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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 (69)화 (69/242)
  • 혼술사 도로테아 69화

    메릴린은 마차 바닥에 축 늘어진 레이몬드의 시신에서 최대한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

    “게르만 백작가로 가는 길은 이쪽이 아닐 텐데요?”

    “성가신 상대를 만났잖아요. 떼어 놓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조금 돌아갈 수밖에요.”

    다행히 미행을 붙이진 않은 모양이지만, 마지막 순간 키엘 스펜서의 눈길이 유독 마차에 오래 머물렀음을 놓치지 않았다.

    일부러 메릴린의 얼굴을 치안대에 노출시켰으니 철저하게 조사하는 일은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전을 기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돌아갈 뿐이에요. 거북한 건 알겠지만 견뎌 줘요.”

    메릴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되살아난 시체보다야 죽어 있는 육신이 낫다 해도, 시체와 함께 마차를 타고 있는 것이 그리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러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듯, 질린 얼굴을 하고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던 메릴린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불쑥 물었다.

    “영애는 도대체 정체가 뭐죠?”

    “정령사라면서요. 다들 그러던데.”

    적어도 이 세계에서만큼은 그녀의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도로테아의 말에 메릴린이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렸다.

    “세상 어느 정령사가 죽은 사람의 육신에 붙은 악귀를 퇴치해요?!”

    “메릴린.”

    생긋 웃어 보인 도로테아가 그녀의 입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더 나은 것도 있는 법이에요.”

    죽은 자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될 터.

    마음의 준비는커녕 그럴 각오조차 짊어지지 못한 메릴린에게 굳이 ‘이승 너머의 세계’를 엿보게끔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굳이 알고 싶다면, 이제부터 나와 아주 깊고도 짙은 관계가 되어야 할 텐데.”

    메릴린 레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로테아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원해요?”

    “아뇨.”

    그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재빠르게 튀어나온 말과 함께 메릴린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몹시 후회하는 빛이 어린 것을 보니 더 이상 캐묻는 일은 없겠지.

    곁에 있던 제인이 조심스럽게 몸을 기대어 왔다.

    “긴장했었니?”

    “네에, 혹시 제가 알맞은 때에 방울을 울리지 못할까 봐요.”

    차라랑, 하는 은빛 방울들을 조심스레 갈무리한 제인이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도로테아는 긴장이 풀려 노곤한 얼굴을 한 ‘제자’를 향해 다정한 칭찬을 건넸다.

    “잘했어. 훌륭했구나.”

    하얗고 매끄러운 손이 제인을 토닥이는 것을 묘한 얼굴로 보던 메릴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얼굴을 하기도 하는군요, 당신도.”

    도로테아가 말없이 은은한 미소를 띤 이후, 어색한 침묵이 마차에 내려앉았다.

    어느새 제인이 새근새근 잠이 들었을 무렵, 한참 동안 거리를 돌고 돈 마차가 이윽고 게르만 백작가로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동이 틀 무렵이었다.

    *   *   *

    우드와 콜린에게 잠든 제인을 맡겨 둔 채, 시신을 모포로 감싸 번쩍 든 프리드가 백작가로 들어서서 미리 마련된 관 안쪽에 뉘었다.

    초췌한 얼굴의 게르만 백작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레이몬드 게르만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들의 시체는 마치 죽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것처럼 몹시도 생생해 보였다.

    상처 한 줌 없이.

    “누군가가 아드님의 마지막 순간을 참 예쁘게 만들어 주었네요.”

    꽤 꼴사나운 죽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시신에서 경건한 분위기가 풍겼다.

    “어머니는 레이몬드의 해맑은 미소를 좋아하셨습니다. 어엿한 성년이 되어서도 녀석은 퍽 소년 같고 순수했죠.”

    체이스 게르만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메릴린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스쳤다.

    도로테아는 몹시 침울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백작과, 생각에 잠긴 그의 장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백작 부인의 방이…… 저곳이던가.’

    모두가 텅 빈 육신 따위에 홀려 지난날을 회상하며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도로테아는 성큼성큼 백작 부인이 잠들어 있을 방문을 벌컥 열었다.

    “영애!”

    경악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모른 척 빠르게 침대로 다가선 도로테아가 부스스 눈을 뜬 백작 부인에게로 몸을 굽혔다.

    “부인.”

    “으음…….”

    잠에서 덜 깬 백작 부인이 웅얼거리듯 신음하며 눈을 끔뻑였다.

    도로테아는 흐리던 눈동자가 점차 선연한 빛을 띠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둘째 아드님이 왔어요.”

    “…….”

    “레이몬드 게르만이, 백작가로 돌아왔답니다.”

    뛰어 들어오다시피 한 메릴린이 기겁을 하고 도로테아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프리드에게 저지되었다.

    굳은 얼굴의 백작이 성큼성큼 방을 걸어 들어오자, 도로테아가 굽혔던 허리를 펴고서 백작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읊었다.

    “백작 부인은 정말로, 둘째 아드님이 타 영지로 내려가 성실히 일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영애…….”

    신음처럼 흘린 부름에도 도로테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먼 타지로 떠나 꽤 오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던 아들이 아픈 어머니에게 얼굴조차 비추지 않고서 한마디 말도 없이 훌쩍 떠나 버렸다고요?”

    백작 부인이 힘없이 눈을 끔뻑거렸다.

    도로테아는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몸 위로 따스한 모포를 둘러 주며 다시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인, 부인의 아들은 정말 그런 사람인가요?”

    아픈 어머니를 두고 말 한마디 없이 먼 곳으로 훌쩍 떠나 편지 한 장 쓰지 않는.

    가끔 형이나 아버지의 편에 보내는 짤막한 몇 마디가 소식의 전부일 뿐인.

    그렇게 매정한 인간이었나.

    도로테아의 눈에 멍하니 그녀를 보는 백작 부인이 담겼다.

    주름진 손이 도로테아의 손 위로 얹어졌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서늘한 손끝의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 아들은.”

    힘겹게 꺼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냘팠다.

    노력으로 조금 올라간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사람을 좋아해서 붙임성이 좋고, 마음이 여려 여기저기로 흔들리고, 귀가 얇아 쉽게 타인에게 휘둘리곤 했죠.”

    말을 꺼낸 부인의 눈이 슬픔으로 젖어 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해 치기 어린 행동을 하는데……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그 순간 방으로 들어선 장남과, 곁에서 차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메릴린, 그리고 백작까지 모두 숨을 멈췄다.

    메릴린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백작 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인, 알고 계셨…….”

    “…….”

    앓아누웠다고 해서 듣는 귀가 없는 것도,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저들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는 백작 부인을 죽은 몸뚱이 취급했다.

    그녀가 당연히 알고 겪어야 할 슬픔조차도 지레짐작으로 막아서서, 마지막 순간을 애도하는 일조차 하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기어코 백작 부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똑, 하고 떨어졌다.

    서글픈 웃음을 베어 문 입이 천천히 열렸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해 줘요, 여보…….”

    평생을 같이한 반려를 잠시 지켜보던 백작이 뒤로 물러나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도로테아의 손을 잡고 있는 백작 부인은, 요 며칠 중에서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이나.

    도로테아의 손에서 흘러 들어간 생기를 꾸역꾸역 먹은 육신이 바닥을 딛고 천천히 방문을 걸어 나왔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제 발로 걸어 나온 그녀의 눈앞에, 사랑스러운 아들이 잠들어 있는 관이 보였다.

    *   *   *

    “늘…… 이 아이가 마음에 걸렸어요. 남편이나 형보다도.”

    “…….”

    “제 앞가림은 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고…… 그렇기에 실수가 잦은 이들이 더 눈에 밟히기 마련이지요.”

    더군다나 죽음을 앞두니 더더욱.

    거칠한 얼굴을 쓸어 주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백작 부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평온한 얼굴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챘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레이몬드의 육신이 잠든 것처럼 평온해 보였던 덕택도 있었으리라.

    “비록 이리 되기는 했지만 천성이 고약한 아이는 아닌데. 좋은 곳으로 갔으려나.”

    다정하고 상냥한 목소리에 메릴린이 움찔했다.

    입술의 달싹임을 보니 당장이라도 그럴 수 있다며 곁에 앉아 위로하고픈 마음이 넘쳐 보였다.

    도로테아는 눈을 감고 있는 아들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부인의 뒤에 선 채 조용히 그녀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한때 필립에게 ‘낯선 세계’를 비추었던 그 힘으로, 그녀는 언젠가 리리를 통해 나타났던 정령계의 한 면을 ‘보여 주었다.’

    광활한 자연. 숨을 쉬는 것이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는 영체들.

    “아드님은 이번 생을 끝내고 다음 생을 시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요.”

    저곳에서.

    길고 긴 강을 건너 사신의 안내에 따라 무사히 삶의 흔적들을 지우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혼이 되어 눈부신 다음 생을 살아갈 준비를 끝냈어요.

    “아아…….”

    백작 부인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들에게 그다음 생이 준비되어 있음이 기쁜 듯, 핏기 없는 얼굴에 환희가 맺혔다.

    도로테아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눈에서 멀어지면서, 부인의 눈앞을 가득 채우던 환상도 사라졌다.

    부인은 잘못을 저지른 듯 고개를 숙인 장남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침대로 돌아가게 부축을 좀 해 주련?”

    레이몬드의 죽음에 이어 그녀의 죽음까지 받아들여야 할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죽음의 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모를 리 없었다.

    *   *   *

    부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로테아를 다시 한번 불렀다.

    그리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온 도로테아를 체이스 게르만이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 꼭 그렇게 하셨어야 했었습니까? 어머니께…….”

    그는 아직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도로테아는 효심 깊은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고통은 살아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에요.”

    “…….”

    “당신들은 그녀가 무지하게 만들었고, 당연하게 느껴야 할 감정들까지 차단하고 조절했어요.”

    “…….”

    “꼭 죽은 자에게 하듯 산 자를 신성시하는 것이 뭐 그리 훌륭한 대우라고.”

    인간이되, 인간으로서 여겨지지 않으며,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젖어 든 눈을 보지 못했나.

    끝없는 고립 속에서 외로이 홀로 발버둥 치느라 지쳐, 살고자 하는 의지마저 잃은 기색을, 정녕 눈치조차 채지 못했나.

    “살아 있고자 하는 의지를 쫓아낸 것은 당신들이죠.”

    아프다 하여 무능력한 것도 아니요.

    아프다 하여 그 무엇도 몰라도 되는 것도 아니다.

    “이건 널 위한 거란다.”

    “네 힘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쓰고 있는 거야.”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니까.”

    고립되어 있을 때면 모든 감각이 가장 예민하고 날카롭게 곤두선다.

    위선적인 말이 제아무리 달콤해도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정도는 금세 구분해 낼 수 있다.

    심지어 이들은 백작 부인에게 건넨 거짓말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까지 했다.

    더욱이 그녀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진실이 무엇인지 따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고통과 아픔은 그녀의 몫인 거예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녀의 몫.

    어느새 떠오르기 시작한 해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천천히 어두운 복도를 밝히기 시작했다.

    따스한 햇볕이 방 안을 가득 비추는 순간, 백작 부인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남겨질 사람들에게 다정히 작별 인사를 건네고, 이제 아들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듯, 더없이 평화로운 미소를 지은 채.

    이제, 줄곧 ‘기다려 온’ 죽음을 다들 경건하고 애통하게 받아들일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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