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사 도로테아 84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던 베니는 도로테아의 손짓에 몸을 크게 들썩였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것도 잠깐이었다.
이내 조여 오던 목구멍이 자유로워진 베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우웨엑!”
먹었던 것을 한껏 게워 내는 그에게서 나는 역겨운 냄새에도 도로테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크, 쿨럭…… 이, 이게 어찌 된, 일인……?”
“내가 준 선물이 몹시 기뻤던 모양이로구나. 또 귀족들 곁에서 알랑거리며 마음껏 힘을 뽐내었겠지.”
도로테아의 말에 그가 이미 새까맣게 타 버린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더듬더듬 물건을 매만지는 손끝이 몹시도 떨렸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거야!”
경악에 찬 목소리에 도로테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네가 그 길로 마을로 내려가 착하게 사람들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며 귀족이나 황족과 엮이지 않았더라면 말이야.”
물론 그러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고서 힘을 불어넣어 준 것이지만.
도로테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습격자들이 여러 무리로 갈릴 것이라는 건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3황자와 제국의 잔뼈가 굵은 귀족들이 머무르는 성에 ‘사람’을 들일 수는 없을 테니, 도로테아가 그러하듯 정령이나 부릴 수 있는 ‘귀’를 보내리라 생각했었다.
“귀(鬼)에게는 눈이 없으니 오로지 알아보는 것은 타인의 생기와 혼력뿐이지.”
습격자는 일시적으로나마 도로테아의 힘이 가득 담긴 지팡이를 쓰는 베니를 그녀와 동일시하고서 저주를 날린 것이다.
저주가 튕긴 반동으로 이 회랑 안에 있었던 이들까지도 일시적으로 혼에 깊은 상흔이 남았을 테지만, 가장 강렬한 상흔은 아마도 이 엉터리 치료사에게 남았겠지.
“도, 도와주십시오. 한 번만 더 이 물건을 되돌려 주십시오.”
“욕심을 내다 또 다치려고?”
“이번에는 적당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적당히 돈을 벌며 살겠습니다. 사람들도 도와주고요!”
다급한 말을 꺼내는 볼이 홀쭉하고 눈 밑이 퀭했다.
이미 생기를 모두 빨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 같지 않은 몰골을 한 안색을 들여다보던 도로테아가 혀를 쯧, 하고 찼다.
“욕심이 참 끝도 없네. 이번에 네가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은, 습격자들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도로테아의 곁에 있던 부녀였으니까.
일부러 성을 비우고, 헷갈리게끔 베니에게 힘을 나누어 주고, 부녀가 있는 방에 결계의 진을 몇 겹이나 그려 놓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제,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 제게……. 웁, 우웨엑!”
모든 것을 잃은 베니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다시 토했다.
이미 속을 다 게워 낸 터라 올라오는 것은 노란 위액뿐이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그는 여전히 소녀의 빛나는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글쎄, 애초에 가진 적도 없는 힘을 뽐내며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던 것은 네가 아니었니.”
도로테아가 아니었더라도 이 남자는 조만간 제 업(業)을 치르게 될 예정이었으니까.
“네가 치료한 이들은 하나같이 권력을 갖고 재물을 모으는, 네 잇속을 챙겨 줄 만한 인물들이었지.”
대개 그런 자들의 두툼한 주머니는 사람의 원망을 부르기 마련이다.
높은 세금에 자비 없는 집행으로 죽은 자들의 원한.
원치도 않게 희롱당하거나 짓밟힌 아랫사람들의 원한.
귀족들이 유독 까닭 없는 두통과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보통 그런 이유였다.
스스로 만들어 낸 원한에 갇힌 채 부정하고 탁한 기운들이 혼에 쌓이면서 몸속에 병을 키우는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난 병소들은 또다시 부정한 기운을 끌어들이고, 주위를 맴도는 원귀들은 점차 더욱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이야 말로 지극한 인과의 업보인 것을.
“생의 모든 날들을 기억할 수 없는 원귀는, 지난 생에서 그가 가졌던 가장 강렬한 감정에 매몰되지.”
이를 테면 상대를 향한 미움과 분노, 원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혼은 제 정체성을 잃고, 끝내 다음 생의 기회마저 포기한 채 이생을 떠돌며 복수를 염원하게 되는 것이고.
“너는 그저 우연하게 얻은 힘으로 재물을 탐한 것만이 문제라고 여기는 모양인데, 그럴 리가.”
도로테아는 심드렁하니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굳이 이자에게 이런 것들을 설명해야 하나.
지금도 그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 절박한 얼굴로 그녀의 드레스 자락에 연신 머리를 굽히며 힘을 달라 우기고 있는 것을.
“네 죄는 다른 것이란다.”
복수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들을 멋대로 흩어 버리고 쫓아낸 죄.
죽은 자들의 사무친 한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가진 자들의 편의를 위해 애쓴 죄.
“흩어진 원귀가 더한 원망을 새록새록 쌓아 훨씬 더 대단한 힘을 갖추고 돌아오게 되리라는 걸 몰랐겠지.”
너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러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욕심에 절어, 네가 모르는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말지 그랬어.”
이래서 돌팔이가 무섭다는 말이 나오는 것일지도.
때로는 상대를 향한 악의 한 점 없이도, 스스로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지 못하면서도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는 이들이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의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
도로테아는 제 치맛자락을 붙잡고 훌쩍이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녕 네가 원하는 것이 ‘나처럼’ 되는 거니?”
“그럴 수 있습니까?”
그의 눈에 그득한 탐욕을 보건대 이자는 전혀 뉘우치거나 반성하지도, 욕심을 버리지도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도 도로테아는 손을 뻗어 그의 두 눈을 꾸욱, 눌러 주었다.
언젠가 필립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이제 너는 내가 보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될 터. 열심히 수련한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겠지.”
손을 뗀 순간, 웃고 있던 베니가 도로테아의 뒤쪽을 바라보다 그대로 굳었다.
“아아, 그렇지.”
도로테아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여상스러운 목소리로 은근히 속삭여 주었다.
“네가 열심히 알랑거리며 치료해 준 귀족이 겁탈한 어린 소녀가 원한을 가득 품고 너를 바라보고 있구나.”
비록 3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나, 저 아이에게는 마치 오늘 일어난 것처럼 생생할 터.
그녀의 시간은 그날 그 순간에 멈춰 있으니까.
“가엾지만, 그게 원귀인 것을.”
도로테아가 구석에 서린 어둠을 향해 중얼거렸다.
‘소녀’는 몹시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내는 심연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줄곧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던 원귀는 베니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쩍, 벌렸다.
온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선뜩함에 베니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벌어진 입으로 기괴한 소리를 내는 원귀가 그의 곁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 그에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윽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베니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더니, 이내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 달려 나갔다.
성문을 넘어 마을 안쪽으로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베니를 창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본 도로테아는, 이내 눈을 돌려 술에 잔뜩 절어 소파에 늘어져 있는 3황자에게로 다가섰다.
숨이 미약한 것은 일시적으로 생기를 빼앗겼기 때문일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음주가 과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그리 만든 것처럼.
그때 다들 늘어져 있는 회랑 안으로 드르륵, 소리를 내며 카트를 끌고 들어온 낯익은 인물이 보였다.
“제닉스 부인.”
황자의 유모라던 자.
그녀는 주변을 훑어보고는 짧은 한숨과 함께 도로테아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무래도 다들 과하게 즐기셨던 모양입니다. 회랑을 치우고 각자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이 많은 귀족들이 모여 있는데, 정작 이곳에 이들의 시중을 드는 이들이 아무도 없군요.”
“황자 전하께서는.”
제닉스 부인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손으로 키워 왔다는 황자를 메마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음주가 과해지면 주변인들에게 난폭해지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모처럼 중임을 맡아 내려오신 길입니다. 황족의 위엄을 생각해서라도 큰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만큼은 이곳에서 사람들을 물려 놓았습니다.”
사전에 사고가 나지 않게끔 차단해 두고 보는 눈조차도 치워 두었다?
3황자를 몹시 애틋하게 여겨 취한 조치라고 보기에는 그 눈빛이 마치 가뭄의 논바닥처럼 버석하니 메말라 있었다.
그런 여인을 바라보던 도로테아는 별다른 반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인께서 수고해 주세요.”
어차피 상대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습격은 끝이 났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성을 비웠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듯 시끄러운 말소리가 저 밖에서부터 들려왔으니까.
도로테아는 바로 제 앞에 늘어져 있는 3황자 리처드의 손을 잡고 살짝 혼력을 밀어 넣었다.
“3황자 전하께서는 다치지 않으셨으면 해요. 최소한 목숨이 상하실 일은 없어야지요.”
아직은.
아직 리처드는 쓸모 있으니까.
* * *
“테아야, 정말 괜찮으냐?”
“괜찮아요.”
에이든은 숫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가장 멀쩡해 보이는 도로테아를 연신 보물처럼 매만졌다.
“내가 성에 남아 있을 것을…… 내일부터는 너와 함께 움직이마.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겠다.”
“목이 아파요.”
“목이 아파?! 어디가 어떻게!?”
“외숙부님이 커서 올려다봐야 하니까 목이 아파요. 우리 가끔씩만 봐요.”
“…….”
그러니까 하필이면 왜 네놈은 키가 커서 내 목을 아프게 만드냐, 이런 말이렷다.
애달프게 조카를 아끼는 외숙부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도로테아를 보는 메릴린의 눈에 경탄이 서렸다.
‘어떻게 말을 해도 꼭 저 꼬라지로…….’
분명 존대를 하고 있는데도 존대가 아닌 것만 같은.
장창으로 푹푹 가슴을 후벼 파는 그녀의 말솜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재간이 없을 것만 같았다.
오늘도 끔찍이 아끼는 조카에게 거부당한 에이든은 화살을 키엘 스펜서에게로 돌렸다.
“결국 자네의 그 음흉한 조카가 사랑스러운 내 조카를 해칠 뻔했군!”
키엘은 몹시 유감스럽다는 듯 손에 든 차를 홀짝이며 일방적인 힐난을 부드럽게 받아쳤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7황자 전하께서 직접 사냥개의 주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그 아이를 찾았다 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같은 때에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던 것은 잘못이나, 먼저 공격하신 것은 7황자 전하라 인정하셨지요.”
“…….”
“그런데도 그 아이는 잔뜩 얻어맞고 겁에 질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데, 이것이 어찌 제 조카만의 잘못일까요.”
에두르지 않은 직격에 다들 숨을 삼켰다.
루크는 말없이 물끄러미 키엘을 바라보다 도로테아에게로 시선을 넘겼다.
발레리의 곁에서 얌전히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도로테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도버 경은 여전히 저희를 습격했던 그 자객과의 관계는 부정하고 계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 아이의 말에 따르자면 자신은 황자 전하를 습격하려는 이들에게서 전하를 구하려 검을 들었다고 하는군요.”
직접 명령을 내리는 꼴을 보고 들은 자신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건가.
키엘은 도로테아의 다음 반응이 궁금하다는 듯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도버 스펜서의 안위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런데도 그 입에서 나오는 태연한 거짓말들을 들으며, 도로테아는 한 번쯤 제 은인에게 져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습격을 자행한 자들에게 직접 그 정체를 물으면 관계도 알 수 있겠지요.”
이미 반쯤 넋을 놓은 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겠지만 목숨만 붙어 있다면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도버 경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나누고서 저택으로 돌려보내 드리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그렇지요, 전하?”
“…….”
루크의 눈이 짧게나마 도로테아에게 머물렀다 떨어졌다.
말을 듣겠다고 해 놓고서 듣지도 않았던 것은 본인이니 이번은 양보하겠다는 듯이.
“영애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7황자 전하의 관대하신 처사는 모두 영애 덕이니까요.”
“아니, 왜 얘를 자꾸 황자 전하랑 엮으시죠?”
데인이 몹시 심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마치 제국의 7황자가 역병이라도 되는 양 엮이는 것을 질색하는 태도에 다들 말없이 침묵으로 그 무례를 외면했다.
정작 당하는 당사자는 별생각 없는 듯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으니 누가 입을 열 수 있을까.
“어찌 되었건 곤욕을 치르신 것은 도버 경이시니, 제가 직접 저택으로 가는 길을 배웅해 드려도 괜찮겠지요?”
도로테아의 말에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키엘이 다정하게 웃었다.
“그럼요. 영애가 원하신다면야 당연히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 그를 만나러 갈 차례였다.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을 깔끔하게 비운 도로테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