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이리 가까이 와 주세요.”
힘없는 목소리에 도로테아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허공을 향하고 있는 초점이 흐릿했다.
육신에 머무르던 신은 비록 숙주의 생기와 혼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동시에 육신을 움직일 수 있게끔 힘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기생하는 신과 숙주의 관계는 운명 공동체와 다름없다.
그 공동체의 일부를 뚝 하고 떼어 냈으니 육신이 쇠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력이나 청력 또한.
도로테아는 플로렌스가 내민 덜덜 떨리는 손을 말없이 잡아 주었다.
손에 닿는 온기가 느껴진 듯, 그녀는 한결 안정된 얼굴로 말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도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한 적이 없었지요.”
앙상한 가지 같은 손목을 내려다보던 도로테아가 입을 뗐다.
“어쩌면 원망을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동의조차 구하지 않고서 멋대로 그대의 운명을 바꾸었으니.”
플로렌스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에요. 머리로는 알고 있었음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것뿐이지요.”
“…….”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멈춰 세울 수가 없었어요. 다른 길을 가려 하다가도 오라버니를 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그 방만함이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끔 만들었다.
결국 모든 일들을 키운 것은 그녀인데도, 뜻밖에 역풍을 맞게 된 것은 전(前) 4황자, 헨드리였다.
사랑하는 이로 하여금 가지고 있던 신분조차 버리게 만들었다는 죄악감에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선택의 기회가 있었더라도 제 손으로는 선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라버니도, 사랑하는 남편도.
그리고 종내에는 셋 다 망가졌겠지.
“오라버니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누구보다 든든하고 좋은 사람이었죠. 저를 지켜 주고 챙겨 줬어요.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남았어요.”
플로렌스의 말에 도로테아가 고개를 돌렸다.
창 너머로 비치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 두 마리가 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오랜 과거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시절의 우애 좋은 남매.
여동생을 지키고 싶어 했던 오빠와, 그런 오빠를 맹목적으로 따랐던 동생.
서로에게 서로가 전부였던 좁은 세계는 남매가 자라나면서 점차 깨지기 마련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오빠가 변하기 시작했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나는 영문을 몰랐어요. 늘 보호받아 왔기 때문에 오빠가 겪는 괴로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거든요.”
부모조차 없는 미천한 신분의 남매가 겪을 일이라는 것이야 뻔했다.
어린 동생을 필사적으로 지킨 오빠는 그녀를 대신해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은 끝에 망가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에는 그가 나를 위해 했던 희생이 미안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과거의 다정했던 모습과, 나를 아끼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아름다웠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부질없는 희망이 미련으로 남았겠지.
과거의 망령 속에 남아, 그가 돌아오기를.
순수하고 맑았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주기를 기다리며.
씁쓸하게 웃고 있는 플로렌스를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대신 선택해 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예요.”
“…….”
“당신의 오라비가 모진 세상을 버티고 버티다 부러져, 망가진 탓에 잘못된 길로 향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죠.”
플로렌스가 맞잡고 있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그렇지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뒤늦게나마 눈치챘을 때, 당신은 무엇이든 했어야 해요.”
오라비의 맑고 순수한 눈동자가 흐려지고 종내에는 욕망으로 번들거리게 되었을 때, 명재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녀에게는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도,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동정해 주는 인간조차 없었다.
세상은 오로지 그녀의 힘을 이용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오라비는 그 선두에 있었다.
그녀의 힘을 탐내고 이용하고 어떻게든 제 것으로 만들려 애썼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적어도 끌려가지 않게끔 ‘끝’을 냈어야 했어요.”
명재신이 그랬듯이.
멍하니 말을 듣고 있던 플로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나는 그랬어야 했어요.”
나직한 순응의 말에 서린 자책이 깊었다.
“아무리 신분을 바꾸고 다른 사람이 되어도, 저는 여전히 그때의 고아 ‘플로라’에서 성장하지 못한 모양이에요. 줄곧 제 오라버니 뒤에 숨어서 웅크려 있기만 했으니까.”
눈물이 조용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그림처럼 소리 없이 우는 그녀를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달라져야겠네요.”
플로렌스가 고개를 들었다.
“하루아침에 가진 신분을 잃었으니 당신의 남편도, 당신도 모두 꽤 고달파지겠죠. 아끼는 마음이 형편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을 테니까.”
어쩌면 저토록 열렬히 당신을 아끼는 저 남편의 마음도 식을 만큼이나 괴로운 일들을 많이 겪게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또 선택의 순간들이 올 거고, 그때는 대신 선택해 주거나 기회를 되돌려 줄 사람을 만나는 기적 같은 건 없을 거니까요.”
눈을 끔뻑거리던 플로렌스가 달싹이던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던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몸을 돌렸다.
“잘 지내요, 플로렌스.”
도로테아는 오래된 과거 속의 남겨 둔 파편 같은 인간을 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드가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멈칫했다.
“가자.”
“…….”
눈을 끔뻑이며 소녀를 바라보던 호위가 천천히 뒤를 따르며 물었다.
“무슨 대화를 했길래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그냥. 생각난 것들이 있어서.”
“무엇이?”
“오래된 옛 생각이 났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무기력하기만 했던 내가.”
쇠약해진 황자비를 보며 병으로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건가.
머리를 긁적인 우드가 서툰 위로를 건넸다.
“그때의 너와는 다르지 않나. 넌 이제 충분히 건강해졌다.”
“응, 알아. 그냥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쩌다 그 순수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망가진 걸까, 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원래의 순수한 모습을 되찾지 못하리라는 절망감과 실망만이 자리했을 뿐.
‘마지막 순간, 죽음을 선택한 내게 뻗었던 손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동생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불쑥 솟았을 뿐.
“괜찮아. 어차피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도로테아가 짤막하게 답했다.
쓸데없이 감상에 빠지는 것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그녀는 지금,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현실을 살아 내고 있으니.
* * *
아름다운 구조를 가진 황금빛 건축물.
제국 그 어디에서도 빛나는 높은 첨탑 아래 자리한, 그 누구보다 고귀한 황제의 거처.
황제는 텅 빈 듯 고요한 후원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없군.”
“좀 더 들이시지요. 후비를 들이시라 첨언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서라. 다들 내게 창창한 제 여식을 들이밀어 어떻게든 치마폭에 싸 보려는 꿍꿍이가 그득하질 않느냐. 젊었을 때에는 내 그들을 모두 휘어잡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를 이용하려 드는 이들, 그의 권위에 빌붙고자 하는 이들을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다 믿었다.
그럴 만한 능력도 의욕도 넘쳐 났지.
“이제는 사람을 그리 대하고 싶지 않음이야.”
황제의 씁쓸한 말에 시종장이 고개를 숙였다.
장성한 황자들은 하나둘 불미스러운 일로 궁을 떠났고, 황녀들 또한 제각기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 일이 있을 때나 겨우 볼 수 있었다.
그 만남에서조차도 가족의 정을 되새기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확인하기 바빴다.
“진정한 우정도, 사랑도, 가족의 애틋한 정도…… 그 무엇 하나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없군.”
그 모든 것들을 본인의 생에서 희생했음에도, 제국이라는 거대한 퍼즐은 완성되기는커녕 곳곳이 훼손되어 손쓰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제는 이 자리가 내게도 버거워졌어.”
“폐하.”
황제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시종장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후작을…… 부를까요?”
“아니, 부르지 말게.”
황제도 아는 사실을 후작이 모를 리 없었다.
비록 이번 일이 후작가에 별 타격 없이 그치긴 했지만, 그것은 오롯하게도 ‘성녀’와 도로테아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을 뿐.
“그와 내가 같은 방향을 보며 서 있던 시절은 이미 끝났지.”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머물렀던 것뿐이야.
이미 오래전에 틀어진 관계였건만.
씁쓸히 읊조린 황제가 몸을 돌려 집무실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그럼 할아버지가 아니라 제가 상대해 드리는 건 어떤가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멀리서 총총 걸어오는 도로테아가 보였다.
옆구리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낡은 체스 판을 끼고서 다가온 소녀가 호기롭게 말을 꺼냈다.
“가문의 창고를 털다가 할아버지께서 종종 사용하셨다는 체스 판을 발견했어요. 폐하께서 하사(下賜)해 주신 것이라기에 흥미가 일어 가져 왔답니다.”
먼지 하나 없이 반들거리는 체스 판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이 묘했다.
도로테아는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후원 한가운데에 돗자리를 깔고 체스 판을 열어 검고 하얀 말들을 꺼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폐하께서는 전체의 그림을 그려 상대를 잡아내는 분이시라던데요.”
“그가…… 나를 그리 말하던가?”
“네, 대신 큰 그림에 집착하시다 보니 의외의 작은 수에 당하시곤 한다고요.”
“감히 황제를 두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네 할아비는 참으로 무엄한 인간이로구나. 허허, 허허허…….”
황제의 입가에 오랜만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 * *
격자무늬가 아로새겨진 목판 위로 검은색 말이 올라섰다.
망설임 없이 하얀색 말을 집어 든 도로테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황제는 힐끔 그녀를 바라보다 다음 말을 쥔 채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성녀의 거취 문제는 다행히도 빠르게 해결되었단다.”
“애초에 저쪽에서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까요.”
프란체스코가 재판에 쓰일 성물을 바꿔치기하지 않았더라면 성국도 순순히 양보하지 않았을지도.
그러나 만인이 보는 앞에서 산산조각 난 성물을 두고 거짓 변명을 할 수는 없었다.
“성배를 바꿔치기한 죄는 벨로크 백작이 지게 되었다. 어차피 죽게 될 목숨, 사형당할 죄명 하나 더해지든 아니든 별 상관없으니까.”
“그렇군요. 폐하께서 만족할 만한 거래를 하셨다니 저 또한 기쁠 따름이에요.”
“재판 직후 모습을 감춘 파비안 벨로크는 네가 데리고 있는 게냐?”
황제의 말에 도로테아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막 황제의 폰(Pawn) 하나를 잡아낸 터였다.
“글쎄요, 그녀를 왜 제게서 찾으세요?”
“언제나 맹랑한 아이로고…….”
혀를 찬 황제가 잡힌 말 대신 새로운 말을 움직였다.
“사형당해야 마땅할 죄수를 데리고 있는 것 또한 중죄다. 게다가 그녀는 사적인 감정으로 너를, 나아가 제국의 위신을 깎아 먹을 수도 있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더냐.”
“그 결과로 모든 것들을 잃었죠. 한순간에 모든 것을요.”
경중을 모르고 날뛰다 빠진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가라앉은 셈이었다.
도로테아는 뻔히 보이는 허수를 들여다보다 그 옆으로 말을 옮겼다.
“그 어떤 죄도 목숨으로 갚을 수 있는 건 없어요. 죽음은 오히려 너무나도 간단한 끝이죠.”
오히려 죄인의 죽음은 그 죄의 대가를 오롯하게 살아남은 피해자 홀로 감당하게 만든다.
도로테아는 그토록 편한 죽음을 선사할 생각이 없었다.
“고작해야 스무 해도 되지 않는 짧은 생이지만, 까다로운 귀족들의 눈에 들어 정점에 자리했던 경험을 갖춘 인재를 찾긴 쉽지 않잖아요.”
“흠…….”
“사람들의 감정을 눈치 빠르게 읽어 내는 것이나, 교묘한 화술로 함정에 빠뜨리는 그런 세련된 기술 같은 것들은 장차 많은 이들과 부딪혀야 할 힐데에게 필요할 거예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뼈 빠지게 죄를 갚도록 일을 시켜야지.
그 훌륭한 기술을 사장시키느니 차라리 목줄 하나를 쥐여 놓고 일을 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도로테아의 말을 듣던 황제가 찜찜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정해진 일이라지만, 내 꼭 다시 한번 물어야겠구나. 정녕 개명은 불가능한 것이냐?”
꼭 그 이름을 고수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황손으로서 역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이름이 힐데가르트 제노사이더라니.
누가 보면 제국에 다시없을 폭군이라도 강림했다고 여길 법한 이름이 아닌가.
못 들은 척 시침을 떼는 도로테아를 보던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자식새끼를 낳아 놓기만 하고 제대로 교육 못 한 내 잘못이로구나.”
고개를 돌려 시침을 떼던 도로테아는 황제가 한숨을 쉬자 슬쩍, 대화의 방향을 돌려 버렸다.
“백작에게 모든 죄를 물으신 것을 보아하니, 공작은 추궁하지 않으실 생각이세요?”
“인재가 없으니까.”
짤막하게 답한 황제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좁힌 채 도로테아의 나이트(Knight)를 잡아냈다.
도로테아는 벌써 제가 가진 말의 절반을 잃은 상황이었다.
거침없이 그녀의 영역을 휘저어 배열을 망가뜨린 그가 힐난하듯 말을 던졌다.
“그중 절반은 네가 날렸단다, 테아.”
“제국을 갉아먹는 버러지들을 인재로 표현하시다니. 폐하께서는 참으로 관대하신 분이시네요.”
“욕심이 있어야 제 것을 지키고, 제 것을 지키고 싶으면 제국을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하기 마련이다. 오롯하게 정의와 신념만으로 국가를 다스릴 수는 없지 않니.”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시면 되잖아요.”
그녀가 조용히 퀸을 집어 들었다.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난번부터 생각한 거지만, 스펜서 백작과 너는 도대체 무슨 사이인 게냐?”
대답 없이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던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그자는 안 돼. 비단 출생의 문제뿐만이 아니야. 그자가 주변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을 보렴. 인간미가 지나칠 정도로 없는 것도 때로는 문제가 된단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가진 힘을 휘두르는 것도 문제지만, 공감과 이해 없는 권력자는 흉포하다. 그런 자가 실권을 잡았다가는 곤란해질 게야.”
“유능하잖아요. 적어도 자기 욕심에 휘둘리다 파멸하는 이들보다는 나아요.”
“그자의 출생을 보아라. 귀족들이 모두 꺼림칙하게 여길 것이다. 핏줄로 보자면 선황과 황태후 사이에서 난 자식이니 적자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호적에는 오르지 않았으니 당당히 그 사실을 드러낼 수조차 없어. ‘적법하게’ 자리를 차지한 적자들의 견제와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게다.”
“신분 정도야 폐하께서 깔끔하게 세탁해 주시면 되죠.”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기던 황제가 힐끗 도로테아의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럴 줄 알았더라면 군을 이탈한 탈영병을 데려와 호위로 삼았을 때 죄를 물을 것을 그랬구나.”
그랬으면 네가 지금처럼 제국의 법을 우습게 보진 않았겠지.
황제의 말에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우드가 새파랗게 질려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도로테아는 옆에 놓여 있는 주스를 태연히 집어 들며 속삭였다.
“쫄지 마. 증거가 없어서 어차피 처벌도 못 하셔.”
“다 들린다, 이놈아.”
기가 막힌다는 듯 바라보던 황제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