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스탠! 스탠, 이 자식 어디 있냐!”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소년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그거 먹고 있어. 난 나갔다 와야 하니까. 금방 가요!”
쾅,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바라보던 도로테아는 소년이 가져다준 멀건 국을 내려다보다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구체적인 조건을 요구할 것을.
이 어린 육신에,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에 떨어져, 주어진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멀건 국이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지나치게 희생적이야.”
천천히 고개를 들자 품에서 튀어나온 피피가 그녀를 향해 요란하게 찍찍거렸다.
어차피 콜린은 제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
지금쯤 가문 사람들을 적절히 수습하며 욕을 한바가지 하고 있을 테지.
“흠…….”
벌써부터 돌아갈 걱정이 밀려들었다.
건강도 좋지 않은데 울면서 맨발로 달려 나올 할머니, 떽떽거리면서 잔소리할 데인, 통곡하면서 주변의 기물들을 날려 버릴 에이든, 웃는 얼굴로 자신을 갈궈 댈 필립, 한숨을 푹푹 쉬면서 자신을 감시할 에드윈, 서늘한 눈으로 볼 펠릭스나…….
“숙모님들이 화나면 무서운데.”
도로테아가 미간을 찡그리자, 어느새 나타난 리리가 까르르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쳤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서 아예 봉문(封門)이나 해 버려?”
이대로 눈과 귀를 틀어막고, 그 어떤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 몇 몇 정도는 지킬 수 있었다.
‘다만 그리 가만히 들어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이들이 아니니까.’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인연들은, 옳고 그름에 따라 기꺼이 죽을 자리를 찾아갈 사람들이었다.
‘역시 그 망할 놈의 신을 찾아 족치는 수밖에 없나.’
저를 대리할 존재들의 뒤에 숨어 스스로를 감춘 채 이름도 없이 어둠을 흩뿌리는 반푼이 신을, 대체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한숨을 삼키던 순간, 누군가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자식이 하다하다 어린 계집애를 주워 와?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또 군식구를 늘인다고?”
말 속에 언급되는 군식구란 아마도 자신일 터.
도로테아는 거칠게 문을 열며 등장한 낯선 중년의 남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도로테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남자가 못마땅한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뭐야. 써먹지도 못할 어린 계집애잖아?”
“써먹긴 뭘 써먹어요. 스탠에게 들어 보니까 아예 정신 줄이 나간 애래요.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으니 데려왔다는데, 그냥 그놈 마음대로 하게 둬요.”
“아니, 이 계집애가 있으니까 그놈이 안 부리던 게으름을 피우잖아!”
남자는 무례하게도 입에서 침을 튀겨 가며 도로테아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과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황도의 그 어떤 용맹한 귀족 자제들도 하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하다못해 황손조차도.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도로테아를 꺼림칙하게 바라보던 중년의 부인이 남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냥 냅두자니까요. 그래도 이 돈에 그렇게 부릴 수 있는 애가 흔해요? 저 애가 여기 있으면 스탠도 도망갈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할 거 아니에요?”
힐끗 도로테아를 본 부인의 목소리가 더욱 은근해졌다.
“그리고 아직은 어리지만, 좀 더 크면 또 모를 일이잖아요.”
그녀의 말에 헛기침한 남자가 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어딘가에 눌린 듯 형체를 알 수 없게 뭉개진 거무튀튀한 물체가 그녀의 발치에 던져졌다.
“이거나 먹어 둬라.”
가만히 바라보니 무언가를 말린 것 같았다.
딱딱해 보이는 것을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고개를 들었다.
“육즙이 너무 없잖아요. 난 부드럽고 적당히 익힌 양고기가 좋아요.”
“…….”
“…….”
그녀의 품에 있던 피피가 재빠르게 달려 나와 킁킁, 냄새를 맡아 보더니 이내 패대기쳤다. 고약한 냄새라는 듯 연신 코를 비벼 대던 다람쥐는 다시 도로테아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남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씨근덕거렸다.
“미친 계집이로구나. 모처럼 챙겨 줬더니…… 됐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던 부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간 남자의 뒤를 따랐다.
쿵, 닫힌 문 너머로 요란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글쎄. 제정신이 아닌 건 저 쪽인 것 같은데.”
자기도 먹지 않을 것을 왜 남에게 적선하듯 건네는 걸까.
그녀는 좀 전에 제가 부어 버렸던 멀건 국이 담겨 있던 그릇을 바라봤다.
국에서는 남자가 던져 준 물건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와 비슷한 향이 났다.
“소리를 모아 오렴.”
나지막한 말에 높은 창으로 빠져나간 리리가 주변의 소리를 바람에 실어 왔다.
“이 게으른 자식아, 제대로 하지 못해?”
“빨리 움직여야 할 거 아냐. 왜 이렇게 비실대는 거야?”
“계집애 하나 붙여 놨다고 벌써부터 요령 부리는 거냐?”
사람들의 위협이 누군가를 향해 폭격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쉬엄쉬엄하라 그래. 저러다 골병들면 써먹지도 못 하잖나.”
“갈 곳도 없는 애새끼에게 잘 자리도 내줘, 먹을 것도 주는데 이것도 못 하면 어쩌라고?”
소년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던 남자는 혹여 손해를 볼세라 걱정되는 듯 부루퉁한 어조로 대꾸했다.
도로테아는 가만히 지푸라기가 깔린 아래를 내려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둔탁한 주먹 소리와 씨근덕대는 소리가 열린 귀로 스며들었다.
“네가 쓸데도 없는 계집을 데려온 탓에 괜한 군식구만 늘었잖냐.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도움이라고는 못 될망정!”
귀를 기울였지만 말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일에 열중한 듯 흙을 파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귀를 채웠다.
소년은 울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 왔다는 듯 가빠 오는 숨을 애써 누르고서 일에 열중할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손에 거무튀튀한 육포를 몇 조각 쥐고서 꽤 신이 난 얼굴을 하며 도로테아가 머무르는 창고로 돌아왔다.
* * *
“뭐야. 국을 다 먹었네?”
스탠의 뺨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도로테아는 빈 그릇을 확인하고 씩 웃어 보이는 스탠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소년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잘했어. 먹어야 살지. 맛은 좀 없겠지만, 먹다 보면 익숙해질걸?”
“이런 것에 익숙해질 생각은 없는걸.”
종알대는 도로테아를 철없는 어린아이 보듯 보던 스탠이 제 손에 쥐고 있던 육포를 건넸다.
어제오늘 내내 도로테아를 돌보겠다고 조금 늦게 나갔더니 곧장 불호령이 떨어졌다.
일을 줄일 생각이면 당연히 먹을 것도 줄이라는 마을 이장의 말에 싹싹 빌고 오던 참이었다.
“그럼 조금만 참는 걸로 해. 조금만 있으면 더 맛있는 걸 먹여 줄게. 곧 대도시에서 상인이 올 수도 있을 테니까.”
스탠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그들에게서 뭔가를 사기란 어려울 테지만, 비위를 잘 맞추면 용병들이 먹다 남긴 안주 정도는 받아 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약속을 건네는 소년의 얼굴이 씁쓰름해지자 도로테아는 제 손에 쥐여진 육포를 보다 물었다.
“너는?”
“나는 배부르게 먹고 왔어.”
활짝 웃는 소년의 얼굴이 어딘가 낯설었다.
오래전 야윈 제 뺨을 쓰다듬으며 어쩔 줄 몰라 하던 벤의 얼굴이 떠올랐다.
본인도 열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덜덜 떨고 있으면서도, 도로테아의 눈꺼풀 위에 난 작은 생채기 하나에 어쩔 줄 모르던 아버지가.
가만히 육포를 내려다보던 도로테아는 제 품속에 잠들어 있던 다람쥐를 집어 들었다.
“뭐야? 다람쥐?”
소녀의 손이 다람쥐를 거꾸로 잡아 들고 털기 시작하자, 통통한 털과 꼬리에 숨겨 두었던 나무 열매가 토독 토독 떨어졌다.
적어도 거뭇한 육포보다는 훨씬 더 먹음직스러웠고, 상큼한 향이 침을 돋웠다.
“먹어.”
나무 열매를 받아 든 스탠이 눈을 끔뻑였다.
도로테아는 식량을 잃고 찡찡대는 피피에게 육포를 물려 주었다.
거부할 틈도 없이 구릿한 냄새를 풍기는 육포를 입안에 밀어 넣은 피피가 한쪽 구석에서 요란하게 토하기 시작했다.
“유, 육포를 먹어서 그런가? 어디 아픈 거 아냐?”
“괜찮아. 그냥 밥투정하는 거야.”
스탠은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머뭇거리다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태어나서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는 소년에게 삶은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받는 것은 고작해야 육포 몇 조각에 멀건 국 한 그릇.
“선물이야?”
“응.”
“처음 받아 봐.”
받은 나무 열매 몇 개를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으려는 소년을 본 도로테아는, 고사리 같은 손을 들어 재빠르게 소년의 입에 열매를 집어넣었다.
저도 모르게 목으로 꿀꺽 삼킨 스탠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무슨 짓이야!”
“먹으라고 준 거야.”
애초에 그건 ‘선물’이라기에는 너무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다.
제 손바닥도 채우지 못하는 작은 열매에 글썽이던 스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인심 썼다는 듯 덧붙였다.
“내일도 줄게.”
물론 그 열매를 찾으러 사방팔방 열심히 돌아다녀야 할 피피는 도로테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털을 바짝 세웠지만 딱히 위협적이진 않았다.
손가락으로 코를 비빈 스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오늘 네가 가지고 온 거, 내일도 모두 내게 가져와. 우리 교환하자.”
먹지도 않은 육포를 가져오라는데도, 심지어 그것을 고작해야 나무 열매와 바꾸자는 데도 스탠은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테아가 손을 뻗어 그의 시퍼런 뺨을 매만지자 스탠이 멋쩍은 듯 말했다.
“괜찮아. 오늘 내가 좀 둔하게 굴었거든. 평소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힘이 나지 않더라고.”
“무슨 일을 하는데?”
“응? 그야…….”
자연스레 답을 하려던 소년의 입이 꾹 닫혔다.
어딘가 곤란한 얼굴을 한 그가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뭐 일이 일이지.”
“…….”
소년의 나이는 혼이 가장 파릇파릇하게 생명력으로 넘칠 시기였다.
제아무리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그의 혼은 ‘비정상적’으로 야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생기를 빼앗긴 사람처럼.
“…….”
말없이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녀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스탠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보호자가 없는걸. 제대로 된 신분증도 없고. 영지민으로 인정받고 싶으면 주민들의 보증과 돈이 필요한데, 둘 다 가지지 못했으니까.”
담담하게 말하는 스탠의 얼굴에 씁쓸한 기색이 어렸다.
“그나마 먹고살게끔 일을 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
“너는 어디서 왔길래 이런 당연한 사실도 몰라?”
의아한 듯 묻던 스탠이 이내 홀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애니까.”
영명하다, 영악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재가 틀림없다 등의 찬사만 들어온 도로테아에게는 몹시 신선한 평가였다.
“자, 오늘은 좀 더 푹신한 짚을 얻어 왔어. 이 위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진 않을 거야.”
“왜 내게 이렇게 잘해 줘?”
불쑥 꺼낸 물음에 스탠은 눈을 끔뻑이다 새우처럼 몸을 말아 눕고선 중얼거렸다.
“여긴…… 대도시가 아니라서 외부 사람이 잘 들어오지 않아. 난 상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도중에 잘못되어서 중간에 버림받게 낙오된 거야. 마을 아이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고.”
“…….”
“나처럼 보호해 줄 어른도, 함께 밥 먹어 줄 사람도, 챙겨 주는 사람도 없는 아이는 네가 처음이야.”
스탠은 애써 울음을 참는 듯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어쩌면, 널 가족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소년의 조심스러운 말에 도로테아가 물었다.
“그게 네 바람이야?”
“아마, 도?”
스탠의 하늘빛 눈동자에 가득 비친 외로움을 도로테아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된 하루에 지친 소년은 금세 잠이 들었다.
새근거리는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던 도로테아는, 창고 어느 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새까만 그림자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너도 이 아이와 같구나.”
일렁이는 그림자가 무언가 형체를 띠려다 이내 푸스스, 무너져 내렸다.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진 않은데.”
지독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니까.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무작정 뒤집어엎는다 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 기다려야겠지.
신이 그녀를 굳이 이곳에서 눈뜨도록 안배한 진정한 이유가 나타날 때까지는.
* * *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욕설과 함께 소년을 찾는 소리에 스탠은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후다닥 달려 나갔다.
홀로 남은 도로테아는 제게 불만을 토로하는 피피를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넌 어차피 그리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잖아.”
찌이이-!
매일 아침마다 제인이 정성껏 준비해 둔 견과류를 먹고 통통해진 신기(神器)가 모욕이라도 받은 것처럼 부르르 떨며 털을 곤두세웠다.
짜증이 난 듯 앞발을 구르는 다람쥐를 향해 한마디 더 보태려던 순간이었다.
가볍고 자그마한 발소리들이 여럿 들리는가 싶더니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낯선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여기 있다! 진짜 여자애야!”
“와! 찾았다!”
스탠이 입고 있던 누더기에 비하면 ‘의복’이라 불러 줄 만한 옷을 걸친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이밀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꽤 어여뻤다.
“얘도 고아야?”
“그럼 일해?”
이제 겨우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조잘댔다. 아마도 마을 어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고스란히 답습한 듯했다.
“우리한테 잘 보여야 해! 그래야 먹을 것도 주잖아!”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으스대며 말하는 여자아이는 양옆으로 머리를 땋아 꽤 앙증맞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질 좋은 의복을 갖춰 입지는 않았어도, 분명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모습이었다.
“듣고 있어?”
가장 먼저 들어온 남자아이가 자신을 무시하는 도로테아에게 부아가 치밀었는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도로테아는 재빠르게 그의 손을 뿌리친 채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피, 필요 없다고? 거짓말.”
“너희 둘 다 우리에게서 음식을 받아먹잖아. 엄마는 매일같이 말린 고기를 떼어다 훈제해서 너희에게 준단 말이야.”
“맞아. 우리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으면서!”
“우리 아빠도 먹지 말랬어. 하나만 달랬다가 잔뜩 혼만 나고.”
울상이 된 아이들의 볼이 시샘과 짜증으로 부풀어 올랐다.
“거지 새끼!”
“너는 왜 일도 안 하면서 먹을 것을 얻어?”
심술궂은 말들이 쏟아졌다.
고사리 같은 손과 조막만 한 입을 가진 아이들의 말은 매서웠다.
도로테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반박했다.
“너희도 일하지 않으면서 먹고 놀잖아.”
“우리는 다르지!”
“맞아. 우리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벽을 퍽퍽 걷어차거나, 잠을 잔 흔적이 있는 곳을 일부러 헤집거나, 또는 기껏 모아 둔 구멍 난 천이나 누더기들을 흙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했다.
도로테아는 딱히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모습과는 달리 어떻게 행동해야 상대가 가장 괴롭고 상처받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참 우스운 일이 아닌가.
‘쓸모없어 보이는 어린 계집’인 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손을 내민 것도 인간일진대, 그런 나를 찾아와 상처를 입히고자 온 힘을 다 쏟는 것 또한 인간이라.
도로테아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흥이 식은 아이가 샐쭉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어느 순간 잠잠해진 아이들을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생긋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특별하게 스탠에게만 주는 그 육포, 먹고 싶댔지?”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묘하게도 상대가 귀를 기울이게끔 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도로테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나지막해졌다.
“내게 스탠이 몰래 주고 간 육포가 남아 있거든. 아직 한 입도 먹지 않았어.”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입꼬리를 올린 도로테아가 품에서 꺼낸 육포를 천천히 내밀었다.
“먹어 보고 싶은 사람?”
아이들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서렸다.
본디 탐내지 말라고 하는 것을 탐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아니었던가.
특히 누군가가 ‘몰래’ ‘특별히’ 건넨 육포란 아이들에게는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일 테지.
매일 아침 그들의 어미가 정성껏 끓여 놓은 스프보다도 더.
고사리 같은 손이, 막 자그마한 조각에 닿을 듯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멜! 레인!”
새된 목소리가 누추한 거처를 뒤흔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다가온 여인이 육포 조각을 내민 도로테아의 손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육포 조각은 바닥에 내팽개쳐졌으며, 도로테아의 손등은 발갛게 부어올랐다.
“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여인이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어떻게 저걸 이 아이들에게 줄 생각을!”
“주면 안 되나요?”
은은한 미소를 띤 도로테아가 물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스탠에게도 매일같이 주시잖아요. 정성껏 말려서요.”
“그건, 그건 너희가 먹는 음식이야. 이 아이들이 먹는 건 달라.”
“왜요?”
도로테아의 눈매가 활처럼 휘어졌다.
환한 웃음을 머금은 소녀가 말했다.
“스탠은 이걸 먹으면 힘이 난대요. 평소보다 훨씬 피곤하지도 않고, 힘도 세진다던걸요.”
“…….”
“그러니 아주 좋은 거잖아요? 왜 스탠에게만 먹여요?”
여상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도로테아의 웃음에 여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상하게도 저 검은 눈을 마주한 순간 제 속내가 모조리 들통난 기분이었다.
아이의 손에 들린 육포의 향이 오늘따라 코를 찔렀다.
여인의 목에서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기묘하리만큼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새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자, 거미줄에 걸린 듯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