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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 (119)화 (119/242)

혼술사 도로테아 119화

“너는 네 어머니의 한(恨)을 우습게 보았구나.”

젊고, 아름다우며, 사랑을 믿었던 순진하고 투명한 여인은 연인의 배신을 믿지 못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진상을 꿰뚫기는커녕,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연인을 바라보며 서서히 죽어 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죽음을 외면한 채 ‘아들’을 구한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딸아이의 죽음을 눈에 담았다.

스카뎀 백작 부인이 강조했던 ‘살아남을 숨구멍’을 남겨 두라는 말을 에밀리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따랐다.

비밀 통로의 존재를 몰랐던 황태자가 에밀리의 죽음만을 신경 쓰고 있을 때, 그 ‘숨구멍’을 통해 빠져나간 것은 어린 프리드였다.

“그녀는 늘 너를 걱정해 왔단다.”

대개 그러하듯, 죽은 자의 걱정은 산 자에게 근심과 고통만을 안겨 주지만.

그들은 자신이 흩뿌리는 한(恨)이 산 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모르니까.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벤자민 모어가 살아남은 마지막 스카뎀 가문의 후계자에 대해 말한다면.”

“…….”

“너는 아마 백작이 될 수 있을 거야. 루크도 너를 쓸데없는 언약 따위로 옭아맬 수는 없을 테고.”

네 가문의 명예는 내가 되찾아 주었으니.

“너는 이대로 몸을 돌려 연회장으로 돌아가면 돼.”

“…….”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도로테아의 말에 잠시 프리드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을 찌를 듯 밝은 햇살이 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와 그녀를 비췄다.

그 순간 프리드는 마음을 정한 듯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행동에도 도로테아는 전혀 놀란 기색 없이 그저 재밌다는 듯, 오랫동안 그녀의 ‘그림자’를 자처했던 젊고 아름다운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   *   *

“흐읍.”

조금 떨어진 복도 끝, 기둥 뒤에 몸을 옹송그려 숨긴 메릴린은 저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나올 뻔한 입을 틀어막은 채 오열했다.

그저 도로테아의 옆에 늘 자리하고 있던 그림자 같은 아름다운 기사.

인간 같지 않아 섬뜩한 기분에 가끔은 혹 그도 ‘그쪽(?)’ 방면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저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가졌을 줄이야.’

눈물 콧물 쏟아 내느라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는 메릴린의 앞에 고운 손수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아, 고마워요.”

코를 킁, 하고 푼 메릴린이 울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손수건은 가지고 다녀야죠.”

“오늘 아무래도 일 터질 것 같다는 소리에 손수건 대신 비수(匕首)를…….”

자연스레 답하던 메릴린이 고개를 홱 돌렸다.

옆에서 그녀와 똑같이 몸을 수그리고 앉아 있는 발레리가 눈에 들어왔다.

메릴린의 입이 한껏 벌어지자, 발레리가 재밌다는 듯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어, 어떻게…….”

“연회장에서 테아가 나가는 것을 보고 왔지요. 영애도 그렇잖아요?”

나야 뭐.

도로테아가 말했던 ‘연회 준비’를 떠올리고 걱정되는 마음에 쫓아 나왔을 뿐이었다.

설마 그녀의 호위에게 이런 가슴 아픈 과거사가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다시 한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낸 메릴린이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닫고 다시금 발레리를 바라보았다.

발레리 제르망은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아무 말없이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영애이긴 했지만.’

이렇게 딱한 사정을 듣고도 동요 한 점 없을 뿐만 아니라 슬퍼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을 수가 있나?

“혹시 알고 있었어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잠시 말이 없던 발레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고? 도로테아가 미리 그녀에게는 이야기를 해 두었던 것일까?

메릴린이 채 묻기도 전에 발레리가 친절한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당시 황태자께서는 자신의 세력을 불리느라 동분서주하며 사람들을 포섭하고 계셨어요. 문제라면, 3황자가 몇몇 사고를 치면서 황제 폐하가 그의 자금줄을 일시적으로 막으셨는데.”

“…….”

메릴린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그 당시에는 미성년자였을 텐데, 어린 시절에도 3황자는 꾸준했구나.

“자금을 융통할 곳이 없던 황태자 전하께서는 급한 대로 군에 편성된 예산을 가져다 쓰셨고, 이게 문제가 되었죠. 하이클레어 후작님이 예산 편성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셨거든요.”

황제의 신임을 받는 데다, 당시 잦은 분쟁에 필요한 ‘군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니, 후작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막 지위를 다지기 시작한 황태자에게는 치명적이었을 터.

“급히 희생양이 필요했죠.”

“그것이 스카뎀 백작가였다고요?”

고개를 끄덕인 발레리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순진하고, 어여쁜 데다, 황태자를 존경하는 영애. 아직 너무 어려서 발언권이 없는 소백작. 우직하기만 한 백작. 눈치는 기민하나 친정이 보잘것없는 백작 부인.”

“…….”

“딱 맞는 먹잇감이었죠. 게다가 한 가지 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백작의 지인이 있었거든요. 황태자의 신임을 얻기 위해 친우를 팔아먹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개새끼네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메릴린이 입술을 찰싹 가볍게 때렸다.

잠시 멈칫하던 발레리가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릴린의 말을 되풀이했다.”

“맞아요, 개새끼.”

발레리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짙어졌다.

“바로 제 아버지예요.”

“…….”

제르망 자작님이요?

메릴린은 제 귀를 의심하며 눈동자를 심하게 요동쳤지만, 의외로 발레리는 태연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향해 ‘개새끼’ 운운한 메릴린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확실히 개새끼죠. 그 사람은 만족할 줄을 모르거든요. 게다가 본인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 영애…….”

비록 메릴린 또한 그렇게 욕하긴 했지만, 발레리에게는 미우나 고우나 하나뿐인 아버지가 아닌가.

복잡한 머릿속을 달래던 메릴린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럼 혹시, 프리드 경과도 애초에 잘 알던 사이였나요?”

“글쎄요, 잘 아는 사이였을까요.”

그 애가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때 저는 너무 어리고 무력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그저 침묵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부디 프리드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길.

발레리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 만큼 조그마했다.

그 짧은 중얼거림 속에 들어 있는 묘한 감정에 메릴린은 침묵했다.

“7황자 전하께서 저 애와 했다는 ‘계약’을 듣고 나서 비로소 오랜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뜻밖에도 제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결국 모든 일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네요.”

“…….”

“테아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짤막한 감탄사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일렁였다.

그녀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도로테아는 혼자서 너무나도 완벽하게 해내어 버렸다.

심지어는 계약되어 있었던 10년의 유예 기간조차도 필요 없다는 듯이, 이렇게 통쾌하고 깔끔하게.

“도로테아가 지독하게 부럽다가도, 나와는 달리 더 많은 것들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못내 억울하고 미웠다가도.”

“…….”

“그 미움조차도 모두 다 사랑일 만큼 저 애가 좋을 때도 있죠.”

존경하고 동경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동시에 애정 하는 나의 소중한 친구.

턱을 괸 채 중얼거리는 발레리의 얼굴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메릴린을 향해 발레리가 물었다.

“메릴린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죠? 테아가 정령사가 아니라는 걸.”

“그게 뭐 중요한가요.”

내 눈에는 그녀가 정령사보다도 더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던데.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는 메릴린을 힐끗 본 발레리가, 제 손끝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글쎄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흐릿하게 끊어질 듯 작은 목소리 사이로 또렷한 말이 튀어나왔다.

“신전에서 알게 된다면 어찌 될지 생각해 보셨어요?”

순간 다리가 저려 콩콩 두드리고 있던 메릴린의 손이 멈췄다.

경악스런 얼굴을 한 그녀가 궁금한 듯 물어 오는 발레리와 눈을 마주했다.

“진심이에요, 영애?”

직접 도로테아를 이단으로 고발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몇 초간 말이 없던 발레리는 이내 빙긋 웃으며 제가 앞에 했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그럴 리가 없죠.”

“아니, 방금 영애가 꺼낸 말이잖아요. 신전에…….”

“메릴린.”

발레리가 언제나 그래 왔듯 은근한 미소와 함께 메릴린의 얼굴 가까이로 그녀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다시금 강조하듯 말했다.

“제가 테아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할 리 없잖아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상대를 설득하기에 훌륭했지만, 메릴린은 여전히 찜찜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 또한 당연히 그렇게 믿고 싶지만 지금의 발레리는 어딘가 불안불안해 보였다.

“괜찮아요. 어차피 제 말 따위를 누가 믿어 주겠어요. 죽은 자의 입을 빌려 산 자를 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테아가, 고작 저따위에 무너질 리 없죠.”

확신에 가득 찬 말과 함께 발레리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도로테아와 그녀의 그림자가 있는 곳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메릴린은, 어느새 또 다른 인물이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발레리의 뒤를 쫓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녀들이 사라진 뒤로 몹시 흥분한 알렉세이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   *   *

도로테아는 그녀를 쫓아 이곳까지 온 알렉세이를 보며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그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 주었다.

“미안해요. 중간에 파트너가 사라져 당황했겠군요.”

“영애.”

“아무래도 춤을 추기에는 분위기가 좀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영애!”

“리처드가 꽤 준비를 열심히 했던데, 끝까지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알렉세이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고발이 끝나고 정적만이 흐르는 연회장에서 리처드가 별안간 알렉세이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폭로할 수 있도록 스카뎀 영애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그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표한다.’라고.

“저는 그 영애와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런 인물을 본 적도 없어요!”

“그럴 리가요.”

한배에서 같이 태어나기까지 했는데 어찌 모르는 사이라고 하실까.

이곳에 코니움이 있었더라면 코웃음을 쳤을 만한 이야기였다.

“알렉은 그녀를 몹시 잘 알고 있어요.”

“도대체가…….”

희게 질린 그가 도로테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나를 안 겁니까? 그 ‘주문’은 도대체 누가 알려 준 거지?”

제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도로테아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서 그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제가 당신의 ‘주술’에 걸리지 않아 많이 당황했나 봐요.”

“그건…….”

“알렉은 웃는 얼굴이 참 매력적인데, 오늘따라 웃음이 좀 부족하네요.”

알렉세이는 굳은 얼굴로 제 애칭을 부르며 도로테아가 다가올 때마다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그의 등이 벽에 부딪힌 순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도로테아가 그의 손을 덥석 쥐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알렉은 스승님을 존경하는 만큼, 그분께 실패를 안겨 드리는 것도 싫지요?”

“무슨 말을…….”

“게다가 오늘의 일로 로헨 왕국에서 은밀하게 황태자의 치부를 캐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증인을 감싸고 폭로를 지지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테니 스승님은 알렉에게 몹시 화가 나셨을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게 모두…….”

말을 하던 알렉세이의 얼굴이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모양새를 띠더니, 이내 다시 와락 구겨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가 물었다.

“그게 모두 영애가 한 짓입니까? 일부러 저를 지목시킨 겁니까?”

“황제 폐하는 황실의 권위를 몹시 높게 생각하신답니다. 타국과의 교류를 중시하시는 분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호국과 신뢰를 쌓을 수 있을 때의 일이죠.”

오늘의 일로 로헨 왕국은 가장 강력할지도 모르는 아군을 잃었다.

제아무리 제국이 전쟁을 부담스러워한다고는 하나, 왕국에게 한 수 접어주려 할 리 없었다.

도로테아가 안타깝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가엾은 알렉.”

도로테아가 그의 희고 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스승님이 보내던 신뢰와 애정은 이제 다시 코니움에게로 넘어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 아가씨는 왜인지 몰라도 이렇게 친절하고 다정한 당신을 몹시 싫어하더군요.”

그러니 다시 스승님의 애제자가 되고 나면 당신을 아예 치워 버리겠다며 마음먹을지도 모르죠.

“도대체 당신이 어떻게 코니움을 아는 겁니까?”

일그러진 얼굴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봐 줄 만한 게 얼굴이었는데.

아쉬움을 접어 둔 도로테아는 제 손에 들려 있던 반지를 조심스럽게 뺐다.

쏟아져 내리는 햇볕 아래, 다이아몬드가 영롱하게 반짝였다.

“역(逆)오망성이라고 하던가요. 육신과 혼을 분리하고 가두는 주문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

“꽤 재미있어 보여서 저도 손을 조금 대어 봤어요. 주신 보석들에 아로새겨진 문양들이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감탄도 많이 했고.”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알렉세이가 무언가 알아챈 듯 도망치려 몸을 돌렸지만, 프리드의 억센 손이 그를 붙잡았다.

“그래서 저도 당신의 성의에 이제는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도로테아는 그의 ‘왼쪽 약지’에 조심스럽게 반지를 끼웠다.

그녀는 주문을 구성하는 역오망성의 요소들을 그에 대응하는 오행(五行)의 요소로 치환했다.

물(水)은 만물을 적시고, 불(火)은 스스로를 태우며, 재에서 태어난 나무(木)는 열매의 결실을 맺고, 금(金)은 결실의 성질을 변화시켜, 마지막으로 인간이 태어나고 묻히는 시작이자 끝의 장소인 흙(土)은,

주술이 시작된 장소로 혼을 데려가리.

흥얼거리는 말에 따라 ‘마지막 반지’를 손에 낀 알렉세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도로테아가 눈을 접어 웃었다.

“스승님께서는 애제자가 자신에게 와 준 것을 몹시 기뻐하실 거예요.”

존경하는 스승님의 ‘정령’이 되어 드리는 일이니 기꺼이 기뻐해야지요.

나긋한 목소리는 알렉세이의 의식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공포와 당황으로 얼룩졌던 눈동자에서 사라져 가는 빛만큼,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더욱 영롱하게 빛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고꾸라졌다.

축 늘어진 텅 빈 육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도로테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할머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시니 더 머물고 싶어도 오늘은 그만 가야지.

연회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뒤로 누군가 늘어진 알렉세이의 육신을 질질 끌어냈다.

이윽고 복도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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