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사 도로테아 86화
깊은 밤, 고요한 복도를 깨운 것은 창틀에 내려앉은 까마귀 한 마리였다.
딱딱. 딱딱
부리가 창에 부딪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이내 도로테아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같이 새까만 어둠을 품고 있는 복도 저 끝에서 무엇인가가 소리도 없이 질주하여 그녀의 품 안에 안겼다.
마치 연기처럼 사라진 개들 대신 손에 남은 것은 어딘가 색이 바랜 목줄이었다.
창을 넘어 들어온 달빛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본 도로테아가 나직하게 선언했다.
“너희에게 주었던 잠깐의 ‘유예’는 이것으로 끝이야.”
[…….]
답 없이 일렁이는 그림자를 바라보던 그녀가 손을 뻗어 달래듯 다정하게 물었다.
“다시 살고 싶어졌니? 이대로 죽는 것이 너무 억울해?”
개들의 짧은 생은 오로지 주인의 목적만을 위해 처음과 끝을 맺었다.
훌륭한 사냥개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생명은 그 목적 그대로 길러졌다.
제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무엇을 쫓는 건지,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달리는지도 알지 못했을 사냥 도구.
검에 쓰러질 때조차도 주인이 원하는 상대를 향해 이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도버 스펜서는 너무나도 가볍게 그들을 버렸지만.
좀처럼 아래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어둠을 올려다본 도로테아가 옅게 웃었다.
“그림자 속에 숨는다고 해서 그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어.”
순진한 건지, 아니면 미련이 많아 도저히 끝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건지.
물끄러미 시선을 준 도로테아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원귀가 될 생각이니?”
제가 쥐여 주었던 혼력을 거두고자 내민 손이었다.
어둠 속에서 고개를 내민 ‘개’의 그림자가 그녀의 조그마한 손을 부드럽게 핥았다.
그 안에 담긴 친근함과 행복함, 상대를 향한 애정에 도로테아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림자 개는 정말로 기분이 좋았던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개들을 움직이기 위해 주변을 맴돌던 객귀를 불러 몸뚱이 안에 집어넣었다.
늘 ‘실체화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자 갈망하던 객귀는 쉽사리 부름에 답했지만, 그렇다고 그 몸을 영원히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객귀, 떠돌이 넋이 가진 필연적인 결핍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나타난다. 개들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터.
차라리 이성을 잃고 그녀를 물어뜯으려고 든다면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림자 속에 숨은 개는 제 몸을 낮춰 기지개를 쭉 켜더니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녀를 향해 친근하게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사람에게 도구 취급을 받고, 사람에게 배신당해 버려지고도 사람이 좋니?”
이토록 작은 마음 씀씀이에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이름조차 없었을 가여운 개들을 보던 도로테아는 제게 닿은 그림자에게서 혼력을 거두어 가려던 것을 멈췄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혼력을 삼킨 그림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스한 기운이 돌자 신나게 흔들던 꼬리가 점차 늘어졌다.
어느새 납작 엎드린 그림자가 하품을 쩍, 하더니 이내 고개를 묻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평온한 잠에 빠져든 그림자를 보던 도로테아가 입을 열었다.
“다시 태어나면 좀 더 사랑받는 생물이 되렴. 널 버린 이들 보란 듯이 사랑받고, 사랑하며 삶을 즐겨.”
진심이 담긴 축언에 눈감은 그림자는 평화롭게 천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림자가 사라지자, 남은 것이라고는 도로테아의 한쪽 손에 들린 남루한 목줄뿐이었다.
“아가씨?”
조심스러운 부름에 뒤를 돌아보자 낯선 중년 남성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을 하고서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묵직한 덩치와는 다르게 그의 몸에서 나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에 도로테아는 그가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임을 눈치챘다.
넓은 복도를 홀로 서성이는 도로테아가 걱정이 된 것일까.
제 이마를 긁적인 사내가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렇게 묻던 사내의 시선이 이윽고 도로테아가 꼭 쥐고 있는 색이 바랜 목줄에 닿았다.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며 웅얼거렸다.
“그러니까 그 물건은…….”
“묻어 주고 싶어서요.”
깃들어 있던 넋은 이미 먼 길을 떠났지만, 생전 지니고 있던 유일한 물건이니 잘 묻어 주는 것이 좋을 테지.
도로테아의 말에 남자가 울컥한 듯 잠시 말없이 목줄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개가 아무리 못난 짓을 했어도 그것이 어디 개들의 탓이겠습니까.”
주인의 탓이지.
도로테아는 남자가 꿀꺽 삼킨 말을 짐작했지만, 짐짓 모른 척 말을 돌렸다.
“배가 고파요.”
남자의 옷에 배인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막 예정에도 없던 혼력을 써 짐승들에 씌어 있던 객귀를 흡수해 버린 탓에 그 허기가 그녀에게로 옮겨 왔다.
고작해야 반나절이면 괜찮아지겠지만, 눈앞에 훌륭한 요리사가 있는데 굳이 참을 까닭도 없었다.
그녀의 말에 남자가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배, 배가 고프십니까? 아직 아침 식사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혹시 저녁이 충분치 않아 이렇게 새벽에 깨신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오늘따라 허기가 지네요.”
당황한 남자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싱긋 웃자, 그 작은 움직임에 중년의 사내가 눈썹을 꿈틀했다.
못해도 저만한 딸이 있을 법한 나이의 남자의 눈빛에 안쓰러움이 서렸다.
“너무 마르셨습니다. 귀족 영애들께서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새 모이만큼 드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식단 조절 따위를 해 본 적 없는 도로테아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도로테아는 남자의 착각을 풀어 주기는커녕 더욱 열심히 허기진 자신의 상태를 피력했다.
“무엇이든 괜찮으니 먹고 싶어요.”
“……밤에는 소화가 잘되는 것을 드셔야지요.”
머뭇거리던 남자는 도로테아가 여태껏 맨발로 차가운 대리석 복도 위에 서 있었음을 깨닫고 조심스레 자신의 낡은 구두를 내밀었다.
“그…… 신, 신으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도로테아의 얌전한 감사 인사에 사내는 적잖게 놀란 얼굴이었다.
제가 신발을 내밀어 놓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커다란 신발을 신고 뒤뚱거리는 도로테아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에 이내 애틋한 빛이 서렸다.
그녀를 통해 누군가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눈치였다.
“그럼 따뜻하게 드실 수 있도록 스튜를 좀 데워 드리겠습니다. 방까지 가져다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지금 먹을래요.”
고집을 부리긴 했지만 귀족들의 억지나 강압적인 명에 비하자면 귀여운 수준의 요구에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 아가씨는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3황자를 비롯해 다른 귀족들과 함께한 만찬 연회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 중 하나처럼 무리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은, 이상하게 그녀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제 등에 올라타 머리를 아래로 짓누르는 귀족이 아니라.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럼 주방으로 가실까요?”
저를 경계하지도, 하찮게 여기지도 않는 남빛 눈동자의 주인을 향해 먼저 손을 뻗은 것은.
* * *
오랜 세월 요리사로서 일해 왔을 남자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불에 덴 화상과 칼에 베인 상처들로 가득한 손을 가진 남자가 주방에 들어서자, 멍하니 앉아 있던 주방 하녀가 일어났다.
그러고는 남자의 옆에 꼭 붙어 들어오는 도로테아를 보고 그대로 굳었다.
“아, 아가씨께서 어떻게 이곳에…….”
“오늘따라 허기가 지신다는군. 요깃거리를 찾으셔서, 방으로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는데도 여기서 드시겠다고 하시기에…….”
“…….”
그렇다고 해서 귀족 아가씨를 이 누추한 주방에 들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힐난 어린 눈초리가 남자를 질책했다.
어깨를 움츠린 주방장은 헛기침과 함께 잘 닦여 있는 주방 도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일 아침 식사를 대비해 깔끔하게 손질해 둔 재료를 한 움큼 집어 드는 것을 본 하녀는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도로테아가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도로테아는 다소 심란해 보이는 하녀의 시선을 받으며 마련해 준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눈을 말똥말똥 뜬 그녀에게 하녀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말을 건넸다.
“아랫것들을 통해 말씀만 주시면 저희가 준비해 드렸을 텐데요.”
“다들 자야 할 시간인걸요.”
소녀의 답에 하녀의 눈이 일순 커졌다.
어색하게 굳은 입꼬리가 풀리는 것과 함께 그녀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귀하신 분들의 편의를 살펴 드리는 것이 저희의 일인 것을요. 언제든 부름에 답할 수 있게끔 머무는 곳도 바로 지척에 있답니다.”
“낮에 일하시니 밤에는 자야죠.”
거듭 주장하는 도로테아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하녀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고귀하신 후작 영애께서 일개 사용인의 사정까지 봐주시다니요. 익히 말씀드렸듯 저희는 아가씨께서 무엇을 원하시든 최선을 다해 들어 드릴…….”
청산유수와 같이 말을 쏟아 내던 하녀는 도로테아가 손에 쥔 색이 바랜 개 목줄을 본 순간 말을 멈췄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본 듯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도로테아는 그런 그녀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마실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빠르게 달콤한 주스 잔이 도로테아의 앞에 놓였다.
그녀는 잔을 받아 바로 목을 축이는 대신 테이블 가장자리에 내려놓았다.
따끈하게 데운 스튜 그릇이 앞에 놓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푼의 손잡이가 동쪽 방향으로 향하게끔 얹고서 기다리는 표정이 자못 비장했다.
그녀가 제 일에 한몫 거들어 준 혼들을 향해 공양을 하고 있음을 알 턱이 없는 요리사와 하녀가 서로 마주 보고 의아한 눈빛을 교환했다.
“아가씨?”
미동도 없이 물끄러미 음식들이 식어 가는 것을 보고 있던 도로테아는, 한참 후에야 손을 뻗어 음식이 담긴 그릇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개들에게 건넨 것이 축언이라면, 이름도 전생도 잃고 허기에 떠돌던 객귀들에게는 그 주림을 채워 주는 것이 보은이 될 터.
제의를 마친 도로테아가 비로소 손을 뻗어 주스를 입에 가져다 댔다.
“잘 먹겠습니다.”
열대 과일 특유의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혹여 차려진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투정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 졸이던 이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주스를 단번에 비운 그녀는 이제 스튜를 한 숟갈 크게 떠 입으로 집어넣었다.
매콤한 향신료의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스튜에서는 다양한 재료들의 맛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게 눈 감추듯 연신 스튜를 떠먹는 도로테아를 본 이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온 하녀 하나가 도로테아를 보고 굳었다.
이윽고 그녀의 뒤로 또 다른 하인이, 시녀가, 마구간지기가 연이어 들어와 도로테아의 존재에 놀라 파드득거렸지만, 정작 이들을 놀라게 한 소녀는 그저 식사에 열중할 뿐이었다.
이윽고 좁은 주방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신기한 눈초리로 식사 중인 도로테아를 관찰할 때까지도.
‘뭐, 상관없지.’
마침 배가 고파서 주방을 찾은 것은 도로테아이니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의 시선을 받게 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후작가에서도 가족 및 사용인들의 시선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곤 했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의 세심한 시선을 받게 되는 만큼 장점도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 더 드릴까요?”
주스가 떨어지면 주스를, 스튜가 부족해 보이면 스튜를.
모자란 것들을 채워 주는 손놀림은 일사불란했고, 그녀가 좀 더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돕는 손들은 섬세했다.
이제 슬슬 스튜가 바닥을 보이고 다들 도로테아의 식사가 끝이 났겠거니 생각하며 시중드는 속도를 늦추어 갈 때쯤이었다.
스푼을 손에 쥔 도로테아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다.
게으른 귀족들의 아침이 느긋하게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토록 많은 사용인들이 벌써 깨어 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제닉스 부인은 3황자의 포악한 성격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인원만을 배치해 두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눈을 내리깔고서 아쉬운 듯 바닥이 드러난 스튜를 내려다보던 도로테아가 별안간 불쑥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어째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저택에 있어요? 사용인들이 묵는 숙소에 가지 않고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던진 질문에 일순 사람들의 숨이 멎었다.
눈빛을 교환한 이들은 어색한 미소를 얼굴에 띤 채 티가 나게 말을 돌렸다.
“호, 혹시 스튜가 더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과일도 좀 드시겠어요?”
“여기 후식으로 준비해 둔 파이가 있답니다.”
딱히 답을 듣고자 던진 물음은 아니었다.
그저 식사가 끝나 가는 아쉬움에 저와는 상관없음을 알면서도 한번 던져 본 말에 불과했지만, 결과는 훌륭했다.
제 앞에 다시 한가득 놓인 음식을 내려다본 도로테아가 싱긋 웃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테이블 위의 음식을 먹어 치워 가면서 식탁이 비었다 싶을 때마다 ‘집에는 왜 안 갔어요?’, ‘성에서 볼일이 남아 있어요?’ 같은 질문 따위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 양 던졌다.
당황한 사람들은 그녀가 먹어 치우는 식사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던져진 물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결국 이들은 도로테아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대신 다른 곳으로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 열심히 식탁을 채워 주었다.
아침 식사용으로 준비해 둔 요리와 냉동 창고의 재료까지 싹싹 긁어내어 동나게 만들 만큼.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사용인들이 텅 빈 창고를 보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를 때, 도로테아는 이미 잔뜩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면에 만족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