을 듣는 스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향한 강렬한 눈빛에 움찔한 스탠이 바람 소리가 날 만큼 크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착잡한 눈을 감추지 못한 우드는 한숨을 삼키며 훈련장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런 그를 정성껏 배웅해 준 도로테아는, 당부를 건네고 떠난 ‘아빠’가 복도 너머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옷장으로 조르르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편한 외출복을 고르기 시작한 소녀를 본 스탠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사라, 아빠가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응. 그럴 생각이야.”

“그, 그치만.”

너 지금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튼튼한 신발로 갈아 신고 있잖아.

퍽 헝클어지기 쉬운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한데 묶은 도로테아가 머뭇거리는 스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얌전히 다녀오면 돼.”

“야, 얌전히?”

“사고를 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랬으니,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니면 되잖아.”

생긋 웃어 보인 도로테아가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던 스탠은 홀린 듯한 눈으로 제게 내밀어진 손을 붙잡았다.

쭈뼛거리면서도 제 말이라면 순순히 따르는 소년을 보던 도로테아의 눈에 만족스런 빛이 스몄다.

“어딜 가려고?”

“지금보다 아빠를 좀 더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러.”

후작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있다지만, 이곳 요새에서만큼은 그 위용도 통하지 않는 눈치였다.

성가시게 자꾸만 이런 일에 얽히느니, 차라리 상대를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게끔 밟아 주는 편이 앞으로도 더 편할 테니까.

성큼성큼 복도를 가로지르는 소녀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놀랍게도, 복도 맞은편에서 아이들을 보호 겸 감시하던 보초는 물론이고, 두 사람의 시중을 도맡아 온 사용인들 그 누구도 남매가 성을 빠져나갈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   *   *

소년의 손목을 거머쥔 소녀의 걸음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낯선 풍경 속에 스탠은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어, 어?”

귓가로 부는 바람이 느껴질 만큼, 뜀박질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걷고 있는데도 신기하게 숨이 가빠 오질 않았다.

“어딜 가는 거야, 사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야지.”

짤막한 답이 들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북적이는 거리가 이들 남매의 눈앞에 펼쳐졌다.

“물물 교환도 받고 있소! 곡물이나 저장 씨앗류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오!”

“오래된 천이나 쓰고 남은 자투리 천 삽니다!”

떠들썩한 소리에 소녀의 등 뒤에 착 달라붙어 있던 스탠이 신기한 듯 고개를 내밀었다.

도로테아의 눈은 바삐 돌아다니는 이들을 훑고 있었다.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

“응.”

“누, 누군데?”

조심스레 묻는 스탠의 말에 도로테아가 노래하듯 답했다.

“등이 구부정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좀처럼 타인의 눈과 마주하지 않으며, 되도록이면 어깨를 움츠린 자들.”

“…….”

“큰 소리에 민감하고 숨을 죽인 채 입을 다문 자들을 찾고 있어.”

수수께끼 같은 말에 스탠이 눈을 끔뻑였다.

‘사라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어기고 성을 빠져나온 것으로도 모자라, 그런 수상쩍은 조건의 사람들을 찾다니.

묻고 싶은 것들이 차고 넘쳤지만 늘 그렇듯 명확한 답을 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킨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스탠의 시선이 이윽고 어느 한곳을 향했다.

시선을 따라간 도로테아의 눈에 어느 허름한 음식점이 보였다.

낡아 흔들거리는 간판 앞으로 다가가자 싸구려 향신료 냄새가 물씬 풍겼다.

희미하게나마 섞인 주향(酒香)을 맡은 도로테아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떠들썩하던 음식점이 두 아이의 등장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스탠이 조심스레 속삭였다.

“내, 내가 맞았어?”

“응, 맞았어.”

이곳의 날씨도 제법 서늘하긴 하지만, 한대 기후에 속했던 히사르 요새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1년 사계절 내내 눈 덮힌 산맥과 맞닿아 있는 히사르 요새는 몹시 혹독한 날씨 탓에 독한 술로 몸을 데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독한 럼이나 보드카 따위를 음식에 넣는 것은 요새의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었을 터.

“어린아이?”

의아한 듯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가 둘을 내려다보았다.

앞에 선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낄 만한 체격이었지만, 도로테아는 겁을 먹기는커녕 고개를 번쩍 들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러자 도로테아를 보는 남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어디서 온 아이들이냐?”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이내 마주했던 시선을 거둔 도로테아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빙긋 웃으며 제 치마를 들어 올려 마치 귀족 영애인 양 부드럽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곳, 카메르 요새 병사들의 훈련을 맡은 우드 데버 경의 딸 사라 데버입니다.”

“…….”

우드 데버? 훈련을 맡아?

수군대던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떨떠름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 대단하신 분의 딸이 이곳엔 무슨 일이냐? 아이가 올 만한 곳이 아닐 텐데.”

“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활짝 웃으며 노래하듯 영롱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한 소녀의 입에서 거침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히사르 요새에서 패퇴하고 이곳까지 흘러든 패잔병들의 상태가 몹시 유감스러우시다는군요. 존경하옵는 변경백 아래의 병사들과 요새의 주민들이 이토록 오합지졸일 줄은 몰랐다면서요.”

“…….”

“그리하여 해이한 기강을 바로잡고자 하시는 바, 여러분께 곱게 충고를 하러 왔답니다.”

소녀의 말이 끝나자 긴 침묵이 북적이던 음식점에 내려앉았다.

다들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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