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사 도로테아 37화
발버둥 치는 소녀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발목을 타고 오르는 얼룩들이 점차 그녀를 삼키는 것이 보였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저 홀로 몸을 비틀며 발작하는 것 정도로만 보였으리라.
그러나 도로테아의 눈에는 강렬한 불꽃에 소녀의 혼백이 타들어 가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금술의 매개가 그녀의 혼이었군.’
헤르티아는 그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손잡은 이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악독한 인간들인지 알지 못했으리라.
어느새 무언가 씌인 듯 뿌옇게 흐려진 눈동자에서 진득한 검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어떤 자가 이리도 잔인무도하게 굴었을까.’
하나하나 자신을 잃어 가는 소녀의 모습이 참혹했다.
줄곧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던 콜린의 시선이, 인형처럼 죽은 눈을 하고서 온몸을 비트는 소녀를 감흥 없이 바라보는 필립에게 닿았다.
“콜린.”
도로테아의 부름에 뜨끔한 그가 재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시침을 뗐다.
그녀는 그런 콜린을 모른 척 물음을 던졌다.
“혼이 타들어 가는데도 사신이 오지 않는 것은 헤르티아의 죽음이 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도로테아의 물음에 콜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제야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이곳을 맴도는 동료들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줄곧 엉뚱한 곳에 신경을 쓰다 보니 위화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조차도 간과하고 넘어간 것이다.
“그렇군. 저 아이의 생을 책임지는 명부가 있을 텐데.”
콜린이 얼굴을 찡그렸다.
신의 명부에 적힌 이름이 멋대로 지워지는 중대한 사항을 놓칠 사신은 없다.
콜린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혼을 태우고 있는 검은 불꽃을 바라보았다.
“저건 마족들이 쓰는 마정(魔精)이로군.”
“마정?”
“그러니 혼이 소멸되고 있는데도 사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마계와 계약을 맺은 자가 금지된 흑마법을 사용해 저 여자의 혼을 지우는 거지.”
예정되지 않은 죽음이지만 그 죽음조차 어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혼이 소멸되고 나면 그녀의 존재는 이 세계에서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두 번 다시, 그 어떤 경우에도 되살아날 수도 되돌아올 수도 없는 영원한 소멸이었다.
사신의 낫은 육체와 혼을 분리한다.
생의 끝을 맞이한 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삶의 인과를 짊어지고 죽은 자들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지 못한 혼백들은 땅에 남고, 강을 건너간 자들은 다음 생을 준비한다.
저 혼은 두 번 다시 다음 생을 준비할 수 없을 테지.
“욕심에 비해 꽤 비싼 대가를 치르는구나.”
검은 불꽃이 소녀의 혼을 삼킬 듯 날름거렸다.
헤르티아로서는 욕심에 한순간 잘못된 길로 들어선 대가로 앞으로 허락된 삶도, 그다음의 생조차도 모두 잃게 된 셈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콜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면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네.”
헤르티아를 내려다보던 도로테아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상대가 원하는 바가 그거라면 굳이 내가 동참해 줄 까닭은 없지.”
그녀는 제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다람쥐를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막 깨어난 피피는 눈을 비비적거리다가, 타오르는 혼을 보고 본능적으로 털을 잔뜩 세우고 풍성한 꼬리를 빳빳하게 든 채 몸을 세웠다.
“콜린, 힘을 쓰는 걸 허락할게. 이걸로 저 육신에서 혼을 베어 내.”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지금 혼을 분리한다 하더라도 네가 원하는 정보 같은 건 얻을 수 없을 거다.”
조각난 혼이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오려면 수백 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릴 텐데.
콜린의 말에 도로테아가 생긋 웃었다.
“고작 몇 마디 듣자고 이런 수고를 하는 것 같아? 그건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어.”
상대를 동정하거나 연민하고 안타까워하는 눈도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결과적으로 내가 가져온 정령은 저 아이의 것이었잖아.”
대단하진 않아도 제법 귀여운 것이, 비싼 값을 치를 만한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아이였다.
게다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도 있지.
“저들의 뜻대로 해 주고 싶지 않은걸.”
약하디약한 소녀 한 명 정돈 그냥 두어도 될 것을, 이 정도로 공들여 술법을 걸어 놓은 까닭이야 뻔했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겠지.
“저걸 남겨 놓으면 쓸데없는 수작에 열을 올린 인간들에게 침 정도는 뱉어 준 셈이 되는 것 아니겠어?”
온전하지 못한 혼을 누군가 발견해 준다면 더더욱 고마운 일이고.
비록 헤스티아를 건드리긴 했지만, 그들도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당분간 신중하게 몸을 사릴 터.
이미 숨어 버린 이들을 찾아내 응징하려면 이래저래 성가신 데다, 이쪽에서도 많은 손해를 봐야 할 게 불 보듯 뻔했다.
눈을 가늘게 뜬 도로테아가 콜린을 못 미덥다는 듯 흘겼다.
“네 일이잖아. 설마, 네가 누구였는지 벌써 전부 잊어버린 건 아니지?”
“말은 잘 하는군.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됐는데.”
“그러니 기회를 주겠다는 거야. 네가 예전에 하던 일을 하며 간만에 추억이라도 되새겨 보라는 뜻에서.”
도로테아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던 콜린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는 도로테아의 손바닥 위에 있던 다람쥐를 마치 으스러뜨릴 듯 강한 힘으로 쥐었다.
그 순간만큼은 줄곧 아닌 척 의식하고 있던 필립의 존재조차 잊은 것처럼 보였다.
자그마한 다람쥐가 저를 덥석 쥔 콜린의 손에서 바둥거리던 것도 잠시, 이내 축 늘어지며 빠르게 변화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은빛 낫이 날름거리는 검은 불꽃을 겨누었다.
입꼬리를 올린 도로테아가 돌처럼 굳어 있던 필립을 잡아당기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입에서 필립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말이 흘러나왔다.
‘속(俗)’의 세계로 내려온 차사가 다시 오시나니, 그로 하여금 잘못된 멸(滅)을 맞이하는 가여운 혼을 베도록 허락하노라.
그의 낫이 상대를 내려칠 듯 높이 올라간 순간이었다.
도로테아가 멍하니 서 있는 필립을 향해 물었다.
“저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고 싶니?”
“…….”
“저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그 어떤 것에도 흥미 없고 관심조차 없다는 듯 줄곧 메말라 있던 눈이 도로테아를 담았다.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녀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가여운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필립은 이곳에 들어설 때부터 깨닫고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진실을 보여 줄 수 있어. 다만, 그것이 꼭 너를 행복하게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마음이라는 건 좀처럼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때때로 그녀가 의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던 필립의 입이 열렸다.
“……보여 줘.”
“좋아.”
생긋 웃은 도로테아의 손이 천천히 소년의 눈을 가렸다.
미지근한 온기가 눈두덩을 가리자 한순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그의 눈을 할퀴고 지나간 듯 후끈거림이 남았다.
“자, 눈 뜨도록 해.”
그녀의 말에 천천히 눈을 뜨자, 필립은 그의 앞에 펼쳐진 기괴한 장면에 말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보이지 않던 새까만 연기가 헤르티아의 입과 코로부터 꾸역꾸역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금방이라도 삼켜 버릴 듯 넘실대는 검은 불꽃과, 그것을 겨누고 있는 커다랗고 위협적인 낫.
그리고 그 낫을 손에 쥔 콜린.
필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소년이 오랜 시간 동안 뼈와 혼에 새길 만큼 증오해 온 자의 것과는 달랐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것처럼, 몹시 이질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
그 누구보다 욕망으로 번득이는 눈을 갖고 있던 콜린이, 저 자일 리 없었다.
심연과도 같은 검은 눈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오한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높이 들어 올린 낫이, 그대로 소녀의 몸을 관통한 순간이었다.
“끼아아아!”
기괴한 비명 소리가 감옥 안을 가득 메웠다.
그녀의 몸을 통과한 낫이 타오르고 있던 혼을 그대로 육신에서 끄집어냈다.
이미 상당 부분이 소실되고 망가진 혼은 빛조차 잃고 흐릿해진 상태로 육신과 한참 떨어진 곳으로 힘없이 날아갔다.
남은 혼이 너덜너덜한 것이 소년의 눈에도 보였다.
끼익. 끼익.
듣기 싫을 만큼 높고 날카로운 손톱 긁는 소리가 몇 번이고 귀를 자극했다.
그것을 노려보던 콜린이 입을 열었다.
- 꺼져라.
나지막한 목소리가 경고하자, 이지를 잃고 본능만이 남은 반쪽짜리 혼백은 흐물거리며 공간을 빠져나갔다.
운 좋게 다른 사신을 만나게 된다면 누군가가 이곳에서 혼의 소멸을 갖고 장난치고 있음을 알게 될 터였다.
천천히 돌아선 콜린은 저를 바라보는 필립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끼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어느새 다시 다람쥐로 돌아온 신기가 쪼르르하고 재빠르게 도로테아의 품으로 돌아와 안겼다.
“설마, 네가 ‘보여 준’ 거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납득하지 않을 테니까.”
“…….”
콜린은 아직 채 반생조차 살지 못한 어린 인간에게 ‘죽음의 세계’에 속하는 것들을 보여 줬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도로테아를 노려보았다.
필립은 다시 무정하고도 잔혹한 제 아비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낯선 이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
이런 얼굴을 하고 이런 목소리를 내는 자가 또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조금 전의 비현실적인 장면들은 소년으로 하여금 자그마한 확신과, 그로 인한 희망을 품도록 만들었다.
자신을 볼 때마다 혐오와 분노로 점철되어 있었던 눈은 여전히 냉랭하고 무감해 보이기는 했으나, 조금이나마 난감함이 스며 있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필립은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느릿하게 참고 있던 숨을 뱉었다.
“당신은, 그 작자가 아닌 거지.”
“그래.”
담담한 말에 필립은 멍하니 그를 보다 입술을 달싹였다.
그 입에서 나올 말을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묻지도 않은 질문에 도로테아가 대신 답해 주었다.
“이제 두 번 다시 과거의 ‘아버지’를 볼 수 없을 거야.”
그는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콜린은 도로테아의 말에 성가신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좀처럼 믿기 힘든 사실에 필립이 눈을 감았다.
눈앞의 남자가 휘두른 낫이 무엇인지, 어째서 그가 저 몸에 들어앉아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 남자.”
“응?”
창백한 안색의 소년은 몹시도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그 남자, 고통스럽게 죽었어?”
“응.”
도로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저 애보다도 훨씬 더 괴롭고 고통스럽게 타 죽었어.”
도중에 멈춰 주는 사람조차 없었으니 그 혼이 갈기갈기 찢겨 다른 이들의 배 속으로 들어가고, 불타고, 끝끝내는 손톱만 한 조각조차 남지 않았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혼백이 상처 입는다는 건 그런 거니까.
도로테아의 눈이 이미 숨을 거둔 헤르티아의 육신으로 향하자, 비로소 남자의 최후를 짐작하게 된 소년의 입에서 한숨과도 같은 긴 숨이 흘러나왔다.
어제까지의 고단하고 괴로웠던 감정들을 가두어 내보내는 양 깊고 무거운 숨이었다.
“아…….”
순간 외마디와 함께 도로테아의 몸이 힘없이 아래로 스르르 내려갔다.
당황한 필립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녀의 나뭇가지처럼 얇고 흰 다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은, 마치 그녀가 후작가에 처음 들어올 무렵처럼 병색이 완연했다.
필립을 대신해 콜린이 투덜거리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콜린, 멋대로 힘을 너무 많이 가져갔잖아.”
“신기를 다루는 일이다. 게다가 혼을 남기라는 까다로운 요구까지 해 놓고서는,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어?”
못마땅한 듯 쏘아붙인 그가 힘없이 무너진 그녀의 몸을 안아 들었다.
자연스레 품에 기댄 도로테아가 눈을 감자 콜린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필립이 천천히 콜린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도로테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소년의 텅 빈 눈동자에 미약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