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사 도로테아 46화
술집 주인은 몹시 경계심 어린 눈으로 데인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데인만큼은 그의 뇌리에 똑똑히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문을 쳐부수고 술집을 지키는 용병들까지 죄다 때려눕힌 괴한…….”
치안대에 끌려간 남자가 어째서 이렇게 일찍 밖으로 나오게 된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행여 또 기물을 파손하거나 사람을 때려눕히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 그의 눈이 집요하게 데인을 쫓았다.
적어도 영업 중인 가게에 피해를 입힌 사실만큼은 할 말이 없는 데인이 죄인처럼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도로테아의 옆에 꼭 붙어 섰다.
루크의 입이 열렸다.
“현장으로 안내해라.”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없습니다. 증거는 전부 가져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울상이 된 주인이 앞장서서 다시 한번 참혹했던 현장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도로테아는 무심한 눈으로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곳 없는 방을 둘러보았다.
‘어차피 단서는 남아 있지 않을 터.’
그러니 황자도 그녀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거다.
샤아-.
옅은 미소와 함께 손을 뻗자, 물이 흐르는 계곡 근처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청량하고 시원한 공기가 주변에 감돌았다.
이미 몇 차례 목격한 적이 있었던 데인과 프리드를 제외한 이들이 형체를 드러낸 물의 정령을 보며 감탄 어린 눈길을 보냈다.
도로테아의 손에 몇 번 몸을 비비적거리던 정령이 허공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단서를 찾으러 간 건가?”
루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소매 속에서 꺼낸 무언가를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
어느 종이에서 찢겨 나간 모퉁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황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겁게 닫혀 있던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이건 어디서 났지?”
“지난번에 내가 발견한 비밀 공간 안에 남아 있던 거야.”
손바닥 위에 얹어진 깃털처럼 가벼운 종잇조각을 보던 황자의 눈에 살기가 깃든 것을 확인한 데인이 한숨을 쉬며 도로테아를 한 발 뒤로 물렸다.
“현장에서 멋대로 증거를 가져간 걸 자백하면 어떻게 하냐. 차라리 뭘 찾는 척하면서 어디다 꽂아 두든가.”
“그랬으면 수사 중 불법 행위 및 황족 기만으로 목이 날아갔겠지.”
서늘한 목소리의 반박이 들려오자 편법을 설파하던 데인이 움찔했다.
도로테아가 말을 이었다.
“그 종이에서 희미하지만 향을 맡을 수 있을 거야. 향을 입힌 종이인 거지.”
이런 종이는 대개 식물이나 향이 나는 과일에서 추출한 오일을 여러 번 덧발라 만든 물건이었다.
하룻밤 사이 필립은 제법 많은 것들을 알아내어 왔다.
“화류계 여인들이 사용하는 거래.”
그 순간 데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멈칫했다.
사람들의 반응에도 도로테아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손님을 초대하거나, 응대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특별히 쓰는 물건이니, 죽은 자들은 그녀의 손님이거나 그녀와 관련된 자들일지도 몰라.”
“아니, 기다려 봐. 화류계 여인이라고? 죽은 두 사람 전부 남성 아니었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
때마침 허공에서 포르르 날아든 물의 정령이 신이 난 듯 주변을 유영하며 도로테아에게 무언가 알아낸 사실들을 전달했다.
“리리가 말하고 있는데.”
그녀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담담한 목소리로 정령이 속삭인 말들을 꺼냈다.
“사건이 벌어졌던 방 맞은편에 사람들이 묵고 있었대.”
“그, 그것이 뭐가 잘못됐습니까?! 저희도 먹고살아야지요.”
그 순간 왜인지 새하얗게 질려 있던 술집 주인이 발작이라도 하듯 버럭 소리를 높였다.
이곳으로 온 이들의 신분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줄곧 굽실거리던 태도와는 달라진 모습에서 조바심과 당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로테아는 제가 보았던 단편적인 기억 속의 ‘여인’을 떠올렸다.
서둘러 방을 빠져나가던 겁먹은 얼굴의 여인은 싸구려 드레스를 입었지만 얼굴만은 아주 곱게 단장한 채였다.
뽀얀 피부에 복숭아처럼 홍조를 띤 볼, 넓고 볼록한 이마와 올라간 눈초리.
그녀는 사신이 다녀가고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탁기가 짙게 스며 있는 공간 구석구석을 훑었다.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주인은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루크가 눈짓하자, 기사들이 맞은편 방을 향해 들이닥쳤다.
“근데 맞은편에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앵두같이 붉고 오밀조밀한 소녀의 입술이 열렸다.
“짝짓기하는 사람들.”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강제로 문을 열자 안에서 당황한 듯 숨넘어가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저 복도 끝에서도 짝짓기하고 있대.”
“…….”
“자주 짝짓기를 한 흔적이 보인대.”
신이 난 듯 주변을 배회하던 ‘리리’가 이내 그녀의 품으로 들어가 스르르 모습을 감추자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기까지 상황이 드러났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바보는 없었다.
황자의 칼날같이 날카롭고 서늘한 눈빛이 덜덜 떨고 있는 술집 주인을 향했다.
데인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여기가 설마…… 불법 영업장이라는 거야?”
‘무엇을’ 불법으로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들 이해했다.
데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딴 곳을 운영하면서 날 불법 침입죄로 치안대에다 신고했다고?”
순간 옆에 있던 여관 주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턱을 타고 흘러 뚝,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체면과 자존심까지 바닥난 채 치안대에 연행되었던 데인의 두 눈에 살기가 뚝뚝 흘렀다.
도로테아의 말에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던 루크가 입을 열었다.
“시체 중 하나가 ‘그런 손님’이었으니, 방을 들여다본 적 없다는 말 또한 거짓일 수 있겠군.”
이 술집의 주인이 가게에서 성행하는 ‘다른 영업’ 또한 주선하고 있었다면 이 주나 되는 시간 동안 방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황자의 나지막한 말에 주인이 재빠르게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아닙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그, 저는 이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주고 방세를 받았을 뿐 무엇을 하는지까지 관여하진 않습니다.”
덜덜 떨며 하는 목소리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 간혹 포주들 몰래 돈을 더 벌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은 ‘외출’을 핑계로 다른 곳에 방을 빌려 개인적으로 손님을 초대합니다. 저는 그 방을 내주고 입을 닫는 대신 수수료를 조금…….”
“그거나 이거나. 당신이 하는 짓이 포주랑 뭐가 달라?”
“제가 받는 수수료는 그자들에 비해서는 아주 눈곱만큼……!”
짜증스레 대꾸하던 데인이 그제야 도로테아의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이미 들을 만한 이야기는 죄다 들은 것 같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의 사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반나체 상태로 줄줄이 기어 나오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중인 계급이었다.
하긴 살인 사건이 난 곳을 귀족이 들락거릴 이유는 없겠지.
루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살인이 일어난 방을 빌린 여인의 이름을 대라.”
남자가 희망과 기대를 안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 그러면 저는 놓아주시는 겁니까?”
도로테아는 아무 말 없이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좀 전 남자가 꺼낸 ‘양심껏 수수료를 받는다.’라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빚이 많은 여인들을 대상으로 방을 빌려주며 몰래 손님을 상대하게 해 놓고, 포주에게 말하겠다는 협박으로 돈을 두 배나 뜯어냈다.
빚을 다 갚고 발을 빼고 싶어 하는 여인들에게까지 일을 하기를 종용하기도 했다.
욕심 많은 건물 주인의 어깨를 수많은 그림자가 짓누르는데도 그는 오로지 눈앞의 황자만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죽은 자만큼이나 산 자의 원한도 깊고 짙은 법.’
그는 부디 루크가 그를 강력하게 처벌해 주길 바라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지하 감옥이 아니라면, 그를 향한 원한이 조만간 살의를 품고 찾아올 터이니.
* * *
잠시 뒤, 익숙한 상황에 놓인 데인이 눈을 끔뻑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연행된 거냐?”
“…….”
불법을 행한 술집 주인을 처벌하기 위해 치안대를 부른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루크는 현재 수사에서 제외된 상태.
도로테아와 데인은 수사 권한이 없는 외부인들이므로 현장을 둘러볼 수 없다.
즉, 법을 어긴 것은 술집 주인뿐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다 함께 사이좋게 치안대로 연행되어 온 일행들을 본 치안대장이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또 오신 겁니까.”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닌데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데인과는 달리 루크와 도로테아는 거리낄 것 없다는 듯 당당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푹 쉰 치안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저놈과 여러분을 따로 분리하여 가두는 것뿐입니다.”
결국 또다시 보호자에게 연락을 넣겠다는 말에 데인은 소리 없이 울며 구석에 틀어박혔다.
반면 벌써 두 번째로 감옥에 갇히게 된 도로테아는 이제 이곳에 완벽히 적응한 듯 뽈뽈뽈 잘도 돌아다니며 친분을 과시했다.
“영애, 이것도 좀 드릴까요?”
“응, 고마워.”
“이것도 드셔 보십시오.”
앞다투어 먹을 것을 건네는 감옥 간수들의 호의를 듬뿍 받으며 오물오물 간식을 먹고 있는 모양새를 보아서는 무서움에 떨기는커녕 긴장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 사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데인이 초췌한 얼굴로 루크를 향해 물었다.
“만일 발각되면 어찌하실 요량이셨습니까?”
불법으로 수사를 하다가 걸리신 거잖습니까.
데인의 말에 루크가 담담하게 눈을 내리깔고 답했다.
“응당 대가를 치를 생각이었다. 폐하께서 처벌하시는 대로.”
“애초에, 죽은 자들이 어떤 이들이길래 황자님께서 직접 나서시는 겁니까?”
“…….”
사건을 덮으려는 이들 또한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황자를 수사에서 제외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제국에서도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데인의 물음에 침묵하던 루크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도 저 아이가 정령을 다루는 방식 말이네.”
“네?”
“원래 저렇게 정령을 다루나?”
“그렇…… 지 않다면요?”
정령사가 본디 흔한 존재가 아닌 만큼, 그가 직접 만나 본 정령사는 도로테아 한 사람뿐이었다.
어리둥절한 데인의 말에 루크는 더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이 제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도로테아를 향했다.
뒤통수가 간지러울 법도 한데, 그녀는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양 간수들과의 카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몹시도 화기애애하고 꼴사나워 보였다.
“아하하. 영애, 이 카드는 뽑으시면 안 됩니다.”
“여기, 여기 있잖습니까.”
한참을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게임판으로 누군가가 스윽 발을 들이밀었다.
흥겨운 판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인 이를 향해 누군가가 눈을 부라리려던 순간, 정체불명의 인물이 천천히 후드를 벗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가진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얼굴을 하고 도로테아를 한 번, 갇혀 있는 다른 이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시선을 건넸다.
“폐……!”
간수 중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재빠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감옥 안에 있던 이들과 다른 간수들까지 노인의 발아래에 몸을 숙여 예를 표했다.
카드 게임이 중단되어 버린 아쉬움에 잠겨 있던 도로테아가 가장 마지막으로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를 건넸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폐하.”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네자 노인은 주름진 손을 그녀의 머리 위에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루크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루크, 내 아들아.”
“예, 폐하.”
“분명 수사권은 이미 거두어 간 것으로 아는데. 어찌하여 네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게냐.”
“송구하게도 우연히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해 내었습니다. 혹여 누군가 문제를 덮으려 조치를 취할까 염려되어 상황 보고 없이 먼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하이클레어 후작의 말로는 네가 저택을 방문해 영애를 직접 데리고 나갔다던데. 영애와 함께 사건을 쫓았다면 그건 우연이 아닌 것 같구나.”
황제의 날카로운 추궁에 루크가 입을 다물었다.
막내아들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 냈는지, 황제는 추궁 대신 한결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도로테아를 바라보았다.
“네가 정령사라는 걸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나는구나. 짐은 너를 욕심냈으나 후작은 네 건강을 문제 삼아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지.”
그녀의 남색 눈동자가 느릿하게 끔뻑였다.
은백색의 머리카락이 반쯤 가린 목은 여전히 가늘었지만 전처럼 손만 가져다 대도 꺾일 만큼 위태로워 보이지 않았다. 혈색이 도는 소녀의 뺨이 보기 좋은 복숭아 빛을 띠었다.
“짐의 눈에는 건강을 되찾은 듯 보이는데.”
하이클레어 후작가에서는 도로테아를 좀처럼 내보이지 않았다.
귀족 영애라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데뷔탕트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막내딸의 비극적인 죽음이 가슴에 사무친 탓일까.
그녀에게는 아무런 책임이나 의무도 지우지 않고, 그저 행복을 누리기만 하는 삶을 주고 싶다는 듯이.
그렇게 품속에서 좀처럼 내주질 않았다.
덕분에 아무리 탐이 나도 쉽사리 손을 뻗을 수가 없었거늘.
뜻밖에도 이런 연을 통해 다시금 재회하게 될 줄이야.
“네가 처음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때에도 내 아들은 널 위해 내게 말을 보태었지.”
불쑥 꺼낸 말에 도로테아가 고개를 갸웃하고 기울였다.
“녀석이 누군가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은 참 드물단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겠다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도 드물지.”
도로테아를 보는 황제의 시선에 따뜻한 빛이 감돌았다.
“공교롭게도 저 아이는 너를 만날 때마다 드문 일을 하는구나.”
그의 입에서 나올 마지막 말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데인이 창살을 꾹 쥐었다.
황제의 입이 다시 열리려던 찰나였다.
어디선가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우리 손녀딸을 꼬여 내서 대낮부터 환락 업소를 방문한 미친 황자 놈은 어디 있나?!”
우렁찬 후작의 목소리가 감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참에 내 아들과 정식으로 약혼을 생각해 보는 건…….”
어렵겠구나.
그런데 후작의 손에 들려 있는 저건 설마 검인가.
지금 저이가 짐의 앞에서 황자를 해하겠다고 검을 뽑은 건가.
대대로 제국을 지키는 수호검이라 불리던 하이클레어 가문의 검이, 황자를 겨누고 있었다.
제국에 다시없을 충신이라 칭송받는 노장군의 살기등등한 모습을 본 황제의 얼굴이 굳었다.
친우의 낯선 모습에 그는, 당겨 오는 뒷목을 잡고 깊고 깊은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