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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 (107)화 (107/242)
  • 혼술사 도로테아 107화

    “극의 제목이 어째서 ‘끝없는 이야기’입니까?”

    궁금한 듯 묻는 레번의 말에 도로테아가 간단하게 답했다.

    “아직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서.”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단원이 끼어들어 말을 얹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면, 미완성 극인가요? 하긴 그럴 것 같았어요. 결국 주인공은 복수를 택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잊고 떠나지도 않았으니까요.”

    “뭐랄까,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요.”

    “맞아.”

    도로테아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그가 스스로 ‘이야기’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하지 않았거든. 그의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없어.”

    아리송한 도로테아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치 보듯 시선을 교환했다.

    공연을 해야 할 단원들이 정작 극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인데도 도로테아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설명을 덧붙여 이들을 납득시키는 대신 나지막하게 당부를 덧붙였을 뿐이다.

    “그 애는 아직 움직일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공연이 재미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극이 실감나는 현실처럼 느껴지면 스스로 이야기에 뛰어들고 싶어질지도 모르잖아. 그러니 보는 이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을 만큼 극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

    그 어떤 것도 제 것이 아닌 듯 무미건조한 눈을 하고 있는 대신에.

    도로테아의 말에 단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몹시 막중한 임무를 받은 듯, 그들의 어깨에 주어진 ‘역할’이 생기를 돋웠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람 취급조차 못 받던 그들에게 누군가가 맡긴 ‘중요하디 중요한 임무’는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굳건한 믿음과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이 넘쳐 나는 단원들이 도로테아가 건넨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저마다 뿔뿔이 흩어졌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던 도로테아는, 제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댄 채 쿨쿨 자고 있는 미네를 제외한 모두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몸을 일으키던 도로테아가 순간 휘청거리자, 프리드가 재빠르게 곁에 있던 미네를 밀쳐내고 넘어질 뻔한 도로테아를 부축했다.

    곤히 잠들어 있던 미네는 거친 손길에 깨어나서도 잠기운을 떨치지 못했는지 투정을 부리듯 다시 도로테아에게로 달라붙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레번이 기함하듯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 녀석, 아가씨께 그리 버릇없이 굴면…….”

    “미네, 외출하자.”

    아이를 떼어 놓으려던 레번이 순간 손에 힘을 빼자 미네가 잽싸게 도로테아의 품에 다시 안겼다.

    다정하게 웃음 지은 도로테아는 단내가 가득한 사탕 포장지를 손바닥 위로 내밀며 덧붙였다.

    “귀한 사탕의 답례를 해야 하니까.”

    외출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사탕을 건넨 답례를 받는다는 사실이 설렌 것일까.

    미네는 그저 말없이 기쁜 얼굴로 도로테아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도로테아의 품에서는 늘 함께 잠이 들곤 했던 파티마와는 다르게 좀 더 포근한 향기가 났지만, 머리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만큼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   *   *

    미네의 손을 잡은 도로테아가 번화가로 나서자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외출용의, 활동하기 좋은 옷을 입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로테아가 거리에서 바삐 일하는 다른 이들과 차림새가 비슷할 리는 없었다.

    힐끔힐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던 이들은 이내 모르는 척 눈을 돌렸다.

    차림새는 물론이고 걸음걸이와 희고 고운 피부, 수려한 외모까지. 모든 것이 그녀가 귀족가의 아가씨임을 증명했다.

    게다가 뒤에 붙은 이들의 기세도 심상찮았다.

    ‘굳이 귀족에게 들러붙었다가 피를 보느니 피하는 것이 좋지.’

    성질이 더러운 귀족이라면 더더욱.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누가 더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귀족과 다투는 것은 이미 결과가 정해진 일이었으니까.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리는 유혹거리들로 가득했다.

    흔히 길거리 음식이 그러하듯 달고 짜고 신, 자극적인 냄새와 형태로 가득한 음식들과 형형색색의 싸구려 장난감들.

    귀족들이라면 평소에 쳐다도 보지 않을 조잡한 생활용품들까지.

    도로테아의 손을 잡고 거니는 내내 미네는 고개가 떨어져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꼭 잡아야지.”

    다정한 목소리에 살짝 어깨를 움츠렸던 미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미네가 남은 손을 바로 곁에서 호위 중인 프리드를 향해 뻗었다.

    “…….”

    조그마한 손이 굳은살이 잔뜩 배인 그의 손가락을 움켜쥔 순간, 얼음처럼 시린 눈을 하고 있던 기사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슬쩍 일별하며 거침없이 걷던 걸음걸이가 어딘가에서 멈춰 섰다.

    도로테아의 눈이 좌판에 가득 늘어 둔 닭꼬치들을 향했다.

    ‘그러면 그렇지. 저 식욕이 어딜 가나.’

    한숨을 쉰 우드가 입을 열었다.

    “잠깐 있어 봐라. 내가 사 올…….”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게로 다가간 도로테아는 남색 눈을 반짝이며, 어딘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듯 식은땀을 흘리는 중년의 여인을 올려다봤다.

    “어, 어서 오십…….”

    도로테아를 앞에 둔 여인이 애써 입을 열었다.

    가끔 귀족들이 즐기는 ‘서민 놀이’ 같은 것이겠지.

    기분을 크게 거스르지만 않으면 잘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의연해지려 목을 가다듬었지만, 떨리는 목소리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아…….”

    도로테아의 희고 고운 손이 가장 바깥 자리에 있는 노릇한 닭꼬치를 가리켰다.

    “여기에서부터.”

    옥구슬 구르듯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로 그녀가 반대쪽 끝에 있는 꼬치를 가리켰다.

    “여기까지.”

    고개를 살짝 든 가냘픈 귀족 아가씨가 명했다.

    “모두 다.”

    뒤에서 머리를 짚고 있는 우드와는 달리 얼떨떨하게 눈을 굴리던 주인이 잽싸게 물었다.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포, 포장해 드릴까요?”

    “먹고 갈게요. 저 국물은 무료겠죠?”

    해물을 푹 우려 낸 국물이 담긴 육수 통을 흘끗 바라보는 도로테아의 말에 주인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평생 닭꼬치 가게를 생업으로 해 왔던 샐리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귀족들의 어마어마한 사치에 대해서는 그녀도 들어 본 바 있었다.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아이 장난감 사듯 가볍게 구입하고, 향수 가게에 가서는 자신이 원하는 향이 무엇인지 모르니 종류별로 담아 달라는 이도 있다고 하고.

    값비싼 장신구를 주문하고 대금까지 치르고도 귀찮아서 찾아가지 않는 경우까지.

    그리 생각하면 ‘여기에서부터 여기까지’ 달라는 주문이 그리 이상한 것만은 아니긴 한데.

    “육수를 더 드시려고요……?”

    음식을 싹쓸이하는 귀족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커다란 들통에 푹 끓여 장정 둘이서 들고 온 육수 통의 절반을 게 눈 감추듯 비워 낸 귀족 아가씨는, 무서운 속도로 닭꼬치와 국물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소스가 맛있네. 자극적이라 좋아.”

    “너한테 맛없는 음식이란 게 세상에 존재할 리가…….”

    질린 듯한 우드의 말에 도로테아가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기 닭들은 좋은 닭들이야. 적어도 단번에 목이 비틀려 죽었고, 살아생전에는 푸른 들판에서 벌레를 쪼아 먹으며 자유를 누렸거든.”

    “…….”

    “온종일 갇혀 알만 낳다가 육질이 좋아져야 한다는 이유로 목구멍에 강제로 들이붓는 사료를 먹는 닭들과는 다르게.”

    가끔 제사상에 올라오던 닭의 그 샛노란 눈은 인간을 원망이라도 하듯 부릅뜬 상태였다.

    ‘명재신’은 액맞이 제가 끝나고 나면, 음식을 나눠 먹는 이들에게서 닭의 모가지를 훔쳐 와 조용히 술을 끼얹고 정화수 아래에 묻어 주곤 했다.

    ‘그들에게 축생의 삶 따위야 무엇이 그리 중하겠냐마는.’

    인간조차도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이들이었는데.

    그 눈을 마주할 때면 재신은 그 어떤 것도 삼키지 못한 채,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비릿함에 연신 헛구역질을 하곤 했다.

    어느덧 빈 꼬치가 그녀의 앞에 수두룩하게 쌓였다.

    육수 통은 진작 바닥난 지 오래였다.

    마지막 꼬치를 입에 털어 넣자, 옆에서 지켜보던 미네가 천진난만하게 박수를 쳤다.

    “훌륭하네.”

    입을 닦는 손놀림에서 느껴지는 기품에 구경 중이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수군거렸다.

    귀족이야. 귀족이 틀림없어.

    귀족은 귀족인데.

    ‘많이 먹는 귀족인가 봐.’

    모두의 눈이, 퀭하고 홀쭉한 도로테아의 두 뺨과 호리호리하다 못해 종잇장처럼 가느다란 그녀의 몸을 훑었다.

    입안을 물로 헹군 도로테아가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아. 제, 제가 감사하지요, 아가씨.”

    하루 종일 팔아야 할 것을 불과 반나절도 안 되는 새에 모두 소진했으니 오늘 장사는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 앞에 수북이 쌓인 닭꼬치의 잔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손으로 톡톡, 가장자리에 있는 빈 꼬치를 집어 들었다.

    “좋은 식사를 대접받았으니, 당신의 점사(占辭)를 보아 줄까요?”

    “예?”

    막 돈을 건네려던 우드도, 옆에 있던 미네도, 가게의 주인도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도로테아는 아무 말 없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고 수북이 쌓인 빈 꼬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빈 나무 작대기들이 한껏 허공을 날아 음식이 늘어져 있던 좌판 위로 흩어졌다.

    *   *   *

    촤르르르.

    흩어지는 나무 작대기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감정 한 점 없는 건조한 눈으로 좌판 위의 막대기들을 훑은 소녀가 나지막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주님이 편치 않으면 대주(代主)가 편치 않고, 터주가 편치 않으면 기주(旗主)가 편지 않고.”

    “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

    “조상들의 업보로 인해 집 안에 탁기가 돌고, 그로 인해 신이 보살피지 않으신다고요.”

    “그, 그런…….”

    “2대손 위쪽에 마음이 붕 떠서 집을 떠난 남자가 있죠?”

    울상이 된 여인은 작대기를 뒤적이는 도로테아의 말에 기함했다.

    고개가 부서져라 끄덕이는 여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도로테아의 말이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아들은 말을 듣지 않고 속만 썩이고, 아버지와 한통속이 되어 뒤에서 헛짓을 하기 바쁘고요. 시키고 싶은 일은 있는데 듣지 않고서 원하는 걸 하겠다고 우기는 강한 의지를 가졌네요.”

    “마, 맞아요. 그놈이 기어이 기사의 종자가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신분이 상승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다고. 그냥 내 뒤를 따라 닭 장사나 할 것이지.”

    “닭은 아드님과 상성이 맞지 않아요.”

    “……예?”

    “닭은 예로부터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천지의 개벽(開闢)을 알리는 신성한 동물이었죠. 아드님은 정확하게 닭의 해인 정유년(丁酉年) 인시(寅時)에 출생하셨으니, 닭과 관련된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될 거예요.”

    “…….”

    마치 누가 읊어 준 것처럼 줄줄 아들의 생년과 태어난 일시를 맞추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아버지가 바람이 잦은 것까지 읽어 내다니.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깊이 생각에 잠긴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누군가가 번쩍 손을 들어 도로테아의 앞에 나섰다.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탁한 흰자위, 왼쪽 귀와 조금 떨어진 볼에 위치한 점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나, 나도 좀 보아 주실 수는 없소?”

    아무런 대가도 없는 빈손을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남자의 뒤로 넘실거리는 새까만 기운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촤르르륵 허공으로 날아오른 작대기들이 저마다의 형태로 놓였다.

    “40세 즈음, 인복이 부족하여 가족을 잃고, 그 이듬해에는 수해로 인해 재산을 잃고, 나이 오십이 넘었을 적부터는 앙심을 품은 타인에게 해코지를 당하게 될…… “

    “헛소리!”

    바락 지른 소리에 우드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살기를 뿜었다.

    그제야 흠칫, 그녀의 곁에 있는 호위의 존재를 깨달은 남자가 몸을 움츠렸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남자는 불운한 앞날만을 잔뜩 점쳐 준 소녀를 보고 주먹을 부르르 떨다 이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불운을 피해 가려면 어찌하면 됩니까?”

    “피하고 싶으세요?”

    “…….”

    기나긴 삶 속에 찾아오는 불운은 자신의 생에 끼어든 ‘살(殺)’을 풀 수 있는 하나의 기회였다.

    스스로의 행동을 돌이켜 제게 돌아온 업보를 의연하게 받아들여 자신으로 말미암아 한(恨)을 상쇄하고, 다음 생을 축원받을 기회.

    어느새 조용해진 주변 사람들이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그 눈에 서려 있는 묘한 감정들. 분노라든가 경멸, 혐오 등의 부정적인 기운을 감지한 사내가 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일어났다.

    꽁무니가 빠져라 내빼는 남자를 내버려 두고서 도로테아가 빈 꼬치를 손안에 가득 모아 쥐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손을 들고 나서기 전에, 그녀의 손에 가득 쥐어져 있던 나무 작대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바닥에 엉망으로 떨어진 작대기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본 도로테아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르르 따라오려는 사람들을 살기로 물리친 우드가 찜찜한 얼굴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너, 어떻게 안 거냐? 또 그놈의 ‘정령’으로 알았다고는 하지 마라. 무슨 정령이 2대손 위의 과거까지 알아?”

    “아까 닭 먹을 때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떠들더라.”

    “오늘 샐리의 운이 폈네.”

    “하나뿐인 아들놈은 허구한 날 기사 종자가 되고 싶다며 철없이 졸라 대고, 시아버지는 바람이 나서 집구석에 붙어 있는 날도 없고.”

    “최근에는 남편까지 아들 편을 들어서…….”

    리리가 바람을 타고 물어다 준 말들은 생각보다 더 유용하게 쓰였다.

    남자의 평판이 시장에서 개떡 같은 것이야 주변 사람들의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고, 제법 훌륭한 질의 의복을 입고도 차림새가 단정치 않은 건 그를 챙겨 주는 이가 없다는 뜻.

    “인망 없는 인간이니까, 그 정도의 업보는 당연히 따르지.”

    어깨에 올라탄 한(恨)의 크기가 심상치 않았으니 그 시기가 늦지 않게 찾아올 터.

    도로테아의 말에 우드가 기가 막힌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라리 돈을 내지 그랬냐…….”

    “모처럼 점사(占辭)를 보기 좋은 날에, 좋은 시기라 그랬어.”

    “무슨 소리냐? 안 봤다며.”

    도로테아의 눈이 힐끗, 그녀의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프리드 모어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마지막 순간에, 단 한 번.”

    와르르 쏟아진 작대기들.

    단(壇) 위에 하나도 올라가지 못한, 그 어떤 업과 살도 정해지지 않은, 주인을 잃은 운명이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새까만 얼룩이 묻은 그 작대기들을 그대로 버릴 것인가, 아니면 하나하나 주워 담을 것인가.

    “그냥 돈을 주면 되잖냐. 일부러 내가 챙겨 왔건만…….”

    “당신, 돈 없어.”

    “……뭐?”

    도로테아의 말에 우드가 멈칫하고서 그 자리에 섰다.

    지나가듯 꺼낸 말이었지만 소녀의 입에서 나왔다면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불룩한 천 주머니를 꺼내어 여기 보라, 고 말하려던 우드는 제 손에 들린 주머니의 묘한 형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 이렇게 울퉁불퉁하지?

    반신반의하듯 주머니를 연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회색 빛깔의 돌멩이였다.

    “실력 좋은 백인장이었다며. 근데 소매치기를 당하다니.”

    핀잔을 던지고 스쳐 지나가는 도로테아를 망연히 바라보던 우드가 조용히 뒤를 따르던 프리드를 돌아봤다.

    “너도 알고 있었냐?”

    “…….”

    인간적으로 우리가 함께한 지 얼마나 오래 됐는데, 주머니 털리는 것 정도는 막아 줘야 하지 않냐.

    미네가 말없이 프리드의 손을 꼭 잡고 까르르 웃으며 잡아당겼다.

    우드의 눈이 골목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휴가를 나오면 이 동네 길목의 질서를 다시 세우리라 다짐하는 그의 눈에 살기가 가득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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