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사 도로테아 103화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아요.”
신전을 책임지는 신관장의 말에 후작은 속이 타는 듯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그런 후작을 바라보는 신관장의 얼굴이 몹시 어두웠다.
“하필이면 대신관 부재중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병약했던 소녀는 오랜 시간, 후작가의 정성 어린 간호와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고 튼튼한 숙녀로 자라났건만.
“어찌 이렇게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예삿일이 아닙니다.”
“독이라면 이미 검사해 보았으나 별 반응이 없었소. 혹여 저주에 걸린 것이 아닐까 했지만…….”
신전에서 총력을 기울여 온갖 검사를 해 봤으나, 끝내 이상 반응은 찾아낼 수 없었다.
오히려 도로테아의 혼은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고 맑았다.
그도 그럴 게, 부정한 것들을 모두 걷어 내어 상대에게 살(煞)을 날렸으니 생기가 옅어진 것과는 별개로 그 기운만큼은 한없이 정순할밖에.
찌꺼기 한 점 없는 영혼에 감탄했던 신관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저토록 맑은 혼을 가진 아이니, 당연하게도 자신이 맡은 의무에 헌신적이었겠지요. 저 가냘픈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버티고자 얼마나 갖은 노력을 했을지…… 본 신관장은 씁쓸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
“폐하와 가족들, 또 자신을 주목하는 이들의 기대에 발맞추고자 스스로를 갉아먹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관장이 탄식하며 눈을 감았다.
“저런 아이를, 재무장관께서는 어찌 불성실하다는 죄목을 씌워 정치 싸움에 끌어들이는 것인지…….”
자애를 중시하는 신의 종답게, 그는 적극적으로 도로테아를 비호해 주지 않은 황제의 처사에 몹시도 실망한 눈치였다.
후작은 그런 신관장의 태도에 한결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가 제아무리 손녀딸을 끔찍이 아낀다 하더라도 공개적인 청문회에 소환된 도로테아를 보내지 않고 버틸 재간은 없었다.
그러나 신전에서 그녀의 상태를 증언해 준다면 상대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긴 하지만.’
당분간은 신전에서 요양하며 얌전히 건강을 되찾게끔 하는 수밖에 없겠지.
입안이 썼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폐하께서 아무리 탐을 내신다 하더라도 아이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소.”
늘 저택에서 누군가의 도움만 받아 왔으니 이제는 스스로 해 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며 조르는 손녀의 말에 못 이긴 척 넘어가 준 것이 잘못일까.
데인의 말에 따르자면 도로테아는 스펜서 백작령에 내려간 이후, 약간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바삐 움직였다.
심지어 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어 새벽녘에 몰래 주방에서 음식을 얻어먹어야 할 정도였다니.
그녀가 받고 있었을 기대감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로 젊은 날 내가 받았던 훈장 따위를 보여 주지 않았을 것이오.”
분명 그 애는, 자신의 눈부신 과거를 보고 감탄하며 할아버지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되어 가문을 빛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내 젊은 시절의 무용담 따위…….”
이야기가 끝나 갈 때마다 서너 번씩 박수를 쳐 주고는 했던 손녀의 반응이 좋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후작의 눈동자에 후회가 들어찼다.
존경하는 할아버지를 본받기 위해 밤낮 구분 없이 무리했을 손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 후작을 보던 신관장도 안타까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관만 있었더라면 조금이나마 기력을 보태어 줬을 테지만…….’
하필 자리를 비우고 있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 대신이라기에는 뭣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상태가 나빠지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마음속 깊이 들어찼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희 신전에서 영애의 신변을 돌보도록 하지요.”
청문회를, 그것도 비공개로 한다는 것으로 볼 때, 공개적으로 재판을 열기에는 저쪽에서 확보한 증거나 증인이 그리 명확하지 않거나,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상황에서 신의 보호 아래에 있는 소녀를 무리해서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을 터.
“후작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확언을 건넨 그 순간이었다.
벌컥 열린 문으로 숨을 색색 몰아쉬는 하급 신관이 지친 기색으로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신전에 괴한이 들어 후작 영애를 납치해 갔습니다!”
“뭣……?!”
“……?!”
신전장과 후작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 소란스러운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던 도로테아의 친지들도 새하얘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키는 무려 7피트가 넘는 어마어마한 거구에, 거대한 창으로 성기사들을 삽시간에 제압하고는 그대로 영애를 품에 안아 들고 신전을 빠져나갔답니다. 살기가 어찌나 대단한지, 웬만한 신관들은 접근조차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어디로?! 어디로 갔다던가?!”
“그것이…… 그자가 영애를 안고 떠날 즈음에는 다들 기절한 터라 가는 방향을 목격한 이가 없습니다.”
듣고 있던 다이애나가 비틀대며 그대로 복도에 주저앉자, 옆에 있던 펠릭스가 굳은 얼굴로 부인을 부축했다.
후작이 굳은 얼굴로 말을 준비시키고 데인이 그 뒤를 따르려는 찰나, 나지막한 필립의 침착한 목소리가 살기로 가득하던 복도를 가로질렀다.
“궁으로 가야 하니 말보다는 마차를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촌의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는 데인과는 달리 에드윈의 얼굴에 무언가 깨달음이 스쳤다.
무겁게 굳은 펠릭스의 얼굴을 힐끗 살핀 에드윈이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빨리 달릴 수 있는 경마차를 준비할게요.”
재빨리 밖으로 향하는 에드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데인과 달리, 분노한 후작이 사고뭉치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에이든 하이클레어! 네 이이노오오오오옴!!”
* * *
그 시각, 신전이 발칵 뒤집혔거나 말거나, 에이든의 품에 안겨 입궁한 도로테아는 옅은 기침을 뱉어 내며 막 자신을 표적 삼아 비방을 쏟아 내려던 어리석은 사람들을 훑었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하고 억울함에 날뛰던 귀족들 모두 그녀를 보고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상태는 그들과 함께 황도에 도착했을 당시보다 더 나빠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제 발로 걷고 숨 쉬는 것만큼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건만.
지금은 가만히 품에 안겨 있을 뿐인데도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곧 감길 듯 파르르 떨리는 옅은 눈꺼풀, 옅은 기침에도 크게 들썩이는 왜소한 몸, 거칠고 불규칙한 숨소리까지.
왜 저런 상태가 되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이클레어 후작의 보복이 두려워 그녀의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세심히 돌보았건만.
‘쉬면서 요양하라고 모든 편의를 다 봐줬잖아. 내 쉬는 시간마저 아껴 가며 보고서 작성에 여념이 없었건만.’
‘정작 일하느라 제대로 끼니도 못 챙긴 건 우리라고!’
‘심지어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조차 편히 쉬지 못한 채 문서를 확인하기 바빴는데.’
왜 쟤가 다 죽어 가는 거냐고.
물론 그들은 도로테아가 한시도 쉬지 않고 궁으로, 레어 남작저로, 검안소로 열심히 돌아다녔다는 사실까지는 알 수 없었다.
콜록.
기침 소리 한 번에 모여 있던 귀족들의 귀가 쫑긋해졌다.
들썩인 몸이 미세하게 떨리자, 안절부절못한 채 저를 올려다보는 메릴린에게 도로테아가 옅은 미소를 보냈다.
밤을 새운 탓인지, 걱정이 많은 탓인지,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져 있었다.
‘조금 미안하다고 해 둘까.’
쉬지도 못하게끔 사람을 끌고 다녔으니.
‘그렇지만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으면 했으니까.’
평생을 외롭게 살았을 여인의 마지막 가는 길만큼은 할 수 있는 성의를 모두 담아 보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메릴린에게 잠시 머물렀던 시선은 이윽고 황제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황태자에게로 향했다.
아무런 말없이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서 옅은 짜증과 경멸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상황을 가늠해 보려 머릿속을 이리저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눈을 내리깐 도로테아가 몹시 공손한 태도로 흠잡을 곳 없이 인사를 올렸다.
“직접 전령을 보내어 주셨는데도 곧바로 오지 못하여 송구합니다. 제 상태를 살피던 신관께서 저를 뜯어말리셔서.”
“도대체 누가 다 죽어 가는 애를 기어이 끌고 가겠다는 거냐면서, 어떤 매몰차고 사람 같지도 않은 자가 이렇게 아픈 아이를 데려가 사람들 앞에 세우냐고 그럽디다!”
도로테아를 품에 안은 에이든이 울먹였다.
그 매몰차고 사람 같지도 않은 황제가 묘한 얼굴로 도로테아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가족들이 널 보내 주더냐?”
외숙부의 든든한 품에 기대어 색색대던 소녀가 입꼬리를 올리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면……?”
“도망쳤어요.”
“……!”
소녀는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하고서 배시시 웃었다.
“폐하께서 부르셨고, 무엇보다 제 일인데 다른 분들이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 되지요.”
국가의 중대사를 두고 소녀가 가진 놀라울 정도의 책임감에 청문회장이 숙연해졌다.
말로만 귀족의 의무니, 책임이니 떠들어 대며 목소리를 높이던 귀족들은 눈을 데굴데굴 굴려 가며, 가녀린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 하면서도 책임을 지러 온 도로테아를 바라보았다.
“제 미숙함을 지적해 주신 분이 계시다지요. 중임을 맡은 것이 처음이라, 최선을 다했음에도 성에 차는 결과를 보여 드리지 못했나 봐요. 그렇다면 응당 사과를 드려야지요.”
상황의 전후 사정을 정확히 짚어 주는 또렷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나태하고 방종한 소녀를 고발할 문서들을 가득 쌓아 둔 블레어 장관조차도, 혼란에 잠긴 얼굴로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크흑.”
조카의 입바른 말에 감동한 에이든이 도로테아를 품에 안은 채 눈물을 훔쳤다.
한창 진행 중이던 청문회장 전체가 숙연한 분위기에 잠겼다.
‘음주 가무로 바빴다며. 도박판을 벌이고 흡연을 했다며.’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도로테아를 한 번, 그리고 블레어 밀리네어를 한 번 바라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블레어는,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도로테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황태자를 흘끔 바라보고 무엇인가 결심한 듯 두꺼운 서류철을 쾅, 내리쳤다.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가끔은 광적인 분위기가 그 어떤 증거나 증인보다도 강력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노련한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블레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수단이 좋은 후작 영애의 남빛 눈동자가 그와 마주했다.
눈동자에 서린 옅은 비웃음은 마치 그의 속내를 꿰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깊고도 어두웠다.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말없이 그 눈을 마주하고 있던 블레어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굳은 얼굴로 일갈했다.
“영애는 지금 국가 대사가 장난인 줄 아는가! 그저 미숙하다는 말로……!”
버럭 하는 소리가 회장을 가득 메우기가 무섭게 도로테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겁이라도 먹은 것일까.
고개가 아래로 푹 꺾인 애처로운 후작 영애에게로 시선이 모인 그때, 도로테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어느새 그녀의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한 줄기 주르륵 흘러 입술을 타고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황제가 굳은 얼굴로 치료사를 부르려 벌떡 일어난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청문회장의 문이 벌컥 열리는 것과 동시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테아야!”
“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코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손녀를 본 후작의 눈이 이글거렸다.
재무장관은 도로테아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던 제 손끝이 어느새 떨리기 시작했음을 알지 못했다.
* * *
도로테아는 후작을 돌아보지 않았다.
극적인 상황에서 등장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이렇게 모든 게 흐지부지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니까.
‘생각보다 늦네.’
피가 멎지 않은 코를 훔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살을 날린 대가를 굳이 지워 내거나 빠르게 회복시키지 않았던 것은 여론을 자신 쪽으로 끌고 오려는 심산에서 그러한 것이지만, 그것보다도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폐하, 비공개 청문회에 가문의 어른들께서 난입한 것을 부디 이해해 주시길 청합니다. 저를 너무나도 귀이 여기시다 보니 잠시 이성을 잃으신 듯합니다.”
“…….”
“폐하께서 착석할 자리를 주신다면, 아마 저를 존중하여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실 거예요. 처벌은 그다음 달게 받겠습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어라.”
어느새 피가 멎어 천천히 코에서 내린 손수건이 붉은 것을 바라보던 황제의 눈이 복잡했다.
도로테아는 그 곁에 앉은 황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크게 동요한 기색이 없었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손이 새하얗게 질려 있는 것이 보였다.
‘짜증이 났겠지.’
잔뜩 흥분했던 후작가의 사람들은 이미 이성을 되찾고 자리에 앉았으니까.
이를 악물고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경중을 모르고 날뛸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이곳은 신전이 아니라 황궁이고, 그들은 고작해야 제국의 녹을 먹는 귀족일 뿐이다.
제아무리 위세가 좋아도 정적에게 꼬투리를 잡힐 만한 명분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쥬벨 백작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몹시도 억울합니다. 함께했던 영애들까지도 두 팔 걷어붙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으니까요.”
“그렇소! 우리는 아주 열심히 일했…….”
지만 너는 안 했잖아.
왜 자연스럽게 ‘저희’에 도로테아 하이클레어 본인을 포함하는 거지?
혼란스러움에 입이 닫힌 사이 옆에 있던 일행이 재빠르게 옆구리를 찔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도로테아 영애만 빼고 일을 했다고 하면 믿겠소? 저 영애가 제일 상태가 나쁜데.’
‘아닌 건 아니잖소.’
‘지금 우리 모두 고발당한 상태요. 일단은 우리 다 같이 살고 그 뒤에 자세한 과실을 따져야지.’
눈을 부릅뜬 이들의 눈치에 마지못해 쥬벨 백작이 하던 말을 이어 나갔다.
“모두 다 함께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제출할 테니 원한다면 질문하셔도 좋고, 증인을 세우셔도 좋소.”
결국 ‘도로테아’를 포함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쥬벨 백작은, 소명하고자 하는 서류들을 블레어 장관의 앞에 가득 쌓아 올렸다.
제출된 자료들은 기존에 고발용으로 준비한 증거 서류보다도 더 무겁고 두텁고 촘촘했다.
“이, 이 일을…….”
초연한 이들의 얼굴을 둘러보던 블레어 장관이 미간을 좁혔다.
저도 모르게 황태자를 향하려던 시선을 붙잡아 청문회로 불려온 이들을 훑었다.
다들 지치고 피곤에 절어 있긴 했지만 떳떳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심지어는 몹시 울분에 차 있기까지 했다.
‘으음.’
그는 가장 당당하고 떳떳해 보이는 도로테아를 슬쩍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발레리를 지목했다.
“분명 이 일은 폐하께서 친히 맡기신 국가 중대사요.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친분만을 앞세운 발레리 영애가 가서 무엇을 도왔단 말이오?”
고작해야 친구 따라 내려가 신나게 놀고먹다 온 것이 전부겠지.
제 이름도 오르지 않는 일에 굳이 따라가 굳은 일마저 자처했을 리가.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확신에 찬 블레어의 지목에 그 누구보다 헌신적인 태도로 일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어 온 발레리가 생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