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우드는 불편한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는 옛 수하들을 외면했다.
저들이 한때 자신을 마치 아버지처럼 떠받들던 때도 있었지만, 그건 이미 옛일이었다.
누이의 원수를 갚겠다며 군을 벗어나 책임과 의무를 모두 저버렸을 때부터, 그는 일개 탈영병에 불과했다.
“대…….”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나는 이제 네 대장이 아니야.”
단호한 말에 할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맸던 사람을 돌고 돌아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나, 막상 얼굴을 마주하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럽고 치졸한 감정들이 제 안을 가득 메웠다.
도대체 왜 군을 나간 거요. 어째서 우리를 버린 거요.
가진 것 하나 없이 징집되어 끌려 온 병사들에게, 평범한 보병에서 백인장 자리에까지 오른 우드 데버는 희망이자 자부심이었다.
누구나 그가 되고 싶어 했고, 그의 곁에 서고 싶어 했다.
“도대체…….”
울컥해서 다시금 말을 꺼내려는 할린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그레함이었다.
그레함은 감정을 좀처럼 추스르지 못하는 할린이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넋을 놓은 제타와 달리 담담하게 물었다.
“저 아이가 정말 당신의 딸입니까?”
“…….”
우드가 입을 벌렸다 복잡한 표정으로 다물었다.
차마 아니라고도, 맞다고도 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라고 하면 왜 저 아이는 당신을 아빠라고 부르냐는 추궁을 받아야 할 테고, 맞다고 인정하기에는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거부감을 이겨 내야 하니까.
그런 우드의 반응을 긍정으로 해석한 제타가 허탈한 듯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그동안 달콤한 소꿉놀이에 빠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희는…….”
달콤한 소꿉놀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피맺힌 원한을 갚기 위해 군을 나갔다는 말도, 사정이 생겨 그 과정에서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말하든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테니까.
“그나마 다행이오.”
그레함의 뜬금없는 말에 우드가 눈을 끔뻑였다.
옛 수하는 결박되어 있는 탈영병들을 향해 눈길을 주며 말을 이었다.
“탈영병들을 추적하고 잡아내는 동안 수도 없이 목격했소. 굶주린 자들이 약자들을 어떻게 유린하고 망가뜨리는지. 군이라는 미명하에 일깨워진 잔혹성이 일반 백성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미쳐 날뛰는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 하나 깨끗이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의 원한과 피 끓는 고통만이 남았다.
어디 하나 멀쩡하게 남겨 두는 법이 없고, 무엇 하나 조심스레 빌려 쓰는 법이 없었다.
오래도록 그런 몰골들을 봐 오니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똑같은 꼴을 하고 있을 것이라면 차라리 내 눈에 보이지 마라.
진작 죽어 버렸다 해도 좋으니 괴물이 되어 내 검끝에 서지만 말아 달라고.
“설마 이렇게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차라리 잘된 거요.”
행복을 찾아 떠난 것이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저 아이가 당신이 찾아낸 행복의 결실이군.”
흘끗 도로테아를 보며 담담하게 건넨 그레함의 말에 우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행복의 결실은 무슨.
생지옥의 수문장이겠지.
저토록 진실된 마음으로 행복을 빌어 주는 이에게 쓸데없는 거짓말을 이어 나가야 하는 우드의 가슴 한편이 따끔거렸다.
“그, 나는…….”
결국 참다못해 무거운 입술을 연 순간이었다.
“아빠.”
불시에 날아든 앳된 목소리에,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우드 데버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려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곁으로 다가온 도로테아가 생긋 웃으며 나직이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활처럼 휘어져 웃음 짓고 있는 눈과는 달리 단단하게 당겨진 입매가 알려 주고 있었다.
‘이제 와 양심의 가책 따위를 운운하며 일을 망치려 들었다가는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그녀의 보복이 결코 말뿐일 리 없음을 아는 우드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드의 입을 틀어막는 데에 성공한 도로테아는 고개를 돌려 찬찬히 세 남자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미처 몰라 뵈었어요. 설마 우리 아빠와 같이 일하셨던 동료분들일 줄이야.”
“음…… 나도 설마 대…… 아니, 그러니까 우드 님의 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아직 온전히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듯 할린이 횡설수설 답했다. 곁에 있던 제타는 한결 차분한 얼굴로 도로테아를 향해 시선을 던졌지만 눈에 담긴 의아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소녀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음, 아빠라고는 하지만, 친아빠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를 거둬 준 사람이니 아빠라고 부르는 거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던 우드가 도로테아를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언제 그런 설정이 생겼어?’
보나마나 뒷일은 신경도 안 쓰고 멋대로 주워 담는 말이 분명했다.
도로테아는 몹시도 불손하고 불만 가득한 권속의 시선을 묵살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래전, 막 군을 나왔을 당시에 아빠는 죽은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던 와중 노모와 여동생이 끔찍한 흉수에게 살해당했음을 알게 되었죠.”
“흉수라고?”
“근방에 소문이 자자한 악독한 범죄자였어요. 오죽하면 영주가 직접 현상금을 걸고 수배령을 내렸을 정도였죠. 시신을 수습한 직후, 바로 그 흉수를 쫓아 죽인 다음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발했고요.”
교묘하게도 진실과 거짓을 섞는 소녀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말을 듣던 이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저 단순한 탈영이 아니었구나!’
‘악명 높은 흉수에게 가족들이 모두 도륙당하다니.’
재회의 순간 실망으로 가득했던 제타의 시선에 다른 감정이 담겼다.
잠시 우드를 바라보던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다면, 죄를 고발한 뒤에는……?”
“다행히 영주께서 그 공을 높이 사신 덕에, 군대에서 아빠의 복무 기록을 빼내고 정식으로 기사의 작위를 내려 주셨어요.”
그 영주가 하이클레어 후작이냐.
평생을 법 없이도 살 것 같던 꼿꼿한 양반이, 고작해야 외손녀에게 원하는 기사 하나 붙여 주자고 온갖 사바사바(?)를 거쳤다는 사실에 우드의 눈이 흐려졌다.
‘그러고 보니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신분 세탁을 하려면 어느 정도 이력을 만들어 냈어야 했겠지.
설마하니 이런 데에 쓰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 그럼 대장의 흔적을 유독 찾기 어려웠던 것도, 공을 세워 아예 신분이 올랐기 때문이구나?!”
“네! 그리고 저는 길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줍는 게 취미인 아빠가 주워 준 귀여운 첫째 딸이에요.”
“잠깐만.”
우드가 재빠르게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불길한 기분이 송골송골 올라왔다.
왜 첫째 딸이야.
그리고 길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줍는 게 취미라는 건 또 무슨 말이고?
도로테아를 1, 2년 봐 온 것이 아니니, 그녀가 무언가 사고를 치기 전에 밑밥을 깔아 두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일 리 없으니 이건 분명……
마주한 도로테아의 눈이 활처럼 곱게 휘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빠. 얘 좀 봐요.”
꾸벅꾸벅 졸고 있던 스탠의 눈동자가 어느새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딱 줍고 싶을 만한 눈을 하고 있지 않나요?”
사연으로만 보자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아이인데.
환하게 웃는 도로테아가 무언의 압박을 넣었다.
저 시선이 말하는 바는 몹시도 명확했다.
줍겠다고 말해.
“응, 아빠?”
소녀의 은근한 목소리가 그에게 그렇게 종용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사연이 있으셨구나.’ 되뇌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옛 수하들이 있고, 바로 눈앞에는 주워질 수 있을까 희망에 가득 찬 두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소년이 있었다.
인생이라는 건 대체 뭘까.
기껏 불리자마자 미친 듯 말을 타고 달려 겨우 도착한 곳에서 뜬금없이 애를 입양하다니.
“넌 정말이지…….”
몹쓸 계집이다.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치 악독해.
우드 데버의 우여곡절 깊은 인생사에서, 오늘처럼 간절히 울고 싶은 날은 없었다.
* * *
마을에서 일어났던 그간의 정황들이 모두 드러났으니 이제 일의 마무리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레함과 제타, 할린에게는 민간인들을 수사하고 죄를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죄를 지은 이들을 놓아줄 수도 없었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영지에서 일어난 일이니, 이곳의 영주에게 넘기고 폐하께 보고해야겠지.”
담담한 우드의 말에 제타가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소녀의 해명이 있긴 했지만, 그녀의 말들 중 과장도 섞여 있으리라 짐작했건만.
태연하게 ‘황제’에게 직접 보고를 올릴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우드를 보니 도로테아의 말이 꼭 과장되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가 군에서 제아무리 공을 세웠어도, 준기사 대우를 받는 백인장을 넘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우드를 보라.
고위 귀족에게 ‘정식 작위’를 인정받은 기사인 동시에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제타의 눈에 들어찬 어렴풋한 동경을 느낀 우드가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나직이 제 주인을 향해 속삭였다.
“이제 후작가로 돌아갈 생각이냐?”
“이 꼴을 하고?”
되묻는 도로테아의 눈이 사뭇 냉랭한 빛을 띠었다.
목소리에 섞여든 미미한 분노를 읽어 낸 우드가 침묵했다.
‘아무래도 저 모습을 하고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것은 본인의 희망 사항이 아니었던 모양이로군.’
하기야 아무런 준비도, 도울 사람도 곁에 두지 않고 맨몸으로 사라지는 것은 그녀답지 않았지.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도대체 어쩌다 꼴이 그렇게 됐지?”
“말을 하려면 길어. 중요한 건 당분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 거라는 사실이지.”
당분간이라.
예상했던 답이었지만 듣고 나니 더욱 착잡했다.
우드의 시선이 그녀의 목에서 찰랑거리는 십자가 목걸이로 향했다.
아닌 척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려 애쓰는 스탠을 흘끗 바라본 도로테아가 입술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는 그녀의 눈짓에 고개를 끄덕인 우드가 소년을 향해 다가갔다.
멍이 들어 부풀어 오른 뺨과, 왜소한 팔다리.
발길질에 흙투성이가 된 낡은 옷을 걸친 추레한 소년의 어깨 위로 두터운 담요가 얹어졌다.
“옷은 날이 밝고 나면 상점이 있는 곳까지 가서 사 주마. 오늘은 찜찜하더라도 그걸 덮고 자는 것이 좋겠다.”
“꼭 아들이 아니어도 돼요.”
우드의 말을 듣고 있던 소년이 불쑥 말했다.
도로테아를 바라보는 스탠의 눈빛은 퍽 간절했다.
바로 좀 전에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했는지, 같은 처지였던 이들이 이 마을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듣고서도 놀라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소녀에게로 향해 있어 다른 것들은 들어오지도 않는 눈치였다.
“허드렛일을 하며 따라다니게만 해 주셔도 괜찮아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게요.”
고개를 조아리며 말하는 스탠을 본 우드가 한숨을 삼켰다.
혹여라도 거절당할까 싶어 벌벌 떨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 소년이 이제껏 세상으로부터 겪어 온 대우를 짐작케 했다.
담요를 꼭꼭 여며 준 우드가 답했다.
“허드렛일을 도맡을 필요는 없다. 작은 심부름쯤이야 부탁할지 모르겠다만. 이미 너를 데려가기로 결정했으니 그렇게 할 게야.”
애초에 도로테아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그가 반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스탠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드를 바라봤다.
“다만, 너를 양자로 들이는 것은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구나.”
“그건…….”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으니까. 자칫하다가는 네가 더 좋은 가족을 만날 기회를 잃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우드의 말에 스탠이 눈을 끔뻑였다.
도대체 이 아저씨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좋은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니? 더 좋은 가족을 만날 기회를 잃게 만든다니?
난생처음 받아 보는 ‘인간다운 대접’에 소년이 머뭇거리자 거친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서 자거라. 내일 날이 밝으면 또 움직여야 할 테니.”
그 손길은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몹시 따스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일어나자마자 영주성으로 향했다.
우드가 건넨 통행증과 하이클레어 후작의 이름으로 내려진 협조문 덕일까.
이곳 영지를 다스리는 엘포드 자작은 식솔들을 모두 거느리고서 성 앞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제가 미처 살피지 못한 영지 내의 일을 경께서 살펴 준 것은 감사한 일이나, 미리 연통을 넣어 주셨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타 가문의 기사가 자신의 영지를 휘젓고 다니는 것으로 모자라, 영주가 모르는 영지 내의 범죄까지 들추어낸 것은 그의 입장에서 상당히 불쾌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니 항의 정도야 응당 받을 줄 알고 있었으나…….
‘태도가 묘하군.’
어쩐 일인지 불쾌감보다도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통행증에 박혀 있는 금빛 문양 때문일까.
우드는 짜증스런 얼굴로 제게 통행증을 던져 주던 콜린이 떠올랐다.
“지니고 있으면 웬만한 귀족 가문들에서는 대우받을 수 있을 게다. 2황자 전하께서 신경 써서 내려 주신 물건이니, 천지분간을 못하고 날뛰지만 말라 전해. 자칫하면 그분까지 엮이고 말 테니.”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한밤중 저택을 떠나려는 우드의 뒤로 저택의 식구들이 하나둘 따랐다.
“테아를 보거든 너무 다그치지 마시고 그저 무사히 오라 전해 주세요.”
“입이 짧은 아이가 밖에서 잘 먹고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혹시 모르니 여비를 넉넉히 넣었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들에게 미리 연락을 해 두었으니, 혹시 주변을 지나친다면 꼭 들르도록 하셔요.”
신신당부를 하던 그들 모두 내심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테아가 어딜 갔든 간에,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은 ‘그래야 할 만한’이유가 있다는 것을.
손을 꼭 잡아 가며 당부하는 후작 부인의 배웅을 마지막으로 길에 오르는 그의 등 뒤에 꽂힌, 아무런 염려 말라던 필립의 말은 이런 의미였던가.
‘하여간 도로테아의 일만 되면 철두철미해지는 사람들이로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우드를 보는 일행의 반응은 달랐다.
“정말 쳐다도 볼 수 없는 분이 되셨군요.”
“영주가 직접 마중을 나오다니. 대장, 진짜로 출세했구만.”
“와…….”
입을 쩍 벌린 이들의 시선을 모른 척한 우드가 도로테아를 품에 안은 채 무뚝뚝하게 말했다.
“함께 온 죄인들 중 탈영병은 군에서 데려갈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폐하께 보고서와 함께 보내어 그 죄를 상세히 아뢸 사람들입니다. 번거롭겠지만 죄수를 호송할 준비를 마칠 때까지만 신세를 졌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급히 마련하느라 누추하긴 해도, 그럭저럭 머무를 곳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우선 씻고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황급히 말하는 엘포드 자작의 곁에서 그의 딸로 보이는 자작 영애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냈다.
무언가 귀찮은 일이 생기리라 예감한 우드는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제 아이들과 저는 같은 방을 쓰겠습니다.”
그의 곁에 딱 달라붙은 도로테아가 생글거렸다.
“아빠도 참.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우드는 초점 없는 눈을 하고서, 제게 딱 달라붙은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염원은 하나뿐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돌아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