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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153화 (153/242)
  • 153화

    공개 재판 날짜가 공개되자 술렁이기 시작한 것은 귀족들이 아니었다.

    이제껏 하이클레어 후작가의 ‘천재 정령사’를 칭송하던 군중들은 하루아침에 ‘이단’이라 고발당한 그녀를 두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니까 그 정령사라는 것 자체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건가?”

    “듣기로는 처녀들을 구해다 악마에게 바치고는 그 대가로 정령사인 척 흉내를 냈다던데.”

    “성국의 열세 번째 사도께서 직접 오셨다며?”

    간혹 사도가 뭐냐고 묻는 무지한 인간들도 있었지만, 마치 죄가 이미 확정된 듯 떠들어 대는 이들에 의해 묻혔다.

    파비안의 생각은 옳았다.

    고발 자체만으로도 도로테아의 이름은 충분히 더렵혀지고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정령사님’이라 부르며 어려워하던 이들이 스스럼없이 도로테아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성국에서 온 사도의 존재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로테아의 죄를 확증 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다.

    군중들에게 도로테아의 죄목이나 상황, 귀족들의 복잡한 절차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제국의 자랑이었던 젊은 천재가 이단으로 고발당했고, 성국이 그 죄를 추궁할 예정이라는 것뿐.

    평소에는 신실한 믿음을 보이지 않던 이들조차 ‘이단’이라는 단어 앞에서 몸서리쳤다.

    “이러나저러나 그 대단한 후작가도 별거 없군.”

    “황제 폐하께서도 근심이 크시겠어. 신임하던 귀족이 그런 더러운 짓거리를…….”

    간혹 이름 높은 귀족의 몰락이 점쳐지는 상황에 흥분한 이들도 있었다.

    주로 귀족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평소 지배당하며 느낀 분노를 꾹꾹 눌러야 했던 평민들이었다.

    결과적으로 ‘도로테아가 어떤 사람인지’ 하는 것보다는, ‘죄인이 된 귀족의 몰락’을 원하는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재판 당일이 되자, 재판이 열릴 무대가 된 극장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군중의 난입과 혐의자의 도주를 막기 위해 성기사들과 근위 기사들은 각각 원형의 극장을 빙 둘러쌌다.

    중무장한 기사들의 살벌한 기세에 군중들은 더욱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은 극장으로 들어서는 대신관 일행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다들 흠뻑 취해 있었다.

    어두운 표정의 황제가 상석에 앉고 나서야 천천히 재판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그 자체만으로도 신의 권위를 대변하는 열세 번째 사도, 제11대 성(聖) 프란체스코.

    수려한 외모의 미남자가 경건한 분위기를 풍기며 손에 ‘진실의 성배’를 쥐고 들어섰다.

    시끌시끌하던 군중들이 뚝 소리를 그쳤다.

    그의 손에 높이 들린 성배가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그 누구도 그 빛이 거짓된 영광이라 여기지 못할 만큼.

    *   *   *

    “재판에 앞서 본 재판을 함께해 주실 특별 재판관을 모시겠습니다.”

    일반 재판정이 아닌 종교 재판정인 터라 황제가 아닌 대신관이 주재를 맡았다.

    특별 법정에 들어선 7명의 재판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건을 직접 조사한 치안대, 고발자와 피고발자의 상황을 살필 보통 법원의 판사들, 제국 황실의 일원인 1황녀, 마지막으로 성물을 가진 사도까지.

    “피고의 혐의를 낭독하겠소.”

    언제 다들 그랬냐는 듯 좌중이 조용해졌다.

    대신관은 제 앞에 서서 미소를 띠고 있는 사도를 보다 양피지로 시선을 내렸다.

    “그녀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증인을, 아이들을 이용해 유인하여, 증인을 특정 장소에 가두고서 ‘이단에 준하는 행위’를 했다고 하오. 증인의 몸에 죄의 낙인을 찍고, 그 낙인이 찍히는 순간부터 증인은 피고로부터 강한 구속력을 느꼈으며…….”

    시시껄렁한 이야기였다.

    “순결한 처녀인 증인의 피와 혼을 수집하여 피고는 ‘정령’이라 부르는 존재들의 힘을 불렸으며 입을 단속하기 위해 저주를 내렸음을…….”

    대신관이 읊는 이야기들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군중들이 술렁였다.

    귀족들은 대개 이야기 그 자체보다도 법정에 선 도로테아와 하이클레어 후작가의 표정이나 태도를 살피는 듯했지만, 주변에 모여든 군중들은 이야기의 잔악무도함에 귀를 기울였다.

    “저런 피도 눈물도 없는 마녀 같으니.”

    “성하께서 직접 사도님을 보내신 이유가 있었어!”

    “세상에, 정말로 그게 모두 다 거짓말이었단 말이야?”

    무지한 이들을 선동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신을 섬기는 마음이 확고할수록 신관에 대한 믿음 또한 확고했다.

    스스로 진위 여부를 가려 본 적이 없는 이들일수록 이런 판단을 남에게, 특히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에 맡겼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재판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닌 자는 열세 번째 사도, 프란체스코였다.

    “증인은 앞으로 나와 맹세하시오.”

    창백한 안색의 파비안 벨로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순백의 드레스와 실크로 짠 베일을 쓴 그녀의 걸음은 느릿느릿했다.

    한때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아름답고 화려한 미인의 청초한 자태에 군중들이 저마다 침을 삼켰다.

    고귀한 귀족 영애를 이토록 가까이서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겉모습에 현혹된 이들이 파비안을 향해 기꺼이 찬사를 보냈다.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이단 행위를 고발한 아름다운 여인.

    서늘한 색감의 남색 공단 드레스를 입고 있는 도로테아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비틀거리며 제단 앞에 선 파비안이 연이어 마른기침을 뱉어 냈다.

    “저, 파비안 벨로크는 진실의 성배 아래 맹세합니다. 저는 오로지 제가 겪고 본 것에 대해서만 입에 담을 것이며, 끔찍한 이단의 행위에 맞서 정의를 찾고자 이 자리에 섰음을 맹세합니다.”

    잠긴 목소리와 달리 매끄러운 말을 들으며 도로테아는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대신관은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지금처럼 많은 눈들이 자리한 가운데, 하물며 사도 앞에서 도로테아의 손을 들어 줄 리 없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개인적인 호감과 친분보다는 신의 권위를 드높이는 일일 테니까.

    ‘그것만큼은 사도에게도 마찬가지지.’

    이것은 어떻게 거짓을 거짓으로 증명하느냐의 문제.

    도로테아의 눈이 신의 성물 중 하나라는 ‘진실의 성배’에 닿았다.

    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황금의 성배는 놀랍게도 가진 빛에 비해 응축된 ‘힘’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자리에 앉아 재판을 방청하는 콜린의 불쾌한 얼굴만 보아도 확실했다.

    정말 신의 물건이라면, 제아무리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다고는 하나 죽은 자의 혼을 인도하는 신의 사자(使者)를 보고도 무반응일 까닭이 없었다.

    “도로테아 하이클레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호수처럼 깊고 맑은 눈을 끔뻑이는 도로테아를 본 황제는 몹시 착잡한 얼굴이었다.

    판관 중 한 사람으로 자리한 1황녀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혐의를 반박할 만한 ‘증거’를 지니고 있느냐?”

    도로테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혐의를 인정하느냐?”

    이번에도 도로테아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둔 대신관이 앞에 앉아 있던 판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선 대배심의 판결을 기다리겠소. 각 판관들은 근거를 들어 피고의 혐의에 대해 유무죄의 판결을 내려 주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판관들이 ‘판결’을 위해 밀실로 향하자, 두꺼운 서류를 든 이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극적인 장면들을 보고자 기다리던 관중들은 맥이 빠진 듯했지만 오히려 수많은 관중들이 있기에 허례허식을 버릴 수 없었다.

    도로테아의 눈이 닫힌 문을 향했다.

    안쪽에서 떠들고 있는 이들의 대화를 굳이 들으려 애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저들의 결론은 너무나도 뻔하니까.

    ‘시간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지.’

    감정이 고조될 때까지 기다려야 군중들의 흥분이 그만큼 폭발적으로 바뀌니까.

    그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역사적 증인이 되어 줄 군중들로 하여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재판에 몰입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야만 훗날 결과가 뒤집어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이 재판의 흠을 잡을 수 없을 테니까.

    도로테아의 눈이 흘끗 저를 빤히 바라보는 사도를 향했다.

    집요할 정도로 자신만을 향한 보랏빛 눈에는 여전히 광기가 서려 있었다.

    *   *   *

    “사건 조사 기록이 지나칠 정도로 간략하군.”

    보통 법원의 판관이 자료를 확인하며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조사를 처음부터 진두지휘한 켈런 심슨은 판관의 질책에도, 아무 말 없이 본인이 모았던 주변의 증언과 도로테아 본인의 진술서를 다시 한번 훑었다.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증거가 없군요.”

    “증거가 어찌 없습니까? 가장 유력한 증인이 있잖습니까.”

    “그 증인의 증언을 제외하면 단 한 가지도 없으니 하는 말이지요.”

    가장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패리스 자작이었다.

    평소에도 원리 원칙주의자로 유명한 그는 상당히 불합리한 구석이 있는 종교 재판 자체가 그리 내키지 않는 듯 서류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성물의 반응에 따라 죄의 유무가 결정될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왈가왈부한들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요.”

    그저 형식에 불과한 들러리로 끌려 나온 것이 퍽이나 불쾌한 듯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황녀가 부드럽게 반박했다.

    “그럴 리가요. 사도께서도 대배심의 판결을 존중해 주실 겁니다.”

    “물론입니다.”

    부드럽게 받아친 프란체스코가 미소 지었다.

    “당연히 저는 재판의 모든 결과를 존중합니다. 제국의 황제께서 신의 뜻을 헤아려 주시듯이.”

    촤륵.

    부채를 펼쳐 든 1황녀가 제 얼굴을 가려 불쾌한 빛을 숨겼다.

    감히 제국의 하나뿐인 군주에게 한낱 성국의 사도 나부랭이가 협박질이라니.

    그녀는 살랑이는 부채 너머로 눈치 싸움에 여념이 없는 귀족들을 구경하며 어제 저녁을 떠올렸다.

    부단히도 바쁘게 이런저런 방문자들을 맞아야만 했던, 몹시도 의아했던 밤을.

    “내 아우도 아닌, 비께서 나를 보자고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부디 플로렌스라 불러 주세요, 전하.”

    어딘가 몹시 야윈 얼굴의 4황자비는 조급함을 감추지 못한 기색이었다.

    시종일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듯하더니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일 재판이 오면, 부디 전하께서 하이클레어 후작 영애의 힘이 되어 주세요.”

    “뜻밖의 부탁이로군요. 하이클레어 후작가와 던컨 남작가는 한창 힘겨루기에 바쁠 텐데요.”

    “그녀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저 희생양에 불과해요. 진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격하게 감정을 쏟아 내던 그녀가 별안간 입을 꾹 다물었다.

    1황녀가 재빠르게 그녀의 말 속에서 중요한 것을 짚어 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마치 그대는 진범을 알고 있다는 것 같은 말이로군요.”

    “그녀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벌을 받는 것을 후작가가 지켜볼 리 없습니다. 황실과 반목하게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재판의 결과가 어찌 나오든 간에, 후작이 그에 불복한다는 것은 제 아버님이신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가 두려워 후작 영애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전하.”

    다시 한번 그녀를 설득하려던 플로렌스는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곧 가야겠다며 자리를 뜨고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은 태도였는데도.

    그 뒤 그녀를 찾아온 것은 놀랍게도 그녀의 아우인 4황자였다.

    혹여 플로렌스가 자신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아 남편을 보낸 것이 아닐까 했건만, 4황자는 엉뚱하게도 그녀와는 정반대의 말을 꺼냈다.

    “도로테아 하이클레어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누님.”

    “…….”

    “그녀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고, 원한다면 제국을 삼킬 만한 무력을 갖춘 후작가를 등에 업고 있지요.”

    “지나친 비약이로구나. 후작은…….”

    “그녀는, 그녀는 몹시 위험합니다!”

    한쪽은 비운의 희생양이라더니, 한쪽은 위험하다며 피를 토하듯 열과 성을 당해 도로테아의 위험성을 역설하고 있다.

    부부가 이토록 맞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심하다는 듯 남동생을 바라보던 그녀가 혀를 찼다.

    “너와 네 부인은 참으로 물과 기름이로구나. 서로 그렇게 맞지 않을 수가 없어.”

    “누님! 저와 부인은 생에 다시없을 인연입니다!”

    그렇게 꽥꽥대던 4황자는 끌려갈 때까지 제 부인과의 아름다운 인연과 사랑을 늘어놓다가, 멀리 사라지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하이클레어 후작 영애가 저와 제 부인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녀가 아니면 제 부인도……!”

    하이클레어 후작 영애가 뭘 어찌했길래?

    그것도 잠시, 궁금함을 풀어 볼 새도 없이 그녀는 또 다른 방문자를 맞이해야 했다.

    “에이든 경, 당신은 나를 만나러 와서는 안 됩니다.”

    “황녀 전하, 사도 놈이 무어라 하든 간에 저희 테아는 무고합니다. 아시잖습니까. 그 아이가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이토록 주변에서 괴롭혀 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진정하세요. 눈물은 닦고.”

    “크흥. 저는 그 아이를 정말 사랑으로 길렀습니다. 결코 그럴 만한 아이가 아닙니다.”

    “경께서는 조카인 후작 영애와, 그녀와 가까이 지내는 영애들 모두에게 검을 가르치셨다 들었습니다만. 무려 소드마스터의 칭호를 가진 경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도로테아 영애가, 사람을 해칠 줄 모른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억울합니다. 저는 그저 테아가 조금 안전하길 원했을 뿐입니다. 테아에게 나쁜 마음을 먹은 놈이 혹시 검기를 날릴 수 있는 놈이면 안 되지 않습니까!”

    “…….”

    뒤늦게 그를 찾으러 온 형에게 죽도록 맞고 끌려 나가면서도, 끝끝내 도로테아의 무고함과 그녀의 천사 같은 면모를 피력하던 에이든 하이클레어를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윌리엄이 찾아왔었지.

    궁에서도 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병약한 아우가 먼저 그녀를 찾은 것은 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너도 그 아이를 구원해 달라고 왔니?”

    “아니요, 누님.”

    윌리엄이 나지막하게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종교 재판이 진행되면 후작가에서는 테아를 무고한 존재로 만들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할 겁니다. 대배심의 판사는 모두 7명. 사도를 제외한 6명 가운데 누님을 제외한 이들 대부분이 테아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하도록요.”

    “그래 봤자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다. 특별 판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다들 허수아비야. 진짜 판결은 오로지 성물에 의해…….”

    “그렇기 때문입니다. 제국 판관들의 판결과 성물의 판결이 다르다면 당연하게도 알력 싸움으로 이어지겠지요. 후작가는 귀족들을 매수한 죄목으로 더 큰 죄를 물 수 있을 테고, 당연하게도 성국 측에서는 대배심의 판결에서 후작가의 손을 들어 준 판관들까지 이단으로 몰아갈 겁니다.”

    애초에 사도가 방문한 까닭도 거기에 있으니까.

    도로테아의 처형은 물론이고, 제국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주춧돌을 무너뜨려 제국의 영향력을 낮추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

    “선동당하는 군중들은 전부 다 제국의 백성들입니다. 신실하고 어리석은, 가여운 백성들이지요.”

    귀족의 마녀 재판은 그들이 본국의 귀족들과 지배 계급에 ‘적개심’을 갖게끔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찌하라고?”

    “도로테아 하이클레어에게 죄를 물어 주십시오.”

    “뭐?”

    도대체 어찌할 셈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본들, 이런 상황에서 사도의 손을 들어 주는 게 왜 제국에 이득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건 윌리엄의 부탁이 아니야.’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에 끼어드는 건, 신중한 내 동생답지 않거든.

    1황녀가 어느새 너덜너덜해진 부채의 끝을 매만졌다.

    ‘필시 하이클레어 후작 영애가 내게 건넨 부탁이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황녀 전하, 전하께서는 이 사안을 어찌 평결하시렵니까?”

    이미 모두가 의견을 낸 후인 건지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려 있었다.

    굳게 다물려 있던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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