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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141화 (141/242)
  • 141화

    이른 아침이었다.

    한산한 거리, 후작가의 저택 앞에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났다.

    비교적 젊은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쭈뼛거리는 것에 비해, 곁에 있는 다른 남자는 속내를 읽어 내기 어려운 얼굴로 덤덤하게 입을 뗐다.

    “그리 긴장할 것 없다, 맥. 우리는 그저 해야 할 일을 이행하러 온 것뿐이야.”

    “그렇지만 ‘그’ 후작가입니다. 하이클레어 후작님이 어떤 분인지는 선배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알고 있지.”

    선배인 켈런이 나지막한 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치안대에 배치되어 의욕이 넘치던 초보 기사는 6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경험들을 통해 숙련도를 쌓은 노련한 기사가 되었다.

    “후작가도…… 그리고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도 아주 잘 알고 있지.”

    어딘가 결연하면서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답에 후배 기사인 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은 둘이 닫힌 문을 향해 한 걸음 나서려던 그때였다.

    “심슨 경!”

    고개를 돌리자 주방 하녀로 보이는 여인이 그들을 향해 쪼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반가움이 가득 담긴 상대의 목소리에 맥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켈런 심슨이 침착하게 하녀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역시 심슨 경이셨군요!”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에서 고소한 빵 내음이 올라왔다. 아침 식사에 올리기 위해 갓 구워 낸 빵을 사 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머, 제가 할 말을요. 이렇게 일찍부터 후작가를 찾아오시다니, 부지런하시기도 해라!”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던 하녀가 뒤늦게, 옆에서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맥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쪽은 처음 뵙는 분이네요?”

    “이번에 새로 배치된 신입입니다. 어차피 자주 드나들어야 할 테니 얼굴을 익혀 둘 겸 하여 함께 왔습니다.”

    “그렇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응접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문전 박대를 당할 각오를 하고 왔던 맥은 몹시도 어안이 벙벙했다.

    ‘치안대’가 어떤 곳인가.

    황도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 사고들을 처리하는 전담반으로, 기사들이 배치되길 가장 꺼리는 곳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박봉인 것에 비해 온갖 뒤치다꺼리와 정치적인 문제에 휩쓸려 피곤해지기 일쑤인 곳이니까.

    귀족들 또한 이들이 저택 문 앞에 나타나면 상대하기 싫은 티를 숨기지 않았다.

    특히 하이클레어 가문처럼 높은 명성과 권세를 가진 상류 계급이라면, 더더욱 성가신 일에 연루되는 것을 좋아할 리 없었다.

    말 몇 마디만으로 승진을 막거나 괜한 트집을 잡아 파면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들임을 아는 만큼,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눈을 끔뻑였다.

    “정신 차려. 저들에게 휘말려서는 안 된다.”

    켈런의 나직한 조언이 그의 긴장을 다시 조였다.

    그래, 쉽게 봐서는 안 되지.

    어쩌면 흔쾌히 안으로 초대해 놓고 응접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게 만들려는 수작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겉과 속이 다른 귀족들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애써 눈을 부라리는 사이, 누군가 응접실로 들어섰다.

    비교적 수수한 드레스와 숄을 살짝 두른 귀부인의 등장에 일어선 켈런이 고개를 숙였다.

    다이애나가 생긋 웃으며 낯익은 기사를 향해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격조했군요, 심슨 경.”

    “잠시 건강 문제로 지방에 요양을 가 있었습니다.”

    “어머나, 저런.”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린 그녀의 눈에 걱정스런 빛이 서렸다.

    “이제는 괜찮으신가요?”

    “예.”

    그녀가 뒤에 선 시녀를 불러 테이블 위의 다과를 비교적 달지 않은 것으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직 건강을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 켈런을 배려한 조치였다.

    ‘불청객이나 다름없는 우리에게 이토록 마음을 써 주다니.’

    콧대 높은 귀족가에서는 보기 드문 태도였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맥이 눈을 끔뻑이는 사이, 다이애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곁에 계시는 분은 처음 뵙네요. 새로 들어온 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부인. 맥 데이언이라고 합니다.”

    치안대 특유의 건조한 답에 다이애나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종종.”

    ‘종종?’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말이나, 종종이라는 단어나.

    어느 쪽이든 저택으로 찾아온 치안병을 향해 건넬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흘끗 켈런을 봤지만 그는 그저 담담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 상황이 익숙한 사람 같았다.

    “어라? 심슨 경이 아닙니까!”

    “데인 영식.”

    응접실을 지나던 데인과 에드윈이 켈런을 알아보고 응접실로 들어섰다.

    얼굴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반가움이 가득했다.

    맥은 이제 당황하다 못해 선배의 출생 신분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하이클레어 후작가와 먼 친척이라든가, 대귀족의 숨겨진 사생아라든가.

    그것이 아니고서야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식솔들이 그를 알아보고 반가워할 까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승진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정중한 에드윈의 축하에 켈런은 왠지 몹시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투로 답했다.

    “모두 이 댁의 아가씨 덕분입니다.”

    어딘가 뼈가 있는 말에 에드윈이 어색하게 웃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어설픈 면이 있었던 신입 기사는, 도로테아가 황도에 올라와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시간을 겪은 후 세상만사에서 해탈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절대부동의 무심검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조용히 차를 마시던 다이애나가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공무로 바쁜 분들이 어떤 일로 직접 저택을 방문하셨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후작 영애를 뵙고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보시다시피 테아가 아직 일어나질 않아서요. 아시겠지만 그 아이는 원체 잠드는 것을 어려워해요. 늦게 잠든 날이면 다음 날 아침은 푹 자도록 두는 편이거든요.”

    애석하다는 듯 답한 다이애나가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게다가 저는 그 아이의 외숙모이자 집안의 어른으로 보호자 자격이 충분하니, 제가 먼저 어떤 사안으로 찾아오신 것인지 여쭙고 싶군요.”

    “…….”

    잠시 뜸을 들이던 켈런은 그녀의 말에서 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음을 깨닫고 마지못해 용건을 끄집어냈다.

    “박람회장에서 귀족 영애 한 분이 실종되셨습니다. 모습을 감추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분이 바로 도로테아 영애이십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었나요?”

    “그렇습니다.”

    “대화를 나눈 후, 그분의 행적이 묘연한 거군요?”

    “예.”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던 다이애나가 웃는 얼굴로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상대의 행방이 묘연하다면 우리 테아의 행적은 어떤가요? 도중에 건물 밖으로 나갔었다거나, 오랜 시간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났다거나…….”

    “그럴 리가요, 어머니.”

    곁에 있던 에드윈이 고개를 저었다.

    정중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가 또박또박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테아는 2황자님을 뵙고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담소를 나누기 바빴습니다만.”

    혹시라도 사냥감이 도망갈까 싶어 내내 함께했으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몰래 빠져나갔을 확률은 없었다.

    “박람회장에서 벗어나기 직전까지 던컨 남작님과도 대화를 나눴고요.”

    바로 그 점이 켈런으로 하여금 도로테아의 범행을 확신하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여러 귀족들 모두 도로테아가 내내 박람회장 내부에 있었으며, 심지어 대화 상대는 2황자와 박람회의 주최자나 다름없는 던컨 남작이라 증언했으니까.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 두 영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증언 또한 있었습니다.”

    “가벼운 말다툼이었겠지요. 그 영애의 실종은 안타깝지만, 말다툼만으로는 그 어떤 혐의도 입증되지 않습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에드윈의 말에 켈런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렇지만 후작 영애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도 다른 이를 해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정령사니까.

    그런 켈런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다이애나가 웃었다.

    “설마 저희 아이가 정령사라는 이유로 영애의 실종에 엮여야 한다면, 그 박람회장에 다녀간 다른 이들 또한 용의선상에 올라야 하지 않나요? 꼭 정령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에드윈이 옆에서 조용히 목록을 읊어 주었다.

    “마탑 출신의 마법사인 링컨 영식과 다르안 영식, 셸링 영애는 물론이고 실종된 영애가 사라진 복도를 지나갔던 수많은 사용인들을 포함해야겠지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답이었다.

    “한 가지 더. 제아무리 상대가 귀족 영애라고는 하나, 제국의 법률에 따르면 ‘실종’ 상태의 기준은 정확히 3일 간의 연락 두절 및 실종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지요. 그런데 오늘은 박람회장에 방문한 뒤 아직 이틀이 채 되지 않은 날인 데다, 가벼운 말다툼이 실종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요?”

    “……어디까지나 정식 수색으로 들어가기 전 탐문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희가 굳이 심슨 경의 방문에 응해야 할 까닭은 없군요.”

    부인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여유롭게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맥은 그제야 켈런이 ‘만만찮은 자들이니 휘말리지 말라.’라고 한 충고를 이해했다.

    실종자에 관한 법률을 줄줄 읊는 귀족 부인이라니.

    게다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상황을 꿰뚫고서 이쪽의 논리를 깨 버리는 귀족 영식이라니.

    ‘도대체 후작가는 어떻게 돼먹은 곳이란 말인가?’

    멍하니 넋을 놓은 신입을 본 켈런이 침중한 목소리로 다시금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후작 영애를 뵙지 못할 모양이로군요. 그렇다면 저희는 이만…….”

    그때였다.

    “아뇨, 저와 이야기하시지요.”

    구슬이 구르듯 영롱한 목소리가 응접실 밖에서 날아들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나마 여유가 남아 있던 켈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 선배님?”

    평소 감정 변화 없이 임무에만 진력한다고 하여 수하들에게 존경받는 상사가 아닌가.

    처음으로 미간에 주름이 진 켈런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던 멕은, 응접실로 들어서는 묘한 분위기의 귀족 영애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사뿐사뿐 걸어 들어오는 발걸음은 몹시 가벼웠다.

    마치 별을 담아 놓은 듯 반짝거리는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저를 뵙지 않고 가시다니요.”

    “도로테아 영애.”

    “심슨 경께 서운할 뻔했어요.”

    켈런 심슨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그의 건강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쳐, 결국 요양까지 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눈앞의 이 깜찍한 숙녀분이 아니었던가.

    도로테아와 눈을 마주한 순간 켈런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범인이 아니야.’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빛나고 있는 저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켈런은 괜한 벌집을 들쑤셨음을 알아챘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도로테아가 다리를 가지런히 늘어뜨린 채 여유롭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어떻게 실종되었는지 말씀해 보시겠어요? 제가 아는 사실을 최대한 자세히 진술해 드릴 테니, 경께서도 부디 모든 사실들을 가감 없이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

    이런 망할.

    하필이면 실종된 영애가 전 재상의 조카이자, 벨로크 백작의 딸이 아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느긋하게 정보를 수집하면서 도로테아와 상관없는 일임을 진즉 깨달았겠지.

    그가 후작가로 걸음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사건에 끼어들 만한 여지도 없었을 텐데.

    “그래서? 그녀가 사라진 것이 정확히 언제죠? 휴게실에 간 다음인가요?”

    추궁하러 왔다가 추궁당하게 생긴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굳게 다문 입술을 보고 눈을 흘기던 도로테아의 시야에 어벙한 신입 기사가 들어왔다.

    아직 때가 묻지 않아 순진한 신입과 마주한 순간, 제 입맛에 맞게 진척 상황을 술술 불어 줄 먹이를 찾은 도로테아가 눈을 빛냈다.

    맹수의 눈빛을 포착한 켈런 심슨이 자식새끼를 보호하는 아비처럼 눈에 쌍심지를 켰다.

    고요한 응접실에 불꽃이 튀었다.

    *   *   *

    기가 빨린 듯 비틀거리며 저택을 나서는 신입과, 그를 부축한 채 이를 부득부득 갈며 멀어지는 숙련된 기사.

    두 사람의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벤이 딸아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 하지 않았니.”

    “그녀가 실종된 건 당연히 저와는 관련 없어요.”

    육신이 하나뿐인데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는 파비안이 사라졌다는 그 시간 내내 윌리엄에게 먹일 다음 보양식을 고안하기에 바빴다.

    물론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서 파비안의 실종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할 까닭은 없었다.

    “마음이 쓰이는걸요.”

    “…….”

    “그녀의 실종에는 이상한 점이 많아요. 스스로 모습을 감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딸의 진심 어린 말에 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벼운 말다툼이었다고는 하나 다투고 난 후 실종되었다고 하니 신경이 쓰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황위 다툼이 치열해진 최근, 제국 내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막대한 군권을 가진 후작가의 눈치를 보는 황자들과, 과열된 경쟁 속에서 후작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게 탐탁지 않은 귀족들.

    이런 때에 귀족 영애의 실종과 같은 사건에 뛰어드는 것은 많은 이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었다.

    도로테아를 견제하려 드는 이들이 더욱 소리를 높일지도 몰랐고.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인 내 입장에서는 실종되었다는 그 영애보다 네가 더 걱정되는구나. 심슨 경이라면 믿을 만하니 네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지 않겠니?”

    아버지의 조심스런 말에 도로테아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언제나 아버지 앞에서는 착하고 순한 딸이었다.

    상대의 말에 반박을 늘어놓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원하면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것이 도로테아가 하는 전부였다.

    어딘지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녀는 우물거리던 조그마한 입을 열어 주저하듯 말했다.

    “저는 그저 옛일이 조금 생각나서요. 오래전에 저 또한 의도치 않게 가족들과 떨어진 적이 있었잖아요.”

    도로테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에이든의 납치 아닌 납치로 후작가로 오기까지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저 또한 한때 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린 벤의 안색이 몹시 새파래졌다.

    잊고 있었던 일이건만, 딸아이는 선명하게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이렇게 더 많은 가족들이 생긴 것은 기쁜 일이에요. 그렇지만 막 에이든 숙부님에게 이끌려 마차에 올라 제인과 아버지, 우드를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많이 슬펐으니까요.”

    “…….”

    “지금쯤 실종된 그녀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불안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서글픈 어조로 읊조리는 도로테아의 말에 몰래 엿듣고 있던 데인이 주섬주섬 외투를 챙겼다.

    그리고 그런 동생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던 에드윈이 조용히 물었다.

    “어디 가려고?”

    “그냥. 잠깐 밖에서 바람이나 좀 쐴까 하고.”

    바람이나 좀 쐴까 하고 행방불명이 된 영애를 찾아 이곳저곳을 뒤져 대겠지.

    도로테아의 말을 들으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에드윈은, 팔짱을 낀 채 헐레벌떡 떠나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서도 없이 무작정 나서서 어쩌겠다는 건지.”

    불과 조금 전까지 ‘동생이 있었던 곳’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에드윈이 고개를 돌려 고모부인 벤을 살폈다.

    이쪽도 이미 넘어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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